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산기를 두드려 볼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112/303)

계산기를 두드려 볼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하늘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생수 한 병을 챙기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조명등이 다 꺼져 있어야 정상인 복도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고개만 살짝 돌려 봤는데, 가장 안쪽 할아버지의 서재 문틈 사이로 불빛이 비집고 나오는 중이었다.

“응?”

벌써 11시 반이다.

진작에 주무시고 계셔야 할 할아버지가 저 안에 계신 건 아닐 테고, 설마 불을 안 끄고 나오셨나?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하늘이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기 전 할아버지께 잘 주무시란 인사까지 하고 올라갔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연세를 고려해야 했다.

최근들어 부쩍 깜빡깜빡하시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보통은 가볍게 문을 두드린 후 대답을 듣고 들어가는 방이다.

하지만 하늘이는 할아버지가 설마 이 시간에 서재에 계실까 싶어 불만 끄고 나올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서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원목 사무 책상 뒤로 돋보기 안경을 낀 채 두꺼운 서류 더미를 확인 중인 할아버지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할아버지?”

“안 잤어?”

장 회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만 살짝 들어 보인 후, 다시 보고 있던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자려고요. 놀래라. 깜짝 놀랐잖아요. 뭐 하고 계셨어요, 지금 이 시간에?”

“볼 게 좀 있어서. 그러는 너는 지금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했어? 너 또 설마 이 시간까지 스마트폰 가지고 논 거야?”

하늘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팩을 한다고, 목욕을 좀 오래 했어요.”

“자겠다고 올라간 지가 언젠데?”

“물 한 병 가지고 올라가려고요.”

그제야 장 회장은 보고 있던 기획안을 덮어 놓고 돋보기 안경을 벗었다.

얼른 그 기획안 표지를 확인한 하늘이는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손녀의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 회장은 기획안 위로 손바닥을 올려놓고, 그 손을 지렛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 일어선 장 회장은 한숨과 함께 그 기획안을 챙겼다.

“괜찮은 사업 아니에요?”

손녀의 입에서 무심결에 나온 그 말에, 장 회장은 침침해진 눈 주위를 가볍게 문지르며 되물었다.

“무슨 사업이 이 안에 들었는지 알고?”

“그걸 뭐 꼭 직접 봐야 아나? 척하면 착이지. 10시면 칼같이 주무시는 할아버지가 이 늦은 시간까지 보고 계셨단 말은 최소 한 번은 확인하셨단 말일 거고, 재검토는 투자가 아닌 재경모직의 입장에서 사업을 보고 계시는 중이란 소린데… 당연히 괜찮은 사업이니까 그런 거겠죠.”

“눈치만 살아서는.”

“그 정도는 눈치가 없는 사람도 다 알겠네요. 나 아까 그 뭐야? 패턴 원단? 그 이야기 들으실 때 할아버지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결국 장 회장은 서재를 나서지 않고 사무 책상을 크게 돌아 회의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상석 자리가 아닌 아무 자리 의자 하나를 빼어 힘겹게 앉았다.

“아이고, 아이고고고….”

의자 목 받침대를 손으로 짚고, 그걸 버팀목 삼아 간신히 혼자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곁으로 하늘이가 다가갔다.

그리고 옆자리 의자를 빼내 함께 앉으며 싱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의 무의식이 수차례나 할아버지가 내려놓은 기획안 쪽으로 시선을 옮겨 가게 만들고 있었다.

“아가.”

어릴 땐 종종 그렇게 부르셨는데, 언제부턴가 나이가 찬 이후부터는 언제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아가”라고 불러 주셨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하늘이는 괜히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검버섯이 다 퍼져 있는 할아버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아 드렸다.

“왜요?”

“정훈이가 앞으로 널 많이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

왜 그랬을까.

저도 모르게 철렁하고 떨어지는 가슴에 하늘이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저 기획안을 이 할애비가 가만히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

“근데도 이 결혼시키고 싶으세요?”

