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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181/303)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아니면, 귀신이라도 될까 봐요? 하하하….”

“차라리 그쪽이라고 하는 게 이해는 더 빠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고성표 본부장에게 모범태 전무가 말했다.

“실력이 귀신같잖아요. 쁘띠 기뿔리 측과 계약했어요.”

한순간 표정이 싹 바뀐 고 본부장.

그의 턱이 아래로 크게 떨어졌다.

“계, 계약을 했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계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쁘띠 기뿔리 상대로 준비하고 있던 게 라이선스 계약밖에 더 있었어요?”

“아뇨, 그러니까요. 그걸 우리가 지금 계약을 따냈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모 전무의 모습이 고 본부장으로 하여금 인지 부조화를 일으켜 내고 있었다.

“어떻…게요? 아니… 손 상무님이 직접 진행을 하고 계신 건이라 계약이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계약이라는 게 과정도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잡는 서로 간의 디테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 정도인 거예요?”

“어떤 게요?”

“손 본부장님이 직접 진행을 하고 있는 건이기 때문에 고 본부장 입장에선 계약이 될 거라는 거 정도는 전혀 의심을 할 여지가 없었던 거냐고요.”

그 질문에 나온 대답이 모범태 전무를 더 힘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죠.”

“그렇죠? 허, 하하… 참, 당연하다 이거네.”

“네, 지금의 저한테는 당연한 겁니다.”

“이걸 내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원… 아니,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손 본부장님 사람인 건 알겠어. 그걸 모르는 사람이 현재 우리 식품에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끼리니까 톡 까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고요. 이제 서른이에요.”

“…….”

“이제 고작 서른이라고. 당연히 우리보다 회장님 직계로 받을 수 있는 정보나, 인맥 같은 게 풍부하다는 건 인정. 그런 부분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나이 서른에, 재경 실무에 있어선 모직 인사부에서 2년이 전부인 사람이 이런 큰 계약을 이렇게 집 앞 편의점에서 자기 입맛대로 4캔에 만 원짜리 수입 맥주 골라 오듯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표정, 그리고 지금 어떠한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을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성표 본부장이 말했다.

“당장은 혼란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전무님께서 느끼고 계신 감정이 정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뭐가요?”

“제가 그랬거든요. 모직에 있었을 때요.”

“……?”

“채용 방식을 바꾸는 거. 당연히 전무님도 잘 아시겠지만, 그거 절대 쉬운 거 아닙니다. 작은 중소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재경모직처럼 서류 전형부터 시작해 채용 후 신입 사원 연수까지, 채용 예산만 2억에서 2억 5천 정도를 따로 잡아야 하는 경우엔 조심해야 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기보단 낫네. 여긴 연구원들 채용이 메인이라 최소 3억에서 4억까지 잡아요.”

“네, 저도 확인을 하고 확실히 모직에 비해, 인적 자원비에 측정되는 예산이 이 정도로 높게 잡히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게 왜요?”

“그걸 공개 채용 한 달도 안 남겨 놓은 상태에서 채용 방식을 바꿔 보자고 제안을 하고, 직접 바꿔 냈습니다. 기존 채용 때와 비교해서 실수는 훨씬 적었고, 효과는 훨씬 높았죠.”

“그야… 음… 그거랑 이건 다르죠.”

“전무님이 보시기엔 달라 보이실지 몰라도, 당시 인사부를 맡아 나가고 있었던 제 입장에선 지금 전무님께서 느끼고 계신 감정처럼 크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그동안 제가 인사부에서 20년 넘게 해 왔던 경험과 노하우라는 게 있는데, 그것들이 한순간 부정을 당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모 전무 입장에서도 고 본부장이 자신의 인사 쪽 경력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존중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본부장님한테 묻는 거 아니에요. 손정훈 본부장, 사람 맞냐고.”

“…….”

