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불렀다 (83/303)

내가 불렀다

김 부장이 박종근 차장과 각 팀의 과장들을 소집했다.

김 부장이 상석에 앉고, 차례대로 박종근 차장과 나, 정현수 과장과 민은석 과장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시니어즈에서 넘어온 인력 대부분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기본적인 눈치는 있어.”

특유의 경쾌한 어투로 김 부장이 미팅을 진행시켰다.

“부서 사람들도 서로의 사정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도움을 주려고 하지, 적대감 같은 걸 드러내지는 않는 거 같고. 근데도 부서장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상하게 부서 안에서 시니어즈 쪽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날리는 기분이라고 한단 말이야.”

김 부장의 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분위기가 날린다는 게 어떤 겁니까?”

박종근 차장이 물었다.

“왜 동남아 쪽 쌀로 지은 밥 있잖아. 찰기가 없어서 자기들끼리 뭉치지 못하고 날리잖아. 그런 분위기인 거 같아, 가만히 들어 보니까.”

그제야 박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오히려 크게 한 번 부딪혀서 어느 쪽이 깨어진 후 관계를 완전히 새로 형성해 나가는 게 더 수월할 수도 있는데….”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 박 차장의 입에서 나왔다.

그가 원시적인 성향이 아니라는 것쯤은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그만큼 예민하고, 쉽게 건드리기가 애매한 부분이라는 소리겠지

“저도 차장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때론 원시적인 방법이 정답일 수도 있는 법.

그리고 난 처음 시니어즈를 업어 오자는 제안을 했을 때부터, 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나까지 박 차장의 생각에 동의를 하자, 김 부장은 얼른 큰일 날 소리라는 식으로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래도 다들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인데, 일방적으로 재경모직 시스템에 모든 걸 다 맞추라고 하면 시니어즈 팀에서 반감이 올라올 수도 있어요.”

김 부장의 걱정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걱정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반감이 나올 거였음 진작에 나왔겠죠.”

“……?”

“류 본부장을 통한 애로 사항이었잖아요.”

“그렇죠.”

“그 말인즉 시니어즈 팀은 아직 재경모직의 기존 부서 사람들과 그렇다 할 직접적인 교류를 거의 못 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에 개개인이 우리 인사부를 통하는 게 아니라, 류 본부장을 통하는 것이고. 결론은 류 본부장이 동명물산에서 넘어온 시니어즈 팀 사람들에게 현재 정신적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류 본부장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플 겁니다.”

“아니죠. 새로 얻고 있는 파워에 즐거울 겁니다.”

“파워요?”

“파워죠. 어쨌거나 류 본부장이 이 안에선 시니어즈 팀의 대변인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 아닙니까.”

다들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류 본부장이 그 파워를 유도해 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괜히 오해해서 류 본부장한테 색안경 같은 건 끼지들 마세요. 그분도 부장님 말씀대로 분명 그분 나름의 애로점이 있을 테니까.”

난 재차 그 부분에 대해선 오해가 안 일어났음 좋겠단 뜻을 보인 후 말을 이었다.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 거겠죠. 그런데 그 파워를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인데, 이 내용을 해당 부서의 부서장들과 직접 소통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아니라 우리 인사부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부분이 저는 조금 걸린다는 겁니다.”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김 부장과 박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인원 이탈 없이, 서로 얼굴 붉히는 상황 없이 시니어즈 팀을 재경 모직에 흡수를 시키는 게 관건이죠. 그런 내용으로 본다면 조금 전 차장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가장 효율적일 거 같다고 생각한단 뜻이었습니다.”

김 부장이 박 차장에게 물었다.

“방금 뭐랬지?”

“크게 한 번 부딪혀서 어느 한쪽이 깨어진 후 관계를 새로 형성해 나가는 게 더 수월할 수도 있다고요.”

