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말 안 해 줄란다
장태산 회장은 남필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여정이를 남 사장에게 시집을 보낼 때, 일가친척이 아님에도 돌아가신 회장님을 대신해 여정이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걸었던 장 회장이었다.
자신에게는 없는 딸을 대하듯, 사위를 대하듯 여정이, 남 사장 내외를 대하며 지난 세월.
그 마음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으나, 드모어, 그리고 드모어를 통해 부경호텔의 지분을 확보해 나가고 있었던 내용에 대해선 남 사장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내용을 지금 이 자리에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 사장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드모어가 벌써 20년이 됐어. 드모어로 드 누락 호텔을 인수할 때부터 그나마 우리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건 부경의 호텔 쪽이라는 생각으로 방향을 호텔로 정했던 거고.”
“네, 그 부분은 그러셨을 거 같긴 한데….”
“그만큼 긴 세월을 인내하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 온 내용이라는 뜻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남필우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조차 비밀로 해 왔던 드모어의 정체.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준비해 오신 거 아닌가.
장태산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
사람을 보는 눈, 투자의 타이밍을 재는 기술 하나만으로 지금의 미래금융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다.
그런 장 회장님이 20년 넘는 세월을 공을 들여 진행을 해 온 내용인데, 그 준비가 어찌 허술하고 가벼울 수가 있을까.
“그동안 우리 미래금융이 투자를 진행했던 기업들, 투자사들… 상당히 많이 겹치지. 겹칠 수밖에 없지. 부경호텔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 투자사들 위주로 우리가 투자를 진행했으니까.”
남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큰 투자를 일으켜 준 곳도 몇 군데 있고, 회사 사정에 따라 관계 형성 의미로만 적당히 투자를 넣어 준 곳도 많아. 개인 투자자들 같은 경우는 여기 영석이나 영우가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는 친구들도 꽤 되고. 그렇게 알음알음 긁어 보니까, 그쪽 지배 지분 쪽 눈치 안 보고 드모어 쪽에 손을 들어 주겠다 싶은 게 29퍼센트 정도가 나오네. 물론 정확한 건 아니야. 사람 마음 어디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가 같을 수 있나.”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그 부분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부탁 정도는 해 볼 수 있겠지만, 부담 주면서 강요를 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닌 것이고. 아무튼 그 부분에 있어서 자네는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돼.”
장태산 회장의 계산대로 29퍼센트가 드모어의 손을 들어 준다고 해도, 드모어가 가지고 있는 부경호텔의 지분 11퍼센트를 더해 봤자, 지배 지분을 깨지는 못한다.
투자에 있어서만큼은 철두철미한 장태산 회장.
그런 장 회장이 지배 지분을 안전하게 깨지도 못할 미달 지분을 가지고 이런 진행을 시도한다는 건, 결국 재경 그룹에서 12퍼센트 지분을 지원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인 걸까?
“그리고….”
장태산 회장은 자리에 모인 자식들과 하나하나, 일일이 눈을 다 맞춘 후 결심이 선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젠 내가 너무 많이 늙었어. 깜빡깜빡…하는 정도를 느껴 보니까 나도 이제 곧 고장이 나겠어.”
“…….”
“내가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 저승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닌데 형식상 잡고 앉아 있는 것도 이젠 피곤해. 이번 건만 잘 마무리가 되면 앞으로 미래금융은 영석이가 다 맡아 나갈 거다.”
이미 가족들끼리는 해당 내용에 대해 이야기가 다 끝이 난 것 같았다.
남 사장 역시 시기의 문제이지 당연한 수순이었기에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미래금융에서 하늘이 자리도 정훈이가 재경에서 맡아 나가고 있는 수준으로 맞춰 줘야 할 거 아닌가베. 그렇게라도 해 놔야 내 새끼, 시집가서 기 안 죽고 바깥일 하느라 집안 살림 등한시한단 구박을 안 들을 거 아냐. 말 많고 일 많은 기획에서 4년 정도 기본기 다졌으면 어딜 갖다 놔도 잘해. 지난 4년도 그동안 하늘이 앞에 앉혀 놓고 직접 칭찬을 해 준 적은 없지만, 참 잘했고. 제 애비하고 같이 그룹 본사로 들어올 거다. 기획 일 배우면서 밑돈 만지는 건 수도 없이 했을 테니, 상무 자리는 하나 줘야지.”