“두 시간도 안 걸렸어요. 아니지, 두 시간이 뭐야? 미팅 자체가 두 시간이 걸렸던 거고, 실제 계약 이야기가 오고 가고 쁘띠 기뿔리 측에서 우리 쪽 조건에 콜을 부른 건 30분도 안 걸렸어요. 나머지 시간은 그냥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디테일 맞추기요?”

“아니, 이미 디테일은 그쪽에서 다 맞춰서 왔다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빨리 계약이 성사된 거지. 우리가 갑이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지.”

“그게 무슨….”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고 본부장이 얼굴에 싱긋이 미소를 만들어 띄웠다.

“허, 허허… 네,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미팅 전에 손 본부장님이랑 따로 이야기 나눈 거 있었어요?”

“아뇨, 쁘띠 기뿔리 건에 관해서 저는 현재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것도 같다는 소릴 해요?”

“그게 손정훈 상무, 본부장님 스타일이니까요.”

손정훈 본부장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찾은 고성표 본부장의 사무실에서, 그가 보여 주고 있는 반응들 때문에 해소는커녕 오히려 앞길이 더 막막해지기만 하는 모범태 전무였다.

“처음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뭔가를 결정할 때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 고 본부장이 말한 내용으로 인해, 모 전무는 고 본부장으로 하여금 동지애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모 전무가 손정훈 본부장을 상대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 딱 그랬기 때문에.

쁘띠 기뿔리 측과의 미팅.

사장님이나 자신에게 미리 승인을 구한 내용이 아니었다.

물론 왜 승인도 받지 않고 당신 마음대로 그런 미팅을 잡았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리고 미팅은 그저 형식이었을 뿐이라는 듯, 단 한 번에 끝나 버린 계약.

이건 분명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쁘띠 기뿔리 쪽으로 반드시 계약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손 본부장이 만들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그런 내용들을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편승일 사장에게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집안 회사이니까. 그런데 조금만 더 같이 지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독선적인 부분도 분명히 어느 정도 있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한데… 결국은 내가 손 본부장의 생각과 추진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걸요.”

“…….”

“손 상무님은 자기 기준에선 충분히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실 겁니다.”

모 전무의 눈썹 끝이 꿈틀거렸다.

고 본부장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본인도 답답하겠죠. 내가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고, 이렇게까지 방향을 말하고 있는데, 왜 다 알아들은 척을 해 놓고 뒤에 가서 엉뚱한 짓들을 하고 있느냐는 식으로요. 왜 나중에 가서 전혀 몰랐던 내용인 것처럼 말을 하느냐는 식으로 말이죠.”

“그럼 그건 문제 아닙니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죠. 재경 그룹 안에서 손정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조직 체계 안에서 그 사람이 자기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 아닌지를 보는 사람에겐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모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모직에서도 초반에 손 상무님의 스타일을 몰랐던 몇몇이 그런 부분 때문에 마찰을 일으킨 적이 몇 번 있었고요. 하지만 곧 얼마 안 가 다들 수긍을 하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수긍이라면….”

“그냥 인정을 하는 거죠. 우리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걸.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 보려고 애를 쓰게 되고, 결국은 애를 쓴 덕에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됐습니다.”

“다른 세상? 무슨 세상?”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도대체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무엇 때문에 저렇게 하려고 하지?’로 바꾸기만 했는데도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그 시야가 현재 제가 그간 아무런 경험도 없었던 식품에서 큰 문제 없이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미 전무님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시겠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뛰어나요. 그것도 상당히. 가끔씩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떤 생각이요?”

“중간이 비어 있다는 생각이요.”

“중간이 비어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어….”

짧은 음성을 흘리며 생각을 정리한 뒤 고 본부장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저도 많이 익숙해졌는데, 초반엔 마치 제가 어느 한 기업의 회장님을 직접 모시고 일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어요.”

“……?”

“갭이 크잖아요. 제 위로 사장님, 전무님, 다른 임원분들… 그런 과정이 다 생략이 되고 회장님이 당시 부장이었던 저한테 다이렉트로 업무 지시를 툭 하고 던져 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한 가지 사업을 놓고 생각이 뻗어 나갈 수 있는 방향성 자체가 아예 다른 거예요. 그러니 저희랑은 소통을 안 하려고 하신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요. 본인은 본인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을 다 해 준 건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수준에서 쉽게 설명을 해 준 거지, 제 수준에선 절대 쉬운 설명이 아니었던 거죠.”

