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차라리 일 그만할랍니다!
재경모직 개발부 VMD팀 사무실.
6명의 VMD들이 각자의 노트북과 패드를 회의 책상 위로 올려놓고 화상 미팅을 진행 중에 있었다.
현재 현장을 나가서 사무실에 없는 다른 4명의 VMD들과 실시간 스케줄 확인을 하기 위함이었다.
신기한 팀장까지 포함해 총 10명의 VMD.
이들은 시니어즈 매장 이미지 변경과 새로 론칭될 브랜드 <퍼스펙티브>의 콘셉트 최종 단계, 거기에 파리 지사 건물 1층에 넣게 될 시니어즈 이미지 숍 건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현재 해운대 신세계점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아마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잡혀 있게 될 거 같습니다.
“원래라면 일요일에 오픈하기로 되어 있던 거죠?”
―네, 저희 쪽에서 백화점 자체 점검일을 놓치고 스케줄을 잡은 게 큰 타격입니다.
“어쩔 수 있나. 그 부분은 우리 쪽 실수니까 로스 처리를 하는 걸로 합시다. 광명점은요?”
신기한 팀장의 노트북 위로 이번엔 다른 화면이 확대되며, 광명점 시니어즈 매장 리뉴얼을 맡고 있는 VMD의 얼굴이 올라왔다.
―여긴 일정대로 내일 안에 마무리 짓고 본사 복귀 예정입니다.
“매장 이미지 한번 띄워 보실래요?”
화면 속에선 마무리 단계에 있는 광명점의 공사 현장이 뜨고 있었다.
“벽판 붙일 때 꼭 옆에 붙어서 확인해요. 이번에 벽판 주문을 단체로 하면서 치수를 안 쟀잖아요. 다 통으로 들어왔어요. 그때처럼 붙였던 거 다 새로 떼는 일 없도록 미리미리 확인하시라고.”
―네, 그럼요. 그 부분은 여기 현장 소장님하고도 아까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 다 나눴던 부분입니다.
“오케이. 그럼 현장에 나가 계신 분들은 다들 조금만 더 힘내시고, 바쁘실 텐데 화면은 이제 끕시다.”
현장에 나가 있는 VMD들과의 화상 미팅을 끝내고, 신 팀장은 본격적으로 다음 주 일정이 잡혀 있는 사무실 안 VMD들과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
신 팀장의 노트북 옆으로는 샷 추가 여섯 개가 들어간 플라스틱 커피 컵이 올려져 있었고, 다른 VMD들의 얼굴에도 다크서클이 그늘처럼 코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작은 불씨 하나에도 불이 크게 붙을 정도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과 에너지는 건조하게 메말라 있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표현조차 하기 힘들 만큼 지난 두 달간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송지현 씨, 다음 주 캐스팅 어떻게 되지?”
“저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울산 삼성동점 캐스팅됐잖아요.”
“그렇네. 아, 이거 큰일 났네.”
신기한 팀장은 난감했다.
예정에도 없었던 파리 지사 건물 인테리어가 들어오면서 잡혀 있던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칠 정도로 바빠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신기한 팀장은 그 일정을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파리의 이미지 숍 프로젝트는 자신뿐 아니라 재경모직의 모든 VMD 입장에선 참여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는, 개인적인 경력이 될 수 있는 부분.
특히 파리 쪽 매장은 신기한 팀장이 직접 여러 차례 공사를 해 봤기 때문에 시즌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공사 확정이 나서 예산을 받고, 현지 머테리얼 업체들과 접촉, 이미지를 만들어 인원을 투입시키는 모든 기간을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달은 잡아야 한다.
그리고 공사 기간 역시 공간이 넓기 때문에 짧아도 2, 3주는 잡아야 하고.
그렇게 공사를 끝내 놓고, 숍에 상품들을 깔아 놓아야 본격적인 성수기인 시즌에 맞춰 이미지 숍을 오픈할 수 있는 것.
처음 신 팀장이 해당 공사 제안을 받아 왔을 때, VMD팀 전원은 환호를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지금은 당장 지금 쳐 내야 할 공사들에 그 기대심이 파묻히고 있는 중.
