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사를 산 겁니다 (160/303)

역사를 산 겁니다

재경식품 중앙개발연구소(재경 R&D CENTER).

1982년에 제과 쪽으로는 독일 ‘그리델’, 음료 쪽으로는 일본 ‘혼쯔’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설립했던 당시엔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개발연구소였다.

연구실의 규모만 놓고 보면 아직도 국내 최대 규모 수준인 걸로 알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라면과 유제품 쪽 개발에 큰 투자를 일으켜 빠르게 업계 순위를 장악해 나갔고, 내가 손중길이의 몸에서 눈을 감기 바로 전까지는 가공 커피 부문이 효자 종목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열 손가락을 다 펼쳐도 내가 이뤄 낸 사업들을 다 꼽을 순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은 어쩔 수 없이 식품이다.

식품 쪽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다 열어 줘 놓고 눈을 감았건만, 그 많은 가능성을 중에 왜 하필이면 외식사업 부문이라는 한계가 명확한 길을 선택해서 집중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일까.

결국 외식사업 부문은 잘해 봤자 국내용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라면에 좀 더 집중을 해서 불닭볶음면 같은 제품을 개발해 냈더라면, 남들보다 한발만 더 먼저 앞서 즉석밥 같은 걸 개발해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연구소 안을 둘러보는 내내 날 분하게 만들었다.

분함.

그랬다.

난 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16개 연구실 중에 외식사업부 신메뉴 개발을 위한 연구실이 7개나 된다는 말이네요?”

날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조 전무가, 왼쪽으로는 편 사장이 나란히 걸으며 연구실 상황을 함께 확인했다.

나와 편 사장 사이에 끼어 한 발 정도 뒤에서 걸으며 연구소장(상무) 김익철이 대답했다.

“네, 그런데 단순히 업장 신메뉴 개발만 하는 게 아니라 밀키트 제품 개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야 당연한 거고요. 전체 연구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외식사업부 쪽으로 잡혀 있는데 당연히 그 안에서 밀키트 제품 개발도 함께해야죠. 그런데….”

조금만 더 걸어가면 관능평가실이었다.

그 앞으로는 자신이 평가를 할 순서를 기다리는 흰색 연구원 복장의 사람들이 복도 의자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편승일 사장과 김익철 소장을 발견한 그들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앞에 도착을 해서 난 고개만 살짝 돌려 김 소장에게 물었다.

“우리 재경식품의 외식사업부 프랜차이즈 매장이 전국에 총 몇 개나 됩니까?”

“제가 거기까지는….”

김 소장이 우물쭈물하자, 얼른 그 옆에서 모범태 전무가 그를 도왔다.

일반 연구원들이 다 보는 앞이라 용기를 내어 김익철 소장을 구해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소장님은 이 안에서 식품 연구 개발이나 식품 안전 관리에 관한 책임을….”

하지만 난 망설이지 않았다.

“브랜드별 매장 수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고작 우리 회사 브랜드 프랜차이즈들의 총매장 수를 확인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립니까, 아님 하루가 걸립니까?”

나의 따끔한 지적에 모 전무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영문을 모르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들은 애써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모르는 척을 시작했고, 김 소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대략 1,300곳 정도가 된다고 알고는 있는데, 정확한 매장 수까지는… 확인해서 앞으로는 반드시 숙지하고 있겠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1,352개 업장이 있습니다. 그중 본사 직영 매장은 14곳.”

이번엔 다른 임원들 전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반면에 전국에 우리 재경식품의 기성 가공품을 판매하는 대형 마트, 백화점, 편의점, 도매 마트… 그런 유통 채널은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한국 식자재를 판매하는 해외의 유통 채널은요?”

“…….”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런 유통 채널은 우리의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알아서 계속 증가가 될 거라는 겁니다. 우리가 직접적인 투자를 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매장에 우리 재경의 상품을 깔아서 재경이라는 기업 홍보를 알아서 해 줄 매장들 말입니다.”

“…….”

“그런데 우리 외식 프랜차이즈 매장들은요? 해장골이 우리 재경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라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낭만포차는요? 4000짜장, 하나돈가스는요? 매출도 안 나와, 수출도 안 돼, 그렇다고 기업 이미지 홍보가 되는 것도 아니야. 도대체 이런 사업에 왜 이 비싼 연구실을 7개나 할당하고….”

관능평가실 앞으로 모여 있는 연구원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비싼 고급 인력들을 이렇게 많이 배치를 시키고 있는 겁니까?”

* * *

관능평가실 안은 신중했다.

평가실의 시설 상황을 확인해 보려고 잠시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 미세한 문 여는 소리에도 오감을 이용해 맛 평가를 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흐트러지는 집중력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안으로 들어선 인물이 사장과 소장, 그리고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에 신경질적이었던 표정을 급하게 숨기긴 했지만, 괜히 안의 상황을 살펴보겠다고 그들의 집중력을 방해한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관능평가실.

