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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멋진 집을 짓고 싶은 사람입니다 (72/303)

저는 멋진 집을 짓고 싶은 사람입니다

신기한의 면접을 개발부장에게 맡겨 보는 건 또 다른 의미로 내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개발부장의 사람 보는 안목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

어쨌거나 앞으로 재경모직 안에서 개발부는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의 많은 일을 해 줘야 한다.

지금의 개발부장에게 그 정도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미리 확인해 놓아서 나쁠 건 없겠지.

그런 이유로 난 무조건 신기한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강압적으로 개발부에서 신기한을 받게끔 만들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던 거다.

그저 현재 개발부장이 신기한이라는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 색안경을 떨쳐 낼 수 있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 볼 수 있도록 유도를 해 주고 싶을 뿐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성이요?”

“네.”

개발부장은 곰곰이 생각하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뭐라고 콕 집어 사회성이라는 건 이런 거다… 하고 말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그 말인즉, 딱 이런 게 사회성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보편적 행동 양식을 말하는 거 아닐까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개발부장이 어렵게 어질러 놓은 말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만큼 사회성이 있다, 없다를 판가름하는 건 그 기준이 모호하단 말이겠죠. 객관적일 수도 없고,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만큼 지극히 주관적이기도 한.”

“그렇죠.”

“결론적으로 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사회성이라는 건 쉽게 말해 사회적 눈치라는 말씀이신 거죠?”

“네, 그런 표현도 나쁘지는 않네요. 사회적 눈치. 네,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걸 다 아우를 수 있겠네요.”

개발부장의 동의를 구해 놓고 신기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오늘 제가 만나 본 신기한 씨는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면 말고도 다른 긍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부장님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제가 먼저 요청해 놓고, 이러고 있는 게 죄송할 뿐이죠.”

“그런 건 괜찮습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리고 신기한 씨를 만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즐거… 웠다고요?”

“네. 재밌는 분이시더라고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개발부장에게 내가 말했다.

“원래라면 제가 느낀 그 사람의 장단점을 모두 말씀드리는 게 맞는 거겠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부분 말고 다른 내용은 전혀 귀에 안 들어오시는 거 같으니, 저는 그냥 그 부분에 대해서만 짧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난 우선 윤 팀장을 쳐다보며 말을 시작했다.

“조금 전 저와 부장님은 사회성을 사회적 눈치로 볼 수 있다는 부분에 함께 동의를 했습니다. 눈치가 없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건 참 불편한 일입니다. 하물며 그런 사람을 매일같이 만나야 하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면 미쳐 버릴 수도 있죠. 저도 눈치 없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진짜 눈치가 없어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눈치가 없는 척 연기를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려고 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고요.”

“…….”

“그런데 이게 또 모순인 게, 너무 눈치가 빤한 사람은 부담스럽습니다. 세상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거 같고, 나와의 관계에 진심이 아닌 것만 같거든요. 그럼에도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사람으로 눈치가 없는 사람과 눈치가 너무 빤한 사람 중 꼭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전 무조건 눈치가 빤한 사람을 고를 겁니다. 더 이상 이 나라 대한민국의 회사 조직 안에는 정이라는 게 통하지 않게 됐잖아요.”

“……!”

“정말 모순 아닙니까? 더 이상 정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이 시대의 회사 조직이라는 곳에서 인재를 선발할 때 실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회성까지 함께 기대한다는 게요.”

“…….”

“결국, 우리는 정이라는 게 사라진 조직 안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사람이 가진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조직 생활에 대한 평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조직 생활도 업무고, 실력이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말은 그 조직이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영업부나 우리 인사부, 혹은 전략기획부, 운영기획부… 그런 부서 아닐까요? 개발부, 그 안에서도 신상품 개발팀과 같은 디자인 계열 부서에선 사회성이 아닌 직원들이 가진 톡톡 튀는 개성에 더 큰 가치를 둬야 하지 않을까요?”

개발부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디자인에 참여, 간섭을 하면 그 브랜드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패션 업계에서 디자인 계열은 직원들의 개성을 억지로라도 끌어내 줘야 합니다. 다른 일반 부서 직원들처럼 사회생활 잘하고, 눈치 빠르고, 성격 좋고, 말까지 잘 듣기를 바라면서 참신한 디자인까지 뽑아내길 기대하는 건 억지죠. 오늘 제가 만나 본 신기한 씨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씨가 이미 퇴사를 한 KS 인터내셔널이나 한일 어페럴은 신기한 씨가 가지고 있는 강한 개성을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압박을 했던 거고요.”

“개성이 강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지난 2년간 이직을 네 번이나 한 건 좀 심한 거 아닐까요? 왜 그렇게 이직을 많이 했다고 그러던가요?”

“그건 면접을 보면서 부장님께서 직접 물어보십시오. 제가 그 이야기까지 해 버리면 더 이상 저는 객관적일 수가 없습니다. 신기한 씨를 변호하는 거밖에 더 되겠습니까? 아직은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닌데, 제가 왜 우리 회사 사람인 부장님, 팀장님 앞에서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닌 신기한 씨를 변호하겠습니까? 저는 딱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며칠 뒤, 신기한이 면접을 보기 위해 재경모직 인사부를 찾아왔다.

