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봐요. 할 수 있잖아 (108/303)

거봐요. 할 수 있잖아

역시 일이라는 건 잘하는 놈이 잘한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이 영업은 센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데, 차준영 이놈은 그 센스를 정말 타고난 놈이다.

회사 앞 백반집에서 함께 소주 반병에 점심을 먹으며 가벼운 힌트만 던져 준 게 전부였는데, 며칠 뒤 내 입에 침이 고일 만큼 기발한 영업 전략을 들고 날 찾아왔다.

인정하건대, 이번에 차 대리가 새로 만들어 온 영업 전략은 경험보다는 딱 그 나이대 젊은 친구들의 감각이 바탕이 되는 영업 전략이었다.

그렇기에 난 이게 기발하다는 평가 정도나 가능하지, 절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략은 아니었다.

“그동안 다른 방향에서 디벨롭했던 전략은 모두 버렸습니다.”

그간 내게 영업 전략을 보여 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자신만의 확신이 들어 있는 얼굴 표정이었다.

“그렇네요. 아예 다른 방향이네. 그걸 다 버리기엔 많이 아까웠을 텐데….”

“말이 버렸다는 거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킵을 해 놓는 거죠. 나중에 다른 브랜드 띄울 때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알을 깨고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벌써부터 날아 보겠다고 날갯짓을 혼자 하고 있다.

직원들이 성장을 하는 모습.

그 성장이 결국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모습.

그걸 구경하는 맛에 기업 하는 거지.

전략 기획서를 모두 확인한 후, 난 차준영 앞으로 말아 쥔 주먹을 내밀었다.

그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볍게 붙이며 차준영이 확인하듯 물었다.

“괜찮은 거 같습니까?”

“거봐요. 할 수 있잖아. 이렇게 멋진 걸 얼마든지 툭툭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그동안 왜 남들도 다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뻔한 것들만 나한테 가지고 왔던 거예요?”

“진짜요?”

“좋은데요?”

“또 그러신다. 이번엔 또 뭔가요?”

“뭐가?”

“과장님은 항상 좋다는 말씀부터 해 주신 다음 까시잖아요.”

“까기는 내가 언제요? 아니, 그냥 다 좋다고.”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이러다가 갑자기 표정 싸악 바꾸시면서, 그런데 차 대리… 하고 지적 시작하셔야죠.”

내가 정말 저랬나?

날 흉내 내던데, 그 모습이 우스워 피식하고 웃어 줬다.

그리고 말했다.

“이거, 여기에서 다른 건 건드리지 말고 동명물산 쪽 골프장 연계시키는 부분만 디테일 잘 잡아서 디벨롭해 보세요. 이 부분이 기본이긴 해도, 그건 영업팀에서나 기본이지 다른 부서 사람들은 깊이 있는 설명이 필요할 거예요. 결국 프로젝트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되려면, 프로젝트를 같이 뛰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도록 설득을 하고 동의를 얻어 낼 줄 알아야 해요. 이거 기획 발표 들어갑시다.”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진짜 더는 고칠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 같은 거 없으십니까?”

“골프장 연계시키는 거 그 부분만 디테일이 확실하게 잡히면 될 거 같으니까, 오 과장 통해서 컨펌받고 부장님한테 올리세요. 부장님한테는 내가 컨펌 주라고 일러 놓을 테니까.”

* * *

이 미팅은 비록 전사 미팅이 맞지만, 부분 미팅의 성격이 짙었다.

퍼스펙티브 론칭 전 남 사장을 비롯, 임원들을 불러 놓고 할 최종 발표는 총괄을 맡고 있는 윤현정 팀장이 해야 하는 것이고, 그 발표 준비를 완성시키기 위해 부서별 최종 전략을 모으는 게 이번 미팅의 목적이었다.

작은 소회의실이었다.

그곳으로 전략기획팀장과 개발, 영업, ATM, 재무리스크팀의 부서장들이 모두 모였고, 나와 강인성 과장은 차 대리와 오 과장을 응원하기 위해 깍두기 형식으로 참석을 했다.

회의실 공간이 좁았던 만큼, 굳이 발표자가 일어설 필요도 없는 자리였다.

