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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사람 같네 (191/303)

이제 좀 사람 같네

“시계 사진은 또 왜?”

―그냥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면 그냥 좀 찍어서 보내 줘.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도대체 누가 정상인 걸까?

한 번씩 하늘이 놈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아직까지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구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어쨌거나 이 시대 서른의 남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지난 30년의 세월을 경험이 있는 척 살아가고 있기에, 하늘이 놈이 지금처럼 내가 구식인 것처럼 말을 해 버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 2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나도 이제 의심이라는 게 생기는 거지.

이건 내가 구식이라서가 아니라, 하늘이 놈이 비정상인 걸 수도 있다는….

자, 생각을 해 보자고.

토요일 아침 10시에 전화가 걸려 왔다.

다짜고짜 내일 자기 지인들을 초대하는 식사 자리에 뭘 입고 갈 거냐고 물어본다.

여기까지는 내가 충분히 이해를 하지.

아니, 이해가 아니라 하늘이 녀석에게 이런 디테일까지 있었나? 하는 기특함마저 드는 거고.

집에서 신부 수업만 받고 있는 녀석도 아닌데, 이런 부분까지 챙기겠다고 하는데, 당연히 기특하지.

그런데 나는 또 패션에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옛날, 사람들 피죽도 못 얻어먹고 다니던 시절부터 포목점에서 원단 만지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내가.

재경모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을 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고, 원단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다 확인을 하고 입어 보고… 그렇게 키웠던 회사가 바로 재경모직이었다.

그걸 내가 해낸 거라는 말도 못 하고, 참 답답해서 속이 탈 지경이다.

그래서 내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는 하늘이 놈한테 그랬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자리 성격에 맞게 알아서 잘 입고 나가겠다.

그랬더니 이놈이 내 패션 감각을 못 믿겠다며, 전화를 끊고 내일 입을 옷을 매치시킨 다음에 자기한테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거기까지도 하늘이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왜? 난 깨어 있는 사람이니까.

혁신 기업 경영!

젊은 경영의 오피니언 리더, 손중길!

내가 했던 말이 아니다.

세상이 날 그렇게 불렀다.

그래, 여자인 하늘이 입장에선 내일 자리가 신경이 많이 쓰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내일 식사 자리에 호스트이기도 하니까 가급적이면 신경을 써서 차려입고 나가야지.

사실 이것도 내가 따로 할 일이 있었으면, 적당히 무난하게 신경 써서 입고 나가겠다는 정도로만 말해 주고 치웠을 거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이었고, 마땅히 할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 역시 내일 입고 나갈 옷을 이참에 준비를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몇 벌을 챙겨 사진을 찍어 보내 줬지.

이야….

그런데 이놈이 내가 찍어서 보내 주는 사진 족족이 ‘X’라고 답장을 달아 버리네?

별로다,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그런 답장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영어 알파벳 ‘X’만 보냈단 말이지.

내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으면, 잠시 있어 보라고 한 뒤, 매치시켰던 옷 몇 벌을 구두까지 다 받쳐서 입은 다음 전신 거울 앞에서 셀카를 찍어 보내 주기까지 했다.

옷이라는 게 또 직접 입어 보는 거랑, 옷만 보는 건 천지차이 아니겠나.

그 사진들을 보내 줬더니 이번에도 ‘X’.

그리고 들어온 문자가 이거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일단 대충 상황 파악 끝났으니까, 집에 있는 시계라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줘.

그래서 내가 이건 피곤하게 톡으로 이야기를 할 내용은 아닌 거 같아서 전화를 걸어 그랬지, 시계 사진은 또 왜 찍어서 보내라고 하는 거냐고.

그랬더니 저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짜증을 내는 거다.

―시계는 그때 태양이랑 같이 오빠 집에 가서 보니까 예쁜 거 많더만. 옷은 다 새로 사야 해. 안 돼, 지금 오빠가 사진으로 보내 준 옷들은.

“야, 이놈아. 내 눈엔 예쁜 옷들 천지빼까리구만 무슨 옷을 새로 산다는 거야?”

―오빠 옷 언제 사고 안 샀어?

“옷이야 내가 자주 사지. 지난달에도 와이셔츠하고 넥타이하고 샀었고.”

―회사 출근할 때 입는 옷 말고. 그냥 평상복 말이야.

그건… 사실 내가 따로 산 적이 없지.

집에 입을 만한 옷이 엄청 많더라고.

평상복을 입을 일도 거의 없고.

―오빠가 방금 찍어서 보내 준 옷들, 다 2, 3년 지난 옷들이야. 유행을 안 타는 옷들이면 내가 말도 안 해.

“그렇게 별로였어?”

―완전.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정장 입을 때 빼고는 오빠 패션 진짜 구려.

구려?

구리다고?

내 패션 감각, 내 패션 센스가 구리다고?