총 7개의 개별 칸막이 책상이 벽으로 붙어 있고, 반대 벽에서 책상에 난 작음 홈으로 평가할 상품을 넣어 주는 구조.

책상 위로는 모니터와 키보드가 올려져 있었는데, 한 번의 테스트가 끝이 나는 순간 연구원들은 자신의 평가를 여과 없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다시 몰두했다.

파리에서 공수되어 온 마카롱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국내 고급 전문점 마카롱 세 개와 함께 섞어 간단하게 A, B, C, D로 분류, 그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긴 뒤 개별 평가를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한 평가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내심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연구원들이 관능 평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 사장과 김 소장에게 나가자는 눈빛을 보낸 후, 우린 곧바로 회의실로 올라갔다.

회의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에는 내가 이번 회의에 참석을 요청했던 선임 연구원 두 명이 개인 앞접시 위로 파리에서 건너온 마카롱과 티라미수를 소분해서 각 회의 자리마다 내려놓고 있었는데, 조금 전까지 무슨 대화를 그렇게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갑자기 입을 꼭 다물고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물었다.

“관능 평가 먼저들 하셨죠?”

“네, 저희가 제일 먼저 끝내 놓고 회의 참석 준비 중이었습니다.”

단발의 연구원이 대답했다.

연구원 복에 수놓아진 그의 이름은 조가영.

비스킷‧파이팀의 선임 연구원이라고 한다.

그럼 당연히 함께 회의를 준비하고 있던 남자 연구원은 커피팀 선임 연구원이겠고.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에서 마카롱과 티라미수는 아무래도 커피와의 궁합을 안 따져 볼 수 없었기에 일부러 이 두 사람을 회의에 참석시키라고 요청을 했었다.

“이제 어떤 게 앞으로 우리가 개발해야 할 맛인지 아시겠네요?”

그 물음에 조가영 연구원은 싱긋이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는 평가를 하면서 바로 알았습니다.”

“어떻게요?”

“제가 신혼여행을 파리로 갔었거든요.”

“아….”

“하는 게 맛 테스트고 개발이다 보니 파리까지 가서 삐에르 에슈메를 안 들러 볼 수 없었죠. 티라미수는 이렇게 컵으로 나오는 게 삐에르 에슈메의 시그니처니까 맛도 볼 필요가 없었고, 마카롱 역시 질감이 다르거든요.”

“어떻게 다른데요?”

“베어 먹지 않고 손으로 잘라서 먹을 때 파이 표면에 균열이 거의 안 생긴다는 특징이 있죠. 그런데 식감이 무르지가 않아요.”

왜 그런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독특하게도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은 파이가 아닌 크림으로 질감의 점도를 잡습니다. 보통 크림의 점도를 높이려면 슈거 함량을 높여야 해서 당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잘 잡아 내어서 불편한 단맛을 없앴죠.”

“혹시 어떻게 없앴는지는 아세요?”

“아몬드 파우더죠. 비율까지는 제가 아직 실험을 안 해 봐서 어느 정도 비율로 혼합을 시켰겠다 바로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아마도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엔 아몬드 파우더 함량이 높을 겁니다.”

옆에 있는 커피팀 선임 연구원에게 물어봤다.

“평가하시면서 여러 상품 중 어떤 게 제일 맛있다고 선택하셨어요?”

“저도 마카롱, 티라미수 둘 다 이 가게 상품에 제일 높은 평가 점수를 줬습니다.”

“다행이네요.”

내가 좋은 평가를 받아 기분이 좋다는 식으로 말을 했더니,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상대였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었다.

“조가영 선임.”

“네, 본부장님.”

“아까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레시피만 받아 오면 우리 쪽에서도 바로 생산이 가능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던데, 제가 그렇게 이해를 한 게 맞는 거예요?”

그 질문에 조가영 연구원은 천장을 향해 눈알을 몇 차례 굴려 놓고 아주 개구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 사실 레시피가 없어도 근사치에 가까운 맛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근사치요?”

“하지만 그 근사치가 결국은 그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가공식품이라는 건 결국 원재료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원재료의 상태는 항상 바뀝니다. 똑같은 밭에서 난 밀이라도 매년 그 밀의 컨디션에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처럼요.”

당연한 내용이긴해도,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모습 자체가 꽤 똘똘해 보였다.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 역시 소비자들이 눈치를 못 챈다뿐이지 맛에 매일매일 조금씩의 차이는 분명 있을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근사치라고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레시피가 없어도 가능하다?”

“티라미수 같은 경우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도 같습니다.”

