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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시원한 발표였어 (56/303)

모처럼 시원한 발표였어

사무실로 돌아온 손정태 상무는 곧바로 그룹 본사 재무리스크팀장과 전략 기획 본부장을 호출했다.

재무리스크팀장과 전략 기획 본부장을 양옆에 앉혀 놓고 정태가 말했다.

“회장님 지시 사안이고, 제가 직접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될지도 모르는 내용이 떴습니다.”

이미 회장님 지시 사안에 본사 상무가 총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만으로도 자리에 호출된 두 실력자는 사안의 중요성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속도전을 펼쳐야 할 부분도 있고, 둘러 가더라도 디테일을 반드시 잡아 놓고 가야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스너프가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전략 기획 본부장이 눈치를 채고 확인차 물었다.

“스너프라면 커머스 플랫폼 말씀이십니까?”

“네, 현재 4천억에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속도전은 아무래도 본부장님 주특기니까, 본부장님이 그쪽이랑 접촉을 좀 해 보세요.”

“네,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하면 되겠습니까?”

“4천억은 어디까지나 자기들이 받고 싶어 하는 호가일 겁니다.”

“그렇겠죠.”

“협상 전에 재무 상태부터 확인해 보시고요, 다른 투자사 쪽으로 물려 있는 내용은 없는지, 고용 유지 부분은 어떻게 기대를 하고 있는지 정도만 빠르게 파악을 해 보시고, 뒤로 빠지세요.”

“미끼만 던져 놓고 나오란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정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커머스 플랫폼 시장은 이미 다른 쟁쟁한 기업들이 꽉 잡고 있는 시장인데, 겨우 업계 4위, 그나마도 3위하고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진 상태로 시장에 나와 있는 스너프 쪽에 공격적으로 대시를 하는 업체는 없을 겁니다. 다들 간만 보는 정도겠죠.”

“딱 그 정도 뉘앙스만 주고 빠지면 되겠습니까?”

“가능성은 열어 줘 놓고 빠지셔야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상무님.”

“네.”

“상무님이 말씀대로 스너프는 후발 주자에 트래픽도 저조한 플랫폼입니다. 그런 플랫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트래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항공으로 얼마든지 폭발적 증가를 유도해 낼 수 있습니다.”

그 말뜻을 되새겨 보던 두 실력자는 거의 동시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쳐다봤다.

정태 역시 그런 반응을 보이는 두 실력자의 모습에 흥분이 배가 되고 있었다.

“제가 왜 속도와 디테일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는지 이제 아시겠죠?”

“네.”

“네.”

두 실력자는 동시에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을 했고, 그런 실력자 둘 중 재무리스크팀장을 쳐다보며 정태가 말했다.

“인수하게 된다면 무조건 통인수가 되어야 합니다. 어설프게 지분 보장해 주고, 깔려 있는 생산 라인 쪽으로 어느 정도 매출 분배를 해 준다는 식의 복잡한 계산은 나중에 귀찮은 계산만 늘어나게 만들 겁니다.”

“네.”

“우리가 통인수를 할 때, 현재 그쪽 유통 라인에서 보수 설비 재정비로 들어갈 추가 예산은 최대한 디테일하게 뽑아 주시고, 그쪽 고용 상황에 대해서도 내일까지 제가 회장님께 간단한 브리핑 정도를 가능할 수 있도록 자료를 모아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쩌면….”

정태는 여전히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광대가 씰룩거리는 얼굴로 자리에 모인 두 실력자를 향해 말했다.

“이거 한 방으로 항공뿐 아니라, 식품, 모직… 더 나아가 커머스 플랫폼 시장의 판도까지도 뒤집힐 수 있습니다. 집중해서 진행해 주세요.”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재무리스크팀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통인수에 4천억, 금융권 대출을 일으켜야 가능할 거 같은데 사실상 이 정도 사이즈면 금융권에선 대출이 아니라 투자 형식으로 접근해 올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그럼 통인수라는 개념에선 벗어나게 되는 거고요.”

“팀장님.”

이미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정태였다.

싱긋이 웃으며, 마치 자기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재무리스크팀장을 가지고 놀 듯 정태가 말했다.

“네, 상무님.”

“재경의 자본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재무리스크팀장님이 그런 내용을 저보다 더 모르시면 안 되죠.”

“하지만….”

“그룹 본사 차원의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는 항공과 식품, 모직 삼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유통의 판로를 뚫어 주게 되는 거고요. 그룹 본사 자체 유보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금융권이 아닌, 우리 자체 삼사의 투자를 유도한다면 4천억이 돈입니까?”

