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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쫌 친다? (97/303)

너 쫌 친다?

맥주 한 캔을 뜯어 놓고 소파에 앉아, 힐링광장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주 채서린 편의 예고 영상이 나간 이후,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은 마비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오랜만에 화면에 나온 채서린의 모습에선 변함없는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엠시가 스캔들에 관한 해명을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예민한 내용이긴 한데, 사실 많은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내용이기도 하죠.”

“제 스캔들 관련된 내용이요?”

“네.”

“드디어 나오네. 국민 엠시치고는 진행이 너무 답답한 거 아니에요?”

“제가요?”

“결국 그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시겠다고 저 부르신 거잖아요. 서론이 너무 길었어요.”

“조금 길긴 했죠?”

“좀 많이요.”

“하하하. 그래도 여배우 입장에서는 결코 작은 이슈가 아니었을 텐데, 너무 이렇게 거침없이 말씀을 하시니까, 조심히 이야기를 꺼낸 게 민망해지네요.”

“에이, 스캔들 처음 터졌을 당시야 그랬지, 이제 와서 조심할 게 뭐가 있어요? 그리고 선배님 아니었음 저 방송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 하지도 않아요. 다 아시면서.”

“그건 그렇죠? 하하하.”

채서린의 거침없는 모습은 힐링광장의 엠시와 자신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역시 국민 엠시네요? 다 알고 계시면서.”

“아주 절 들었다 놓았다 하시네요. 그렇죠. 저야 개인적으로 서린 씨하고 친하니까 진실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많은 시청자분들은 모르고 계시고 또 궁금해하고 계시잖아요. 이런 거 보면 서린 씨가 정말 낯이 얇단 말이야.”

이야.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도 엠시까지 단단히 매수를 했구나.

“맞아요. 서린 씨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당차고 쿨한 배역을 주로 맡잖아요. 또 가끔씩이지만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때마다 털털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그래서 많은 시청자분들이 오해를 하고 계신데, 서린 씨가 알고 보면 상당히 내성적이에요. 저도 방송 일 오래 하면서 카메라 앞과 뒤의 모습이 다른 동료들을 수도 없이 봤지만, 그중에서도 반전 성격 갑 오브 갑이 바로 서린 씨에요.”

고정 패널 한 명이 지원 사격을 하고 있었고, 그에 채서린은 씁쓸한 미소를 연출해 내며 그 지원 사격을 극대화시켜 내고 있었다.

저러니 다들 배우이고 연기자구나 싶었다.

“저도 나이에 비해서는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한 편에 속하잖아요.”

채서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채서린의 연기보다는 하늘이가 짠 각본이 더 궁금해지고 있었다.

“그렇죠.”

“고생도 많이 했고,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상황 앞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도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을 했어요.”

엠시와 고정 패널들이 채서린이 입었을 상처에 공감을 한다는 듯 애처로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어쨌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저한테는 연예계라는 곳이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제가 사는 세상인 거거든요. 어떤 세상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세상은 난처한 상황,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요. 공감해요.”

“그중에서도 이 연예계는 아무래도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 게 대단한 일이 될 수도 있고, 따지고 보면 큰일이 대수롭지 않게 덮이는 경우도 많은 거 같아요.”

“네.”

“그 스캔들 역시 저는 일종의 별거 아닌 게 어느 기자님의 비양심에 의해 엄청 대단한 일이 되어 버린, 제 입장에선 너무 억울하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이걸 가지고 나왔어요.”

“뭔가요?”

“처음 그 스캔들을 퍼지게 만들었던 해당 기사에 실린 사진 원본이에요.”

확대시킨 사진 두 장을 앞으로 보이며 채서린이 해명을 시작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기자님이 정말 교묘하게 기사를 올리셨더라고요. 이게 원본 사진인데 여기에서 날짜, 시간이 찍힌 부분을 잘라서 이렇게만 기사에 실은 거예요.”

“그런데 날짜가 조금 이상하네요?”

“네. 스캔들 기사가 나오기 세 달도 더 전에 찍힌 사진이에요.”

