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풀어 보라고 있는 거죠
―회장님께서 직접이요?
오랜만에 파리 생뚜앙 지사로 파견을 나가 있는 고 부장과 통화를 했다.
“네. 아마 사장님께서도 지사장님께 따로 연락을 주실 겁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제가 부장님께 방법을 좀 미리 알려 드리려고요.”
―무슨 방법이요?
“이 기회에 회장님께 점수 좀 따셔야죠.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다고요.”
이번 구정 명절 땐 홍준이가 직접 생뚜앙 지사를 방문해 보겠단 뜻을 내비쳤다.
“제가 일전에 부탁드렸던 내용 있죠?”
―지사 이전에 관련된 내용 말씀하시는 거죠?
“네. 알아보신 내용 있으시죠?”
―네, 과장님 말씀이 맞으셨어요.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본사에 있을 땐 몰랐는데, 제가 직접 가족들 다 데리고 생뚜앙 지사에 와서 몇 달 정도 생활을 해 보니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 학교 문제부터 시작해서 동네 치안, 환경까지… 저도 그렇게 느끼지만, 집사람도 많이 열악하다고 생각을 하네요.
“그럴 겁니다. 새로운 지사 사무실 자리로 알아본 곳은 좀 있으세요?”
―1구에서 3구 위주로 몇 군데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다 좋을 순 없는 거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요?”
―우선 한국과는 달리 파리, 그중에서도 1구에서 3구 사이 중심가 쪽은 신축 건물이 많이 없습니다. 다 최소 200년, 300년 이상씩 된 오래된 건물들이죠. 그런데 그런 오래된 건물들은 그때 과장님께서 말씀하신 정도 규모의 사무실을 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저는 개인적으로 피하고 싶고요.”
“이유는요?”
―여기 사람들은 오래된 건물에 로망 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결국 지사 직원들의 70퍼센트 이상이 한국 직원들 아닙니까. 정서에 잘 안 맞습니다. 그런데 또 지어진 지 20년 안팎의 건물들은 위치나 주위 환경이 마음에 들어서 알아보면 하나같이 나와 있는 게 다들 매물이고, 월세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꼭 월세를 알아보시란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네?
“매물로라도 직원들 근무 환경에 적합한 게 나와 있으면, 디테일을 좀 뽑아 보세요.”
―매물을요?
이 친구 이거….
설마 내가 그런 내용까지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 줬어야 했나?
아닌가?
이 친구 입장에선 그런 내용이 혼자 판단하고 시장 조사를 하기에 어려운 내용이었으려나?
“한국처럼 파리는 중심가에 초고층 빌딩들만 빼곡한 건 아닐 거 아닙니까.”
―오히려 빌딩 같은 건 라데팡스 쪽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보기가 어렵죠.
“파리가 강남만큼 건물값이 센 것도 아닐 거고. 오히려 건물 자체를 통으로 우리 지사가 사옥 개념으로 쓸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나쁘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매물 쪽으로 알아봐도 된단 말씀이세요?
그래.
그렇겠네.
이건 고 부장에게 일을 주면서 정확한 범위를 잡아 주지 않았던 내 실수라고 봐야겠네.
정확한 예산도 정해 주지 않고, 인사부 일만 20년 넘게 해 왔던 고 부장에게 한국도 아닌 파리의 지사 사무실을 무턱대고 알아보라 했으니, 충분히 애를 먹었을 수 있겠다.
“혹시 위치나 생활 환경권이 괜찮은 곳에 나와 있는 매물들 가격이 어느 정도 선인지는 파악하고 계세요?”
―기본적으로 한국 꼬마 빌딩 정도 높이와 면적이 되는 건 5밀리언에서 15밀리언 사이입니다.
“유로로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렇죠.
내 실수가 맞는구나.
한국 돈으로 고작 70억에서 200억 사이 되는 걸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도 되는 건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겨 놨으니….