“……!”

“재경의 삼사 모두 다른 커머스 플랫폼 쪽으로 상품 노출을 위해 적게는 14퍼센트, 많게는 23퍼센트까지 플랫폼 수수료를 떼이지 않습니까? 그 수수료 부분만 재경 상품에 대해선 5퍼센트대로 고정을 시켜 주고 투자를 유도한다면 각자 알아서 달러 빚을 내어서라도 투자를 태우지 않을까요?”

“…네.”

“그리고 회장님 지시 사안이라니까요?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우리 재경이 100프로 통인수를 할 수 있도록만 판을 깔아 보세요. 안에서 갈라 먹는 거야, 어차피 우리끼리 갈라 먹는 건데 어떻게 갈라 먹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 * *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재경 그룹 본사 회의실.

항공과 식품, 모직 삼사 사장단이 그룹 본사로 모였다.

손홍준 회장의 참관 아래 본사 상무가 직접 그룹 사장단을 상대로 하는 신사업 프로젝트 기획안 발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룹 본사에서도 손정태 상무 위로 위치해 있는 주요 임원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을 한 무게감 있는 자리였다.

가장 상석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손홍준 회장의 손에는 다른 사장단, 임원진들보다 한 질 더 많은 서류가 들어 있었다.

바로 이 기획안 발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손정훈 모직 인사부 과장의 기획안이었다.

손홍준 회장은 정태의 발표와 정훈이의 기획안 내용을 비교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준비한 기획안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지도 자리에 참석한 사장단, 임원진 모두는 스크린 앞으로 서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손정태 본사 상무가 향후 2, 3년 뒤 여전히 비어 있는 그룹 부회장 자리로 올라갈 것이란 내용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모직에서 참관한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까지도 그 내용에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손정태 본사 상무는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였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비록 앞에서 내색은 못 하고 있지만, 지금의 재경에겐 수성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 손홍명 회장의 진중함보다 손정태 상무가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기질이 반드시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만큼 지난 십수 년간 재경이라는 병든 용은 날개가 접힌 채, 구석 자리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자리만 지키고 있었을 뿐, 그 화려했던 날갯짓을 시원하게 펼쳐 내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만큼 이 자리에서 손정태 상무가 발표한 공격적인 기획안은 그간 화려했던 재경의 지난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본사 임원진, 그룹 사장단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상석에 앉아 있는 손홍준 회장만큼은 다른 사장단, 임원들이 느끼고 있는 흥분 대신 차갑게 식어 있는 이성적인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로 해당 발표와 정훈이가 만들어 올린 기획안을 비교·분석해 나가고 있었다.

“우선은 항공입니다.”

정태는 스너프 인수에 관한 큰 골자를 먼저 화두에 던져 놓고 자리에 모인 삼사 사장단과 그룹 본사 임원진들의 혼을 쏙 빼놓은 뒤 그들의 눈에서 흥분의 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후 디테일을 잡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재경이 스너프를 인수하게 된다면 항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트래픽 부분을 반드시 커버해 줘야 합니다. 항공이 확보하고 있는 재경과 재경의 제휴 항공사 마일리지 회원들, 그 회원들이 만들어 낼 잠재 트래픽이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이 되어 줄 것입니다.”

펜을 든 손홍준 회장의 손을 쉬지 않고 정훈이가 올린 기획안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항공 쪽에서 신상훈 사장이 아주 긍정적인 표정, 하지만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계열의 이미지 및 매출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이 짚고 넘어간다는 듯 손가락 사이에 펜이 끼워진 손을 들었다.

“네, 사장님. 말씀하시죠.”

정태의 발표엔 고급스런 여유가 묻어 있었다.

중간에 자신의 발표가 끊어졌음에도 마치 미리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손을 뻗어 신 사장을 가리키며 존중으로 그의 질문을 받았다.

“그룹 전체의 미래, 장래성을 봤을 때 아주 중요한 변곡점 역할을 해 줄 프로젝트라는 점에는 저도 동의를 합니다.”

그저 묵직하게 고개만 한 번 끄덕일 뿐, 손정태 상무는 상대의 발언을 중간에 끊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손홍준 회장은 손 상무의 그런 물 흐르듯 진행하는 발표 태도마저 놓치지 않고 체크를 해 나갔다.

“그런데 항공의 살림을 맡아 나가고 있는 입장에서 제가 살짝 우려되는 부분은 현재 재경항공의 티켓 판매처 플랫폼들의 반발입니다. 항공 티켓 판매 플랫폼은 국내에만 스물여덟 곳이 됩니다. 외주로 판매 대행을 맡기고 있는 해외 사이트까지 다 포함을 한다면 600곳이 훨씬 넘습니다.”