“그럼 잠깐만.”

패널 한 명이 끼어들었다.

“세 달 전 사진을 가지고 바로 오늘 찍힌 것처럼 그렇게 기사를 냈단 말이에요?”

“그러셨더라고요. 저도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이해받기 힘든 일을 한 건데, 그걸 어떻게 이해를 할 수가 있겠어요.”

“푸흡. 그렇게 생각을 해야 정신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롭겠죠? 아무튼 날짜도 날짜이지만, 이 사진이 찍힌 시간을 좀 보세요. 제가 차 키를 바퀴에서 찾는 시간과 차 주인이 차에 타면서 찍힌 시간. 20분밖에 차이가 안 나요.”

“어? 진짜 그렇네요?”

“신체 건강한 성인 남녀가 호텔에서 데이트하는 거?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자연스러운 거죠.”

“그런데 상식적으로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 3세라도 20분 데이트 즐기겠다고 이런 최상급 호텔 룸을 빌리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도 하는지. 저는 그런 사람들과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007 첩보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힘들게 만나서 고작 20분밖에 절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남자라면… 만날 이유가 있어요?”

“하하하. 그런데 서린 씨, 잠시만요. 여기 공중파예요. 케이블 채널 아니에요. 수위를 갑자기 그렇게 올리시면 편집될 수도 있어요. 하하하.”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요.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요. 이 두 사진에 나와 있는 시간 차이만 놓고 보면 호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 올라가는 시간, 이것저것 다 빼면 실제로 데이트를 즐긴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는 결론인데, 진짜 재벌들은 실제로 그렇게 데이트를 즐기는 건지 궁금하잖아요. 안 궁금하세요?”

엠시가 더 많은 변명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에 찍힌 사람이 서린 씨는 맞잖아요.”

“네, 저 맞아요.”

“그리고 이 차 바퀴에서 찾아 꺼낸 게 방 키도 맞고.”

“네, 그것도 맞아요.”

“많은 분들이 이 부분 때문에 채서린 씨의 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공식 입장? 그런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셔서 많이들 아쉬워하셨어요. 이 기사가 실은 실제 사진이 찍힌 지 세 달이나 뒤에 터진 기사였다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두 사진 사이의 촬영 시간이 20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내용, 그런 내용을 진작에 팬들에게 확인을 시켜 주셨음 좋았을 거 같은데요?”

채서린의 연기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해당 기사를 보고 제가 멘붕이 왔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긴 한데… 그래도 소속사 측에서라도 공식 입장 같은 걸 최대한 신속하게 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우선은 제가 멘붕이 너무 심하게 왔고, 방송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몸담고 있는 연예계에 환멸? 염증? 그런 감정을 심하게 받았어요.”

“참 이게 그런 거 같아요. 밖에서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막상 안에서 밖을 보면 우린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 같단 생각을 자주 하잖아요.”

“네. 비슷한 기분이었던 거 같아요. 소속사 대표님한테도 이게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많이 지쳐 있는 상태에서 이런 기사가 터졌던 걸까요?”

“그랬을 수도 있죠. 신나게 달리고 있으면 제가 피곤한지 잘 모르잖아요. 이런 기사가 나오고 잠시 제가 걸어온 연예계 생활을 되짚어 봤는데 갑자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왜 나 때문에 내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 거지? 과연 나는 지금 이렇게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해명이나 하고, 억울하다 변명을 해야만 하는 이 일을 진짜 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막 쏟아지면서 절 괴롭히기 시작하는 거예요.”

엠시와 패널들 모두 당시의 채서린 상황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가 주연으로 출연을 했던 프레지아 꽃향기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프레지아 꽃향기요? 대단했죠.”

“그 드라마에 출연을 확정하면서 친해진 영상 투자사 팀장 언니가 한 명 있어요. 그 언니한테는 프레지아 꽃향기가 자기가 기획하는 첫 투자 작품이었던 거예요.”

“첫 작품에 주연 배우다 보면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죠.”

