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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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유명한 파리 마카롱 가게 <삐에르 에슈메>의 사장은 ‘리안’이라는 남자였다.

별도의 명함 같은 걸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정확한 패밀리 네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이름을 ‘리안’이라고 소개한 게 전부, 대신 내가 건넨 영문 명함을 꽤 성의 있게 살피는 모습을 보여 줬다.

내가 몇 번 이 가게를 와 봤는데, 그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관광객, 그리고 단골 로컬 손님들.

가게 안은 당연히 넓을 이유가 없었다.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진 2인용 테이블 몇 개가 고작인 가게 안.

손님들 대부분은 카운터 앞으로 줄을 서서 마카롱과 티라미수, 딸기 케이크 등을 빠르게 포장 구입을 해서 나갔고, 줄을 서서 계산을 해야 할 정도로 회전율은 무척 높은 가게였지만 한국처럼 가게 안에서 커피 같은 음료를 시켜 테이블을 잡고 있는 손님들은 보이지 않는 가게였다.

참고로 이 집은 마카롱 하나에 5유로다.

내가 이 마카롱이라는 걸 이 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고 나서, 한국에서 맛을 좀 낸다는, 흉내를 좀 낼 수 있다는 고급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맛부터 시작해서 가격, 가게의 입지··· 전반적인 부분들을 다 분석해 봤는데, 이 가게 마카롱 정도면 맛을 떠나서 일단 가격적인 면만 놓고 봐도 한국의 5성급 호텔에서 판매하는 마카롱 가격 수준이다.

마케팅에 성공을 했다고 하는 한국의 꽤 수준 있는 마카롱 가게에서도 4구에 14,000원, 10구에 3만 원··· 이런 식으로 가격이 측정되어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 맞다.

그런데 이 가게 마카롱이 참 거짓말 같다.

크기가 특별하게 큰 것도 아니다.

그냥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일반 마카롱 크기?

그것보단 조금 더 크긴 하다.

하지만 크게 차이는 안 나는 정도.

그런데 한 입을 베어 먹으면, 분명 비싼 게 사실인데 비싸다는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압도적인 맛이다.

그 이상의 표현이 필요한 맛인데, 맛깔나게 표현을 해낼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이 집 마카롱 가격이 내 기준에서조차 부담스럽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마카롱과 함께 판매를 하고 있는 티라미수와 딸기 케이크 때문일 거다.

투명 플라스틱 컵에 담아서 티스푼 같은 걸로 퍼먹게 되어 있는 티라미수 컵 하나의 가격도 5유로.

이 정도 퀄리티의 티라미수 컵 하나가 5유로면 한국의 특색 있는 테마 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티라미수 케이크와 비교를 해도 비슷비슷한 가격인 거지.

그리고 딸기 케이크 역시 조각 케이크는 5.5유로, 원판 통케이크는 40유로로 퀄리티 대비 크게 비싸다는 느낌은 없는 수준이고.

그러다 보니 유독 마카롱의 가격이 비싸게 느껴지는 건데, 그 가격마저도 이 가게 마카롱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기꺼이 찾아와서 사 갈 만하다.

오죽하면 남 사장이 내가 이걸 사 가지고 오기만 하면 여정이가 앉은 자리에서 두 개 정도는 무리 없이 뚝딱하고 해치운다며, 좀 사 가지고 오라고 할 정도이겠나.

나는 감히 삐에르 에슈메의 사장 리안을 마카롱의 ‘장인’이라고 본다.

이걸 이 맛, 이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해서 한국 시장에다가 개당 4,500원 정도에 맞출 수만 있다면···.

물론 그 4,500원도 상당히 비싸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 정도 단가만 맞출 수 있다면 이건 무조건 되는 거다.

이걸로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만 한다면, 그 브랜드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다 통할 수 있는, 그것도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프리미엄 디저트 전문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카롱 레시피를 사고 싶다고요?”

이 집 마카롱의 맛에 대한 소문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손님으로 많이 찾아오는 집인 만큼, 리안의 영어는 수준급이었다.

“티라미수의 레시피까지 포함해서요.”

손님용 테이블 두 개를 잡고 한 테이블엔 나와 리안이, 다른 테이블에는 고성표 부장과 강인성 과장이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분명 저 사람한테 레시피를 파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정확하게 전달을 했어요.”

몇 마디 제대로 나눠 보진 않았지만, 고집이 대단해 보였다.

레시피를 팔 마음이 없다는 뜻을 단호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고집이 대단해 보였던 게 아니라, 그런 거절 속에 든 마카롱, 티라미수 맛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그런 게 강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가게 브랜드를 사고 싶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가게의 인지도를 이용하겠다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맛. 이 가게 마카롱과 티라미수의 레시피를 사고 싶습니다.”