여전히 손 상무는 고개만 끄덕일 뿐,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

마치 그 우려에 대한 준비는 모두 다 끝내 놓았다는 자신감처럼 보였다.

“물론 판매 대행을 맡기고 있는 트래빌러 같은 해외 사이트는 다 제외를 해야겠죠. 하지만 국내 플랫폼들은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비책 같은 건 따로 마련이 되어 있는 건가요?”

질문의 마지막 물음표까지 확인을 끝낸 뒤 손 상무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 모든 모습에는 재경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세련되고 우아한 맛이 깃들어 있었다.

“국내 항공 티켓 판매 플랫폼이 스물여덟 곳이다… 네,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 삼사 플랫폼에서 올라오는 재경항공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62퍼센트를 조금 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치죠. 여기에 여행사 플랫폼까지 더해진다면 항공사 직거래보다 대행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태는 가장 상석에 앉아 쉬지 않고 자신의 발표를 체크하고 있는 손 회장을 잠시 쳐다본 후 말을 이어 갔다.

“자국 항공 시장 점유율.”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크린 위로는 현재 재경항공이 국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에 대한 그래프가 올라왔다.

“자국 항공사 시장에 재경은 시장 점유율 80퍼센트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 항공 시장 전체를 놓고 본다면 40퍼센트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지지만 단일 항공사의 시장 점유율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역시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확한 근거였다.

“항공권을 취급하는 국내 어느 플랫폼에서 재경항공의 티켓을 빼놓고 플랫폼 운영을 할 수 있을까요? 항공은 유통이 공급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산업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재경항공은 제대로 된 유통판이 없었기에, 산업의 특성상 소비자들이 항공사 자체 홈페이지보다는 중간 플랫폼이나 여행사 같은 대체 판매처를 끼고 구입을 하는 게 당연시되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플랫폼 수수료를 떼어 줘야 했던, 재경 안에서는 가장 억울했던 상품이었다고 봐야겠죠.”

정태는 자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손 회장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더 쌓아 나갔다.

“재경이 스너프를 인수해서 자체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해도 타 플랫폼에서는 그 어떤 반발도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에 한다고 하면… 다 빼면 됩니다.”

손 상무의 확신에 찬 모습에 자리에 모인 모든 그룹 사장단과 임원진들은 그간 잊고 지냈던 통쾌함이라는 감정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당장의 영업 손실은 있겠죠. 하지만 그 영업 손실이 얼마나 오래갈까요?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방법을 자신감으로 밀고 나간다면, 최소한 국내 시장 안에서 항공 티켓 판매에 있어서만큼은 스너프가 독보적인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항공이라는 건 소비자들이 쉽게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상품입니다. 마일리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습관이라는 것도 있고, 항공 노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정태는 다시 한번 스크린 화면을 넘겼다.

“상품이 유통을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 바로 항공인데, 그 부분에 대한 우려는 크게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안전장치 역시 성의껏 갖춰 놓겠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식품과 모직에 관한 사업 확장성에 대한 손 상무의 발표는 다시금 식품 쪽 사장단과 모직 쪽 사장단의 심장을 크게 뛰게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끝내 손홍준 회장의 펜끝은 정훈이가 만들어 올린 기획안 안에서 마지막 항목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금융에 관한 항목이었다.

정훈이가 올린 기획안 안에는 재경 그룹 삼사 외 금융을 스너프 플랫폼에 추가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손 회장은 스마트 페이 결제 시스템이 해당 프로젝트에서 실질적 가장 큰 이윤을 창출해 낼 효자 종목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외 기업의 인앱 결제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그곳으로 시스템 비용의 수수료를 떼이지 않고, 스마트 페이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금융 기업과 손을 잡고 스너프를 키운다면 재경은 커머스 플랫폼 사업에만 뛰어드는 게 아니라 오래전 놓친 금융 사업에도 다시 뛰어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손 회장이 정훈이의 기획안을 처음 받고 가장 크게 놀랐던 내용이 바로 이 내용이었다.

정훈이는 이 스너프 인수 건 하나로 오래전 재경이 놓쳐야만 했던 유통과 금융을 동시에 확보할 방법을 제시했던 건데, 정태는 그런 큰 그림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스너프 인수를 통해 그룹의 계열을 하나 더 확보하고, 현 삼사의 사업 확대를 도모하는 내용에만 모든 걸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손 회장 입장에선 충분했다.

