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씻을까?
현악기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악보를 펴고, 악기 점검을 잠시 하더니 이내 경성별장 정원 가득 현악기 연주 소리가 은은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 연주를 시작으로 본관 연회관에 모여 있던 인물들이 태산이를 중심으로 동시에 밖으로 나왔다.
태산이의 양옆을 영석이와 우리 홍준이가 각각 지키며 같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그간 막혀 있던 답답함이 살짝은 뚫리는 기분이 든다.
보기가 좋았다.
“손 회장.”
1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라운드 테이블이 다섯 테이블씩 네 줄로 맞춰진 야외 행사장이었다.
무대 바로 앞.
첫 줄의 다섯 테이블 중 중앙 테이블이 오늘의 주인공 태산이와 그 가족들이 앉게 될 테이블이었고.
“네, 회장님.”
“같이 앉지?”
“…같이요?”
홍준이는 재빨리 눈알을 굴렸다.
이미 태산이의 가족만 해도 영석이와 그의 처, 하늘이. 그리고 둘째 영우 가족까지 여덟이다.
“그러지 말고 같이 앉아.”
태산이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일부러 더 보라는 식으로 직접 자리를 새로 배정하기 시작했다.
“영우야.”
“네, 아버지.”
“네가 아이들 데리고 남 사장하고 같이 앉아.”
“네.”
영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재경가 테이블로 옮기기 시작하자, 홍준이도 얼른 장혜란과 정태, 그리고 원수경에게 자리를 옮기자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산이는 우리 가족이 상석 테이블로 옮겨 올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자기 기준의 좌석을 배치하기 위해 상황을 살폈다.
“정훈이.”
“네.”
“정훈이가 이쪽으로 앉아.”
이미 자신의 마음을 좌석 배치 하나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나와 하늘이를 그 상석 테이블, 상석 자리에 나란히 앉게 만들었다.
오늘 이 행사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나와 하늘이라는 걸 자리에 참석한 모두에게 알리고 있었다.
“앉아.”
“네.”
“그리고 어디 보자… 내가 이쪽으로 앉을 테니까 손 회장이 정훈이 옆으로 앉는 게 좋겠네.”
“…네.”
“그렇게 다들 둘러앉자.”
나와 하늘이는 현악기 연주자들이 올라가 있는 무대를 등지고 앉았다.
자연스럽게 오늘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앉은 상태에서도 한눈에 다 들어오고 있었다.
유모차에 누워서 주먹만 쥐었다 펴고 있는 승현이까지, 10명이 된 상석 테이블.
“나는 이렇게 앉으니 참 좋은데, 혹 손 회장은 불편하거나 그런 건 아닌가?”
잠시 뜸을 들이던 홍준이도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도 이렇게 다 같이 앉으니까, 뭔가 옛날 생각도 나고 든든한 게… 참 좋습니다.”
“그런가? 그냥 늙은이 주책에 기분 맞추겠다 빈말로 하는 소린 아니고?”
“저도 이제 손주를 본 사람인데, 자식들 앞에서 빈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행이네. 나만 좋은 게 아니라고 하니.”
말없이 날 쳐다보기만 하던 장혜란 역시 나와 하늘이를 번갈아 쳐다본 후 많은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홀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부회장님.”
잠시 후 미래금융 쪽 관계자 한 명이 영석이 뒤로 바짝 붙어서 행사를 시작해도 될는지 조심히 물었다.
그에 영석이는 태산이의 눈치를 확인한 후, 잠시 뒤에 따로 신호를 줄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형수님도 오늘은 한잔하셔야죠?”
“당연히 해야죠?”
영석이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보겠다고 장혜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내 장혜란이 홍준이의 팔을 약하게 건드렸다.