“대학교수가 유치원에 가서 미분, 적분을 이야기했다, 그런 게 되는 겁니까?”

“저는 그 대학교수도 그냥 대학교수가 아닌 아주 뛰어난 교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범태 전무는 길게 숨을 뽑아내 놓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물었다.

“결국 모직에서 넘어온 손정훈 본부장님의 평판이 과장이 된 게 아니란 말이네요?”

“과장이요? 음… 저도 식품으로 넘어와서 다른 분들한테 지금처럼 손 상무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모직에서 넘어온 평판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과장이 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방돔 지사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아는 분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거기에서 해낸 사업들이 진짜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인데 말이죠.”

왜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모범태 전무의 가슴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불길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손정태 스너프 사장이 식품의 본부장으로 있던 시절, 자신과 편승일 사장을 따로 불러 외식 사업 쪽으로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보자며, 재경 그룹 안에서 편 사장과 자신의 앞길을 약속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오히려 식품에 입사를 해 사원, 대리 시절 맡았던 냄새가 코끝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에 와 생각을 해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프로젝트 하나에 사흘 밤낮을 새워 가며 사활을 걸어야 했던 당시 그 사무실의 냄새가.

젊음을 추억해 보게 만드는 냄새.

그간 너무 만연해져 있었던 전무라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쩌면 다시금 열정을 불태워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느낌.

“저한테 외식사업부를 재경식품에서 따로 분사시킬 준비를 하라고 하시네요.”

그 말에 고 본부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모 전무를 쳐다봤다.

그런 고 본부장의 반응에 이 내용 역시 손 본부장이 고 본부장에 따로 이야기를 한 내용은 아니었다는 걸 눈치챘다.

“인스파이어 브랜즈를 롤 모델로 삼아 보라고 하시네요.”

“인스파이어 브랜즈라면….”

“네, 던킨도너츠, 서브웨이, 베스킨라빈스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초대형 공룡 외식 기업이죠. 현재 우리 재경식품이 만들어 낸 외식 브랜드들을 정리하자고 하셨을 땐 이렇게까지 큰판을 머릿속에 그리고 계실지 몰랐죠. 고 본부장 말이 맞아.”

“……?”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손 본부장님 생각을 못 따라갔던 거예요. 현재의 외식 사업을 정리하라는 게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수출이 불가능한 종목들을 정리하라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국내 시장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 먹힐 종목들을 추려 내라, 그 말이었어.”

“걱정이 되십니까?”

“걱정이 될 게 뭐가 있겠어요? 목표라는 게 그렇잖아요.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어야 긴장도 하고, 기대도 하는 건데 던져 준 목표가 너무 크잖아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표정에 자신감이 보이는데요?”

“사실 그래요. 재경식품을 등에 업고 그간 외식 사업 쪽으로 집중을 하면서 그정도 큰 목표도 안 세워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간 해 오면서 그게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는지를 충분히 체감하기도 했고.”

“전무님께서 상상해 봤던 걸 콕 집어 롤 모델로 정해 주신 거네요.”

“그러니까요. 그게 좀… 놀랍긴 했어요.”

고성표 본부장이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었다.

“제가 프랑스로 지사 생활을 하러 가기 전, 그러니까 모직 본사에서 손 본부장님과 인사부에서 함께 일할 때 있었던 일인데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손 본부장님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었던 아주 인상적이었던 상황이 있었어요.”

“어떤 상황이요?”

“IT 전산팀 대리 한 명이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더는 회사 생활을 못 하겠다고 사직서를 준비해서 인사부로 내려온 적이 있었어요. 그 팀에 직장 내 왕따 그런 게 좀 있었던 모양이에요. 일을 참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던 거 같은데, 아마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다른 동료들 눈엔 부담스럽게 보였겠죠. 그런 경우 많잖아요.”

