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맞아요?
마몬 퓌에르.
정엽이가 프랑스에서 몰래 손톱을 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그리고 그 투자사가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조사를 해 봤다.
그 과정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마몬 퓌에르라는 친구다.
쁘띠 기뿔리의 CEO, 그리고 드모어 인베스트먼트가 최대 주주사로 있는 또 다른 업체, 스파 에스테틱 브랜드 ‘코 앤 씨’의 2대 주주.
원래는 이 친구의 아버지가 호텔 드 누락의 사장이었다는 내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재 드모어가 백 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호텔 드 누락은 퓌에르 집안에서 40년 넘게 운영을 해 왔던, 즉 그의 할아버지가 처음 일으킨 집안 사업이라고 봐야 했다.
그걸 마몬 퓌에르 이 친구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호텔 운영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금융 문제로 드모어 쪽에 팔게 되었고, 그걸 태산이와 영석이가 드모어의 이름으로 인수를 하긴 했지만, 한국이 아니다 보니 마땅한 경영인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마몬 퓌에르 이 친구의 아버지에게 계속 경영을 맡기게 되면서 정엽이와 마몬 퓌에리의 관계가 형성이 됐던 걸로 보인다.
쁘띠 기뿔리는 원래 호텔 드 누락이 호텔 안에서 운영했던 작은 베이커리였다고 한다.
그걸 대학 공부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드모어 경영에 참여를 하기 시작한 정엽이가 눈여겨보고 있었고, 당시 자기 아버지를 도와 호텔 드 누락의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던 마몬 퓌에르에게 뭔가 사업적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한 정엽이가 투자를 제안했던 걸로 알고 있다.
아마 그때쯤 정엽이는 태산이가 영석이를 보내 드모어를 키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투자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혀 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쁘띠 기뿔리, 코 앤 씨 같은 규모 기업을 상대로 투자 감각이라는 게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결국은 그쪽으로 경험이 있고, 인맥이 있으며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사업을 벌이기에 충분한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도가 고작이었겠지.
물론 그 정도도 못 해내는 놈들이 태반이긴 하지만.
마몬 퓌에르 이 친구에게 정엽이와의 관계, 친밀함은 아마도 하늘이 내려 준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가 그 기회를 아주 잘 살렸다.
비록 프랑스 자체 로컬 브랜드로 머물고 있지만, 한 집 걸러 한 집이 와인 마트이고, 또 베이커리인 프랑스에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시장 점유율 순위권 상위에 쁘띠 기뿔리를 올려놓았다는 것 자체가 실력과 사업적 센스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라고 봐 줘야지.
그리고 대표 자리에는 다른 인물을 앉혀 놓고 있지만, 드모어 다음으로 2대 주주 자리에 마몬 퓌에르가 올라가 있는 코 앤 씨 역시 스파 에스테틱 시장 안에선 좋은 제품력을 가지고 있는 튼튼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 이상 호텔 드 누락의 경영에는 참여를 하고 있지 않지만, 마몬 퓌에르는 쁘띠 기뿔리와 코 앤 씨를 통해 정엽이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의 성장을 도운 가장 가까운 조력자인 셈.
현재 정엽이가 속에 품고 있는 야망의 크기와 구체적인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찾아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스터 퓌에르. 재경식품의 손정훈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손. 마몬 퓌에르입니다. 편하게 마몬이라고 불러 주세요.”
마몬 일행을 공항에서 픽업해 온 의전팀장이 없어도 될 거 같았다.
예상대로 영어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상대였다.
우선은 마몬과 함께 온 그의 일행들과도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주고받은 뒤 강인성 차장과 의전팀장에게 말했다.
“미팅까지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어요. 저는 마몬 이분하고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을 거 같으니까, 이 두 분 모시고 다니면서 우리 재경식품에 대한 회사 소개 좀 해 주세요.”
강인성 차장과 의전팀장이 마몬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온 두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미팅 요청은 저희 쪽에서 먼저 했는데 직접 티켓을 끊으셨다고 해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일정을 잡아 달란 데미안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저희 재경의 지주사가 항공입니다. 다음 미팅 땐 저희 쪽에서 모든 준비를 끝낼 테니까, 구체적인 일정만 넣어 주시면 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13시간 20분 비행.