얼른 홍준이가 와인이 채워진 잔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잔을 태산이 쪽으로 최대한 가깝게 가져갔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태산이도 함께 잔을 들어 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어느새 제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자네들 이만할 때, 회장님이 자네들 데리고 산이며 들이며 낚시에 산 타는 거 가르쳐 주시겠다고 함께 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자네는 손주를 봤고, 내 손주는 시집갈 나이가 됐어.”
그랬지.
태산이 놈이 워낙 샌님 같은 구석이 있어, 잘 놀 줄을 모른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내가 양쪽 집안 아이들을 다 데리고 이곳저곳을 종종 다녔지.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태산이도 자기 아들 영석이, 영우가 가진 기질에 대해선 파악을 잘 못 하기도 했고.
내가 오죽했음 한국에서 프로 야구가 출범할 당시 태산이의 둘째 영우 놈 기질을 유심히 살피다가, 사업을 시키기보다는 나중에 구단주를 맡기면 잘하겠다 싶어 재경 맘모스를 창단했을까.
“건강하셔서 이렇게 좋은 자리 만들어 주신 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네가 가족들 다 데리고 와서 이렇게 같이 앉아 준 게 난 더 고마운데?”
“앞으로 이런 자리 더 자주 가질 수 있게끔, 애쓰겠습니다. 그러니 회장님은 앞으로 건강만 하십시오.”
우리 테이블만 먼저 다 같이 건배를 하고 잔을 조금씩 비워 냈다.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태산이가 홍준이에게 말했다.
“자네도 이젠 그만 애쓸 때가 됐어.”
그리고 나와 정태, 하늘이를 차례대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태가 이번에 우리 쪽 돈쟁이들 설득해서 같이 큰일 성사시키느라 고생이 많았어.”
“아닙니다. 이제 시작이죠.”
“아들 낳았다 소리 듣고 먼저 축하한다 연락을 넣지도 못하고 말이지. 나이가 들면 휘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집만 늘어서 더 뻣뻣해지는 거 같아. 늦었지만, 따로 득남 선물을 준비하고 있네. 스너프에 담은 우리 쪽 지분에서 2퍼센트는 따로 빼서 자네 아들 앞으로 해 놓으라고 해 뒀어.”
이 자리에서는 처음으로 원수경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정태 역시 크게 놀라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눈치였다.
“급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하라고 해 뒀으니까 조만간 따로 말이 갈 거야.”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뿐이야. 여기 영석이, 저기 영우. 네 삼촌들 태어났을 때, 자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 주셨다.”
역시 연륜은 무시를 못 하는 걸까.
나 없이 홀로 30년 세월, 그동안 태산이에게도 제법 세련된 수가 많이 생겨 있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걸 하는 거니까, 그냥 받으면 돼.”
정태는 홍준이의 표정을 살폈다.
홍준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남은 계산은 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뜻을 보여 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네 말대로 스너프는 이제 시작 아닌가. 더 크게 키워야지?”
“네.”
“이게 내 입장에선 선물을 주는 걸 수도 있고 부담을 주는 걸 수도 있어. 우리 투자가 크게 들어간 사업이니만큼 더 크게 키워 달란 소리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정태에게서 시선을 거둬, 테이블에 빙 둘러앉은 모두를 한 명씩 천천히 쳐다보며 태산이가 말했다.
“이런 날이 다 오네. 이 녀석들과 내가 사업 이야기를 다 하고….”
그렇게 태산이가 홍준이에게 직접적인 손을 먼저 내민 후.
오늘 이 자리에서 태산이가 손을 내밀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온 모양인지, 홍준이 역시 준비한 선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와 하늘이를 함께 쳐다보며, “이렇게 나란히 앉혀 놓으니까, 보기가 참 좋습니다.”라고 홍준이가 말했다.
태산이도 얼른 장단을 맞추며 “자네 눈에도 그런가?” 하고 물었다.
“모직 쪽 지분을 하늘이한테 주셨다지요?”
“언제 줘도 줘야 할 거, 그나마 혼자서 계산기 똑바로 두드릴 힘이 남아 있을 때 주는 게 좋지 싶었어.”
