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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만나 (92/303)

나 좀 만나

분위기가 왜 이래?

분당점 시니어즈 인테리어가 끝이 났단 이야기를 듣고 직접 방문을 해 봤다.

신기한 팀장의 디스플레이 실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인테리어야 인테리어 업체가 하는 것.

그 안을 우리 상품으로 꾸미는 게 진짜 VMD의 역할이니까.

상품이 디스플레이가 되기 전 매장 모습과 디스플레이가 된 이후의 매장 모습을 직접 비교해 봐야만 VMD팀의 진짜 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거다.

지금쯤 한창 디스플레이 준비로 정신이 없을 거라는 건 알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 탓에 강인성 과장과 함께 직접 매장 구경을 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과장님이 어쩐 일로….”

신기한 팀장은 표정 관리를 못 하는 사람답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어쨌거나 내게 아는 척을 해 왔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다길래, 지금부터 디스플레이 시작하실 거 같아 구경 삼아 잠시 와 봤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다른 직원들과 외주 인테리어 업체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제발 신 팀장이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길 바라는 눈치.

하지만 신 팀장은 씩씩거리며 사실대로 내게 말을 해 주었다.

“알고 지낸 지 몇 년 되어서 그래도 믿고 맡겼는데, 마감에 성의가 없네요.”

신 팀장의 솔직함이 매장 안의 공기를 삽시간에 얼음으로 만들어 버렸다.

인테리어 업체 소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약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난 아무리 봐도 뭐가 잘못된 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내 기준에선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마감이 잘된 것처럼 보였거든.

그래서 다시 신기한 팀장한테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난 거냐고 물었는데, 이 친구가 감정 조절을 영 못하는 거였다.

“이거 좀 보십시오!”

순간 나한테 화를 내는 건 줄 알았다.

“분명 우리 쪽에서 이렇게 디자인을 넣어 주면서 옆에 사이즈까지 다 기입을 해 놨는데, 벽판을 이렇게 붙여 놨잖아요!”

왜 나한테 화를 내지?

옆에서 강 과장이 신 팀장에게 뭐라고 하려는 걸 내가 겨우 말렸다.

눈으로만 강 과장에게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신호를 준 뒤, 신 팀장이 말하는 문제점을 내 눈으로 확인해 봤다.

“그렇네요. 비교해서 보니까 이미지하고 차이가 좀 있긴 하네.”

신 팀장이 현장 소장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재촉했다.

“뜯으라고요.”

반면에 현장 소장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자신의 뒤통수만 북북 긁어 댔다.

“아, 뜯어서 다시 사이즈 맞춰 주세요!”

“신 팀장. 인정해. 우리 쪽 실수 맞아. 그런데 내가 말했잖아. 뜯어서 새로 맞추는 건 하면 돼. 그런데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이거 안 마른다니까? 최소 12시간은 기다려야 해.”

“벽판 디스플레이는 내일 아침에 해도 돼요. 그 몇 시간 때문에 1년 넘게 쓸 이 공간에 실수가 난 걸 그냥 넘기자고? 말 같은 소릴 해야지!”

“그럼 이거 뜯어서 다시 붙일 때까지 신 팀장이랑 같이 온 사람들은 기다려야 하잖아. 이게 그냥 뜯었다 다시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기계 가지고 와서 벽판 잘라야지. 그럼 톱밥 날리는 건 어떻게 할 거요? 톱밥 날리는 상태에서 디스플레이를 할 거요? 청소는 어떻게 할 거냐고. 벽판 다시 사이즈 맞추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거 뜯는 순간 내일 아침에 오픈 못 하게 되는 거예요.”

신 팀장의 돌아이 기질이 제대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못 하면 오후에 하면 되지.”

“신 팀장.”

“나는 이걸 못 참겠다고요. 내 디자인이 아니라고!”

“하, 저놈의 고집. 알았어요, 알았어. 난 모르겠어. 우리 쪽에서 난 실수에 대한 부분은 책임을 지겠지만, 내일 시간 맞춰서 오픈을 못 하는 건 어디까지나 신 팀장 결정이니까 신 팀장이 책임을 져요.”

“책임을 지는 건 지면 되는데, 소장님 말 그딴 식으로 하면 앞으로 더는 같이 못 해요.”

“누가 할 소리! 나도 이렇게 별것도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굴면, 신 팀장이 무슨 공사를 맡기더라도 더는 안 받고 싶어! 야, 뭐 해! 뜯어!”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며 싸운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벽판을 뜯는 걸로 결정이 난 이후부터 보여 준 모습에 상당한 괴리가 느껴졌다.