“거기에 10밀리언 더해서 25밀리언까지 사무실 잡는 예산으로 잡아 드릴게요.”
―25밀리언이요?”
답답하네….
“그렇다고 또 딱 그 25밀리언 안에서만 움직이지 마시고요. 플러스, 마이너스 5밀리언씩 해서 좀 융통성 있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말 안 해도 다 아실 만한 분이… 기회 좋잖아요. 이번 구정에 맞춰서 회장님 가신다고 하니까, 같이 식사하시면서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서 지사 사무실 이전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하고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 보시라고요.”
―그걸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지사장님이랑 같이하셔도 되고요.”
―아뇨, 제 말은 사장님도 계시는데, 이 정도 큰 프로젝트를 감히 지사 파견 나와 있는 제가….
“답답하시네, 진짜. 사장님 지시 사안이었다… 하는 전제 조건을 먼저 깔아 놓으면 되잖아요.”
―아, 이게 사장님 지시 사안이었던 겁니까?
확실히 이런 일은 인사부가 아닌 전략 기획 쪽 직원들에게 맡기는 게 맞는 거네.
“설마 회장님이 25밀리언, 30밀리언짜리 프로젝트를 자세히 뜯어보시겠습니까? 그걸 딴 데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재경모직 쪽 매출 70퍼센트를 만들어 주고 있는 생뚜앙 지사 사옥을 매입하는 곳에 쓰겠다는 건데. 사장님께는 제가 말해 놓을 테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회장님 가시기 전에 분위기 봐 가면서 기분 좋으시다 싶으면 그 이야기를 꺼내 보시란 말입니다.”
―아, 네.
“회장님이 보기랑 다르게 은근히 기분파인 부분도 있습니다. 중간에 특별한 일정이 안 잡혀 있음 매물 나와 있는 걸 같이 보러 가자고 하실 수도 있고요. 또 누가 압니까? 그 자리에서 회장님 권한으로 바로 매입하고 이전 준비하란 말씀을 하실지. 그러니까, 회장님 가시기 전까지 좀 더 신경 써서 준비해 보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네, 과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김 부장 통해 과장님 소식은 종종 전화로 전해 듣고 있습니다. 활약이 대단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대단은요. 아직 일다운 일은 시작도 못 하고 있는데. 얼른 거기 세팅 끝내 놓고 넘어오십시오. 앞으로 진짜 같이해야 할 활약이 많습니다.”
―제가 가서 할 게 있겠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왜요? 설마 벌써 거기가 좋으신 겁니까? 안 돌아오고 싶으신 거예요?”
―그럴 리가요. 하하하.
“벌써 파리 지사 넘어가서 앞으로 우리가 같이해야 할 활약의 발판을 만들고 계시는 분이 바로 부장님입니다. 제가 약속했잖아요. 귀하게 다시 모셔 오겠다고요. 아무튼, 좀 신경 써서 알아봐 주시고요, 회장님 가시기 전에 제가 다시 한번 전화 걸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네, 들어가세요.”
* * *
점심은 사내 식당에서 신상품 개발팀 윤 팀장과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니어즈 디자인팀이 들어오면서 정신없죠?”
내가 던진 질문 앞에 윤 팀장은 적당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오묘한 대답을 내어 놓았다.
“정신이 없는 건 맞는데, 그게 시니어즈 디자인팀이 들어와서인지, 아니면 과장님께서 저희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사업을 진행을 시키셔서인지는 분간이 잘 안 되네요.”
“에이, 벌써부터 우는소릴 하시면 제가 곤란해지죠.”
“우는소리가 아니라, 웃는 소리였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적당히 긴장감도 생기고, 저는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오히려 시니어즈 디자인팀 팀장이 적응을 잘하고 계시는지, 아닌지가 걱정일 뿐이죠.”
“윤 팀장님이 걱정하실 부분은 아니죠. 적응하면 서로 좋은 거고, 적응을 못 하면 아쉽지만, 서로가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수밖에요.”
