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정 거래 (131/303)

공정 거래

공정거래위원회 쪽에서 연락이 들어온 모양이다.

남 사장을 통해 해당 내용을 확인해 보니까, 이놈들이 우리 쪽에서 석 달째 강행하고 있는 부경유통에 관한 보이콧을 문제 삼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바보들이지.

정말 모자란 놈들이 아니고서야, 자기들이 해당 내용을 중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선 넘는 오지랖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거 아닌가.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게 왜 생겨났는데?

하도급 경제 단체, 경제 집단을 상대로 불합리한 처우, 불공정 계약, 대기업들이 펼치는 독과점에 관한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생겨난 정부 기관이 바로 공정거래위원회 아닌가?

그런데 지금 대놓고 갑질을 일삼았던 대기업 편에 선다고?

1980년대 중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기업 때리기에 물이 올랐던 당시 정권에서 이런 성가신 조직을 처음 출범시켰을 때 우리 같은 대기업 쪽에선 정기적으로 정권에 갖다 바쳐야 할 정치 자금의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는 식으로만 해석을 했지,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못 반기지.

우리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손발을 조금이라도 정권의 입맛대로 묶어 버리겠다는 건데….

그런데 이 시대에 들어와선 대기업이 이런 기관을 이용해 하도 업체를 대신 때리기도 한다니, 참 세상 좋아졌고 또 말세가 가까워졌다 싶다.

부경백화점 입장에선 우리 재경모직과 같은 브랜드 업체들이 결국은 자기들 입맛대로 분류하는 하도급 업체인 거 아닌가.

“부경유통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네요.”

난 공정거래위원회 쪽에서 보내온 문건을 천천히 다 읽어 본 후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 빌미로 우리 쪽 세무 조사를 받게 만들겠다 그런 내용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 사장 역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비자 여론을 갈라 치기 해 보겠다 그런 거 아니겠어?”

“우린 깔끔한 거죠?”

“뭐가? 세무 조사?”

이 부분에 있어서 난 남 사장을 믿고 있었다.

“네.”

“깔끔한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작정하고 들어오는 세무 조사에 먼지 하나 안 들킬 기업이 어디에 있겠어?”

“지난 정기 세무 조사는 문제없이 잘 넘어갔잖아요.”

“그건 말 그대로 정기 세무 조사고. 이 건으로 만약 특별 세무 조사가 이뤄지면 이미 그 자체만으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온다고 봐야 해.”

맞는 말이지.

피할 수 있는 걸 미련하게 정면으로 받아 낼 이유는 없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가 그 자리에서 남 사장한테 공정위에서 보내온 발송서를 잠시 달라고 해 봤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대표 번호로 전화를 넣었다.

상담사와 연결, 해당 내용을 밝힌 후 담당자와 짧게 통화를 했고, 결국 남 사장이 대신 전화를 넘겨받아 재경모직의 사장이라는 직함을 전달한 뒤에야 배성민이라는 그쪽 이사관과 연결을 할 수가 있었다.

해당 이사관은 우리 쪽에서 받은 해당 발송서에 찍힌 도장의 주인이었다.

남 사장은 곧바로 내게 통화를 넘겼다.

“재경모직 이사회원 손정훈입니다.”

이런 정부 기관을 상대하기엔 아무래도 회사 내 업무 직함보다는 이사회원이라는 감투를 사용해서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겠지.

―네, 말씀하시죠.

“민원 상담사와 연결되기 전에 상담사와의 통화 내용은 모두 녹음이 된다고 하더군요.”

―네.

“그래서 저도 지금 녹음을 하면서 통화 중입니다. 이 부분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

“보내 주신 발송서 잘 받았습니다. 어떤 식으로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건지, 아니면 어떤 시정 조치를 요구하시는 건지, 그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안 들어 있는 거 같아서 직접 통화로 여쭤보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런 말 해서 좀 그렇긴 한데, 나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놈들은 믿지 않는다.

사람 자체를 안 믿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자리에 걸맞은 실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난 하지 않는다.

앉아 있는 자리의 권력을 사용할 줄만 알지, 그 자리의 역할과 책임을 아는 놈들이 많지는 않다.

내가 모르는 지난 30년간 세상이 그런 쪽으로 변했다면, 지금 나라 꼴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겠나.

이런 말 같지도 않는 내용을 가지고 우리 쪽으로 시정에 관한 발송서를 보냈다는 것만 봐도, 역시 공적 기관에서 한자리 꿰차고 앉은 놈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딱 그 수준이 삼겹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여기에 적혀 있는 내용만 보면 저희 재경모직과 재경식품이 잠정 가해 업체로 분류가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저희 쪽에 접수된 내용상으로는… 일단 그렇습니다.

“어떤 신고를 어떻게 받으셨는지는 대충 알 거 같은데, 보통 대형 유통판 쪽으로 상품을 올리는 생산업체, 유통업체, 위탁업체들에 대한 유통판 수수료에 관한 내용은 다 알고 계시는 거죠?”