벽판을 뜯기 시작한 인부들을 감독하며 누군가가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자 킥킥거리며 놀리는 현장 소장.

작업 시간이 길어진 게 기정사실화되어 버린 바람에 의욕이 꺾인 VMD팀을 다독이며 돌발 상황 앞에서 어떻게 작업을 진행해 나갈지 작전을 짜 주기 시작하는 신 팀장.

내 눈에 그 둘은 정상이 아니었다.

“일단 벽판 커팅 시작되면 소장님 말대로 톱밥 장난 아니게 날릴 거예요. 그렇다고 내일 아침 오픈인데 마냥 기다릴 순 없고, 벽판 작업 새로 하는 동안 우린 상품 분류부터 합시다. 희정 씨.”

“네, 팀장님.”

“매직 들고 상품 박스에 표기 좀 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우리가 시간이 촉박해졌잖아.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책은 완벽한 상품 분류에요. 공사 끝나는 순간 박스 뜯고 바로 상품 꺼내서 걸 수 있게끔 좌벽 상품, 우벽 상품, 숍 중앙 행거 상품을 다 나눠 놔요.”

“네.”

“그리고 찬원 씨는 지금 바로 윈도우 디스플레이 들어가요. 어차피 톱밥이 날려도 윈도우까지 가진 않을 거야. 마네킹에 입히는 거니까 톱밥 좀 날려도 큰 상관은 없고. 내일 아침에 먼지 한번 싹 걷어 내면 돼. 규열 씨.”

“네, 팀장님.”

“아직 폐점 전이니까, 백화점 시설부에 얼른 가서 진공청소기 좀 미리 빌려 놔요.”

“빌려줄까요?”

“음료수 몇 병 사 들고 가서 사정 설명하고 부탁해 봐요. 왜 안 빌려주겠어. 정 못 빌려주겠다고 하면, 청소기 하나 사 와. 자, 내 카드 줄게.”

진짜 돌아이네.

“자, 얼른. 우리 시간 없어.”

“아, 아니, 그냥 제가 어떻게든 빌려 오겠습니다.”

그러더니 또 언제 싸웠냐는 듯 인테리어팀 쪽으로 가서 현장 소장과 이야기를 주고받네?

“이거 브랜드 로고는 한 15센티 정도? 딱 이거 캐셔 기계 모니터에 중심이 걸리게끔 달아야 해요.”

“그런데 너무 그렇게 딱 맞춰서 달면 너무 촌스럽지 않아?”

“으으음. 그렇게 달아야 숍 중심이 맞지. 숍 자체가 길게 빠졌잖아. 근데 출입문은 오른쪽에 쏠려 있고. 브랜드 로고 위치로 착시 효과를 안 주면 숍이 길기만 길고 좁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그럼 이것도 떼?”

“떼야지. 딱 이만큼. 15센티만 옆으로 가면 되겠다.”

“알았어. 야, 이것도 떼라. 카도 발라서 본드 흔적 지우고, 15센티 정도 옆으로 다시 박아 봐.”

농담이 아니라 신기한 팀장에게 나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거 같았다.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있었는데, 강 과장은 그 상황이 몹시나 불편했던지 수시로 내 눈치를 살폈고, 난 그런 강 과장에게 난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구경이나 하자고 했다.

프로.

돌발 상황 앞에서 팀원들에게 정확한 교통정리를 해 주고 있는 신 팀장의 모습은 프로 그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현장의 변수를 경험해 봤으면, 저렇게 편하게, 그것도 자기 확신에 찬 모습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걸까?

자기 팀원들에게 모든 지시를 다 내려 놓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는지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 내며 신 팀장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헉, 헉… 아이고, 죽겠네. 후… 그런데 과장님, 여긴 왜 왔다고 하셨죠?”

“…….”

“제가 있음 방해가 될 거 같네요.”

보통 이렇게 말을 하면 “아닙니다.”라고 대답을 해 주는 게 정상 아닌가?

하지만 신 팀장은 대답을 하지 않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매너라는 식으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날 다시 웃게 만들었다.

“이거 내일 아침까지 마무리되겠습니까?”

“되게 해야죠.”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도 나고 하는 거죠. 그리고 어디 요즘 백화점 오픈한다고 사람들이 몰려듭니까? 가뜩이나 주말도 아니고 평일인데. 오픈 시간은 늦어져도 크게 상관없으니까, 급하게 한다고 누구 다치고 그런 일 안 생기게끔, 여유 있게 하세요.”