명일만 개발부장도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걸며 면접장 안으로 들어섰다.

KS 인터내셔널과 한일 어페럴 쪽으로부터 전해 들은 신기한의 평판에 대해선 잠시 잊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만 면접을 보자고.

돌아이 중에서도 상돌아이라는 평판과는 달리 아주 순둥한 인상의 남자가 면접장 안으로 들어섰다.

김원호 인사부장이 먼저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가벼운 내용 위주로 질문을 던졌고, 상무와 인사부장 사이에 끼어 정중앙에 앉은 명일만 개발부장은 농담처럼 던진 질문 앞에서도 지나치게 진지한 대답을 내어 놓는 신기한의 모습을 침착하게 눈에 담고 있었다.

“그럼 아들은 지금 다섯 살이겠네요?”

“네. 아무래도 이탈리아에서는 저나 와이프 둘 다 일을 하던 중이었고, 도와줄 가족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는 아이를 만들기가 두려웠습니다. 그게 이탈리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온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고요.”

“아내분은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중인가요?”

“아뇨, 저랑 비슷하게 일을 그만뒀습니다.”

“어째서요?”

“혹시 손정훈 과장님이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말씀을 안 하시던가요?”

김원호 부장은 들은 내용이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뇨. 따로 들은 내용은 없어요.”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전에 제가 근무했던 회사에서 비자를 내주고 자리 오퍼를 만들어 보겠다면서 고맙게도 러브 콜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손정훈 과장님 연락을 받았고, 오늘 이 자리에 면접을 보겠다고 나온 겁니다.”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요?”

“아이만 생각하면 계속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보고 싶습니다. 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건 아무래도 아이한테는 안 좋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 전문 분야에서 더 이상 절 찾는 회사가 없는 거 같고, 제가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회사도 이젠 선택이 많이 줄어 있는 상황이죠. 지난 2년 동안 제가 이직을 수차례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와이프가 마트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적응을 할 바엔 어쨌거나 이탈리아 회사는 제가 8년 넘게 일을 했던 곳이고, 한국에서의 경력도 인정을 해 준다고 하니까 그냥 다시 넘어가자… 그렇게 됐던 거죠.”

드디어 명일만 부장이 질문을 시작했다.

김원호 부장과는 달리 명일만 부장의 질문들은 날카로웠다.

“오늘 저희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다고 하니까 아내분은 뭐라고 하던가요?”

“잘됐으면 좋겠다고 하죠. 와이프도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싶어 합니다.”

“좀 불편한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KS 인터내셔널에서 동료를 형사 고발한 일이 있었더군요?”

“…네.”

“일반 경력직이 아니라, 팀장급 경력직을 뽑는 게 되다 보니 저희 쪽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은 미리 다 알아봐야 했다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 부분도 손정훈 과장님께 다 이야기를 한 내용인데요, 뭐.”

“저희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제가 구매부 차장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KS 인터내셔널은 자체 브랜드를 8개나 가지고 있는 큰 패션 기업입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자체 브랜드를 그 정도로 가지고 있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죠. 시스템이 무척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장 디자인에 필요한 소품은 제가 직접 발주를 넣을 수 있지만, 그 발주는 어디까지나 구매부를 통해야 하거든요.”

“다른 곳은 안 그런가요?”

“최소한 제가 근무했던 이탈리아 회사와 한일 어페럴, 그리고 최근에 퇴사를 한 회사는 안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이건 제가 몰라서 물어본 겁니다. 계속하시죠.”

신기한은 담담하게 그때의 일을 이야기해 나갔다.

“저는 분명 철제 크로노빌(신발 디스플레이 소품 중 하나)을 발주했거든요. 그런데 아크릴 크로노빌이 들어온 겁니다. 전국에 있는 해당 브랜드의 전 매장 디스플레이를 다 바꾸는 작업이라 억대가 넘어가는 발주였습니다.”

“그런 큰 발주를 직접 하신다고요?”

“그렇게 큰 발주는 아닙니다. 새 브랜드를 론칭할 땐 제가 넣는 발주 총액이 기본 이삼십억이 넘어갑니다."

명일만 부장이 손짓을 하며 제안했다.

“계속하시죠.”

“철제 크로노빌과 아크릴 크로노빌은 단가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뭐가 더 비싼가요?”

“당연히 아크릴이 더 비싸죠.”

“그럼 구매부 쪽에서 실수가 나온 거라고 봐야 하는 건가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싼 머티리얼을 주문한 게 아니잖아요.”

“저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죠. 정신이 없을 때였으니까요. 시간은 촉박하고, 제품도 해외 제품이라 반품을 시키고 철제 크로노빌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릴 거 같아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구매부 차장 하나가 해당 크로노빌 업체 쪽으로 백마진을 받고, 일부러 제 발주 내용과는 다른 제품을 주문한 거더라고요.”

이력서 위로 체크를 해 나가는 면접관들의 손길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이번엔 김원호 인사부장이 물었다.

“그런 내용이라면 경찰에 고발할 게 아니라, 회사 인사부에 전달하는 게 맞는 순서 아닙니까?”