“전광민 씨는요?”
“저도 다음 주 화요일에 제주도 내려가잖아요.”
“돌아 버리겠네, 진짜.”
그렇게 혼잣말인 듯, 거친 소리를 만들어 내며 말끝을 흐린 신 팀장은 정말 자신이 생각을 해도 너무 미안한 나머지 이름을 부를 수가 없는 한 사람, 임기성 주임을 쳐다보며 무거운 입을 떼었다.
“저기, 임 주임.”
신 팀장의 호명을 받은 임기성 주임.
그는 대답 대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기만 할 뿐이었다.
자리에 모인 모두는 임 주임의 이런 반응에 공감을 하면서도, 신 팀장의 롤러코스터 성격 탓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성 씨?”
한숨과 함께 짧은 대답을 내어놓은 임 주임.
“…네.”
“임 주임은 다음 주 캐스팅 어떻게 되나요?”
“다 아시잖아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임기성 주임은 시니어즈가 동명물산 소속일 때부터 시니어즈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던 사람이다.
다 같이 재경모직으로 넘어와 시니어즈 기존 팀이 재경모직 개발부에 큰 이질감 없이 섞여 들 수 있도록 누구보다 애를 쓰고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신기한 팀장의 영입 초반엔, 직원들과 소통이 쉽지 않았던 팀장의 비위까지 맞춰 가며 그 불통의 팀장 업무 스타일을 기존 시니어즈 팀원들에게 납득을 시키고자 가장 분주하게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던 지난 두 달은 임기성 주임은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함께 재경모직으로 넘어온 기존 시니어즈 팀원들을 위한 노력이었고, 앞으로 대기업 소속이 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열정 투자라고 생각했던 그 행동들이 결국은 자신을 업무 호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음 주 금요일부터 캐스팅 들어가잖아요.”
“그래서요, 팀장님?”
점점 말에 가시가 박히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한 팀장 입장에서도 모든 VMD의 캐스팅이 꽉 찬 상태에서 부탁할 수 있는 인물은 임기성 주임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재곡점 캐스팅 임 주임이 맡아서 진행해 주세요.”
임 주임은 꼭지가 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똑같은 말을 해도 저렇게 자신이 맡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VMD에게 매장 공사가 건 바이 건으로 한 건 캐스팅을 맡을 때마다 수당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 주 금요일부터 들어갈 캐스팅이 있다는 말은 주말까지 반납을 해야 하는 캐스팅을 주임이라는 직책상 책임감으로 맡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책임을 이미 다하고 있는데, 재곡점 캐스팅까지 맡으라고?
한 주에 캐스팅을 두 개나 쳐 내라고?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네.”
“저 못 합니다.”
“누가 해도 해야 하는 겁니다.”
“그걸 왜 제가 해야 합니까?”
임기성 주임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먼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신기한 팀장이었고.
“그걸 왜 임 주임이 하면 안 됩니까?”
“뭐,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그걸 왜 임 주임이 하면 안 되는 거냐고요. 제가 다른 사람들 놀고 있는데, 임 주임한테 캐스팅을 넣는 게 아니잖아요.”
임 주임은 잠시 어이없는 웃음을 혼자 흘리며 사무실 천장을 쳐다봤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천장에 달린 조명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마치 실성을 한 듯, 킥킥거리기까지 했다.
“저 못 하겠습니다.”
“못 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팀 일인데, 누가 해도 해야지.”
“아뇨, 못 하겠습니다.”
“…….”
“저 이렇게는 일 못 하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요, 이렇게까지는 일을 안 할 겁니다.”
삭막해진 분위기 속에서 들리는 건 팀원들의 눈알 굴리는 소리밖에 없었다.
“지금 이게 뭡니까? 제가요, 웬만하면 이런 컴플레인을 거는 사람이 아닌데요, 이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자리에 있는 기존 시니어즈팀 VMD들은 신 팀장에게 알게 모르게 작은 불만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시니어즈 매장 콘셉트요? 그거 작년에 리뉴얼한 거였습니다. 알고 계시잖아요. 그거 꼭 올해 새로 안 뽑아도 되는 거였다고요. 그런데 팀장님 고집으로 바꾸셨죠.”