“네, 거기다 그 작품이 잘됐잖아요.”

“엄청 잘됐죠.”

“좋은 상황 속에서 맺어진 인연이다 보니 저한테도 많이 각별했던 언니거든요. 새 작품 들어가는 건으로 저한테 따로 할 이야기도 있고, 소개해 줄 사람도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 호텔에서요?”

“네. 저도 좀 의아했죠. 작품 관련된 내용이라면 그냥 회사로 오라고 하거나, 아님 저희 쪽 소속사로 오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게 일반적이죠.”

“그래서 소개해 줄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밖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 언니가 하는 말이 아직은 서로가 조심스러운 단계라 밖에서 소개를 해 주기가 좀 그렇다는 거예요.”

“그건 또 왜 그렇죠?”

“할 이야기는 일적인 거지만, 소개를 해 주고 싶은 사람은 사적이라는 뜻이었어요.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연예인이다 보니까, 저랑 같이 있으면 어디든 사람들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런 걸 불편해한다는 거예요, 그분이. 그런데 친한 동생이라고 소개는 해 주고 싶고.”

채서린이 들고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엠시가 물었다.

“이 사진에 나온 남자분 말씀이세요.”

“네.”

“그런데 잠깐만요. 여기에서 시청자 분들이 궁금해하실 내용. 이분이 기사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도 재벌 3세가 맞아요?”

“네, 그건 기사를 쓴 분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 시선이 집중되는 걸 꺼리셨던 거 같고.”

“아….”

“저는 정말 그날 그분을 잠깐 본 거거든요. 10분? 그 정도 같이 계시다가 편하게 작품 이야기 나누라면서 먼저 나가셨어요. 그리고 저랑 그 언니는 왜 여자들끼리 그런 거 있잖아요. 호캉스. 나름 그런 걸 즐기면서 긍정적인 방향에서 새로 들어갈 작품 이야기를 나눴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다음 날 바로 기사로 터진 것도 아니고, 호텔에서 그런 만남이 있었다는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와중에 3개월이나 지나서 빵 하고 스캔들이 터진 거예요.”

“그럼 그 언니분하고 남자분은 아직도 계속 만나고 있는 거예요?”

“천만다행이죠. 만약 그 스캔들로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음 저 그 언니 평생 못 봤을 거예요. 다행히 양쪽 집에서 벌써 결혼 이야기까지 다 오고 갔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당시 제가 멘붕이 올 수밖에요. 저야 직업이 이미지가 상품인 연예인이니까 얼마든지 그 정도 스캔들은 괜찮아요. 그런데 언니나 그 언니랑 교제 중인 남자분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거기다 재벌 3세면….”

“그러니까요. 제가 만든 자리는 아니지만 제가 얼마나 미안했겠어요?”

“그렇지. 그렇게 되면 입장이 많이 난처해지지.”

“거기에서 제가 멘붕이 왔던 거예요. 언니는 괜찮다고, 자기가 만든 자리인데 네가 왜 미안해하냐고 말을 하지만 제 입장은 또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럼 매니저라도 같이 객실로 올라가지 그랬어요?”

“매니저가 남잔데 어떻게 호텔방에 같이 들어가요? 그게 더 이상하죠.”

“하긴.”

* * *

시청자 게시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채서린을 옹호하는 입장과 채서린이 시청자들과 팬을 개돼지로 생각을 하는지, 말 같지도 않은 억지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나뉘어 가고 있었다.

해당 방송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없었던 내 입장은 후자였다.

하늘이가 꽤 자신만만해하길래 괜찮은 각본을 만든 줄 알았는데, 어설퍼도 너무 많이 어설펐다.

채서린 입장에서는 출연을 안 하느니만 못한 방송이 되어 버렸다.

“방금 방송 봤는데… 나는 좀 그렇더라. 더는 그런 방송에 출연시켜서 해당 스캔들 이야기 꺼내게 만들지 마.”

하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는 관여를 안 하고 싶었지만, 그 방송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나까지 덩달아 노출이 되게끔 만든 부분은 앞으로 조심을 하게 만들어야 할 거 같았다.