“어째서요?”

“안에 들어가 있는 럼이 조금 특이한 럼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럼인 거 같은데, 제가 경험을 못 해 봤단 말은 어쩌면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힘든 럼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관능 평가를 하는 동안 들었습니다.”

확실히 요즘 젊은 친구들 자신감이 참 대단하다.

저런 친구들이 어디 우리 재경에만 있을까.

삼성, 현대, 부경, SK… 그런 곳엔 더 많지 않을까.

이런 걸 보면 내가 사람 욕심이 많은 건 확실하다.

중앙연구소를 둘러보며 올라왔던 분함이 조가영 연구원이 내게 보여 준 자신감으로 인해 모두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 자신감에 장단을 맞춰 주고자 농담을 던졌다.

“그 럼 이름 하나 알아내겠다고 20억을 제가 썼네요.”

그 말에 조동희 전무를 비롯해 식품 본사에서 같이 넘어온 임원들을 제외한 연구소 쪽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럼 이름을 알아내는 데 20억을 썼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 소장이 묻고 있는 상대가 나인 것인지, 아님 그나마 자기와 친분이 있는 모범태 전무에게 묻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 티라미수 레시피를 제가 1.5밀리언 유로, 한국 돈 20억에 사 놨습니다.”

연구소 사람들은 두 눈을 끔뻑거리거나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등, 내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에 함께 동요를 하기 시작하는 건 본사 임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피팀 선임 연구원에게 “왜?”라며 입 모양만 벙긋거리는 조가영 연구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는 동안 회의실 문이 열렸고, 누군가가 들어와 관능 평가가 모두 끝이 났다며 결과 분석을 업데이트시켜 놨으니 회의에 참고하면 될 거라는 말을 전하고 다시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자리마다 노트북이 한 대씩 놓여 있었는데, 그걸로 평가를 확인하는 건 무척 간단했다.

82퍼센트와 74퍼센트.

다른 전문점 3곳의 상품들과 섞어서 진행했던 평가.

그 평가에서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 맛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 사람이 총평가 참여자 중 82퍼센트였고, 삐에르 에슈메의 티라미수 맛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 사람은 총평가 참여자 중 74퍼센트.

“이 정도 평가면 삐에르 에슈메가 후한 점수를 받은 건가요?”

나의 질문에 김익철 소장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후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이례적인 평가 결과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렇겠지.

호불호를 구분하는 평가가 아니다.

내로라하는 국내 전문점 상품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우수한 맛이라고 평가를 받은 셈이다.

맛에는 절대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이고, 개개인의 취향, 평가 순간의 평가자 컨디션이라는 게 분명 있는 것이기에 82퍼센트라는 결과는 나에게도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날 편 사장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던 식품 본사 임원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놓쳐선 안 될 명분이 되어 주고 있었다.

조동희 전무가 자기 앞접시 위에 올려진 티라미수를 컵째 들어 한 숟가락 퍼 먹었다.

그걸 시작으로 아직 맛을 보지 못했던 식품 본사 임원들, 그리고 김익철 소장이 각자의 취향대로 누구는 마카롱을 먼저, 누구는 티라미수를 먼저 맛보기 시작했다.

“흐음….”

“호오….”

모두가 맛에 대한 놀라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던 와중.

“그런데 이걸 과연 기성품으로 만들었을 때 단가를 맞출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익철 소장이 보인 걱정이었다.

그 걱정에 조가영 연구원이 예리하게 분석했다.

“단가를 떠나서, 이건 아예 공장제 기성품으로 만들 수가 없는 상품인 거 같은데요? 특히 이 티라미수 같은 경우는 길어 봤자 삼 일짜리예요. 그 삼 일도 냉장 보관을 잘했다는 가정하에. 삼 일만 지나면 럼이 가진 휘발성 때문에 상당히 퍼석해질 겁니다.”

그에 김익철 소장은 자신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며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며 식품 본사 쪽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미안해요. 이름이….”

편 사장이었다.

조금 전 자신의 생각을 밝힌 조가영 연구원을 향해 편 사장이 물었다.

“조가영 선임 연구원입니다.”

“조가영 선임.”

“네, 사장님.”

“공장제 기성품으로 만들 수 없는 상품이라고 말한 이유가 보관 기간, 그리고 유통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 때문인 거예요?”

“네, 맞습니다. 당일, 혹은 다음 날까지 판매가 가능만 하다면 생산이야 얼마든지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그럼 충분해요. 마트용 기성품으로 만들어 내란 불가능한 주문을 하러 온 게 아니거든.”

그 말을 끝내 놓고 내 눈치를 살피길래, 난 잘하고 있는데 왜 중간에 끊느냐며 계속하라는 눈빛을 전했다.

편 사장이 말을 이었다.