형식적인, 혹은 기분상의 문제이긴 하나, 내심 홍준이의 계산법이 궁금해지고 있었다.
태산이가 스너프 지분 2퍼센트를 정태한테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홍준이가 우리 재경과 미래금융의 관계 형성을 위해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
넌 뭘 태산이에게 줄 것이냐….
“하늘아.”
“네, 아저씨.”
“아저씨가 회장님 생신 선물을 미처 못 챙겨 왔어.”
테이블의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 태산이로부터 스너프 지분 2퍼센트를 약속받은 정태도, 원수경도, 태산이, 영석이까지 숨을 죽이며 각자의 표정을 숨긴 채 홍준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소원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거 같아. 뭘 드려야 좋아하실지, 감을 못 잡겠어. 하늘이 네 생각엔 아저씨가 회장님 생신 선물로 뭘 드리는 게 좋을 거 같니?”
하긴.
홍준이에게도 하늘이를 테스트해 볼 기회는 줘야지.
그 부분을 태산이 앞에서 표현하고 있는 거 같은데, 태산이 역시도 피식하고 웃기만 할 뿐 별다른 표정은 만들지 않고 있었다.
그 여유 있는 표정이 하늘이에게 가지고 있는 태산이의 믿음과 자신감을 대신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자세를 바로잡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하늘이가 대답했다.
“소원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소원했던 시간을 두 분 모두 후회하시는 만큼, 앞으로는 각별해지셨음 좋겠어요.”
그 한마디에 어색함이 시작되려 했던 테이블 위로 잔잔한 미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앞에 계시잖아요. 앞으로는 다른 사람 통하지 마시고 직접 묻고, 이야기를 나누셨음 좋겠어요. 그래야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더 자주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결국 홍준이가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하하하… 우문현답이다, 우문현답이야. 하늘이 똑똑한 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속이 깊을 줄은 몰랐네. 그렇지. 바로 앞에 계시는데, 아저씨가 직접 여쭤보면 될 것을 괜히 하늘이 입장만 난처하게 만들었구나.”
“아니에요.”
장혜란의 얼굴에도 한 번 번진 미소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딱 한 사람, 원수경만이 힘들게 미소를 유지하고 있을 뿐, 자리에 앉은 모두가 기분 좋은 미소를 나누고 있는 태산이와 홍준이의 모습에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있었다.
홍준이가 태산이에게 물었다.
“회장님.”
“그래.”
“이놈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같이 앉혀 놔도 되겠습니까?”
“보기 좋다며?”
“네. 저는 너무 보기가 좋네요.”
“보기가 좋은데 뭐 하러 떨어뜨려 앉혀? 그냥 계속 같이 앉게 만들면 되는 거지.”
태산이의 확답을 들은 홍준이는 이내 영석이를 찾았다.
“영석아.”
“네, 형님.”
“우리 정훈이 괜찮겠어? 나는 하늘이가 탐이 나는데, 너한테 정훈이는 어떨는지 모르겠다.”
“애들 일은 애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저는 오히려 형님이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나? 내가 왜?”
“앞으로 저한테 더는 영석아, 영석아… 그렇게 못 부르실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네. 하하하….”
그제야 영석이는 아까 전부터 먼발치에서 자신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미래금융 관계자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곧 그 신호를 시작으로 오늘 행사의 사회를 맡은 인물이 연단 뒤로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정태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는 원수경의 모습에 신경이 쓰였다.
“왜? 어디 안 좋아?”
운전기사가 있었기에 원수경은 그저 고개만 내저으며 별다른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원수경의 저기압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원수경은 승현이를 가사 도우미에게 안겨 주었다.
“목욕 좀 씻기세요. 컨디션이 안 좋아요. 낮잠도 제대로 못 잤고, 하루 종일 풀밭에 있어서 재채기도 많이 했어요.”
“제가 씻겨서 우유 먹이고 재울게요.”