국은 한 숟갈 입에 넣은 후 윤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코가 석 자인데, 제가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죠.”
“그 부분은 개발부장님이 알아서 교통정리부터 시작해 잘 핸들링을 하실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시니어즈는 마이너스도 괜찮은 브랜드에요.”
“마이너스도 괜찮은 브랜드라고요?”
살짝 놀라며 윤 팀장이 물었다.
“그럼요. 동명물산을 상대로 브랜드 매입하는 데 얼마를 썼는데요. 거기다 그쪽 회장한테 개인 지분을 5퍼센트나 약속해 주고 업어 온 브랜드 아닙니까. 선전을 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지만, 저는 시니어즈의 선전보다는 윤 팀장님과 함께 론칭할 우리 자체 새 브랜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큽니다. 시니어즈는 우리 자체 새 브랜드 론칭의 밑거름만 되어 주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딱 그 정도로만 기대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요. 양쪽으로 튀어 나가는 토끼를 무슨 수도 다 잡을 수 있겠어요? 급할 거 없습니다, 윤 팀장님. 천천히 가세요.”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분치고는 일을 너무 공격적으로 벌이고 있는단 생각 안 드세요?”
“누구 하나 저처럼 미친놈처럼 총대 메고 ‘돌격 앞으로’를 외쳐야 최소한 조직이 후퇴하는 일은 막을 수 있는 거죠. 저는 재경모직의 매출이 못마땅한 게 아니에요.”
“그럼요? 언제는 비즈니스는 스포츠가 아니라면서요? 값진 은메달, 가치 있는 동메달은 아무 의미 없다고 하셨잖아요.”
“계속 동메달만 따면서, 그 동메달에 만족하고 있으니 했던 말인 거죠. 동메달도 따고, 한 번쯤은 은메달, 금메달도 따야 할 거 아닙니까. 조직이라면 응당 그런 부침이 있어야 하는데, 비즈니스라는 물 위에 떠 있으면서 그런 부침을 두려워하는 게 못마땅해서 했던 말이었어요.”
“그렇죠. 저도 처음 재경모직에 들어왔을 때 그게 참 신기했어요.”
“어떤 거요?”
“정말 기본 세팅이 정말 잘되어 있는 기업인 건 확실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계속 유지가 될 수가 없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패션 사업이라는 건 유행이 상품인 거고, 그 유행이라는 건 결국 돌고 도는 거잖아요. 스마일 스쿨 말고는 자체 브랜드가 하나도 없는데, 고이지 않고 계속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게 신기한 거예요.”
“그건 윤 팀장님이 아직 재경모직을 자세히 다 못 들여다보셔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요?”
“우리 재경모직도 나름대로 유행에 맞춰 돌아가고 있었어요. 헛돌고 있었던 거지, 아예 안 돌고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 말에 윤 팀장은 현 개발부 시스템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력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분명 돌아가는 힘은 있는 기업입니다. 헛도는 것도 도는 거잖아요. 이빨만 잘 맞춰 주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길만 잘 닦아 주면 틀림없이 크게 돌 수 있습니다. 윤 팀장님이라면 어긋난 이빨을 잘 맞춰 주실 수 있겠단 확신이 제겐 있고, 그 확신이 제가 윤 팀장님을 귀하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식권도 더치페이하자고 하시면서 너무 부담 주시는 거 아니에요?”
“대신 커피를 사려고요.”
“그건 인정이죠.”
식사를 끝내고 회사 밖 커피 전문점으로 함께 향했다.
그곳에서 우린 사내 식당 안에선 조심스러워 나누지 못했던 새 브랜드 론칭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이야기했다.
“지금 애를 먹고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뭔가요?”
