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과장님이야말로 전형적인 강약약강 아닌가요?
“혹시 현재 KS 인터내셔널에서 받고 있는 그분 몸값이 많이 높은 편인가요?”
그 질문에 윤 팀장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지금은 KS 인터내셔널에 안 계세요.”
“그럼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데요?”
“제가 직접 연락을 드려 본 건 아니고, 그분 소식을 알고 있는 제 지인을 통해서 건너건너 들은 내용인데, KS 인터내셔널에 계시다가 한일 쪽으로 작년에 옮기셨고, 거기에서도 1년을 채 못 채우고 직원 간의 불화로 퇴사하셨다고 해요.”
“직원 간의 불화요?”
“KS 인터내셔널에서도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문제가 생겨서 한일로 이직을 하셨던 거거든요.”
“흠….”
“저는 그분을 그렇게 보고 있어요. 천재과예요. 최소한 매장 디자인을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 연출해 내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천재예요. 그런데 사회성이 조금 부족하세요. 지금 저한테 필요한 분이라고 해서 그분의 부족한 부분을 과장님 앞에서 감추고 싶지는 않네요.”
“저는 지금 팀장님이 말씀하신 그분을 모르잖아요.”
“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사회성까지 제가 알고 싶지는 않고요. 지금 저한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팀장님과의 합이 좋냐, 나쁘냐죠. 팀장님하고는 합이 잘 맞습니까?”
“제가 KS 인터내셔널에서 브랜드 ‘디센트’를 론칭하고 띄웠을 때, 그분이랑 같이했었어요. 저랑은 희한할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저는 오히려 그분 스타일이 훨씬 편했거든요.”
그럼 된 거지.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고 계세요?”
“학동실업이라고, 유아복 전문 브랜드를 몇 개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에 계시다는 소릴 들었어요.”
학동실업.
명색이 업계 1위 기업인 KS 인터내셔널에서 근무를 했던 사람이 많이도 떨어졌네.
“제가 한번 만나 보겠습니다. 혹시 지금 그분 연락처 가지고 있으세요?”
“네.”
“그럼 저한테 문자로 하나 보내 주세요. 다른 건요? 다른 건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우리 케이크 하나만 시켜서 나눠 먹으면 안 될까요?”
“…….”
“하나를 다 먹을 자신은 없는데, 쪼오기, 저 테이블에서 초코 케이크를 먹고 있는 거 보니까 한 입 했음 싶은데….”
* * *
윤 팀장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은 VMD 전문가의 포트폴리오를 보는 순간 크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포트폴리오 속에 담겨 있는 그의 실력은 결코 웃을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날 웃게 만들었다.
“신기한? 이게 이 사람 이름이에요?”
“네, 실제로도 진짜 신기한 분이세요.”
성과 이름을 따로 놓고 보면 절대 눈에 띄는 이름이 아닌데, 이걸 같이 붙여 놓고 글자로 보니까 웃겼다.
윤 팀장에게 받은 포트폴리오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퇴근길에 백화점 몇 곳을 찾아가, 그의 실력이 담겨 있는 매장들을 둘러봤다.
그의 손을 거쳐서 탄생된 매장 중엔 심플한 매장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매장도 있었고, 제품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매장이 있는가 하면, 브랜드 자체를 돋보이게 만드는 매장도 있었다.
전천후처럼 보였다.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개발부장이 만남을 요청해 왔다.
전날 윤 팀장에게 우선 개발부장의 동의를 이끌어 내라고 일의 순서를 정해 줬는데, 그게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개발부장과 함께 우리 인사부에서 신기한 씨를 어느 정도 조건으로 스카우트해 올지 대략적인 연봉 수준과 근무 조건을 조율한 뒤, 곧바로 신기한 씨에게 문자로 연락을 넣어 봤다.
아마 신기한 씨 역시 윤 팀장을 통해 우리 쪽에서 연락이 갈 거란 소릴 미리 들은 모양이었다.
만남을 가져 보자는 답장은 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들어왔고, 난 그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오전 업무를 끝내 놓고 김 부장에게 외근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보고를 넣었다.
“외근이요?”
“HRO의 첫 정식 업무가 될 거 같아요.”
“……?”
“신상품 개발팀의 윤 팀장이 실력 있는 VMD를 한 명 섭외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VMD요? 이번에 시니어즈 쪽 디자인팀 합류하면서 그쪽 VMD 인물들도 함께 들어왔잖아요.”