“네, 부탁 좀 해요.”
모든 게 귀찮고 피곤하다는 듯 승현이를 넘겨주고 안방으로 들어온 원수경.
정태는 그런 아내를 따라 안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왜 이렇게 다운이야?”
“아닌데? 그냥 좀 피곤하네.”
“오늘 자리 불편했어?”
“으으음. 불편할 게 뭐가 있긴 했어? 아냐, 그런 거.”
고개까지 저어 가며 자신의 감정을 부인해 봤지만, 정태 눈엔 뭔가에 심사가 뒤틀려 있다는 게 보였다.
이럴 땐 혼자 있게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 정태는 더는 묻지 않았다.
옷만 갈아입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려는데, 그제야 원수경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까 말이야.”
정태 옆으로 나란히 선 원수경은 세면대 거울을 보며 화장 솜으로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나만 딴 세상에서 온 기분이었어.”
“무슨 소리야?”
“미래금융.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안 했는데 대단한가 봐? 오늘 행사장에 온 손님들도 그렇고.”
“그 자리에 온 손님들의 절반 이상은 결국 원래 우리 재경 그룹 인맥들이야.”
“지금은 아닌 거 아냐?”
“투자사. 결국은 돈을 눈치로 버는 집단이야. 그 주위로 눈치 빤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스너프로 우리 재경과 미래금융이 다시 관계가 형성됐으니, 오늘 그 자리에 아버지를 비롯해 나까지 참석을 할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었어. 눈치로 먹고사는 돈쟁이들 입장에선 참석을 안 할 수가 없는 자리였지.”
원수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화장을 꼼꼼하게 지워 내며 말했다.
“여보, 우리… 승현이한테 동생은 만들어 주지 말자.”
“뭐야, 뜬금없이?”
“승현이 하나만 제대로 키우자. 동생한테 뭔가를 나눠 줘야 하는 입장이 안 되게, 동생이라고 뭔가를 양보하지 않아도 되게… 사람들이 그러잖아. 동생이 태어나면, 첫째 입장에선 그간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부모의 모든 관심과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고, 그 상실감의 정도가 왕좌를 빼앗긴 왕의 기분이라고 말이야.”
“…….”
“내가 오늘 그랬어. 하늘이를 쳐다보는 어머님, 아버님 눈빛을 보는데, 이상하게 하늘이 걔한테 내 것을 다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어.”
정태는 피식하고 웃었다.
“뭐야? 애야?”
“그리고 그간 당신한테 집중되어 있던 기대와 믿음이 정훈이한테로 옮겨 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 미래금융.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더라. 그 자리에서 승현이 앞으로 스너프 지분 2퍼센트를 선물로 주겠다고 하고.”
“수경아.”
“우리 집안이랑은 비교가 너무 되는 거 같아서 솔직히 많이 위축됐어.”
“…….”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날 그 자리에서 위축되게 만든 게 뭐였는지 알아?”
“…뭔데?”
“이상하게 오늘 그 자리가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미 정해진 자리였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날 위축되게 만들었어.”
“무슨 말이야?”
“스너프. 그거 사실은 정훈이 기획이었다며?”
거울을 통해 서로 눈을 맞추며 정태는 말없이 원수경을 바라보았다.
“뱅크 시스템으로 미래금융 쪽으로 손을 내미는 것 역시 정훈이 기획이었고. 그런데 오늘 장 회장님 아흔 번째 생일잔치가 생일잔치가 아닌 정훈이, 하늘이의 결혼 발표 자리가 되어 버렸어.”
“…….”
“이거 지금 나만 이상한 거야?”
정태의 미간 사이에 팔자 주름이 깊게 패기 시작했다.
“당신이 정훈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당신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고 있어서 더는 말 안 할게. 그런데, 여보. 지금부터는 당신도 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
“나 먼저 씻어도 돼? 아님 오랜만에 같이 씻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