“골프 웨어는 의외로 쉬워요. 제가 KS 인터내셔널에서 잠시 관리를 했던 아웃도어 같은 게 힘이 들지, 골프 웨어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장르라서 기본 가닥만 잡아 놓으면 나머지는 다 마케팅의 영역이라고 보셔도 무관해요.”
“아웃도어보다는 골프 웨어가 훨씬 더 까다롭지 않나요?”
이건 또 의외였다.
내게 시니어즈를 업어 오고 골프 웨어 쪽으로 새 브랜드를 론칭시켜 보자는 제안을 한 건 다름 아닌 윤 팀장이었다.
물론 그런 제안을 할 때 내가 정말 그걸 해 버릴 거란 기대는 반반이었을 거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브랜드 론칭이 쉬울 거라고 방향성을 제시했던 거였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윤 팀장이 전문가일 것이기에, 윤 팀장의 안목에 베팅을 했었다.
비록 실패를 하더라도, 그 실패는 재경모직 전체의 입장에선 새로운 걸 도전해 본다는 시도의 개념이 되는 것이고, 그 시도는 곧 환기의 역할을 해 줄 것이기에 오로지 실패로만 볼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럼에도 내가 약간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골프 웨어에 대한 경험이 윤 팀장에겐 아직 없다는 거.
하지만 윤 팀장은 나의 걱정과는 반대로 골프 웨어는 의외로 쉬운 장르라고 자신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요, 과장님. 골프 웨어가 아웃도어보다 훨씬 쉬워요. 최소한 한국에선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골프 웨어 쪽이 쉬워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우선은 경쟁 브랜드가 아웃도어에 비해 적어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50퍼센트는 유럽 브랜드예요. 나머지 30퍼센트는 미국, 캐나다 쪽 브랜드이고, 나머지 20퍼센트가 한국, 일본 브랜드죠. 이건 규모적인 내용이고, 객단가까지 비교를 해 버리면 한국 자체 브랜드는 10퍼센트도 안 되는 거예요.”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까, 이런 자잘한 부분까지 내가 다 팩트 체크를 할 필요는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10퍼센트밖에 차지를 못 하고 있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가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
“한 열 개?”
“인지도가 붙어 있는 브랜드로만 따지면 그 정도 되겠네요. 브랜드만 들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오이엠으로 찍어 와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가성비로 승부를 보고 있는 브랜드들까지 다 합치면 50개는 족히 넘을 거예요.”
“어후, 그렇게나 많아요?”
“물론 그런 브랜드들까지 다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인지도가 붙어 있는 한국 브랜드들만 놓고 봐도 10개가 넘는데, 다른 유명 해외 브랜드들까지 다 합치면 얼마나 치열한 시장이겠어요?”
맞는 말이다.
“거기다 아웃도어는 디자인에 한계가 분명해요. 고어텍스에 무슨 디자인 변형을 줄 수 있겠어요? 디자인 쪽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 해 봤자 소재, 패턴, 기장, 색상… 딱 그 정도뿐이에요. 디자인 변화에 관대하지 못한 장르가 바로 아웃도어 시장이죠. 디자인 쪽에서 큰 투자를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영세 브랜드가 많은 거기도 하고요.”
“반면에 골프 웨어는 그런 게 아니란 말씀이시네요.”
“얼마든지 디자인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장르죠. 특히 여성 골프 웨어 같은 경우는 요즘 각종 SNS에 골프가 워낙 유행이다 보니 20대 중후반부터, 30대, 40대, 50대 이상까지 취향 포지션을 다양하게 둘 수가 있거든요. 거기다 경쟁 브랜드도 아웃도어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골프 웨어 브랜드도 많지 않나요? 제가 요즘 백화점 돌아다니며 시장 조사를 꽤 자주 하는 편인데, 국내에 들어와 있는 골프 웨어 브랜드들도 엄청나던데요?”
“백화점에 입점되어 있는 골프 웨어 브랜드들은 거기에서 70퍼센트 정도는 무시를 하셔도 될 거예요?”