“구려?”

―어, 진짜 완전 개구려. 지금까지는 내가 일부러 말을 안 했어. 남자가 너무 외모에 신경 쓰고 꾸미는 거 난 개인적으로 별로거든. 근데 오빠 패션은 진짜 신경을 쓴 게 눈에 보이는데, 매치업이 전혀 안돼. 그래서 더 구려.

“우와… 내가 진짜 지금까지 살면서 패션 센스 구리다는 말은 너한테 처음 들어 본다.”

―그간 오빠 주위에 솔직한 사람이 없었나 보지. 나도 솔직해져야겠단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되고. 잔소리 그만하고 시계 사진이나 찍어서 보내 줘.

“그걸 찍어 보내서 뭘 해?”

―뭘 하긴 뭘 뭐 해? 거기에 맞는 옷을 사야 할 거 아냐.

“오늘? 지금?”

―약속이 있어도 오늘은 취소를 해. 아무리 회사 일 관련된 약속이라도 내일 자리보다 중요할 순 없어.

“아니, 따로 약속이 있는 건 아냐.”

―그럼 빨리 사진 찍어서 보내. 내가 무슨 자기 개인 비서도 아니고, 자기는 자리 마련해 보자는 말만 툭 던져 놓고 준비는 나 혼자 다 하고. 나 지금 할 일 없어서 오빠 옷까지 신경 쓰고 있는 거 아니거든?

* * *

“하늘이 하이.”

결국은 내가 집까지 데리러 갔다.

집 앞에 차를 세워 놓고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장지갑만큼이나 얇고 작은 이브닝 백을 든 하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 반갑게 건넨 나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하늘이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사진으로 보내 줬던 옷 그대로 입고 나왔는데, 날 보자마자 하늘이가 내쉰 한숨은 내가 입고 온 옷 때문일 가능성이 무척 컸다.

“지방시 셔츠. 원단 봐. 그냥 막 흘러내리잖아. 바지는 알마니. 아무리 다들 캐주얼하게 입고 나온다고 해도 바지 정도는 이렇게 격식을 차려 줘야지. 벨트 에르메스다? 여기에 몽클레어 스니커즈면 게임 끝난 거지. 사진으로 봤을 때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지?”

“이런 셔츠를 왜 바지 안으로 넣어 입고, 도대체 밸트는 왜 하는 건데?”

“모르는 소리. 남자는 머리, 벨트, 신발이야.”

“내가 정말 오빠 널 어떻게 해야 되니? 꼭 이렇게 에르메스 ‘H’가 보여야 되는 거야? 도대체 이유가 뭐야? 이렇게 입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명품은 사치고 평범한 브랜드는 겸손이라는 생각은 또 다른 편견을 낳을 뿐이야.”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도대체 왜 아저씨도 아니고, 이런 셔츠에 정장 밸트를 하냐고.”

“이게… 정장 밸트야?”

“왜? 차라리 지방시 말고 베르사체 셔츠 있음 그걸로 입고 나오지?”

“진짜 그 정도로 아닌 거야?”

더 이상 대답을 해 줄 가치가 없다는 듯, 하늘이는 그저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와… 그동안 내가 오빠 얼굴을 자세히 안 보긴 자세히 안 봤구나.”

“……?”

“진짜 안 되겠다. 엉망이네.”

“설마 그 엉망이 내 얼굴을 말하는 건 아니지?”

“그 전까지는 눈에 잘 안 들어오던 것들이, 각 잡고 챙겨 줘 봐야겠다 마음을 먹으니까 다 들어오네. 손 많이 가게 생겼다, 진짜.”

솔직히 패션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는 거니까.

근데 사람 생긴 걸 가지고 태클을 거는 건 진짜 좀 아니지 않나?

“네, 실장님.”

하늘이는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약 많으시죠? 네, 지금 가려고요. 제가 할 건 아니고 남자요. 네. 아, 그래요? 지금 출발할 거거든요. 30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차만 안 막히면 더 빨리 도착해질 수도 있고. 그럼 지금 바로 가면 실장님한테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고마워요. 알겠어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누군가와 통화를 끝낸 하늘이는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단 걸 내게 보여 주기라도 하듯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 다부진 표정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래, 다시 태어나자. 지금 상황에선 그게 제일 쉽고 빠른 길이겠네. 그거 말고는 다른 답도 없어 보이고.”

나 지금 다시 태어났는데?

“그럴 수 있어. 할 수 있어. 불가능하지 않아.”

이건 누가 봐도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거였다.

“시동 걸어.”

“어디로?”

“내가 내비 찍어 줄 테니까, 오빠는 일단 출발해.”

날 데리고 가겠다는 곳이 미용실이었다.

2층에 있는 미용실이었는데, 내가 먼저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뒤에서 내가 바지 안으로 넣어서 입고 있던 셔츠를 억지로 빼내기까지 하네?