―…….

“해당 내용에 대해서, 그간 부경유통뿐 아니라 다른 대형 유통판을 상대로 중소 생산‧유통‧위탁업체들이 불공정 신고를 왕왕 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그런 부분도 다 공정하게 처리를 하시면서 저희 쪽으로 시정 관련 발송서를 보내신 거겠죠?”

―해당 내용에 관한 내용은 제 소관이 아니라….

“실례가 안 된다면 해당 내용의 책임자와도 나중에 잠시 연결 가능하겠습니까?”

녹음 중이라고 신사적으로 미리 밝히길 잘했다.

우선 상대의 기를 확실히 죽여 놓고 물었다.

“특정 브랜드에 관한 매장 수수료를 35퍼센트로 맞춰 달라고 합니다.”

공정관리위원회?

겁먹을 거 없다.

우린 잘못한 게 없으니까.

21세기 대한민국이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내가 원하는 유통판을 직접 선택하고 그쪽으로만 상품을 유통하겠다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오히려 그런 내용을 정부 기관이 앞으로 나와서 관여를 하겠다는 게 더 웃긴 거지.

우리가 여타 브랜드들을 선동해서 부경유통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재경모직, 재경식품의 고의적 보이콧으로 인해 부경유통의 영업 손실이 상당히 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의적이지 않은 보이콧이 있기나 한 겁니까?”

―네?

바본가?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불매 운동이라는 게 우발적, 감정적일 수 있는 거냐고요.”

―…….

“그걸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은 우발적, 감정적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선 많은 고민과 계산이라는 걸 해야 합니다. 용기도 필요하고요. 그게 불매 운동, 보이콧 아닙니까? 당연히 고의적인 거죠.”

내 말이 어려웠나?

왜 말이 없지?

그리고 우린 다른 업체들을 선동한 적이 없다.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릴 하고 앉아 있어?

우리가 직접 제값을 주고 브랜드들을 받아 와, 그 브랜드들을 부경유통에서 뺀 거뿐이다.

기존에 들어가 있던 KS 인터내셔널, 한일어패럴 쪽의 재고를 제값 주고 다 떠안아 줬을 뿐이고.

“그 전에 제가 이거 하나 말씀드릴게요. 100원짜리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만드는 데 대충 한 30원 정도가 들어가요. 거기에 인건비, 운송 경비, 세금… 이거저거 다 포함해서 또 한 20원 정도가 추가로 더 들어갑니다. 여기에 재고 관리비가 또 한 20원 정도 들어갑니다. 30원이 우리 손에 떨어지는데, 우린 여기에서 매장 수수료라는 걸 계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이건 내가 과장을 한 게 결코 아니다.

고작 한 마지기 2, 3만 원이면 충분한 원단 쪼가리로 만들어지는 티셔츠 한 장에 10만 원, 2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그 부담을 소비자가 다 감당을 해야 하는 유통 생리 구조를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해 줬을 뿐이다.

“우리한테 떨어지는 게 30원인데 대형 유통판에선 우리 쪽으로 매장 수수료로 35원을 내라고 합니다. 더한 곳은 40원을 내라고 하는 곳도 있죠. 돈 벌겠다고 물건을 찍어 낸 사람들이 여기에서 발생하는 5원, 10원의 손해를 안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100원짜리 물건을 120원, 130원에 팔아야 하는 거예요. 그럼 그 20원, 30원은 누가 부담을 하는 겁니까”

―…….

“소비자가 부담을 하는 겁니다. 누구 때문에? 말 같지도 않은 매장 수수료를 부르는 대형 유통판 때문에요. 지금 누가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런 시스템이 싫어서 해당 유통판 쪽으로 우리 물건을 빼고, 합리적인 시장 가격을 형성해 보겠다고 우리 쪽으로 좋은 매장 수수료 비율을 제안한 쪽으로 옮겨 가는 우리가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까, 아님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국가 기관을 통해서 우리 쪽으로 정당한 보이콧을 그만두라고 압력을 넣는 상대가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까?”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저희는 부경유통 쪽에서 들어온 신고를 접수하고….

“그러니까요. 그 신고 접수 처리가 왜 힘 있는 대기업들 위주로만 이렇게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거냐고요.”

―…….

“그리고 이게 접수를 해 줄 사안입니까? 그냥 들어오는 신고는 아무런 자체 검열도 없이 무조건 상대방 업체 쪽으로 발송서를 보내고 그러는 겁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길래, 내가 불렀다.

“이사관님?”

―네, 말씀하시죠. 듣고 있습니다.

“우리 공정 거래합시다.”

상대 쪽에선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공정 거래하자고요. 그쪽에선 매장 수수료 측정에 자기들만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잘나가는 유명 해외 브랜드들에 한해서는 8퍼센트, 5퍼센트, 심지어 어떤 브랜드는 브랜드 자체가 유통판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3퍼센트 아래로까지 잡아 준다고 하네요.”

