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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도 벗고 싶습니다 (71/303)

솔직히 저도 벗고 싶습니다

나는 신기한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자기만의 세계관이 너무나 확실해서 그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통제를 해야만 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세상을 다른 누군가로부터 침해받고 싶지 않아 하고, 침해를 받게 되면 그걸 못 견디는 사람.

바꿔 말해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무례하게 침범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여기에선 사회성이 있다, 없다는 걸 논할 가치가 없어 보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신기한은 자기 세상 안에서만큼은 유쾌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상의 기준이 만들어 놓은 사회성이라는 범주 안에서는 충분히 융통성이 없고, 고집불통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용납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사회성을 최대한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다.

이건 내가 가진 나만의 세계관이고, 또 나만의 규칙이다.

그런데 신기한은 나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그것도 그 많은 소파 테이블을 다 놔두고, 커피 전문점 정중앙에 있는 공용 테이블, 불편한 스툴 의자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왜 보통의 스타벅스 매장을 보면, 복층이 아닌 단층으로 꽤 규모를 갖춰 놓고 있는 매장의 경우, 매장 정중앙에 아주 널따란 공용 테이블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지 않나.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같은 걸 사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공용 콘센트 같은 것도 테이블에 부착되어 있는 테이블.

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거였다.

당연히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겠다… 라는 느낌을 바로 받기 시작했다.

“신기한 팀장님 맞으시죠?”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우선 나이보다 상당히 젊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마흔둘인데 입고 나온 복장이나 헤어스타일, 전반적인 느낌 자체가 삼십 대 초중반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손정훈 과장님 되세요?”

“네, 재경모직 인사부 손정훈 과장입니다.”

검은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굵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고.

VMD라는, 어쩌면 현장 업무로 분류를 해 줘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가 하고 나온 복장에 크게 신경이 쓰였던 건 아니었다.

다만 왜 하필이면 이런 불편한 테이블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스카우트 제안이라는 자리의 목적을 알고 나왔을 텐데, 다른 사람들과의 합석이 가능한 이 테이블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혹시 이 자리가 편하신가요?”

“아뇨.”

“여기 앉아 계시길래, 혹시라도 개방된 공간을 좋아하시는가 싶어 물어본 겁니다.”

“각판이라고 하는 원목이거든요, 이 원목이.”

“네?”

갑자기 테이블을 매만지며 이상한 소릴 해 대기 시작했다.

“주로 가구보다는 실내 인테리어를 할 때 바닥 자재로 많이 쓰이는 원목이에요. 근데 이걸 가지고 테이블을 만들어 놔서, 좀 신기해서 앉아 있어 봤어요. 괜찮네요. 매장 디스플레이 원판 잡을 때 앞으로는 이걸로 한번 만들어 봐야겠어요. 이게 원목인데도 단가가 괜찮거든요. 구하기도 쉽고. 바닥 자재로 사용될 만큼 습기에도 강해서 잘 뒤틀리지도 않아요.”

“제가 알기로 이 커피 전문점 브랜드 매장에선 다 이런 테이블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래요?”

신기한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오… 그렇구나. 제가 이 브랜드 커피는 누가 사다 주면 맛이나 볼까, 개인적으로는 선호를 안 하는 편이거든요.”

이름이 ‘신기한’이 아니라 ‘이상한’이었어야 된다.

“그럼 다른 데로 옮기실까요?”

“아뇨, 아뇨.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니라… 제가 대학을 이탈리아에서 나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네, 해당 내용은 제가 미리 확인을 했습니다.”

“커피를 거기에서 처음 배웠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지, 여기 커피가 저랑은 잘 안 맞더라고요.”

내가 물어본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자기 취향은 충분히 어필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크게 신경을 안 쓰기로 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른 테이블 자리를 제안해 봤다.

“그럼 스카우트 조건 이야기도 나눠야 되니까, 자리를 안쪽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네,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 전에 커피부터 주문을 해서 가시죠?”

“네, 뭐 드시겠습니까? 제가 주문해서 가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제 커피는 제가 직접 주문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에스프레소를 시키면서, 거기에 샷을 5개를 추가시키는 사람은 내가 처음 봤다.

그리고 거기에 더 내가 이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건, 계산을 각자 하려고 하는 거였다.

한사코 자기 커피는 자기가 계산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진짜 이상한 놈이었다.

