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트 있겠습니까?
퍼스펙티브 영업팀은 브랜드 정식 론칭을 해 놓고도 여전히 매장 확보에 애를 먹고 있었다.
“에이, 본부장님. 매장 수수료 35퍼센트면 팝업 스토어 수수료랑 같은 비율 아닙니까.”
재경모직이라는 배경을 깔고 론칭을 시킨 브랜드임에도 백화점 쪽에서 매장 수수료를 턱없이 높게 측정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팝업 스토어는 기간 안에 올라오는 매출이라도 확실하죠. 그런데 퍼스펙티브 이건 아직 브랜드 노출도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이고, 가뜩이나 국산 브랜드 아닙니까.
“론칭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노출이 약한 건 당연한 거죠. 그 노출을 하겠다고 입점을 희망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저희 쪽에서 35퍼센트를 제안하는 거죠. 현재 골프 섹션 매출이 좋습니다. 그런데 퍼스펙티브는 오로지 골프 웨어잖아요. 매출 단가가 높은 골프용품은 전혀 포함이 안 되는 브랜드 아닙니까.
“하지만 이제 트렌드는….”
―한정된 공간 안에 서로 들어오겠다고 하는 브랜드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 부경백화점과 재경의 관계라는 게 있다 보니 우선적으로 퍼스펙티브 쪽으로 기회를 드리겠다는 거고요. 여기에서 저희가 제안하는 35퍼센트는 절대 무리한 퍼센티지가 아닙니다, 과장님.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부경백화점 쪽 전 지점에서 35퍼센트라는 똑같은 매장 수수료를 제시하고 있다.
35퍼센트.
재경모직 입장에선 타협의 여지가 없는 매장 수수료 퍼센티지다.
35퍼센트라는 수수료 퍼센티지는 아무런 배경이 없는 신생 브랜드들이나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이는 퍼센티지.
이걸 아무리 론칭을 끝내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야 하는 퍼스펙티브라도 재경모직 입장에선 절대 받을 수가 없는 거였다.
하지만 퍼스펙티브 영업팀 과장 오필교는 침착하게 통화를 끝냈다.
여유가 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본부장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설득은 본부장님이 아니라 제가 저희 쪽 브랜드 총괄을 상대로 시도해 봐야겠네요.”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시지는 마시고요, 다음에 언제 기회 되면 식사나 한번 같이하십시다.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부경백화점 잠실점의 브랜드 MD 본부장과 통화를 끝낸 오필교 과장의 얼굴에는 통화 결과와는 상반되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통화를 옆에서 다 듣고 있었던 차준영 대리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거기도 35퍼센트 밑으로는 안 되겠다고 합니까?”
“이쯤 되면 위에서 지시가 따로 내려온 거라고 봐야지.”
“바보거든, 바보. 진짜 바보들 아닙니까? 그냥 시니어즈처럼 18퍼센트로 잡아 주면 될 것을 뭐 한다고 우릴 상대로 브랜드 군기를 잡겠다고 그러지?”
“누가 아니라냐?”
“방돔 지사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 오픈되는 순간 바로 우리 쪽으로 꼬리 흔들면서 언제 자기들이 갑질했냐는 식으로 살랑거릴 거 생각하니까, 벌써 제가 다 민망해지네요.”
오 과장과 차 대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퍼스펙티브 영업팀 쪽으론 이미 너무나 막강한 무기들이 장착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 무기는 유통판 쪽에서 걸어오는 이 정도 신경전 따위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화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오필교 과장과 차준영 대리는 상대의 어리석은 신경전이 가소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거 지금 예전에 저희 쪽 손 과장님이랑 그쪽 아들 사이에 있었던 감정싸움으로 우리 그룹 전체가 부경백화점, 부경마트 입점 보이콧한 거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봐야 하는 거죠?”
“유치하긴 해도 그거 말고는 이럴 이유가 없지. 다른 유통판 쪽에선 다 20퍼센트 아래로 잡아 주고 있잖아.”
“그러니까요.”