하늘이는 대답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심을 하며 농담을 만들어 냈다.

“그래 주면 나야 좋지? 서로 터치 없이 각자 집안 사업 집중하고. 난 딱 좋은데?”

약하게 인상을 쓰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하늘이는 얼른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자신이 꺼냈던 농담을 부정했다.

“말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하늘이는 자신만만했다.

“지가 뭔데 날 외롭게 만들어?”

“…….”

“외롭게 만든다고 해서 내가 외로워질 사람이냐고. 내 편이 얼마나 많은데.”

사무 책상 위로 올려진 기획안을 눈짓하며 하늘이가 말을 잇자, 이내 장 회장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쯔쯔쯔.” 하는 바람 새는 소릴 만들어 냈다.

“돌아가신 큰 사모님, 그러니까 정엽이, 정훈이 할머니 되시는 분.”

“네.”

“참 외롭게 살다 가신 분이다. 평생을 큰 회장님 내조하며, 큰 회장님 기준대로만 사시다 간 분이야.”

“그런데요?”

애써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손녀와, 그런 손녀의 짝으로 점찍어 놓은 정훈이의 기획안을 동시에 보고 있자니 문득 인간관계만큼 잔인하고, 일방적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제 할아버지 못지않게 상당히 지독한 구석이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역시 장기만 고약하게 두는 녀석이 아니었어.”

“지독한 구석? 기획안 안에 그런 게 들어 있어요?”

“그런 게 보이네.”

하지만 하늘이는 웃을 뿐이었다.

가볍게 웃어 보이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

자신의 두 손을 잡고 있는 하늘이의 손을, 장 회장은 잡힌 손 엄지를 꼼지락거려 함께 애정을 담아 주었다.

“귀찮은 거보단 외로운 게 더 나아요.”

“…….”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외로운 게 더 편할 거 같아요. 그렇다고 내가 외롭겠단 말은 아니고. 내가 왜 사람 하나 때문에 외로워져? 그럴 수가 없잖아. 나 장하늘인데? 할아버지 손녀, 장하늘.”

어느덧 장 회장의 얼굴에도 손녀가 부리는 애교로 인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철저하게 미래금융의 장남으로 키워진 하늘이었다.

아버지의 딸, 할아버지의 손녀가 아닌 미래금융의 장남.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이었을까?

재경 그룹의 이인자셨던 할아버지.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가 재경 그룹이라는 배경 없이는 아무런 무게감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어린 하늘이는 눈치로 알게 되었고, 그건 곧 하늘이에게 당황이 아닌 상처로 작용을 했다.

난생처음 들어 보는 기업의 오너들.

아버지보다 젊어 보이는 그들을 상대로 할아버지는 기꺼이 자세를 낮추셨고, 아무 거리낌 없이 코미디언이 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마도 그때부터였겠지.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봐야 했던 하늘이에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게….

투자 회사.

결국 혼자선 설 수 없고, 투자를 허락해 주는 든든한 기업이 있어야만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걸 하늘이는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도 눈치와 집안 분위기,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에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하늘이의 인생은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은 공주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환경이 아닌 자신이 가진 욕심이 공주의 삶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자신의 배경을 대단하게 봐 주는 학교 친구들보다, 자신의 배경에 싱긋이 입꼬리를 말아 올릴 줄 아는 또래를 만나는 게 하늘이는 훨씬 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업가 자녀들과의 만남 자체보다는, 비록 그 시작은 기운 채 시작할지언정, 인간 대 인간으로 붙어 그들을 꺾어 나가는 재미에 더 희열을 느꼈던 하늘이었다.

영어면 영어, 발레면 발레, 승마, 골프, 수영···.

하늘이는 가면으로 진짜 자기 얼굴을 숨길 줄 아는 아이였고, 착하고 정이 많은 가면 뒤에 숨어서 그들을 오로지 실력만으로 따돌리는 쾌감을 즐길 줄 아는 아이였다.