“말장난 아닌가요?”

풍채가 꽤 있는 인물인데, 의외로 화법은 또 상당히 섬세했다.

“말장난을 하기 위해서 13시간 20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까지 찾아올 순 없는 거죠. 그것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요.”

어깨까지 들었다 내리며, 그 풍채 좋은 친구가 여우처럼 행동했다.

“이해가 안 되네요. 한국에도 마카롱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는 많지 않나요?”

“많겠죠. 네, 상당히 많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저의 마카롱입니까?”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처음 먹어 본 마카롱이 바로 이 집 마카롱입니다. 그런데 그 처음이 잘못됐죠.”

“잘못됐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처음부터 너무 수준이 높은 마카롱을 경험해 버렸어요. 그냥 수준이 높은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마카롱을 제가 먹어 버린 거죠. 그러니 한국에 있는 다른 가게의 마카롱 맛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이미 눈높이가 여기에 맞춰져 버렸는데···.”

내가 건넸던 명함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한참 동안 쳐다보며 리안이 물었다.

“재경.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봤어요. 항공 회사를 가지고 있는 아주 큰 기업이더군요.”

“네. 항공보다는 식품의 역사가 더 오래된 기업입니다.”

“그런 큰 대기업에서 레시피를 사 가겠다는 뜻은 우리 마카롱을 기성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뜻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안 될 거예요. 대량 생산으로는 이 퀄리티를 만들어 낼 수가 없어요.”

“기성품이라고 해서 꼭 공장제 대량 생산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그런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었다면, 리안, 당신 말대로 당신의 마카롱일 필요는 없겠죠. 어느 정도의 맛의 구색만 갖추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기성품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제가 이 가게 마카롱을 처음 먹어 보고 느꼈던 감정, 눈이 번쩍 뜨이고, 과연 이게 뭐야··· 라고 느꼈던 그 맛의 황홀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시켜 주고 싶은 겁니다.”

내 말에 리안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 실소가 뭘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와닿았기에 난 잠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성표 부장과 강인성 과장 역시 입을 다문채, 나와 리안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강인성 과장을 시켜, 차 트렁크에 실어 놓은 나의 짐 가방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잠시 후 강인성 과장이 가져온 짐 가방을 열어 한국에서 챙겨 온 재경식품 브랜드의 인스턴트커피 한 봉을 꺼냈다.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만 있던 리안에게 혹시 뜨거운 물 한 컵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고, 곧 리안은 직접 카운터로 가서 바를 보고 있던 직원에게 뜨거운 물 한 컵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커피 머신 앞으로 선 그곳 직원이 하얀 머그 컵에 뜨거운 물을 받았고, 곧 그 컵이 내 앞으로 왔다.

난 그 안으로 재경식품을 대표하는 인스턴트커피를 뜯어 넣었다.

그리고 그걸 티스푼으로 적당히 저어 리안에게 권했다.

“미안해요. 저는 인스턴트커피는 안 마셔요. 커피 취향이 확고한 편이라.”

“저도 인스턴트커피는 안 마십니다. 그런데 이건··· 괜찮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맛만 한번 봐 주세요. 정말 조금, 한 모금이라도 좋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불편한 부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리안.

하지만 내가 타 준 우리 재경의 아메리카노 인스턴트커피 한 모금에 의외로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세요?”

“입에 담기 전 걱정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네요. 그런데 역시 저한테는 딱 한 모금. 한 잔을 다 마시지는 못하겠어요.”

“한국에서 판매율이 높은 저희 재경의 인스턴트커피입니다. 그런데 저도 딱히 즐기는 제품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테스트를 하게 만든 거죠? 즐기는 제품이 아니라면서 이렇게 준비를 해 오신 걸 보면 저한테 맛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인 거 같고···.”

“네, 맞습니다. 이거 말고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저희 재경의 기술력을 보여 드릴 방법이 없을 거 같아서요.”

“······.”

“여기까지 오기 전 어떻게 리안 씨를 설득할 수 있을까, 레시피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 봤습니다.”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선 50퍼센트 먹고 들어간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여긴 우리 집 앞마당이 아니고.

“만약 여기가 한국이라면, 그래서 우리 재경이 얼마나 식품 사업 쪽으로 진심이고, 그 진심을 가지고 현재 어떠한 요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성공시켜 내고 있는지를 직접 모시고 다니면서 보여 드릴 수만 있었다면, 여기 이 자리에서 이런 인스턴트커피를 뜯을 이유는 없었겠죠.”