“퍼스펙티브 정도는 받으나 마나 한 브랜드라고 생각을 하나 보지. 그쪽 말대로 요즘 골프 브랜드들이 좀 많이 들어와? 인지도 쌓인 브랜드들도 많겠다, 이참에 퍼스펙티브 상대로 브랜드 군기를 잡겠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이건 우리가 신경 쓸 내용은 아닌 거 같다. 일단 난 부경백화점 쪽 입장이 이렇다는 거 보고만 올리고 올게. 나머지는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
“네, 다녀오세요.”
* * *
태화장.
강인성 과장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브랜드 군기요?”
난 부경백화점 쪽에서 보여 주고 있는 유치한 대응에 웃음이 나왔다.
식사를 대충 끝내 놓고 물 한 모금을 입에 담고 오물오물, 가글을 한 뒤 그걸 꿀꺽 삼키고 있을 때였다.
“부경백화점이 유독 그런 게 심한 편이죠.”
강 과장도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듯, 피식하고 웃으며 날 대신해 부경백화점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잘나가는 브랜드들한테는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알아서 조건을 맞춰 주고, 힘 빠진 브랜드들 상대로는 가차 없이 안면 몰수해 버리는. 유명하잖아요.”
“그거야 그쪽 사업 스타일이니까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죠.”
“그렇죠.”
“그런데 아직 시장 반응이 올라오지도 않은 우리 퍼스펙티브를 그렇게 시작부터 평가 절하를 한다는 건 살짝 기분이 나쁘네요.”
“그렇게까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기세 한번 잡아 보겠다고 그러는 거니까요.”
“기세요?”
그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꺼내는 게 조심스러운 듯, 내 눈치를 한번 살핀 후 강 과장이 말했다.
“일전에 재경 그룹 차원에서 부경백화점과 마트를 상대로 입점 보이콧을 한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거에 대한 보복이다?”
“보복이라고까지 확대 해석을 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요, 그때 우리가 빼겠다고 했던 브랜드들 입점 유지해 주는 대가로 매장 수수료를 크게 다운시켰으니, 이번엔 우리 쪽에서 배려해 달라, 그런 뉘앙스 아니겠습니까?”
“사업을 참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네요. 사과 정도로 끝내 줬음 알아서 기어야지, 그때 그 일을 아직까지 끌고 와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흠….”
내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눈치챈 것일까.
강 과장이 빠르게 현 상황을 부드럽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강 과장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한번 물 한 모금을 입에 담고 가글을 했다.
“퍼스펙티브가 기존에 있던 브랜드도 아니고, 새 브랜드에 아직 인지도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인 만큼 우리 쪽에서 다른 방향으로 딜을 걸어줘야 할 거 같습니다.”
“그쪽에서는 지금 35퍼센트라고 전 지점이 양보 없는 못을 박아 놓은 상태라면서요?”
“자기네 기세를 보여 주겠다고 그러는 거죠. 방돔 지사에서 현재 패턴 원단을 무기로 브랜드 캐스팅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실제 계약 디테일에 들어가고 있는 게 여럿 된다는 걸 알게 되면 그 기세도 금방 꺾일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니죠.”
그건 강 과장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상대한테 우리가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렇게 쉽게 보여 줘선 안 되죠.”
“…….”
“지금 우릴 상대로 보여 주겠다는 게 기세가 아닌 허세라는 걸 스스로 알게끔 만들어 줘야,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우리가 새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 지금과 같은 피곤한 상황을 못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유통판이 필요한 건 결국 우리니까요. 어쩔 수 있습니까? 살살 달래어 가면서 적당한 수수료 협상을 시도해 보는 수밖에.”
“아이가 운다고 계속해서 사탕을 주는 버릇을 해 버리면 되겠습니까? 울 일도 아닌데, 울면 따끔하게 혼을 내야죠.”
“그때야 입점 보이콧에 명분이 있었지만, 우리가 론칭한 브랜드를 안 받아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수수료 부분이 조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입점 보이콧을 하게 되면 그땐 다른 유통판들에 대한 우리 재경 그룹 전체의 이미지만 안 좋아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쪽을 구슬려 가며 우리 사업을 할 필요는 없죠. 35퍼센트라고요?”
“네.”
“참. 기가 막히네.”
테이블 위로 올려져 있던 계산 영수증철 안으로 카드를 끼워 놓고, 남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강 과장은 그 영수증철을 들고 계산을 하러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하셨습니까?”