날 바라보는 표정이 딱 이랬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잔소리 좀 그만하고 얼른 좀 가 달라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그럼 우린 그만 가 보겠습니다. 가시죠, 강 과장님.”

영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신 팀장을 노골적으로 노려본 뒤 몸을 돌린 강 과장.

하지만 신 팀장은 강 과장이 그런 공격적인 눈빛을 보내거나 말거나, 가벽 입구까지만 딱 우릴 배웅해 주고 자기가 직접 가벽 나무 문을 안에서 닫아 버렸다.

“저, 저….”

도저히 이건 못 참겠다며 강 과장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다시 내가 말렸다.

“놔두세요. 텐션이 높은 사람이지, 예의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때 지금은 돌발 상황 앞에 텐션이 하이를 찍고 있는 거 같고요.”

“그래도 과장님이 이렇게 직접 방문을 하셨음 최소한….”

“신 팀장은 기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지, 우리 회사에 있는 일반적인 직원들처럼 소통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기능적인 언어요?”

“제가 이탈리아 애들이 일하는 스타일을 나름 잘 파악하고 있거든요. 신 팀장이 이탈리아 생활을 꽤 오래 했어요. 또 거기가 잘 맞는 사람이고. 걔네들 일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저래요. 무례해서가 아니라 걔네들은 일을 할 때 관계가 아닌 상황에 집중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대가 누구건 상황에 맞는 언어만 나오는 거죠. 지금 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누가 봐도 돌발 상황 아닙니까.”

“…….”

“반대로 우리 회사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황이 아니라 관계에 집중하는 소통적 언어를 사용하죠. 상황이 어떻든 그 자리에 누군가가 오면, 그 누군가에게 맞는 언어를 쓰는. 딱 그 차이입니다. 지금 신 팀장 머릿속엔 제가 왔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돌발 상황을 어떻게 풀어서 내일 아침 오픈 시간까지 마무리를 짓느냐밖에 안 들어 있는 거예요.”

“음….”

“어떻게 모든 직원이 다 똑같을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있으면 또 저런 사람도 있어야 섞이는 맛이 있죠. 볼 거 다 봤으니까, 우리도 그만 퇴근합시다.”

다음 날 아침.

정말 혹시나 해서 윤 팀장한테 시니어즈 분당점 오픈은 잘했는지 전화로 물어봤다.

―네, 정상 오픈했고, 디스플레이 끝난 숍 이미지도 받았어요.

“그 이미지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지금 과장님 메신저로 보내 드릴게요. 잠시만…요. 네, 지금 보냈습니다.

전화를 끊고 들어온 이미지를 확인했다.

웃음이 끊어지질 않았다.

전날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내가 간 이후 어떤 전쟁이 벌어졌을지 눈에 훤히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러니 이렇게 완벽하게 오픈을 시켜 놓은 신기한이가 신기한 거지.

* * *

오후였다.

하늘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놈 성격이 급하다.

카톡을 안 쓰는 건 아닌데, 주로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녀석이다.

―통화 가능해?

“괜찮아. 왜?”

―오빠, 다음 주 월요일 우리 할아버지 아흔 살 생신인 거 알지?

“어. 지난주 토요일에 네가 그랬잖아. 이번 주 일요일에 하기로 하지 않았어? 우리 집에서도 다 가는 거 같던데?”

―오빠네 부모님한테는 우리 엄마가 따로 연락을 드릴 거야. 그 전에 말이야. 오늘 퇴근하고 약속 있어?

누구 놀리나….

“있겠냐?”

―있단 말이야, 없단 말이야? 무슨 대답을 항상 그렇게 한 번 꼬아서 해?

“없다고.”

―그럼 나 좀 만나.

“왜?”

―언제는 나보고 이유와 명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더니, 정작 그렇게 말한 사람도 별반 다를 건 없네.

“…….”

―할아버지 선물 봐 놓은 게 있어. 오빠가 직접 나랑 같이 가서 계산 좀 해.

“네 선물을 내게 왜 계산을 해?”

―난 벌써 준비했고. 설마 오빠도 선물 벌써 준비한 거야?

“그런 건 아닌데….”

―고민하지 말라고. 내가 미리 봐 둔 게 있으니까. 마치고 우리 회사로 나 데리러 와. 차 하나로 같이 움직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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