“KS 인터내셔널은 신상품 개발팀만 여덟 팀이라고 합니다. 우린 이제 고작 시니어즈 포함해서 두 개고요. 필요한 직원도 안 뽑아 줘 놓고, 너희는 왜 KS 인터내셔널처럼 못 하느냐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필요한 인원 데려다 앉혀 주는 게 우리 인사부 역할이고, 외부 인력 스카우트는 또 앞으로 저희 HRO의 업무가 될 거예요.”
내 말에 김 부장이 기가 막힌다는 식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다 좋은데, 과장님. HRO 직원이나 좀 충원하세요. 혼자 계시면서 무슨 또 저희 HRO라고까지 합니까?”
“크흠….”
“이건 제가 부장으로서 지시하는 겁니다.”
어쭈?
많이 컸는데?
“얼른 HRO 직원 충원하세요. 최소한 두 명은 뽑으세요.”
“천천히 할게요. 당장은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건 과장님 생각이신 거고요. 팀을 새로 안 만드셨음 모를까, 과장님이 요청해서 지금 없던 HRO가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알았어요, 알겠다고. 충원할게요, 해.”
“말만 하지 말고, 이참에 외부에서 인물을 끌어오든, 타 부서에서 트랜스퍼를 시키든 이번 달 안으로 충원시키세요.”
“에이 참… 왜 그렇게 닦달을 합니까?”
“제가 닦달을 하는 게 아니라, 과장님이 예전에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부서를 좀 부서답게 만들어 보자고. 과장님이 언제까지 인사부에 계실 거 같습니까? 아니, 언제까지 계실 계획이세요?”
“…….”
“앞으로 길어 봤자 1년 아닙니까? 최소한 그 1년 안에 HRO가 정확하게 인사부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인사 업무를 봐야 하는지 정도는 그 가이드라인을 과장님이 직접 만드셔야 할 거 아니냐고요.”
많이 큰 거 맞네.
“모든 직원이 다 과장님처럼 일할 수는 없는 겁니다. 조직에는 시스템이라는 게 필요하고, 직원들은 그 시스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 나가야 하는 거죠. 과장님께서 끝까지 HRO를 책임지실 게 아니라면, 대리급 한 명, 주임급 한 명, 이렇게 최소 두 명은 충원해 놓으세요. 그리고 가르치세요. 과장님이 없어도 HRO가 우리 인사부에 꼭 필요한 팀으로 인식이 될 수 있도록, 과장님이 없어도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 오늘은 밖에 나가서 먼저 약속이 잡힌 사람부터 만나고 오겠습니다.”
“분명히 이번 달까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과장님이라도 제게 그런 주문을 하신 이상, 제가 부서를 부서답게 만들 수 있도록, 부장 지시에 힘을 실어 주는 협조 정도는 해 주셔야 할 겁니다.”
이 친구 이거 차장일 땐 몰랐는데, 부장 달아 줬더니 잔소리가 엄청 많네….
괜히 부장 달아 줬나?
“알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달 안으로 충원할게요. 됐죠?”
“외근 나가서 바로 퇴근하시는 겁니까?”
“아뇨, 회사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럼 그냥 회사로 오라고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럼 면접이 되는 거잖아요. 그건 부담스러워서 싫다네요? 우리 입장에서도 확정된 게 아닌데, 확정을 지을 것처럼 회사로 불러서 만나는 건 부담인 거고. 요 앞에 스타벅스에서 편하게 만나기로 했어요.”
* * *
손 과장이 외근을 나간 직후였다.
자신이 생각을 해 봐도 대견하다는 식으로 목 근육을 이리저리 풀어 가며 김원호 부장이 인사부 직원들에게 물었다.
“어때? 나 방금 손 과장 상대로 좀 괜찮았지?”
인사부 직원들은 김 부장의 장난에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잠시간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나도 하면 하는 사람이라고. 나라고 뭐 강강약약 못 할 거 같아? 나도 마음만 먹으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도 강한 게 낫겠지? 암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거야.”
정현수 과장은 김원호 부장이 이끌고 있는 현 인사부 분위기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고 부장이 있었을 땐, 무척 고압적이었던 인사부 분위기가 김 부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상당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엔 손 과장이 중심을 잡고 있어서였겠지만, 고 부장이 있었을 당시와 비교를 해 더 이상은 서로가 힘든 팀 회식 앞에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업무 스트레스도 상당히 줄어들고 있었다.