이거였구나.
남 사장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오늘 자신을 부른 건 부경호텔의 경영권 확보에 관한 내용보다는 미래금융 쪽에서 하늘이를 차기 후계자로 확정을 하겠다는 뜻을 재경 그룹 쪽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역시라는 생각.
이 타이밍에 태양이를 배제시킨 상태로 하늘이를 벌써부터 미래금융의 차기 후계자로 확정을 해 버리면, 정훈이와 결혼 이야기가 이미 다 오고 간 마당에 손 회장님 입장에서도 부경호텔 지분을 놓고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하긴.
현재 미래금융은 재경 그룹과 여전히 엮여 있는 게 너무 많다.
모직 쪽 지분부터 시작해서 스너프 뱅크 시스템, 거기에 정훈이와 하늘이의 혼사 문제.
밖에서 보기엔 성급해 보일지 몰라도, 지금의 미래금융은 재경과의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하늘이를 후계자로 빠르게 확정을 지어 놓는 게 유리할 거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남 사장은 명쾌해지고 있었다.
전달을 받게 될 손 회장님은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더 복잡하게 엉키게 되겠지만, 전달을 해야 할 내용은 명쾌했으니까.
“재경, 미래금융, 일, 사업, 사람 관계… 징글징글하게 했다. 실수도 많았고, 부족한 것도 많았지. 그런데 사람 욕심이 끝이 있나, 어디. 다 내려놓는 이 와중에도 마지막 마침표는 괜찮게 찍고 싶다는 욕심을 못 버린다, 내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지 몰라도, 남은 시간 동안은 잘산 인생이라고 내 스스로 위안하며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렇게 손 회장한테 전해 봐라.”
“네, 알겠습니다.”
“남 좋은 일 시키자는 거 아니잖아. 손 회장 조카 일 아냐.”
남필우는 천천히 맞은편에 앉은 정엽이를 쳐다보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죠.”
* * *
이틀 뒤 부산.
기장 송정에 있는 아닌티 힐튼 호텔의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전 객실 이용자들에게 사용을 허가하는 그 공간으로 연회장용 이동 테이블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특별 예약을 넣은 고객이 요청한 자리가 그리 많지가 않았기에 빠른 속도로 세팅이 이뤄지고 있었다.
2인용 세미나 테이블 몇 개가 들어와 깔렸고, 직원 네 명이서 두 명씩 짝을 지어 테이블보를 펼쳐 나갔다.
그리고 그 위로 세미나용 패드와 펜 받침대, 스트레스 볼, 호텔의 로고가 새겨진 생수 한 병씩이 자리마다 깔렸다.
의자보까지 테이블보와 색상을 맞춰 정리한 직원들이 이번엔 과일과 쿠키, 가벼운 새우 카나페, 연어 카나페 등이 담긴 트레이를 들고 와 한쪽 벽면으로 설치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먼저 올라와서 세팅 상황을 확인 중이던 하늘이도 마지막으로 커피가 담긴 포트와 기호에 맞게 차를 우려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뜨거운 물 포트까지 완벽하게 준비가 되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요.”
“요청받은 시간은 1시간 30분인데, 식사는 언제쯤 넣어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차피 도시락이라서 미리 다 준비가 되어 있는 거 아니에요?”
“네, 장국만 따로 준비를 하면 되게끔 해 놨습니다.”
“그럼 도시락을 미리 가져와서 저쪽으로 쌓아 주세요. 아마 오시는 분들이 다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라 다과는 손도 안 댈 거예요. 서로 인사하고, 식사하면서 이야기 잠시 나눴다가 바로 자리 비워 드릴 거니까, 그 부분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네.”
하늘이는 깜빡하고 지나갈 뻔했던 인사가 생각났다.
“아 참, 급한 요청이었는데 좋은 자리 빼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더라고 GM한테 꼭 좀 전해 주세요.”
“아마 중간에 한번 내려오실 겁니다.”