“말했습니다.”

“…….”

“그런데 그곳 인사부 부장이라는 사람이 자세하게 알아보겠다고 말해 놓고, 기다려 보라고 합니다.”

“흠….”

“몇 주 뒤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그곳 인사부장이 구매부 차장과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더군요. 이게 문제가 되면 회사 전체가 시끄러워질 테니까, 한 번만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합니다.”

“…….”

신기한은 목이 타는지, 바닥에 내려놓았던 생수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런 신기한에게 명일만 부장이 물었다.

“그 일로 그곳 구매부 차장은 해고 처리가 됐죠?”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거나 차장 정도 위치이면 가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부정을 일으키기까지 여러 가지 복잡한 사내 관계라든지, 관례…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는 건데, 형사 고발을 한 건 너무 감정적이었단 생각은 안 드세요?”

아주 단단하게 신기한이 대답했다.

“VMD에게 있어 매장 인테리어는 단순한 회사 업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어떤 가치를 말씀하시는 거죠?”

“VMD의 포트폴리오 역할을 해 주는 거죠.”

그 말에 면접관들을 일제히 이해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패션 기업 사이에서는 저희 같은 VMD를 개인 사업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희 역시 저희가 한 매장 인테리어를 저희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포트폴리오를 항상 갱신시키는 거고요. 그런데 그런 저의 작품이 어느 누군가의 옳지 못한 욕심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고, 해당 내용이 암묵적으로 묵살되어 갔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경찰에 신고를 하는 거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업계에 안 좋은 소문이 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셨습니까?”

명일만 부장의 질문에 신기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실력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거보단 미친놈이라는 소릴 듣는 게 더 나을 거 같았거든요. 4개월을 매달렸던 인테리어였습니다. 매장 하나만 바꾸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전국에 있는 해당 브랜드의 전 매장 인테리어를 리뉴얼링하는 작업이었습니다.”

“…….”

“보통 그 정도 작업은 하나의 포트폴리오에 추가시키기에 충분한 프로젝트죠. 그런데 그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만약 그때 한 번쯤 눈감고 넘어갔더라면, 가족 다 같이 이탈리아로 다시 넘어갈 고민 같은 건 안 하셨어도 됐을 거 같은데.”

“후회하죠.”

“후회를… 하세요?”

“네.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그런 복잡한 발주 시스템을 가진 KS 인터내셔널을 선택했던 걸까… 하는 후회요. 사실 저 처음 한국 들어왔을 때 재경모직 빼고는 업계 톱5 기업에서 모두 러브 콜을 보내왔어요. 그중에서 제가 KS 인터내셔널을 선택했던 거죠. 재경모직은 VMD팀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고, 아마 한일 어페럴을 선택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다시 명일만 부장이 물었다.

“한일 어페럴 쪽에선 왜 그렇게 빨리 퇴사를 하신 건가요?”

“사장님의 디자인 참여가 너무 심했습니다.”

“흠….”

“그 참여가 긍정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오로지 경비 절감에만 목적을 둔 참여였죠.”

“경영자 입장에선 당연한 내용 아닐까요?”

“네. 아주 중요하죠.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이럴 거면 차라리 외주 업체를 통해 인테리어를 하시라고요. 그럼 VMD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 관련 경비는 다 줄일 수 있지 않냐. 그렇게 줄인 경비라면 큰 개성은 없겠지만, 얼마든지 평타 이상은 쳐 줄 수 있는 외주 업체를 섭외할 수 있을 거다. 외주 업체들은 공장제 인테리어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단축시킬 수 있고, 여러모로 사장님의 경영 방향과 잘 부합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랬더니요?”

“다행히도 제 제안을 받아들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실업자가 됐지만.”

면접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숨기기에 급급해했다.

그만큼 신기한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 모습이었다.

신기한이 말을 이었다.

“지금 한일 어페럴은 백 퍼센트 외주 VMD 업체를 통해서 매장 인테리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있었을 때보다 디스플레이 머티리얼의 퀄리티가 높아졌어요. 그럼 된 거죠. 저는 한일 어페럴 쪽이랑은 나름 나이스하게 헤어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쪽에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할 말이 없습니다.”

“경비 절감을 위해 회사에 있던 팀을 없애고 외주 업체를 선택하도록 제안을 했다고요?”

“제가 원하는 작품은 재료비가 100원이 듭니다. 그런데 회사가 제게 허락하는 인테리어 예산은 20원이 고작이었죠. 그러면서 실력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20원으로도 얼마든지 집은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00원짜리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을 20원으로 꾸미는 건 100원짜리 상품을 만들어 낸 디자이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상품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해 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는 멋진 집을 짓고 싶은 사람입니다.”

“흠….”

“제게 100원을 허락해 주면 얼마든지 200원 이상의 가치 있는 집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그 가치를 모르는 기업이라면 제가 나오는 게 맞는 거죠.”

“…….”

“건방지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아직 한국엔 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패션 기업이 없는 거 같습니다.”

* * *

본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회사 및 단체,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 명사는 실제와 관련이 없음을 알립니다.

재벌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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