회의 전용 티브이가 스탠드에 붙어 세워져 있었고, 그 스탠드를 회의실 창가 쪽 중앙 자리로 옮기는 게 발표자가 할 미팅 준비의 전부였다.

자리에 앉은 상태로 노트북을 이용해 티브이 화면에 발표 내용을 띄운 차 대리는 형식상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장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발표를 시작했다.

“초반 가성비 영업에 모든 초점을 맞춰 봤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맡아 보는 밀도 높은 공기였다.

론칭 일자가 정해지고, 제품 디자인이 하나둘씩 실물로 나오기 시작하며 창고에 그 제품들이 쌓일 때부터 퍼스펙티브 론칭에 대한 관계자들의 진지함은 자발적으로 올라가 있었다.

거기에 첫 론칭 매장의 인테리어 시안이 나오고, 그걸 신기한 팀장이 디테일을 완성시킨 이후부터 관계자들은 근성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확정된 매장이 아직 12곳밖에 안 되는 만큼, 초반 브랜드 노출의 공격성이 차후 다수 매장 확보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고, 그 부분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는 점 미리 말씀드리고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직책과 상관없이 퍼스펙티브의 총괄을 맡고 있기에 윤 팀장이 가장 상석에 앉아 발표를 듣고 있었는데, 그녀 역시 지금까지 내게 보여 줬던 자신감과 확신이 아닌 설레고 두려운 심정을 다 들켜 가며 발표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영업 전략은 SNS와 골프 관련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는 영업 전략입니다.”

차 대리 역시 핵심 부서 부서장들을 앞에 앉혀 놓고 하는 발표치고는 떨지도 않고, 긴장도 하지 않으며 발표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이미 ATM 쪽에서 먼저 기획을 올린 내용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영업적 디테일만 살짝 다시 붙여 본 겁니다.”

ATM 쪽에서도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골프 관련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골프라는 키워드는 이미 인스타를 비롯해 다양한 SNS에서 해시태그 노출 빈도 상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입니다. 영향력 있는 골프 관련 SNS 인플루언서들의 리스트와 그들을 통한 광고비 일절을 뽑아 봤습니다. SNS의 경우 브랜드 노출, 제품 홍보로 사진 한 장당, 한 달 노출 기준으로 3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측정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는 라운딩 협찬을 추가 옵션으로 붙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운딩 협찬이요?”

“네, 동명물산이 운영 중인 골프장을 해당 인플루언서들에게 협찬을 해 줄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질문을 던진 홍보팀장과 눈을 맞춰 가며 침착하게 차 대리가 설명을 이어 갔다.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한 노출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건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입니다. 그만큼 노출의 시간이 길어지니까요. 조회 수나 좋아요가 높게 나오는 영상의 경우, 아무래도 라운딩을 나가서 좋은 샷이 나왔을 경우, 혹은 샷 지도 장면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여성 인플루언서들의 경우, 하반신 노출이 상대적으로 높게 되기 때문에 골프화 노출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타 브랜드 측의 통계가 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같은 비용이라면 사진보다는 동영상 쪽으로 유도를 하는 게 우리한테는 유리한데, 당연히 비용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동명물산 쪽과 협업으로 골프장 협찬을 함께해 주게 되면 그만큼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번에도 ATM 팀장이 질문을 했다.

“골프장도 협찬을 넣기 위해선 인플루언서들한테 어느 정도 비용을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테이블 위로 한쪽 팔꿈치를 올려놓고, 그 손으로 리모트 컨트롤을 움직여 화면을 바꾼 뒤 차 대리가 설명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골프장 협찬은 유명 인플루언서들에게도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이상 제공이 거의 안 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네. 다른 골프 장비하고는 달리, 이 골프장이라는 상품은 결국 하루에 판매되는 상품의 수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품의 수요?”

“네. 인코스, 아웃코스 다 합쳐서 하루에 골프장이 돌릴 수 있는 라운딩 카트의 수는 정해져 있죠.”

“아, 그런 뜻으로?”

“네. 그런데 동명물산이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골프장의 경우는 성수기 기준 예약률이 평균 120퍼센트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다른 대부분의 유명 골프장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고요. 굳이 홍보를 안 해도 알아서 오버부킹이 되는데, 거기에 골프장 노출을 하겠다고 인플루언서들에게 홍보까지 맡길 골프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몇 없습니다. 현재 가파르게 늘어나는 골프 수요를 보면, 앞으로도 골프장에서 예약률을 높이고자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홍보를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동명물산 쪽에서 그런 협찬을 해 주겠다고 할까요?”