“제가 만나자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인데, 이 정도는 저희 쪽에서 내야죠.”

“제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자리예요. 저는 이게 편하니까 제 건 제가 계산을 할게요.”

어쩔 수 없이 내가 주문한 커피만 계산해야 했는데, 순간 내가 너무 구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구식인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아무리 요즘 젊은 사람의 생각과 시대에 따라가려고 애를 쓰고 있긴 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시대라는 게 있고 또 지금 난 이 시대를 몇 달 살아 보지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내가 구식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확실히 이상한 구석이 많은 인물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스카우트에 관한 내용을 꺼내려고 입을 풀고 있을 때였다.

신기한 이 친구가 커피 맛을 살짝 보더니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못 본 척 넘어갔는데 곧 신기한 이 친구가 내게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가.

“죄송한데요.”

“네.”

“커피가 좀 약해서 그런데, 제가 얼른 가서 샷 하나만 더 추가해서 오면 안 될까요?”

“샷을 5개나 추가를 시켰는데, 그 커피가 약하다고요?”

“비싼 돈 주고 마시는 건데, 맛있게 마시면 좋은 거잖아요. 샷만 하나 더 추가하면 딱 좋을 거 같네요.”

“네, 뭐. 그러세요. 천천히 하세요.”

내가 좀처럼 당황이라는 걸 잘 안 하는 편인데, 언제 어디로 튈 줄 모르겠는 이 친구 앞에선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할지 그 방법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김원호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네, 부장님.”

마침 신기한은 샷을 하나 추가시키겠다고 주문 바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과장님, 혹시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사람은 만나셨어요?

“네, 만났어요.”

―그러시구나….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생겼어요?”

―짧게 통화 가능하실까요?

“네, 길게는 힘들 거 같고 짧게는 가능할 거 같아요.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은 커피 주문하고 있어요. 왜 그러세요?”

―그럼 일단 통화 소리 최대한으로 줄여 놓고 들어 주세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 다름이 아니라 과장님 나가신 뒤에 바로 개발부장님이 인사부 사무실을 찾아오셨어요.

“왜요?”

―지금 만나고 계시는 분에 대해서 KS 인터내셔널 쪽이랑 한일 쪽에 평판을 요청하셨던 모양이에요.

“네, 그런데요?”

―평판이 좀 그런 모양이에요.

난 샷 추가를 받고 있는 신기한을 쳐다보며 최대한 빨리 통화를 끝내기 위해 대화를 신속하게 이어 나갔다.

“좀 그렇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거예요?”

―개발부장님 말로는 돌아이랍니다.

돌아이?

이미 나도 살짝 그런 냄새를 맡고 있긴 하다.

―돌아이 중에서도 상돌아이라는 소릴 들은 모양이에요. 우리 쪽에서 자리를 먼저 요청한 거긴 해도, 들고 나가신 연봉 테이블은 꺼내지 않으셨음 좋겠다고 개발부장님이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거기에 맞춰서 샷을 추가시킨 신기한이 주문 바 테이블 앞에서 미리 맛을 본 후, 이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기분 좋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오고 계시는데, 제가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이야기 끝내고 복귀하겠습니다.”

* * *

한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사실 한 시간까지도 필요 없는 자리였고.

요즘은 이런 스카우트 관련된 내용을 헤드헌터 업체를 통해 한다고 하던데, 그걸 우리 인사부에서 직접 한 거였으니까 크게 나눌 이야기는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저 서로의 조건을 맞춰 보고 면접 날짜를 정하는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한 자리였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 사차원 돌아이 같은 놈 때문에 자리가 두 시간을 훌쩍 넘어 버렸다.

신기한과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로 복귀를 했는데, 벌써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인사부 사무실은 퇴근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김 부장이 다가왔다.

“금방 오실 것처럼 하시더니, 자리가 꽤 길어졌나 봅니다?”

“네, 저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고 보니까 시간이 좀 길어지네요.”

“어떠셨습니까?”

“돌아이 맞던데요? 그것도 상돌아이가 맞습니다.”

“개발부장이 전 직장들 쪽으로 평판 의뢰 넣길 잘했네요.”

다행이라는 듯 안심을 하고 있는 김 부장.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 달랐다.

“돌아이는 확실한데, 무척 매력적인 돌아이였어요.”

“네?”