―하고 있는 중이야.
“그러세요? 제가 조금 이따가 다시 전화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다 끝났어. 무슨 일이야?
“그 혹시… 퍼스펙티브 관련해서 부경백화점 쪽이 매장 수수료 35퍼센트를 부르고 있다는 보고 받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안 그래도 지금 전무님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그 이야기 중이었어. 다행이지. 방돔 지사 쪽에서 브랜드 캐스팅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와중 아냐. 아직 대외비라 그쪽에서 내용을 모르니까 장난질을 하는 거지, 그 내용을 조금만 흘리면 금방 꼬리 내릴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은 안 합니다. 걱정은 안 하는데… 괘씸은 하네요.”
―뭘 또 그만한 일로 그런 표현을 입에 담아? 그럴 필요 없어.
그만한 일?
이게 그만한 일인가?
나는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 주려고 해도 그만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만한 일로 회사 대외비를 그쪽에 흘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 어떡해? 그리고 말이 대외비지, 거진 현재 접촉 중인 브랜드들은 디테일 잡기 들어가고 있잖아.
“그러지 마시고요, 사장님. 이 내용은 저희 어머니가 작은외삼촌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게끔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사모님을? 사모님이 왜?
“그쪽에서 비즈니스에 감정을 담고 있는 거 같은데, 쌓인 감정이 문제라면 감정으로 풀어야죠. 어쨌거나 제 어머니 입장에선 동생 회사 아닙니까. 이건 우리 쪽 대외비를 풀어 가며 숫자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거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선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 회장님 귀에 이 내용이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우신 겁니까?”
―부담스러울 게 뭐가 있어? 결국 그쪽에서 하고 있는 건 생떼고, 자기들 입장을 어필하겠다고 그러는 건데, 당연히 보고는 드릴 생각이었어.
“비지니스적으로 풀 내용은 아닌 거 같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 풀더라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겁을 주는 게 맞는 거 같고요.”
―그러면… 음, 정훈이.
“네.”
―내가 일단 식사 자리 끝내는 대로 회사 들어가서 회장님께 보고를 드릴게.
“네.”
―보고부터 올려놓고 우리 쪽에서 이런저런 해결 방안이 있다는 걸 말씀드린 다음에 회장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 보는 게 좋을 거 같다. 그게 맞는 순서 아니겠어?
“알겠습니다. 괜찮으시면 나중에 회장님하고 통화하신 다음에 저한테도 회장님 생각은 어떤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야, 이젠 네가 아예 대놓고 나한테 보고를 받으려고 드는구나.
“에이,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런 거.”
―웃자고 해 본 소리다. 그래, 그렇게 하자. 식사는? 밥은 먹었어?
“네, 저도 지금 막 강 과장하고 같이 식사 끝냈습니다.”
* * *
퇴근과 동시에 본가로 향했다.
미리 간다는 연락을 넣었기에 홍준이도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홍준이를 통해 부경백화점이 말 같지도 않은 생떼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벌써 전해 들은 것일까.
날 맞이하는 장혜란의 얼굴에 쓴 미소가 담겨 있었다.
“저녁 먹어야지?”
“무거운 회사 이야기 밥 먹으면서 하는 거보단, 다 끝내 놓고 기분 좋게 먹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실내용 슬리퍼를 끌며 소파 쪽으로 갔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소파 한쪽에 널어놨더니, 그걸 얼른 걷어서 장혜란이 상태를 확인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주름진 재킷이 보기가 싫은 모양이다.
장혜란은 그걸 집안일 도와주는 도우미에게 시켜 스타일러에 넣고 돌리게 만든 뒤 함께 소파에 앉았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홍준이 놈은 흐뭇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고, 장혜란도 그런 홍준이와 날 번갈아 쳐다보며 함께 미소를 지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집까지 다 찾아와? 크게 반응을 해 줄 일도 아니겠던데. 낮에 남 사장하고 통화하면서 들어 보니까, 알아서 대비를 잘하겠더니만.”
“백화점 사업. 메리트 있겠습니까?”
홍준이 놈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순간이었다.
덩달아 장혜란의 눈에도 진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백화점 사업. 우리 재경 그룹이 하기에 메리트가 있는 사업일 것 같냐고 여쭤본 겁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