그러다 미래금융이 어느 정도 반열에 올라선 뒤부터 하늘이에겐 더 재미가 있는 스테이지가 펼쳐졌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집안의 자녀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일류 기업의 자녀들이 하늘이의 인맥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인맥들은 어른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운 대로 자기들만의 모임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성격의 어느 모임에서든 하늘이는 배경이 아닌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빛을 낼 줄 아는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집안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혼자서 빛을 만들어 낼 줄 아는 하늘이는 어느 모임에 초대받아 들어가든 인기가 많았다.

특히 비슷한 또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어른들 몰래, 성인이 된 이후엔 어른들의 허락하에 교제해 본 남자도 몇 명 있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엔 어른들의 소개로 교제를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교제를 시작해도 결국은 세 달을 넘길 만한 상대를 만나 보지를 못했다.

뻔했고, 시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누구보다 뻔하고 시시할 거라 생각했던 정훈이가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어린 시절을 집안의 관계로 인해 함께 보냈고, 대학까지 같이 다녀 봤기에 누구보다 그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던 하늘이였다.

그런데 그런 하늘이가 계속해서 정훈이 때문에 당황을 하고 있다.

당황.

기분 좋은 당황이었다.

그리고 장태산 회장은 자신의 자랑인 하늘이가 유독 정훈이 앞에선 자신의 기를 제대로 다 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도대체 그 안에 뭐가 들어 있길래 그래요?”

장 회장은 손녀딸이 호기심을 느끼는 그 기획안을 회의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할아버지의 눈빛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이는 그 기획안을 펼쳤고, 6장짜리 해당 서류를 마치 중요한 계약서 약관을 확인하듯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패턴 원단이라는 게 결국은 원단 자체에 기본 디자인이 들어가 있는 걸 말하는 거 아니에요?”

영상 투자 관련 기획 일을 배우고 있지만, 모직 사업 역시 하늘이에겐 반드시 기본 이상의 공부는 해 놓아야 하는 분야였다.

재경을 나오면서도 할아버지가 꼭 쥐고 있었던 모직의 지분.

할아버지는 곧 미래금융이셨고, 그런 할아버지의 지분은 곧 미래금융의 지분이기도 했으니까.

어느 정도의 공부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패턴 원단이라는 건 직관적인 이름에 비해 하늘이에겐 꽤나 복잡한 종목이었다.

도무지 어느 대목에서 할아버지가 정훈이에게 지독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 건지, 하늘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기본 디자인이 어떤 거냐에 따라 다른 거지.”

“그게 또 디자인에 따라 패턴 원단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예요? 정확하게 어떤 걸 보고 패턴 원단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이는 그 차이점을 언뜻 구별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잠옷에 들어간 디자인은 일반 원단에 그림 패턴을 프린팅해 놓은 거야. 이런 건 일반 원단이야.”

“아, 그럼 혹시 원단 자체가 뜨개질을 한 것처럼 되어 있거나, 다른 특수 마감 처리가 되어 있는 걸 패턴 원단이라고 하는 거예요.”

“얼추 그렇다고 이해를 하면 되지.”

“그런데 한국 시장이 그런 패턴 원단 쪽에서 강한 편인가요?”

장 회장은 이 늦은 시간에 자신과 함께 눈에 빛을 내어 주는 손녀딸이 기특했다.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장 회장이 말했다.

“패턴 시장만큼은 아직까지도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이라고 봐야 해.”

“한국이요?”

하늘이는 정말 몰랐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베트남 패턴 시장이 부지런히 쫓아오고 있긴 한데, 아직은 비교가 안 되지.”

“한국 섬유 시장이 아직 그런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는데요?”

“아무래도 중국, 베트남 이쪽이 인건비가 싸니까 예전에 많은 한국 원단 업체가 그쪽으로 공장들을 많이 이전시켰어.”