손가락을 튕겨 놓고 내가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지금 시니어즈 팀은 류 본부장을 중심으로 뭉쳐 있어요. 시니어즈 매각 당시 그 안에서도 분명 혼선이 많았을 겁니다. 동명물산에 남는 사람들, 아님 시니어즈와 함께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사람들. 다들 얼마나 계산이 복잡했겠어요? 자기 생활이 걸린 문제였을 텐데.”

굳이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쪽으로 넘어와서까지 저렇게 자기들끼리 뭉쳐서 덩어리를 만들고 있으면, 흡수가 될 수가 없죠. 아무래도 흡수는 물이 제일 빠르게 될 것이고, 그다음이 바로 가루겠죠.”

“가루?”

“사람을 물로 만들 순 없으니까요. 다 분산을 시키자는 겁니다. 시니어즈 영업부? 그걸 그대로 두니까, 영업부장이 크게 입을 못 대고 있는 겁니다. 시니어즈 신상품 개발팀. 그걸 그대로 묶어 두니까 개발부장이 선뜻 간섭을 못 하는 거죠. ATM 쪽은 더할 겁니다. 결국 시니어즈도 따지고 보면 마케팅으로 성장한 브랜드 아닙니까. 그런 만큼 시니어즈의 ATM은 자기들이 론칭하고 마케팅으로 띄운 시니어즈에 그들만의 자부심 같은 게 강해요.”

박 차장이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은 시니어즈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시니어즈로만 묶어 두지 말고 기존 부서에 골고루 분산을 시켜 주잔 뜻이에요?”

“대리급 이상은 존중을 해 줘야겠죠. 해 오던 가닥이 있는데. 그런데 그 밑으로는 다른 팀으로 새 배정을 받아도 적응이 쉬울 겁니다. 그리고 반대로 시니어즈 팀으로도 새로운 얼굴들이 스며들면 자연스럽게 그 조직에 환기가 일어날 겁니다.”

민은석 과장에게 물어봤다.

“동명물산에서 넘어온 인원에 한해서 그간 OJT(기업 내 직원 교육)를 어떻게 진행해 오고 있었어요?”

“본사로 첫 출근을 한 날 단체로 교육을 한 번 했고, 그다음에는 부서별로 쪼개어서 진행했습니다.”

“부서별로 쪼개어서 했다는 말은 부서 전체로 했다는 뜻이에요, 아님 시니어즈 팀 안에 있는 부서별로 했다는 말이에요?”

“시니어즈 팀 안에서만요.”

난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러니 겉돌 수밖에요. 이젠 엄연히 재경모직의 직원들인데, 시니어즈 팀만 묶어서 교육을 진행해 왔으니,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고, 교육을 받으러 가는 걸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은연중 서로 간의 거리를 만들 수밖에 더 있었겠어요?”

OJT 일정은 부장의 컨펌이 떨어져야만 만들 수 있는 것.

자신의 판단 미스였다는 걸 인정하며 김 부장이 말했다.

“그럼 아예 부서 전체로 교육을 해야 했었단 말씀이세요?”

“할 거였으면 그게 더 나았겠죠.”

“그렇게 해 버리면 교육 때문에 부서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어요.”

나 역시 교육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다시 이번엔 정현수 과장에게 물었다.

“혹시 시니어즈에서 넘어온 인원들 상대로 업무 환경에 관한 설문을 받으셨어요?”

“네.”

“대체로 어떻게 나왔습니까?”

“이게 좀 재미가 있습니다. 방금 과장님이 선을 그어 준 대리급. 딱 그 대리급을 기준으로 재경모직 본사 업무 환경에 대한 평이 갈라집니다.”

“어떻게요?”

“대리급, 그 이하 직원들은 무척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봉이나 그 외 기타 복지 혜택이 동일물산과는 큰 차이가 있다 보니 시니어즈의 매각이 그 사람들 입장에선 직장 커리어에 플러스가 될 거란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과장급 이상 되는 사람들은요?”

“과장급부터는 밥그릇 싸움 아니겠습니까.”

부장까지 참관을 하고 있는 회의에서 나올 만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도 했다.