“허다하지.”

“정황을 다 확인한 다음에 손 상무님, 당시엔 손 과장이었죠. 그 직원을 따로 인사부로 부른 거예요. 보통은 면담실이 따로 있으니까, 그 안에서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그런데 면담실로 데리고 가지 않고 인사부 직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시 그 모습은 고성표 본부장에게 손정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눈치채게 만들어 준 아주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이유 때문에 매일 아침 눈을 떠 회사에 출근하는 게 스트레스라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오고, 불면증에까지 시달리고 있다면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는 게 맞는다. 이 사표는 수리를 하겠다. 그런데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다. 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다른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일 테니. 누군가가 이유 없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그래서 당신을 왕따를 시킨다면 최소한 당신은 그 사람들에게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에 모 전무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최소한 그 사람들이 당신을 따돌리는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고, 당신을 응원하며 좋게 보고 있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도 당신은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응원을 해 주는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이유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배짱과 당연함으로 조직 생활을 한다면 반드시 언젠가 당신 주위엔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응원을 하는 사람들만이 남을 것이다.”

“…….”

“그때 알았죠. 아, 저 사람은 마이 웨이구나. 함부로 적이 되어선 안되겠구나. 그리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넘어가는 상황 자체는 유배를 가는 것처럼 프랑스 지사로 넘어갔지만, 본사로 다시 부를 땐 귀하게 모시겠다는 약속을 저한테 하더라고요. 흔하디흔한 빈말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그 약속에 제가 믿음을 주면 그 사람은 제가 믿는 이유를 저한테 만들어 줄 거 같은 거예요.”

“…….”

“저 식품에 처음 출근한 날 말입니다. 사실 긴장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식품 여긴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전무님까지 손정태 사장님 사람 아닙니까.”

“누, 누가 그럽니까?”

“아…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룹 안에서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아무튼 그래서요?”

“임원 승진이라는 부분은 기대할 만했지만, 괜히 손정훈 본부장님 라인 타서 단물 빨아 보지도 못하고 나가리 나는 건 아닐까, 당연히 걱정을 할 수밖에요. 거기다 원래 회사에서 배정한 제 사무실 위치가 화장실 앞이었다면서요? 안에 가구 집기류도 문제가 많았고. 그 내용을 식품 출근 첫날 사장님께 바로 불편함을 전달해서 바꿔 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맞아요.”

“이러니 믿을 수밖에요. 믿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 주시잖아요. 틀림없이 전무님께도 그렇게 하실 겁니다. 전무님뿐 아니라 어느 누구를 상대로도 똑같이 하실 분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의심하고 걱정을 하시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만을 계속 만들어 주실 분입니다.”

꽤 한참 동안 모범태 전무는 침묵을 지키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그 침묵을 깨뜨리며 모 전무가 물었다.

“그래서 그 직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직장 내 왕따를 당했다는 직원이요. 회사를 그만뒀습니까?”

“아뇨, 아직 잘 다니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관심 있게 지켜봤거든요. 지금은 과장까지 달았고, 그 친구를 따돌렸던 몇몇은 알아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더군요.”

“흠… 하, 씨. 모르겠다, 나도. 본부장님.”

“네.”

“우리 미팅 준비 좀 합시다.”

“미팅이요?”

“네. 내가 지금 말해서 외식사업부 부서장 다 호출할 테니까, 본부장님은 삐에르 에슈메 레시피 관련해서 우리 쪽에서 보낼 연구원들 비자 내용 좀 정리해 주세요.”

“그건 이미 정리 다 끝났습니다.”

“쁘띠 기뿔리 관련해서도 서비스 스탠다드부터 시작해 기술제휴 관련으로 연수 보낼 인원을 뽑아야 할 거 같은데, 미팅 때 내가 깜빡하고 그 부분 말 안 하고 그냥 넘어가면 본부장님이 한번 짚어 주시고요.”

“물론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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