“그래요? 그럼 인사는 직접 하면 되겠네. 알았어요.”
미래금융 본사 수행원 두 명과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 남은 하늘이.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그리고 정엽이 오빠는 밑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
하늘이는 시원하게 뻥 뚫린 오션 뷰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걸려오는 전화에 정신을 차렸다.
“응? 뭐지?”
정훈이의 전화였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하늘이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린 뒤, 미래금융 본사에서 함께 온 수행원들에게 손짓만으로 지금 바로 내려가서 밑에 계신 분들을 모시고 올라오면 되겠다는 사인을 준 뒤 전화를 받았다.
“어, 오빠.”
―땅 보러 언제 가?
“뭐야, 밑도 끝도 없이.”
―땅 보러 언제 가냐고. 아직 안 갔지?
“아직 사람들 다 오지도 않았어.”
―지금 어딘데?
“여기? 아난티.”
―거기서 뭐 하는데?
“시간이 어중간하잖아. 식사부터 하고 움직이려고. 급하게 잡힌 일정이라 연회장은 아예 예약도 안 되고, 독립된 공간 만들어 낸다고 완전 진땀 뺐어.”
―다행이네.
“진땀을 뺐다니까, 거기에서 다행이란 소리가 왜 나와?”
―아니, 아직 사람들 모시고 땅 보러 안 간 게 다행이라고.
“뭐래?”
―나 지금 가고 있는 중이거든. 네비상으로 거기까지… 잠깐만.
하늘이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는 정훈이가 강인성 차장으로 짐작되는 누군가에게 현재 이곳의 위치를 말해 주며 시간 거리를 확인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한 시간 사십 분 정도 걸린다고 나오네.
“설마 지금 여길 오고 있는 중이라는 거야?”
―어.
“여길? 왜?”
―땅 보러.
“뭐?”
―너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자신 있어 하면서 말한 땅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구경이나 한번 해 볼까 해서.
“농담하지 말고. 진짜 오고 있는 중이야?”
―가짜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냐?
“아, 진짜…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냐. 그리고 혼자 가는 거 아니다.
“오면 당연히 강 차장님이랑 같이 오는 거겠지.”
―한 분 더 계셔.
한 분 더 계셔?
손정훈이 표현을 그렇게 하는 걸로 봐선 지금 옆에 있다는 뜻이라고 이해를 해야 하나?
“누구?”
―너도 아는 분이야.
“그니까 누구?”
―궁금하냐?
“심심하냐?”
―가서 봐.
“뭐야, 진짜? 오고 있는 중이라는 게 장난이야, 진짜야?”
바로 그 순간.
―하늘 씨.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폰 너머로 들려왔다.
목소리의 나이만으로는 최소 50대 정도는 될 거 같다.
낯선 목소리가 분명한데, 상대는 꼭 자신을 아는 것처럼 아주 친근하게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이에요. 조금 이따가 봅시다.
오랜만이에요?
하늘이의 고개가 다시 한번 갸웃거려졌다.
진짜 손정훈 못 말린다.
분명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다는 건데, 만에 하나라도 직접 만났을 때 내가 기억을 못 해내면 어쩌려고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
아무리 기억을 해 보려고 해도 전혀 기억에 없는 목소리.
하늘이는 세팅된 세미나 테이블 위로, 15년 전 할아버지가 자신의 명의로 매입해 놓으신 4만 8천 평 부지의 땅을 함께 보러 갈 부경호텔 주주들의 이름이 들어간 네임 태그를 놓기 시작했다.
“지금 올라오십니다.”
밑으로 내려갔던 수행원이 올라와 신호를 줬다.
하지만 하늘이는 여유롭게 물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하니까, 저녁 식사는 신경을 써야 돼요. 준비 잘돼 있는 거 맞죠?”
“네, 중간중간 수시로 체크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혹시 중간에 내가 따로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여기 식사 시작하면 실장님도 옆방에서 식사 꼭 하세요. 서비스해 주는 호텔 직원들도 있는데, 괜히 여기 신경 쓴다고 밥 먹을 타이밍 놓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말만 알겠다고 하지 말고요. 사람들 다 들어와서 앉으면 따로 할 거 없으니까 그사이에 하든지. 아무튼 따로 신경 못 써 주니까 오늘은 각자 요령껏 해요, 요령껏.”