그리고 공항에서 바로 이곳으로 왔다.
그런 사람치고는 아주 멀끔했다.
최대한 짧게 하고 있는 대답 속에 담겨 있는 신중함도 엿보이고 있었고.
“한국엔 이번 말고 따로 와 보신 경험이 있으세요?”
“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7년 전? 6년 전? 이제 막 데미안과 개인적인 친분이 생기고, 함께 쁘띠 기뿔리를 브랜드화시켜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같이 한국 여행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 되시는 분이 호텔 드 누락을 오랫동안 관리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전에는 데미안과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요?”
“저는 알고 있었죠. 한두 번 정도 먼발치에서 본 적도 있고. 그런데 그게 끝이었어요. 호텔에 거의 오지를 않았으니까.”
“그렇군요.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세요? 저희 쪽이랑 미팅이 끝나면 데미안과 만나시겠죠?”
“원래 공항 픽업을 데미안이 해 주기로 했습니다. 재경식품에서 의전팀을 보내 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직접 프랑스로 가지 못해 와 주십사 요청을 드린 건데, 제가 공항까지 직접 마중을 나가지는 못해도 의전팀은 보내야죠.”
자신을 뜯어보는 내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마몬은 괜한 헛기침 한 번과 함께 쁘띠 기뿔리 라이선스에 관한 사업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데미안을 통해 큰 골자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습니다. 아시아 전체 라이선스를 가져가고 싶으시다고요. 그런데 브랜드 로열티에 관한 내용은 사실 이 5퍼센트라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로우 퍼센트라서, 저희 쪽에서도 최선의 성의는 보이겠지만 약간의 조율은 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사실 내가 이 친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는 거지.
하지만 먼길 와 준 손님에 대한 예의라는 게 있는 거니까….
“업장 규모나 특수 로케이션, 계약 조건에 따라 로열티 퍼센트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13퍼센트를 로열티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경식품 쪽에서는 아예 브랜드 라이선스를 가져가고 싶다는 입장이신 거고, 그것도 아시아권 전체를 말씀하시는 거니 어쩔 수 없이….”
“재경식품에게 쁘띠 기뿔리가 왜 필요한 걸까요?”
그 물음 앞에 마몬은 이럴 때 유럽 사람들이 자주 취하는 포즈, 두 손 바닥을 앞으로 내보이며 자신도 모르겠단 입장을 솔직하게 밝혔다.
“베이커리 브랜드가 필요한 거라면 우리 재경식품이 직접 브랜드를 하나 만들면 되는 건데.”
“…….”
“아니면 아까운 로열티를 줄 필요도 없이, 라이선스 영역을 아시아권으로 한정을 지을 필요도 없이, 그냥 쁘띠 기뿔리를 통째 인수하면 되는 것이고.”
그 말에 마몬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재경 그룹이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내용은 아니라는 걸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이 지금 왜 한국에 들어와 있는지 잘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걸어 보고자 하는 그 길이 아직은 데미안에게 익숙지 않아 보여 그 시작을 현재 제가 같이 걸어 주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세요?”
“…네, 데미안이 한국 일정을 잡기 전에 미스터 손에 대한 이야기를 저한테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데미안, 그리고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열어 준 기회를 돈으로 환산하면 과연 얼마가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쁘띠 기뿔리 정도 규모의 기업 두세 개 정도는 통째 매입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저는 지금 쁘띠 기뿔리라는 브랜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번 부경호텔 경영권 확보전에 데미안과 드모어 인베스트먼트를 우리 재경 그룹이 지지해야 하는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브랜드 로열티 5퍼센트니, 10퍼센트니… 그런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죠, 지금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입장에선.”
“네, 제가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난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마몬에게 말했다.
“아뇨, 마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은 조금 이따가, 약속된 미팅 자리에서 사장님, 전무님 모시고 공식적으로 나눌 내용인 거 같고, 지금은 제가 마몬한테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개 해 보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개인적인 질문이라면, 당연히 데미안에 관한 질문이 되는 거겠죠?”