“네,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패턴 원단에 관해선 그쪽으로 기술력을 안 빼앗기고 가지고 있어.”

“어떻게요?”

“패턴 원단 공장은 다른 원단 공장들과는 다르게 공장 규모가 클 필요가 없거든. 그리고 패턴을 잡을 줄 아는 고급 인력이 반드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인력들을 데리고 넘어가지 못했던 거야.”

하지만 하늘이는 궁금했다.

그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봤자 고작 원단일 뿐 아닌가.

할아버지가 이 내용에 이렇게까지 생각이 깊어진 이유를 하늘이는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결국은 한국의 패턴 원단 기술력이 높으니까, 그런 패턴 원단 업체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 원단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유럽 쪽으로 위탁 판매를 해 주자… 그거 아니에요?”

“대부분의 패턴 원단 공장들은 현재 거의 노예 계약식으로 유럽 쪽 원단 총판 업체들 쪽으로 납품을 하고 있어.”

“노예 계약이요? 왜요?”

“베트남 놈들이 그런 계약을 앞세워서 계약을 많이 따냈거든. 그러다 보니 한국이 아무리 이쪽 분야에서 압도적이라고 해도 그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결국 베트남 쪽으로 패턴 원단 시장을 다 빼앗겨 버릴 테니까.”

절반 정도는 이해가 되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고 있는 하늘이었다.

“결국은 이 기획안 내용은 파리에서 원단 총판 사업을 하자는 내용인 거고요?”

“그렇다고 봐야겠다.”

“이 원단 사업이라는 게 직접 하는 게 아닌 이상 중간에서 수출 에이전시만 해서 돈이 되나요?”

“재경 전체 사업 규모로만 놓고 보면, 돈이 안 되는 사업이지.”

“그러니까요. 이건 계산기를 두드려 볼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원단 총판이라고 해 봤자, 결국은 중소기업, 혹은 그런 영세업자들 끼고 유통업을 하겠다는 건데, 재경모직이 그런 사업에까지 끼어들어 나눠 먹기를 하자고 하면 재경 그룹 전체 이미지에도 큰 도움은 안 될 거 같은데?”

정훈이가 만들어 낸 기획안을 다 읽은 하늘이는 그 안에서 별다른 매력은 느끼지 못한 채 덮었다.

그런 하늘이를 보며 장 회장이 말했다.

“만약 정훈이가 만들어 낸 이 기획으로 실제 한국 패턴 원단 시장을 하나로 묶을 수만 있음, 이 기획은 재경모직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될 거다.”

하늘이는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 원단을 무기로 현재 한국에선 KS 인터내셔널, 한일 어패럴 쪽이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들 측과 접촉이 가능해질 테니 말이야.”

장 회장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하늘이에겐 1, 2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이 흐른 뒤 하늘이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 그럼 이 기획은….”

“KS 인터내셔널, 한일 어패럴이 가지고 있는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국내 유통 판매 라이선스를 다 가져오자는 기획이다.”

잠이 확 달아나는 듯했다.

하늘이는 얼얼해진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가만히 쳐다만 봤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말씀은 정훈이 오빠가 그런 내용까지 다 계산을 하고 이 기획안을 만든 거란 말씀이세요? 해당 내용은 이 안에 전혀 안 들어 있는데?”

다시금 생각이 깊어진 얼굴로 장 회장이 혼잣말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정훈이 이놈이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했던 게 아니라, 반대로 잘난 걸 숨겨 왔던 모양이다.”

“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이 많은 영감 놀려 먹는 게 재미가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님….”

“아님?”

“진짜 그놈 말대로 주말마다 날 찾아왔던 게 뭔가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

“나랑 마주 보고 앉아서 장기 알 만지며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 듣고, 이런저런 내 살아온 이야기 듣는 게… 좋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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