발표 준비는 완벽했고, 그 자리에서 그룹 사장단, 임원들을 설득하는 손 상무의 태도는 손 회장으로 하여금 뿌듯한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훈이의 기획안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님 그 기획안이 보여 준 큰 틀 안에서 만들어진 발표였기 때문일까, 손 회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쉬움을 끝내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것으로 스너프 인수 관련 기획 발표는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직의 남필우 사장 역시 조동희 전무와 눈빛을 교환하며 말로 형용하기 힘든 설렘에 박수 소리를 보태고 있었고, 손홍준 회장 역시 다른 이들의 박수 치는 모습을 천천히 살피며 함께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정태에게 박수를 보내 주었다.

박수 소리가 멈춘 뒤 잠시 이어진 침묵.

그 침묵을 깨뜨리며 손 회장이 스탠드 마이크를 앞으로 구부렸다.

“어….”

모두가 손 회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 상무가 아주 큰 그림을… 잘 그렸네.”

정태는 민망했다.

당신이 그려서 채색을 해 보라고 건넨 그 그림을 두고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공로를 떠넘기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정태는 그런 아버지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고개만 짧게 숙이는 것으로 칭찬에 대한 쑥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손 회장의 칭찬이 이어졌다.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내용이야. 아니, 안 하면 바보 소리 듣겠는데?”

그 말에 자리에 모인 회사의 모든 중역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뭐 내 입장에선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만 가지고 한 상 거하게 차려서 밥까지 떠먹여 주는 꼴 아닌가. 씹고 삼켜서 소화 시키는 거 정도는 해야지. 다들 안 그래?”

“네, 맞습니다. 하하하.”

“그럼요. 그 정도도 안 하려고 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항상 그런데가 문제다.

발표 내내 보였던 정태의 여유가 조금씩 말라 가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말이야. 이 자체로는 핵폭탄급 파괴력을 기대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무리가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좋아.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밥상이야.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완벽한 밥상인데… 나는 왠지 이 완벽한 밥상을 우리 가족들끼리만 앉아서 먹기가 너무 아까워.”

“……?”

“왜 요즘 사람들 많이 하는 거 있잖아? 이 정도 밥상이면 사진도 찍고, 찍은 사진을 SNS 같은 데 올려서 자랑질도 좀 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이건 너무 우리끼리만 잘 먹고 만족해야 하는 밥상인 거 같단 말이지.”

어느 누구도 손 회장이 하고 있는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이 밥상에 요리 몇 개만 더 추가되면 잔칫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잔칫… 상이요?”

“그래. 좀 굵직한 요리 한두 개만 더 준비되면 이건 잔칫상이지, 일반 밥상은 아니지. 이런 큰 상을 차려 놓고 조용하게 우리 가족들끼리만 먹는다? 그렇게 재미없게 살 거면 뭐 하러 돈을 버나? 뭐 하러 이 많은 음식을 차리냐고. 이럴 땐 집에 손님도 초대해서 시끌벅적하게 온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잔치를 벌여야지.”

“……?”

“요즘 젊은 사람들 많이 쓴다고 하는 스마트 페이. 그걸 좀 여기에 접목을 시켜 보지 그러나?”

“……!”

“커머스 플랫폼과 금융이 함께 붙는 경우도 요즘은 많잖아. 이 정도 규모의 밥상이라면 여기에 금융 하나 더 올리는 건 일도 아닐 거 같은데? 손 상무.”

“네, 회장님.”

“이건 이대로 진행을 하면 될 거 같고, 방금 내가 말한 내용도 잘 한번 고민을 해 봐. 항공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트래픽만 2,100만이야. 스너프가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트래픽도 400만은 넘고. 물론 중복되는 트래픽도 틀림없이 있겠지만,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대한민국 인구 절반에 가까운 트래픽을 오픈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사업이야. 여기에 왜 가장 중요한 금융을 빠뜨리나. 이 시대의 사업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받는 구조로 이뤄져야 해.”

“…….”

“결국 이 트래픽 사업도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가상의 공간으로 유통판을 만들어, 자릿세, 수수료를 받는 사업 아닌가. 설정은 입 댈 곳 없이 잘 잡힌 사업이 확실한 거 같으니, 여기에서 그 부분만 추가해서 디테일을 다시 잡아 봐.”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수고했네. 모처럼 시원한 발표였어.”

그렇게 말한 후 손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자리에 모인 모든 인물이 함께 일어났고, 그중 손 회장은 모직에서 온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에게만 따로 자신을 따라오라는 눈빛을 보낸 뒤 몸을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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