“그렇죠.”
“제가 대답을 해 드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선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이 직접 관여를 하고 있는 회사가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말고 또 뭐가 있습니까?”
“저희 쁘띠 기뿔리, 그리고….”
“아뇨, 쁘띠 기뿔리나 코 앤 씨도 결국은 드모어 인베스트먼트가 하는 사업의 다른 이름일 뿐 아닙니까. 드모어 말고 다른 회사를 말하는 겁니다.”
반드시 더 있다.
무조건.
마몬의 표정 변화에 주목하며, 느긋하게 기다려 줬다.
하지만 나온 마몬의 대답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라는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몬 앞으로 2년 전, 남 사장과 함께 떠났던 파리 출장길에 정엽이를 처음 만나 받았던 녀석의 가짜 명함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2년 전에 파리에서 만났죠. 그때 저한테 이 명함을 주더군요. 작은 회사이지만 만족하면서 지낸다는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면서. 구스다운 이불을 수출하는 회사더군요.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라 실제 존재를 하는 회사였어요. 그것도 규모는 작지만, 수출액이 꽤 크게 잡히는 회사. 실제 존재하는 회사를 그것도 그 회사에 다니지도 않는 사람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명함을 파서 뿌리고 다닐 수 있을까요?”
“…….”
“이 회사도 데미안이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처럼 다른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혀 놓고 운영하고 있는 회사일 거라고 저는 보고 있는 중인데, 마몬 생각은 어때요?”
“미스터 손과 결혼 약속을 한 상대가 미래금융의 후계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피하고 숨는 게 아니라 방향을 바꾼다?
재밌는 친구네.
“그런데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의 구조뿐 아니라 데미안에 관해선 저보다 미래금융이 훨씬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거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미스터 손이 현재 하고 계신 의심에 대한 확신은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 시키는 사람들 관리까지 잘하고 있네.
순발력이 있어.
강단도 있어 보이고.
“저는 데미안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큰 범위 안에서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의 직원일 뿐입니다. 데미안은 제 보스이고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에 관한 내용이라면 모를까, 다른 부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 정엽아.
아직은 네가 품고 있는 야망과 계획을 세상에 드러낼 때가 아니다.
잘하고 있다.
“다행입니다. 데미안 옆에 마몬처럼 이렇게 노련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 있다는 게.”
“…….”
“잡혀 있는 회의실이 윗층이에요. 지금쯤 사장님, 전무님도 회의실로 이동 중이실 거 같은데, 우리도 천천히 올라가 볼까요?”
* * *
거짓말 같은 계약이 성사되어 버렸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미팅으로.
재경식품의 전무 모범태는 쁘띠 기뿔리 측과의 계약 조율 미팅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 기회가 없었다.
상대방이 들고 온 계약 조건 자체가 이미 재경식품에서 기대하고 있던 계약 조건들에 비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걸 과연 그저 단순하게 좋았다라고만 생각을 해도 되는 것일까?
브랜드 로열티를 5퍼센트에 맞춰서 왔다.
당연히 이번 미팅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쁘띠 기뿔리에 관한 조사는 모두 끝이 나 있었던 상태.
이미 프랑스 안에서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검증이 끝난 브랜드임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브랜드 로열티를 일반적 비율로 13퍼센트까지 부르게 된다면 마땅히 그쪽 입장에 브레이크를 걸 준비까지 다 해 놓고 있었다.
다 준비를 해 놓고도, 준비한 그것들을 꺼내 볼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모범태 전무였다.
브랜드 로열티 5퍼센트.
라이선스 범위는 아시아권 전역.
거기에 아시아권 전역 QA(Quality Assurance―외식 사업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본사에서 레시피 스탠다드, 서비스 스탠다드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을 하러 다니는 일종의 검열)의 권한까지도 재경식품 쪽으로 일임하겠다는 조건.