“윤 팀장이 추천을 한 인물이잖아요.”

“네, 그랬다면서요.”

웃음이 사그라들 생각을 안 했다.

계속해서 피식거리며 김 부장에게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윤 팀장도 아직은 본색이 안 드러났다뿐이지 돌아이일 가능성 이만 퍼센트예요.”

“그게 무슨….”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잖아요. 뭔가 통하는 게 있으니까 추천을 한 거 아니겠냐고요. 와… 신기한 윤 팀장?”

“신기한 윤 팀장이요?”

“그 둘의 조합을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 줘야겠어요. 돌아이끼리 붙여 놓으면 틀림없이 사고가 터지겠죠? 이상하게 신기한 윤 팀장 조합이라면 사고를 쳐도 적당한 건 안 칠 거 같다는 기대가 생겨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 퇴근 전에 개발부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신기한에게 직접 받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한 부 복사해서 개발부를 찾아갔다.

“부장님?”

개발부장의 파티션을 가볍게 노크하자, 개발부장은 직접 내가 있는 파티션 밖까지 나왔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럼요. 어디에서 할까요?”

“윤 팀장도 불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물론이죠.”

“굳이 귀찮게 회의실까지 내려가지 말고 신상품 개발팀에서 잠깐 이야기 나누시죠. 거기 테이블 넓잖아요.”

신상품 개발팀 사무실에서 윤 팀장까지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은 이거요. 부장님께서도 면접 전에 확인을 해 보셔야 할 거 같아서.”

이력서 복사본을 개발부장에게 건네 놓고 그가 확인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짧게 확인을 끝낸 개발부장은 이력서 복사본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면접 약속을 잡으셨습니까?”

“그러기로 했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개발부장이 말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줄 알았던 회사에서도 지난주에 퇴사를 했네요?”

“네.”

윤 팀장은 말없이 개발부장의 눈치만 살폈다.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고, 2년 사이에 회사를 이렇게 네 번이나 옮겼다는 거 자체만 봐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개발부장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 역시 신기한과 이야기를 나눠 보기 전까지는 왜 윤 팀장이 이런 인물을 내게 추천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안목이 실망스러웠으니까.

“그런데 이직이 잦아지기 전을 보시면, KS 인터내셔널에서는 3년, 그 전에 근무했던 이탈리아 기업에선 8년이나 장기근속을 했던 걸로 나와 있습니다.”

개발부장은 자신의 요청으로 내가 직접 만남까지 하고 왔기 때문인지, 신기한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내놓는 데 조심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이탈리아 기업을 그만둔 이유도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서였지, 그 회사와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개발부장이 말했다.

“외국 물 좀 먹었다고, 한국 기업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한국 조직 문화에 적응을 아직 못 하고 있거나.”

이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국민성을 알고나 하는 말일까?

이탈리아라는 후진 기업 문화 속에서도 8년이나 장기근속을 한 인물인데, 한국 기업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다?

오히려 한국 기업 시스템은 이탈리아에 비해 천국이지.

한국 조직 문화에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는 말에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하지만 신기한과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눠 보고 내린 나의 결론에 한국 기업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내용은 절대 없었다.

“부장님.”

“네.”

근심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개발부장에게 내가 말했다.

“면접은 제가 아니라 부장님이 보시는 겁니다. 팀장급 경력직 면접이기에 상무님과 인사부장, 그리고 부서장인 부장님. 그렇게 세 분이서 면접을 통해 판단을 내리시면 되는 부분입니다.”

“…….”

“그런데 제가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은요, 아직 직접 만나 보지도 않은 사람을 상대로 다른 기업 쪽 평판만 듣고 부장님께서 색안경을 끼고 계시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옆에서 윤 팀장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몹시 안타깝다는 듯 개발부장 몰래 숨을 들이켰다.

“물론 평판이라는 건 상당히 중요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죠.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있으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색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그 색안경을 잠시라도 벗으실 수 있도록 제가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저도 벗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끼고 있는 색안경을. 그런데 벗을 수 있을지 확신은 없네요.”

“지금 부장님은 신기한 씨에게 부족한 사회성이 가장 큰 걱정이시죠?”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걸리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일 크다고 봐야겠죠. KS 인터내셔널, 한일 어페럴 두 곳에서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보내 줬으니까요.”

“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사회성이라는 건 뭔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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