“어째서요?”
“기능이냐, 패션이냐로 놓고 봐야겠죠? 백화점에 입점되어 있는 브랜드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골프채를 시작해서 골프용품 전반을 취급하는 브랜드일 거예요.”
맞다.
윤 팀장이 그 말을 먼저 하지 않았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 브랜드들은 다 기능성 브랜드라고 봐야 하고요, 지금 저희는 골프 웨어를 패션 쪽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 두 개가 크게 다른 건가요?”
“크게 다르죠. 요즘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 골프 쪽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어요. 젊은 인식이 바꿔 놓은 판도라고 봐야죠. 예전에는 깔 맞춤이 기본이었어요. 골프채가 중심이고, 그 골프채 브랜드에서 풀 세팅을 하는 거죠.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안 그래요. 오히려 기능성 브랜드 쪽에서 패션은 시장이 좁아지고 있어요.”
“아… 그래서 저한테 골프 웨어 쪽으로 접근을 해 보자고 하신 거군요.”
“마케팅 쪽으로는 자신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디자인, 패턴 쪽으로는 자신이 있거든요.”
윤 팀장 실력이야 이미 다 확인을 했으니, 그걸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지금 팀장님 애를 먹이고 있다는 건 뭔가요?”
“실력 있는 VMD가 필요해요. 그 업무가 가능한 사람이 아직은 우리 재경모직에 없어요.”
“VMD라면 비주얼 머천다이저 말하는 거예요?”
“네. 브랜드 콘셉트에 맞춰서 매장 전체를 꾸밀 수 있는 역할.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우리 회사엔 없어요. 시니어즈에서 해당 팀이 같이 넘어오긴 했지만, 그 사람들은 여성복, 남성복 정장 브랜드에 특화된 사람들인 거고, 스포츠웨어 쪽은 아예 다른 영역이거든요.”
“필요하면 실력 있는 전문가들을 섭외해 오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과장님께 요청을 드리는 거죠?”
“난 또 뭐라고. 애를 먹이고 있다고 해서 전 또 큰 장애물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네요.”
하지만 윤 팀장은 내가 그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기를 당부했다.
“새 브랜드를 론칭할 때엔 저희 같은 제품 디자이너보다 VMD의 역할이 훨씬 더 크다고 보셔야 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결국은 브랜드의 콘셉트를 잡는 거니까요.”
“방금 과장님께서 말씀하신 그 부분이 참 어려워요. 브랜드 콘셉트는 같이 만들어 가는 거거든요. 제품 디자이너와 VMD가 함께. 결국 골프 웨어 쪽은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구매하는 거지, 디자인과 콘셉트를 구매하는 건 아니니까요. 제품 디자인 하나하나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게 저 같은 제품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면, VMD는 그런 낱개의 디자인을 전체적으로 살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렇죠.”
“여기에선 제품 디자이너가 자신의 고집만 내세워서도 안 되고, VMD의 안목 때문에 제품 디자이너가 끌려가서도 안 되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하거든요.”
커피를 빨대로 한 모금 빨아마신 뒤 윤 팀장이 말했다.
“제가 KS 인터내셔널에서 근무할 당시에 정말 저랑 호흡이 잘 맞았던 VMD 팀장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만 모셔 올 수 있다고 하면, 브랜드 콘셉트를 잡는 것도 지금 혼자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수월해질 거 같고, 잡힌 콘셉트로부터도 많은 디자인 영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거 같아요.”
“혹시 그분이랑 이야기는 나눠 보셨어요?”
“아뇨, 아직이요.”
“왜요? 미리 이야기를 좀 나눠 보시지. 제가 언제 팀장님이 필요하다는 거 의심해 본 적 있습니까?”
“그게 실은… 문제가 좀 있어요.”
“문제는 풀어 보라고 있는 거죠. 문제가 뭔데요? 같이 한번 풀어 봅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