쁘띠 기뿔리의 기본 메뉴에 대한 엄격함은 지켜 주길 당부하면서도 메뉴 현지화에 대한 부분은 자율에 맡겨 달란 손정훈 본부장의 뜻을 단번에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쁘띠 기뿔리의 브랜드 파워, 운영 시스템, 메뉴 레시피, 매장 콘셉트까지….
그 모든 걸 브랜드 로열티 5퍼센트로 계약을 맺게 만든 손정훈 본부장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최소한 이 정도 사이즈가 나오는 계약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서로의 입장과 조건을 치열하게 조율해 가며 성사시키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단 한 번, 그것도 고작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만에 재경식품 쪽으로 일방적, 유리하게 계약을 끝낼 수 있는 거지?
멀리 파리에서 이번 미팅을 위해 한국까지 와 준 사업 파트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편 사장과 조 전무가 직접 그들을 호텔로 안내해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는 동안 모 전무는 손정훈 본부장과 함께 식사를 하며 특별 지시를 받게 됐다.
“…….”
쁘띠 기뿔리 측과의 미팅부터 시작해, 조금 전 함께 식사를 하며 손정훈 본부장으로부터 받은 지시까지.
모든 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납득이 안 되고 있는 모 전무였다.
“왜 이런 기회를… 나한테 주는 거지?”
손 상무와 식사를 끝내고 복귀한 회사에서, 모 전무는 30분 넘게 자신의 책상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골똘히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결국은 손정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재경식품 안에선 조동희 전무님 다음으로 잘 알고 있을 고성표 지원본부장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똑. 똑.
두 번의 노크 끝에 안에서 고성표 본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들어오세요.”
모 전무는 자신의 방문이 무척 의외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 고 본부장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모 전무는 고성표 본부장과 따로 친분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사무실을 들어와 본 것도 이번이 처음.
“전무님이 여긴 어쩐 일로….”
“잠시 들어가도 되겠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들어오세요, 전무님.”
“아이고, 깔끔도 하시다. 파리가 앉았다가 이게 뭔가 하고 미끄러지겠네.”
모 전무가 던진 농담에 괜히 쑥스러워진 고성표 본부장이었다.
회사로부터 처음 받아 본 개인 사무실.
내 집 마련에 성공했던 그 기분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고성표 본부장에게 선물해 준 공간이었다.
그리고 모범태 전무 역시 자신도 그러했듯 고성표 본부장이 이 공간에 자부심을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던졌던 농담이었다.
“어때요? 식품 생활 할 만해요? 모직 때랑은 많이 다르죠?”
“분야가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님 앉은 자리의 무게가 달라서 그런 건지 모든 게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렇겠네. 나는 아예 식품 원 맨이어서 그런 걸 잘 몰라요.”
“그러시겠죠.”
“아마 본부장님이 현재 조심스러운 건 분야가 달라서 그런 걸 거예요. 나는 임원 승진하고 하루 이틀 만에 바로 내가 지금 임원 승진을 한 게 맞나? 하고 헷갈리더라니까? 출근해서 하는 일, 출근해서 보는 사람, 받는 스트레스… 사실 임원 승진을 해 보기 전까지는 우리 같은 직장인들에게 이사 승진은 로망이고 환상 같은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막상 부장 때랑 비교해서 드라마틱하게 삶이 달라지진 않더라고. 아무리 임원 혜택이 많으면 뭐해요? 그걸 챙겨 먹을 시간이 없는데. 하하하.”
“공감합니다. 저도 얼마 안 됐지만, 회사 차량 받은 거, 개인 사무실이 생긴 것 외엔 딱히 부장 때랑 비교해서 달라진 점을 못 찾겠네요. 저는 제가 주재원 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와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전무님 말씀 듣고 보니까 다들 저처럼 그런 느낌으로 임원 생활을 시작하시는 거 같네요.”
“맞아요. 별거 없어. 오히려 더 파리 목숨이 되는 거고. 그나저나 본부장님.”
“네.”
“내가 뭐 하나만 좀 물어봅시다.”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결국 재킷 앞 단추를 풀어 편하게 앉으며 모 전무가 물었다.
“손정훈 본부장님.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게 무슨….”
“사람 맞아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