“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역할이라는 게!”
쾅!
팀원들 모두는 임 주임이 책상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금방이라도 사무실을 뛰쳐나갈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임기성 주임과 몇 년이나 같이 호흡을 맞춰 왔던 기존 시니어즈 팀원들이 가장 크게 놀라고 있었다.
지금껏 임 주임이 저런 과격한 모습을, 그것도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상사를 상대로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팀원들 고생을 시키는 겁니까?”
“…….”
“저 더는 팀장님 밑에서 일 못 하겠습니다. 그냥 차라리 일 그만할랍니다!”
* * *
점심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발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VMD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개발부장 입장에서도 이런 내용을 가지고 내게 전화를 걸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다.
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팀 분위기 하나 제대로 관리를 못 하는 게 자랑도 아니고,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전화를 건 거 아니었겠나.
―임기성 주임이라고 VMD팀 주임 하나가 지금 인사부로 내려갈 겁니다.
“지금요?”
―네, 지금까지 제가 억지로 잡고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네요.
“여긴 왜 내려오는 겁니까?”
―사직서 제출하겠다고요.
“사직서요?”
―신 팀장하고 문제가 조금 있었어요.
“무슨….”
―VMD팀이 원래 좀 그런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현장 일 관리 감독을 하는 사람들이 되다 보니, 다들 한 성깔씩 하잖아요. 미팅 중에 신 팀장하고 사소한 다툼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걸 가지고 절 찾아와서 업무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컴플레인을 하고 있는 도중에….
“도중에요?”
―신 팀장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대고 지금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무시하고 부장을 찾아와서 이러고 있는 거냐며 이럴 시간에 일이나 하라면서 업무를 강제로 떠넘겨 버렸어요.
“…….”
―그 분위기가 그럴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는데, 신 팀장이 눈치가 좀 많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어르고 달랬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우와, 결국 신 팀장이 사고를 치네요.”
―임 주임을 따라가려다가 도저히 걸음이 빨라서 못 잡고 이렇게 과장님한테 전화를 드리는 거예요. 이 친구가 지금 감정이 많이 격해져 있는 상태예요. 염두에 두고 만나시라고.
바로 그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임기성 주임이 인사부 안으로 들어왔다.
“왔네요, 지금. 일단 전화 끊겠습니다.”
인사부 직원들이 모든 시선이 임 주임에게 집중되었다.
김 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누가 얼른 나가서 맞이를 하라는 시선을 인사부 직원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 눈빛에 HRM 쪽에서 정현수 과장과 홍재희 책임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난 얼른 먼저 파티션 밖으로 나가며 HRM 쪽으로 내가 상담을 해 보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어, 임 주임. 어서 와요. 이쪽으로 와요.”
난 임 주임에게 자신이 왜 인사부를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했다.
씩씩거리는 그 모습에 아무런 동요도 해 주지 않고, 그저 침착하게 안쪽 상담실 문을 가리켰다.
“조용한 데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아무래도 낫겠죠?”
“과장님.”
“알아요, 알아. 아는데, 여기 사람들 많잖아요. 다른 사람들 업무 봐야 하니까, 조용히 안에 들어가서 나랑만 이야기합시다.”
일단은 임 주임의 흥분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을 했다.
그리고 임 주임을 데리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마침 또 내 눈에 바로 보이는 게 김원호 부장이었고.
“…….”
다른 사람을 찾을 경황이 없었다.
그만큼 임 주임의 얼굴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붉어져 있었다.
“왜? 왜? 왜요? 뭐 찾는데요?”
근데 김 부장이 고맙게도 먼저 뭘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냐고 물어봐 줬고.
어쩔 수 있나.
“부장님.”
“네.”
“안으로 생수 두 병만 좀 가져다주세요.”
“…….”
“생수 두 병.”
“저 부장인데요?”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러지 말고 좀 가져다주세요. 지금 우리 임 주임 목 탄다고 하잖아요.”
“하… 쩝. 네, 들어가 있으세요. 제가 직접 생수 두 통 안으로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