“뭐지? 방금 내가 본 건? 정 과장 너, 방금 비웃었지?”
김원호 부장이 툭 하고 정현수 과장 어깨에 약한 잽을 날리며 장난을 시도했다.
“보셨어요? 몰래 비웃는다는 게 들켜 버렸네.”
“어쭈? 꽤 솔직한데? 솔직했으니까 한 번 봐준다. 그래, 우리도 지금부터 다 같이 강강약약 하자고. 인생 뭐 있어? 우리가 뭐 세상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다들 먹고살자고 모여 있는 사람들인데, 앞으로는 너희들도 다 강강약약 해.”
“부장님 눈엔 손 과장님이 강강약약으로 보이세요?”
“손 과장은 누가 봐도 강강약약 아냐?"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오히려 손 과장님이야말로 전형적인 강약약강 아닌가요?"
정현수 과장의 말에 인사부장뿐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직원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을 쳐다보며 정 과장이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 회사에 손 과장님보다 강한 사람이 있나요?”
“…….”
“손 과장님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 자체만 놓고 보면 손 과장님보다 강한 사람은 없는 거 아닌가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그러니까 너무 손 과장님 앞에서 강강약약 하지 마시라고요. 크크크….”
“오, 씨… 듣고 보니까 섬뜩한데? 나 방금 잔소리 너무 길었지?”
“조금요?”
“안 말리고 뭐 했어?”
그렇게 인사부 안에서 김 부장과 정 과장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개발부장이 급하게 인사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부장님? 어쩐 일이세요?”
“손 과장님 어디 계셔?”
다급해하는 개발부장의 모습에 김 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방금 외부 VMD 전문가 스카우트 건으로 외근 나갔어요?”
“나갔어?”
“네. 그런데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금방 나갔다고 했지?”
“네.”
“그럼 김 부장이 지금 전화 좀 드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인사부 직원들 모두가 개발부장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KS 인터내셔널이랑 한일 쪽에 아는 사람들한테 그 사람에 대해서 좀 물어봤어.”
“……?”
“그래도 VMD 팀장급으로 스카우트를 하는 거잖아. 윤 팀장 요청 건이라서 큰 하자는 없는 사람이겠거니 하며 믿고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방금 KS 인터내셔널 쪽이랑 한일에서 그 사람하고 같이 일해 봤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왜요?”
“돌아이야.”
“돌아이요?”
“그래, 그것도 완전 상돌아이. 지금 손 과장님이 연봉 6,500 맞춰서 만나러 나갔어. 안 돼. 연봉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받으면 골치 아플 거 같아. 그러니까 김 부장이 전화 걸어서 일단 우리 쪽에서 잡은 약속이니까 만나는 보되, 구체적인 연봉 금액까지는 제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을 해.”
“뭐 얼마나 돌아이길래 그러세요? 개발 쪽 팀장급 연봉은 6,500이 기본 테이블이잖아요. 많이 잡고 나간 것도 아니고, 업계 사람이라면 우리 재경모직 연봉 테이블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건데, 그걸 제시하고 안 하고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어요?”
개발부장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손 과장에게 스카우트 요청을 넣었다고 스스로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런 개발부장에게 김 부장이 말했다.
“어차피 부서장 면접은 봐야 하잖아요. 직접 만나 보시고, 다른 사람 통해 들은 것처럼 문제가 있겠다 싶으면 부장님 선에서 자르시면 되죠.”
“그야 그렇지.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그럼 뭐가 문제에요?”
“손 과장님이 나한테 확인을 받아 갔단 말이야.”
“무슨 확인이요?”
“지금 이 건이 HRO에서 손 과장님이 맡은 첫 공식 업무라고.”
“…….”
“무슨 일이 있어도 스카우트 성사시켜 줄 테니까, 개발부 안에서 귀하게 써 달라고 말이야.”
“헐….”
“그래도 금방 출발하셨으면 아직 안 만났을 거 아냐. 만나기 전에 전화 드려서 내가 말한 내용 알려드려.”
“…네, 근데 어쩌면 벌써 만났을 수도 있어요.”
“뭐? 금방 외근 나갔다며?”
“회사 앞 커피 전문점에서 만나는 것도 외근은 외근이죠.”
“뭐?”
“첫 만남에 면접처럼 회사에서 만나는 건 서로 부담이라, 회사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던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