“흠···.”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에선 우리 재경식품의 수준을 제대로 보여 드릴 방법이 없네요. 저희는 제대로 합니다.”

“제대로요?”

“네. 그리고 저희가 자체적으로 이 맛을 완성, 유지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리안 씨의 기준에 생산 라인을 맞출 의향도 있습니다.”

“······.”

“물론 레시피는 철저하게 재경식품 본사에서만 관리할 생각입니다. 본사에서 직접 생산을 해, 생산해 낸 상품이 폐기까지 24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신속하게 전국의 매장에 유통을 시키고 그 안에서 판매가 이뤄지게 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당연히 생산량에도 맛의 퀄리티를 고려해 제한을 둘 것이고, 그 내용은 철저하게 관리 감독이 이뤄지게끔 할 생각입니다.”

잠시 후 리안의 입에서 뜻밖의 질문이 나왔다.

“방돔 광장에 있는 시니어즈 매장, 그 브랜드가 재경의 브랜드인가요?”

“네, 저희 자체 브랜드입니다.”

“생산도 재경에서 직접 하는 거고요?”

“물론이죠.”

갑자기 마카롱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시니어즈 이야기는 왜 꺼내는가 싶었는데···.

“거기 관리하는 사람 중에, 미스터 양이라는 사람이 우리 가게 단골이죠.”

지사장을 말하는 거였다.

“때 되면 와서 10피스짜리를 60박스, 70박스씩 주문을 해서 가죠. 몇 달 전엔 120박스를 주문해 갔어요.”

“직원들 선물로 매년 두 번씩 그렇게 주문을 해 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맞아요. 지난 몇 년 동안, 그렇게 한 번 올 때마다 대량으로 주문을 해 가는 손님이라 잘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 주문을 안 받아 줬어요. 우리 가게가 봐서 알겠지만, 사전 주문을 받을 만큼 키친이 넓지가 못하거든요. 키친에서 일하는 사람도 저랑 제 아들을 포함해서 6명이 전부이고.”

“···네.”

“사전 주문은 못 받을 거 같다고 했더니, 미스터 양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그 부분에 있어선 저도 들은 내용이 없네요.”

“그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가게를 오픈하기 전부터 같이 일하는 회사 직원 세 명을 더 데리고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 지사장 성격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거다.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네 명이 동시에 들어와서 10피스짜리 60박스를 사 간 거예요. 그리고 몇 달 뒤에 코리안 뉴이어라고 하면서 또 찾아온 거예요. 처음 그렇게 아침 오픈과 동시에 10피스짜리 60박스를 팔고 나니까, 그날 하루 장사할 물건이 너무 빨리 떨어져서 가게 문을 평상시보다 일찍 닫아야 했던 게 떠오르는 거예요. 난감하더군요.”

몇 년 전 그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는 듯, 리안은 혼자 웃음을 흘려 가며 그때의 일을 내게 말했다.

“저한테 이번에도 주문 예약은 안 되겠냐는 거예요. 안 된다고 하면 또 그때처럼 할 게 분명한데, 그걸 어떻게 안 받겠어요?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이. 우린 될 때까지 하는 사람들이라고. 미스터 손도 그런 사람이겠죠?”

“비슷한데, 저는 좀 다르죠.”

“어떻게요?”

“저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편이에요. 제가 미스터 양에 비해서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거든요. 될 때까지 하기보다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함께 만들어 내는 편을 선호합니다.”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원 밀리언 유로를 현찰로 가져와도 레시피를 안 팔겠다고 하셨다지요?”

“그랬죠, 여기 이 사람한테.”

고 부장을 눈짓하며 리안이 말했다.

“Since 1969···.”

삐에르 에슈메 안의 카운터 아래에 보면, 가게 상호와 함께 이곳의 역사를 말해 주는 연도가 함께 적혀 있다.

“이 가게가 이때부터 있었단 뜻일까요?”

“아니요. 가게 위치는 중간에 두 번 바뀌었어요.”

“그럼 이건···.”

“제 아버지가 이때부터 삐에르 에슈메라는 상호로 장사를 하셨어요.”

“대를 이어서 하고 계시는 거네요.”

“네.”

“그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는 맛과 레시피를 사겠다고 하는 건데, 가격을 가지고 흥정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원 앤드 하프 밀리언 유로. 마카롱에 티라미수의 레시피까지 더해서요.”

“왓!?”

“만약 정말로 현찰을 원하시는 거라면, 현찰로 준비하겠습니다.”

내 입에서 1.5밀리언 유로를 현찰로 준비하겠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게 실수였는지 아님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입에 대지 않겠다던 우리 재경의 인스턴트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셔 보는 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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