“특히 영업이나, 신상품 개발팀 같은 쪽에선 자기들의 영역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요.”

“영역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 그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죠?”

“그렇죠. 어쨌거나 시니어즈에 관해선 자신들의 역할이 앞으로도 크게 필요할 테니, 그 부분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받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듣고 있던 김 부장이 머리가 아프다는 식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했다.

“KS 인터내셔널 인사부 사람들은 이런 머리 아픈 일을 매년 한다는 말 아니야. 거긴 브랜드 사 오고, 되팔고 하는 걸 매년 하는 곳이잖아.”

그래서 내가 말했다.

“할 만하니까 계속 그렇게 하는 거겠죠. 우리야 처음이니까 지금 이 상황이 낯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거뿐이지, 이런 것도 인사 쪽에서 시스템화를 시켜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할 겁니다. 차장님.”

“네.”

박 차장에게 역할을 하나 줬다.

“시니어즈 팀하고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부서만 추려서요, 차장님이 직접 교육 한 번 하시죠.”

“제가요?”

“민 과장도 있지만, 아무래도 인사적으로 무척 예민한 내용이고, 그 교육 상대가 다들 과장급 이상이다 보니까 민 과장보다는 경험이 많은 차장님이 직접 맡아 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민 과장, 그렇게 해도 괜찮죠?”

“저는 뭐가 됐든 배우는 입장에서 이번 상황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민 과장을 향해 양해해 줘서 고맙단 고개 인사를 건네 놓고 박 차장에게 말했다.

“교육 자료 만드실 때 최대한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저에 깔아 놓으시고요, 대신 조직 화합과 브랜드 실적에 저해되는 근무 태도를 보여 주는 직원에 한해선 엄격한 기준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요령껏 잘 전달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런 건 어려울 게 없는데, 그런 교육이 과연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까는 조금 회의적인데요?”

“그 전에 제가 약을 좀 쳐 놓겠습니다.”

“약이요?”

김 부장도 미간 사이 주름을 만들어 내며 날 힐긋거렸다.

“네. 영양제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부장님도 같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저도요?”

“네. 오늘 저녁으로 제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 * *

영업부, 개발부, 그리고 ATM(홍보, 마케팅)의 과장급 이상, 팀장, 부장들을 모두 소고깃집으로 초대했다.

시니어즈에서 넘어온 인원들까지 다 참석을 한 자리라 나와 김 부장까지 포함해 과장급 이상 되는 인원만 스무 명 가까이 됐다.

나를 제외한 그 자리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인물은 다름 아닌 ATM의 노정규 부장이었고, 그는 내가 누굴 이 자리에 따로 불렀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내 눈치만 살피며 자리의 주도권을 자기 쪽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결국은 이제 한솥밥 먹는 사이잖아. 좋게 좋게 갈 수 있는 부분은 좋게 가고, 가다가 서로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한 번쯤 짚어 가면서 그렇게 가면 되지. 안 그렇습니까, 본부장님. 하하하….”

“네, 감히 제가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동명물산에서 넘어온 저희 쪽 직원들을 예쁘게 잘 좀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충 술잔이 몇 차례 돌아갔을 무렵, 노정규 부장의 잔을 직접 채워 준 뒤, 곧바로 시니어즈 총괄을 맡고 있는 류정환 본부장의 잔을 채워 줬다.

그렇게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갈 즈음이었다.

미닫이문이 열리며, 룸 안으로 조동희 전무가 얼굴을 살짝 밀어 넣었는데, 그 모습에 술잔을 돌리던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깜짝 놀란 표정들로 하던 것들을 잠시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무님!”

“저, 전무님이 여긴 어떻게….”

신발을 벗어 위로 올라와 방 안으로 상체를 밀어 넣으며 조동희 전무가 말했다.

“어디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내 사무실까지 흘러들어 오나 했더니, 여기에서 나는 냄새였구만. 내가 또 개코 아닌가.”

내가 불렀다.

이런 판엔 정치가 앞으로 나와 줘야 제맛일 테니….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