잠시 후 장태산 회장이 한 무리를 이끌고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안으로 들어왔다.
하늘이는 작은아버지의 소개로 라운지 입구에서 자리에 참석해 준 사람들 한 분, 한 분과 인사를 나누었고 사람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간 뒤에 정엽이를 따로 불렀다.
“정훈이 오빠도 온다는데?”
“정훈이가?”
“어.”
“여길?”
“어.”
“지금?”
“어, 지금 오고 있는 길이래.”
일행들을 이끌고 오션 뷰를 직통으로 맞고 있는 통유리 앞으로 선 장 회장의 뒷모습을 힐끗거린 후 피식거리며 정엽이가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하늘이 걱정된다.”
“왜?”
“너 지금 하고 있는 반응 보니까, 정훈이 장난기가 평소에도 보통이 아닌 모양이네.”
“이걸 장난이라고 좋게 포장을 할 수 있는 오빠 멘탈이 너무 부러운데?”
“네가 보고 싶은 모양이지.”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고. 혼자 오는 것도 아닌 거 같아.”
“…그래?”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하늘이는 정엽이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하늘이는 자신의 콜을 기다리는 호텔 직원과 눈이 마주쳤고, 곧장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준 뒤, 통유리 앞으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있는 할아버지 곁으로 하늘이가 다가갔다.
“여기는 다 좋은데, 하나같이 다 바다를 향해서 객실을 뚫어 놨어.”
그 부분이 못내 아쉽다는 듯 장 회장이 주위로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면서 본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러 가는 땅이 바로 저 뒤쪽이잖아. 도시락을 까먹더라도 그걸 보면서 까먹으면 한 맛 더 날 거 같은데, 오늘 우리가 그걸 못 하네.”
그러자 옆에서 어느 한 넉살 좋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장 회장의 농담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고, 회장님. 아직 그 주위로 올라가고 있는 건물이 몇 갠데, 이 비싼 호텔에 사람들이 오션 뷰 보겠다고 오는거지, 공사 뷰 보겠다고 옵니까?”
“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그건 박 사장 말이 백번 맞지.”
적당한 분위기를 봐서 하늘이가 할아버지 곁을 파고들었다.
“식사 준비 다 끝났다고 하는데, 넣어 달라고 할까요?”
그에 장 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주위로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이가 전한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여기가 원래 레스토랑이 아니고,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라네요. 주방이 따로 없어서 식사를 도시락으로밖에 준비를 못 했다네.”
“이런 경치에 도시락만 한 게 어디에 있습니까?”
“술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을까 봐 하는 말이지. 점심은 여기서 간단하게 먹고, 땅부터 보고 넘어가서 회포를 풀더라도 제대로 풀어 보자고요.”
장 회장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하늘이가 말했다.
“금방 정훈이 오빠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는데요?”
그런데 이상하지?
할아버지의 반응이 하늘이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혼자 온다더나?”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텔 직원에게 지금 바로 식사를 넣어 달란 신호를 보내 준 뒤 하늘이가 대답했다.
“아뇨, 누굴 데리고 오는 거 같아요.”
그 순간 광대뼈가 올라가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모습에 하늘이가 물었다.
“오늘 정훈이 오빠 여기 오는 거 알고 계셨어요?”
“방금 네가 온다며?”
“꼭 누굴 데리고 올 줄 알고 계셨던 거처럼 말씀을 하셔서요.”
“오면 혼자 안 오고 데리고 올 줄 알았지.”
“누굴요?”
“말 안 해 주더나?”
“…네.”
껄껄껄 웃은 뒤 장 회장이 말했다.
“하여간 그런 장난 치는 거 좋아하는 거까지, 어쩜 그렇게 제 할아버지랑 똑같을꼬.”
“누군데요? 누구랑 같이 오고 있는 건데요?”
“정훈이가 말을 안 해 줬다는데, 내가 중간에 말해 줄 수 있나. 나도 말 안 해 줄란다.”
“할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었기에, 하늘이는 할아버지까지 합세해 버린 장난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