“구체적인 콘셉트는 본사 기획팀에서 지금부터 기초를 잡고 발전을 시켜 나가야 할 내용이라 아직 뚜렷하게 나온 게 없어요. 그래서 마트용 기성품을 기획하고 있는 게 아니라 프리미엄 디저트 숍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들 준비 중이라는 내용 정도로만 설명을 해 줄 수 있겠네.”

“아….”

“그런데 진짜 아까 본부장님한테 말씀드린 거처럼 이 맛 근사치를 개발해 낼 수 있는 거예요?”

갑자기 나도 내심 궁금해지고 있었다.

“네. 가능합니다, 마카롱은. 하지만 티라미수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럼의 종류부터 먼저 확인을 해 봐야 할 거 같고요.”

“내가 묻는 건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끔 레시피 개발이 가능하겠냐는 거지.”

“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페이버릿에 따라 고민해 봐야 하는 시간이 다소 달라지긴 하겠지만, 파이와 크림의 기본 베이스 정도는 금방 분석을 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나뿐만이 아니라 조 전무와 편 사장의 얼굴에까지 미소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요, 제가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조금 전 보여 주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소심하게 손을 들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는 조가영 연구원이었다.

“편하게 이야기해요.”

편 사장의 배려에 조가영 연구원은 입고 있던 연구원복을 바로잡아 앉으며 김 소장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다음 입을 열었다.

“삐에르 에슈메 브랜드를 우리 재경식품이 산 건가요?”

대답을 누가 해야겠냐는 표정으로 편 사장이 날 쳐다보길래, 그냥 내가 대답을 해 줬다.

“무슨 수로요?”

“아까 본부장님께서 20억에 레시피를 사셨다고….”

확실히 연구원이라 그런지 이런 쪽으로는 아무런 감이 없구나.

난 장난를 담아 물었다.

“조가영 선임이 삐에르 에슈메 사장이면 1.5밀리언에 가게 브랜드를 팔겠습니까? 직접 그 가게를 가 보셨다면서요?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직접 봤을 거 아니에요.”

“아뇨, 절대 안 팔죠.”

“제가 그 부분까지는 너무 예민한 내용이 될 거 같아 하루 매출이 얼마 정도나 나오냐… 하는 건 일부러 안 물어봤어요. 그래도 대충 딱 보면 답이 나오잖아요. 그 비싼 마카롱을 사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그런데 가게를 아침부터 오후까지 열어요. 정말 최소로 잡아도 하루 2, 3천만 원 정도의 매출은 올리겠더라고요.”

직접 그곳을 가 봤기에 가능한 동의였다.

조가영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나의 말을 기다렸다.

“그 정도면 마카롱 가게가 아니라 내실 있는 중소기업이라고 봐 줘야죠. 그런 기업을 단돈 1.5밀리언에 누가 팔겠습니까? 1.5밀리언이 아니라 15밀리언이라고 해도 팔면 바보죠. 안 그래요?”

“그럼 진짜 마카롱, 티라미수 레시피만 가져오는 데 1.5밀리언을 주신 거예요?”

“왜요? 럼의 종류만 알면 티라미수까지도 똑같이 맛 개발을 해낼 수 있는데, 헛돈 쓴 거 같아요?”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레시피가 아니라 1969년에 출발한 삐에르 에슈메의 역사를 산 겁니다. 마케팅에 필요한 그들의 역사를 단돈 1.5밀리언에.”

“…….”

해당 내용은 중앙연구소 사람들이 아닌 본사 임원들이 새겨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무겁지 않게 풀어 나갔다.

“그리고 대를 이어 최고의 마카롱을 만들어 내는 그 가게의 운영 철학도 함께요. 아까 근사치라는 표현을 조가영 선임이 쓰셨잖아요.”

“네.”

“그 근사치를 다른 것도 아닌 맛으로 50년 넘게 유지해 나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아무나 못 하는 거예요. 그런 게 결국은 진짜 레시피 아닙니까. 그런 걸 배우고 싶다고 값을 치르기 전에 미리 말을 했고, 삐에르 에슈메 쪽에서도 비록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자기네 가게 명성에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 확신을 줬더니 기대를 해 보겠다며 오케이 사인을 준 거예요.”

“아….”

“조가영 선임.”

“네.”

“그쪽으로 우리 연구원들을 몇 명 보내야 됩니다.”

“네, 소장님과 팀을 꾸려 보겠습니다.”

“강동호 주임.”

“네, 본부장님.”

“주말 제외하고 파리 현지에서 매일 샘플이 도착할 겁니다. 이 마카롱, 그리고 티라미수에 어울릴 만한 음료를 개발해 주세요. 가공품 아닙니다. 매장에서 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음료가 필요한 겁니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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