―…….

“저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봅니다. 브랜드의 인지도, 수준이 다 다른데 어떻게 모든 브랜드에 다 똑같은 조건을 적용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중간에 낙오하는 브랜드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거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브랜드가 도태되는 건 시장 경제 안에선 어쩔 수 없는 내용이고, 브랜드들 쪽에서도 이런 시장의 구조를 탓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뇨,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왜 유통판은 자기 스스로 경쟁력을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네?

“대기업이라서요? 지금처럼 이런 문제가 터지면 정부 기관이 앞으로 나와서 중재를 해 줄 거기 때문에요?”

―그게 무슨….

“우리 재경은 더 이상 부경유통이 매력이 없는, 태영유통과 비교를 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통판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부경유통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랜드들을 상대로 입점 평가를 내리고 거절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체적으로 우리 브랜드들을 노출시킬 유통판으로 부경유통이 매력이 없다고 자체 평가 판단, 입점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거라고요. 여기에서 공정위가 관여할 내용이 뭐가 있습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우리 편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해당 보이콧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골프 웨어 퍼스펙티브.

영업부 차준영이가 진행 중인 골프 웨어 대여점 영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 과장님이 이 기획안 디테일을 잡아 보라고 하셨을 땐 몰랐는데, 대여점 쪽으로 상품을 풀어놓고 보니까 그 전엔 안 보였던 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바쁜 와중에도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차준영이를 따로 불러 응원도 해 줄 겸 같이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거요?”

“SNS를 위해 골프를 다니는 사람들 있잖아요.”

“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SNS를 꾸미는지 혹시 아세요?”

“뭐 그냥 사진 잘 나온 거 몇 장 건져서 올리고, 스웩한 흔적 남기는 거 아닌가?”

아마 나는 상상을 못 할 거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차준영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금 과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겠지만, SNS에 영혼을 파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떻게요?”

“한 번 라운딩 나갈 때 그런 대여점에서 옷을 세네 벌씩 따로 챙겨 가는 거예요.”

“왜?”

“중간중간 그늘집 들릴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거죠.”

“허, 허허….”

“그래야 자기가 라운딩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늘집에서 갈아입고, 코스 바뀔 때 갈아입고… 그렇게 한 번 라운딩을 나갈 때 세네 번 정도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거죠. 그래서 주마다 한 장씩 올리는 거예요.”

“천재들인데?”

얼굴 표정을 바꾸며 차준영이 말했다.

“방송이나 다른 프로 골퍼들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브랜드 노출은 아주 잘 됐습니다. 그리고 약점이 될 줄 알았던 국내 브랜드라는 부분이 합리적 소비를 원하는 젊은 층들을 상대로 프리미엄을 얻고 있는 거 같고요.”

“그걸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네?”

“뚜껑을 열어 보니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식이 아니라, 애초에 이런 방향에서 결과물들이 올라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식의 전달이 보고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차준영 씨에 대한 신뢰가 더 쌓이는 거 아니겠어요?”

“아….”

“조금만 더 애써 주세요. 스너프, 태영백화점 쪽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중이잖아요.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왜 있는 건지 알아요?”

“……?”

“더 빨리 가라는 말이 아니에요. 살아남으라는 말이에요.”

“그게 무슨….”

“물이 빠지면 앞으로 나아가는 건 둘째 치고, 썰물에 갇혀 굶어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식사합시다.”

시니어즈의 돌풍 역시 굉장했다.

전년 대비 매출 성장 620퍼센트.

물론 620퍼센트에서 400퍼센트 정도는 방돔 지사를 끼고 진행 중인 수출 물량이 커버를 해 주고 있는 거지만, 국내 시장의 성장도 괄목할 만한 수준.

시니어즈의 메인 모델로 채서린을 섭외한 미래기획의 선택은 적중했고, 그와 동시에 매 화 배우들이 시니어즈 제품을 입고 방영되고 있는 악녀검사의 성공은 나의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5.9퍼센트라는 전국 시청률로 출발한 악녀검사.

단 2화 만에 첫 방송 시청률에서 3.8퍼센트나 더 치고 올라가 9퍼센트 후반대를 기록했다.

많은 종편 채널들이 등장을 하며 시청률 갈라 먹기 시대로 접어든 이후, 아주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요즘 시대엔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성적이라고 하는데, 그 성적을 악녀검사가 거둬들였다.

그리고 11퍼센트 시청률로 시작된 3화부터는 요즘 시류대로 국내 OTT 3사에 동시 상영이 되어 51개국에 수출이 되면서 큰 화제성을 일으켜 냈다.

그렇게 부경유통에 대한 보이콧이 4달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결국 부경유통의 장선열이가 백기를 들고 홍준이에게 만남을 청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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