차 대리가 날 쳐다봤다.

난 얼른 손을 들어서 홍보팀장에게 말했다.

“그 부분은 제가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동명물산 쪽 협찬을 받아 올 테니까,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다시 차 대리의 발표가 이어졌다.

“그다음 재경항공의 동남아 편 기내 매거진에 퍼스펙티브의 이미지를 공격적으로 노출시키는 부분, 그리고 스너프를 통한 상위 노출 부분은 이미 항공과 스너프 쪽으로 비용을 의뢰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 부분은 저희 쪽에서 비용을 최대한 그룹 내 협업 가격으로 잡아 달라고 요청을 넣어 둔 상태라, 그렇게 진행이 된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계속 질문을 던지기만 했던 홍보팀장이 이번엔 차 대리를 돕고 나섰다.

굳이 홍보팀장이 거들지 않았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모두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영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준영이의 색깔, 송곳니가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골프 웨어 대여점들 쪽으로 한 시즌 무료 제품 공급을 해 볼 계획입니다.”

윤현정 팀장의 눈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홍보팀장과 마케팅팀장의 입을 쩍! 하고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2, 30대 여성들의 골프 유입이 많이 늘어나면서 골프 웨어 대여점 사업이 크게 성황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을 못 했던 허를 찌르는 공격.

그 공격 앞에 자리에 모인 모두는 무방비 상태로 차 대리가 드러낸 송곳니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

“그 대부분의 2, 30대 여성들은 골프를 스포츠가 아닌 자신의 가치와 인맥, 행복 지수 등을 타인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목적, 수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리에 모인 대다수가 그 말에 공감을 했다.

“골프 웨어 대여점의 주 고객층이 바로 그 2, 30대 여성들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골프 웨어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매번 새로운 라운딩을 나갈 때마다 새로운 복장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그게 그들이 라운딩을 나가는 목적이니까요.”

영업부장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차 대리를 쳐다보는 오 과장의 눈에도 기특함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2, 30대 여성들이 바로 개인 SNS를 통해 골프에 관한 영상을 가장 많이 업데이트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퍼스펙티브를 론칭하고 한 시즌 정도는 모든 골프 웨어 대여점 쪽으로 우리 신상품을 디자인별, 사이즈별, 무료로 제공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비용적으로 가능한 겁니까?”

차 대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놓고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대답했다.

“한 시즌 정도만 무료 제공으로 투자를 하면, 브랜드 노출의 활성화뿐 아니라, 인터넷 구매로의 확장까지 빠르게 이어지도록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 구매로요? 어떻게?”

“대여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항상 대여만 하겠습니까? 플렉스가 당장의 자기만족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요. 분명 제품력만 확인이 되면 실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을 겁니다.”

“……?”

“이번에 파리에 준비 중인 시니어즈 이미지 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 많은 대여점, 큰돈 안 들이고 오로지 제품을 넣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의 이미지 숍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해당 브랜드에 맞는 자기 사이즈를 대여를 하며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확한 자기 사이즈를 안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 입장에선 안전한 인터넷 구매로 이어지는 거죠.”

여기에서 차 대리가 쐐기를 박았다.

“결국 의류 사업이라는 건 재고가 남기 마련입니다. 영업부 입장에서도 우리가 원단가로 잡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충분히 영업비 안에서 소화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 영업부 쪽으로 추가 예산을 잡아 주시면 더 공격적인 영업이 가능해질 거고요. 더불어 대여 사업을 하는 개인 사업자 입장에서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우린 그들에게 무료로 판매할 상품을 제공해 주는 대신 잠재 고객, 브랜드 노출, 거기에 오프라인, 온라인 할 것 없이 그 대여점 사업이 이뤄지는 공간 가장 좋은 곳에 퍼스펙티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윤현정 팀장이 영업부장을 쳐다보며 말없이 한참 동안 웃기만 했다.

그리고 웃음을 삼킨 뒤 말했다.

“대여점 쪽으로 풀 물량은 퍼스펙티브 론칭 예산에서 따로 빼서 잡아 드릴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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