―무슨 소리야? 스캔들 정리부터 채서린 이미지 세탁은 지금부터 시작인데.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이쪽 영상 투자 일을 너무 쉽게 보는 거 같다? 만만한 바닥 아냐, 이쪽 바닥. 그리고 내가 말했지? 오빠는 채서린하고 계산이 다 끝났을지 모르겠지만, 나랑 채서린이 해야 할 계산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너 혹시 힐링광장 시청자 게시판 상황 알고 있어?”

―딱 내가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 나오고 있는 거야.

“뭐?”

―스캔들 내용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채서린이 가지고 있는 네임드가 그만큼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 반응이 그런 거라고. 사람들이 채서린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이 정도 반응이 올라오겠어?

“…….”

―딱 오늘, 내일 이틀이야.

“뭐가?”

―채서린과 해당 스캔들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 채서린이 연예계 짬밥이 있는데 그거 못 버틸까. 금방 원래 이미지 회복할 거고, 나한테 진 빚도 갚을 거야.

“야, 이놈아. 말로는 고래를 못 잡냐? 내가 보기엔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모르면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내가 뭘 할 게 있는 거처럼 말한다?”

―당연히 있지. 근데 어려운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오빠 내일 회사 마치면 우리 회사 앞으로 나 좀 데리러 와라.

“내일?”

―그 기사 사진에 실린 차 타고.

하늘이가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내일 우리 회사 앞에서 오빠가 나 데리러 오는 장면을 누가 숨어서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한 컷 찍을 거야. 그리고 내일 찍힐 사진이랑 우리 할아버지 생신날 오빠랑 같이 찍힌 사진이 늦어도 다음 날 아침 기사로 함께 나갈 거야.

“이게 너랑 나, 우리 얼굴까지 팔아 가며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

―그렇게까지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드라마야. 누구는 50분 넘는 방송에 나가서 자기 얼굴 다 드러내 놓고 혼신의 연기를 펼쳤는데, 오빠가 그러면 안 되지. 그때 나한테 뭐라고 했지? 우리 쪽 투자 일을 앉아서 돈이나 센다고 했었나?

“…….”

―정말 그렇게만 해도 되는 게 투자라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겠어? 지금부터 내가 보여 줄게. 내가 인정받고 있는 이 바닥 영상 투자 쪽이 어떤 바닥이고, 내가 왜 인정을 받고 있는 건지.

“안 봐도 대충 알 거 같으니까, 내일 사진 찍히는 건 하지 말자.”

―아니지. 재경 그룹 차남 손정훈, 미래금융 장녀 장하늘. 이 정도 타이틀은 붙어야 오늘 방송에 나와서 채서린이 한 말에 신빙성이 실리지.

“드라마 투자만 해 주라니까, 왜 쓸데없이 일을 크게 벌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참 이쪽으론 감이 없네. 채서린이야, 채서린.

“그게 뭐?”

―샤넬, 구찌, 디올 아니면 협찬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채서린이라고.

“…….”

―지금 잠깐 삐그덕거리는 거지, 채서린이 스캔들로 얼룩진 이미지 세탁 끝내고 폼만 되찾으면 돈을 트럭으로 갖다줘도 못 입히는 채서린이한테 시니어즈를 입힐 수도 있는 거라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놈 봐라?

정말 이놈 봐라?

이건 너무 의외인데?

―내가 드라마 투자 건부터 이미지 세탁까지 책임지고 해 주겠다고 했어. 대신 악녀검사 출연 내내 시니어즈 정장을 입어 주기로 했고. 시청자들 상대로 피피엘이 속 보이는 피피엘이 아니게끔 느끼게 만드는 게 관건이야. 그러니까 오빠는 내일 내가 시키는 대로 스캔들 기사에 나온 그 차 타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나 데리러 와 주기만 하면 돼.

“너 쫌 친다?”

―재경모직에 담긴 내 지분이 얼만데. 대주주라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배당만 기대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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