“아, 왜? 이걸 왜 빼?”

“쪽팔려. 그냥 좀 올라가.”

어바리도 아니고, 이런 셔츠를 바지 밖으로 빼서 입게 만들다니.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주말이라 예약 잡혀 있는 것도 많으실 텐데….”

“괜찮아요. 이분 머리하실 거죠?”

“네.”

“어떤 스타일로 하면 될까요?”

“머리는 너무 아저씨 상고 머리를 하고 있어서 뭘 어떻게 해 달라고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혀요.”

이래서 끼리끼리 논다고 하는 거지.

하늘이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실장이라는 사람은 맞장구까지 치기 시작한다.

“그러네. 어머나… 이렇게 잘생긴 이목구비를. 머리가 잘못했네.”

“잘생기긴요.”

하늘이의 말에 그곳 실장은 눈을 크게 떴다.

“이 얼굴이 잘생긴 게 아니면 어떤 얼굴이 잘생긴 거예요?”

“그냥 적당히 봐 줄 만한 거죠.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어찌나 잘난 분이신지, 누가 안 띄워 줘도 자기 혼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까.”

하늘이의 농담에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그곳 실장이 내게 물었다.

“머리하신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언제 하셨어요?”

“2주 정도 지났어요.”

“기계를 너무 높게 올렸네. 그래도 앞머리는 살아 있으니까, 이걸로 커버를 좀 하면 될 거 같아요.”

거울을 통해 그곳 실장과 함께 내 모습을 쳐다보며 하늘이가 말했다.

“머리는 실장님이 알아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얼굴에 있는 털 관리 한번 싹 해 주세요. 특히 눈썹은 신경을 써 주시고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관리를 한번 받고 나니까 확실히 그 전과 차이가 있는 거 같긴 했다.

눈썹 한번 다듬었을 뿐인데, 얼굴의 선이 살아났달까?

그때부터 나는 하늘이 손에 이끌려 쇼핑을 하는 내내 꼭 여정이 놈을 데리고 쇼핑을 다녔던 예전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막내이기도 했지만, 하나 있는 딸자식이라 홍명이, 홍준이 때와는 달리 성인이 된 이후로 가끔 여정이와 백화점 같은 곳들 다녔던 적이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을 정도로 미적 감각이 뛰어난 놈이어서 내가 하고 다닐 넥타이나, 평상복 같은 건 여정이의 안목을 믿어 주는 편이었지.

나이도 내가 눈을 감기 전 여정이보다 서너 살밖에 안 많다 보니, 오늘은 이상하게 하늘이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꼭 딸과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사기도 엄청 많이 샀다.

자기만의 브랜드 기준이 확실해서 아무 매장이나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한 번 들어간 매장에선 최소한 한두 벌씩은 내가 계산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계산을 하는 동안 하늘이는 옆에서 쇼핑백 안으로 직접 옷을 분류해서 넣었고, 왜 그렇게 하는 거냐고 묻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패션을 창조해 낸답시고 이리저리 매치시켜 보지 말고, 딱 내가 이렇게 담아 주는 게 한 벌이야. 이대로 입고 다니라고.”

중간에 지하 주차장까지 다시 내려가서 쇼핑백들을 차 트렁크에 실어 놓고 다시 쇼핑을 할 정도로 많은 옷을 샀다.

그러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갔던 매장에서 하늘이가 결정을 했다.

“내일은 이렇게 입으면 되겠네.”

탈의실 문 앞에 붙어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옷매를 바로잡고 있는 내게 하늘이가 말했다.

다가온 하늘이는 날 옆으로 살짝 물러서게 한 뒤, 나와 자신을 거울에 함께 들어가게 만들었다.

“괜찮네. 내일은 이렇게 입어.”

확실히 나보다는 센스가 있네.

인정.

얇은 목 폴라 티에 짙은 밤색 골지 바지.

그 위로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희석시켜 줄 밝은 감색 바탕에 파란 줄 체크가 들어간 재킷.

적당히 나이에 맞는 느낌도 들고, 회사에서의 이미지를 유지시켜 주기도 하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내 옷만 사는 거야? 넌 내일 뭐 입을 건데?”

“나? 난 이렇게.”

하늘이는 일부러 자신이 선택한 옷에 나의 스타일을 맞추기 위해 내일 입을 옷을 입고 왔다고 말했다.

“넌 다 계획이 있구나?”

“이 정도야 기본이지.”

자신의 센스를 뽐내듯, 싱긋이 웃어 보이더니 입고 있던 흰색 바탕의 검은 줄 체크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는 그 재킷을 숄더 머플러처럼, 팔을 끼우지 않고 자신의 어깨에 둘러놓았다.

“이렇게. 어때? 괜찮아?”

“괜찮네.”

“손.”

“응?”

“손.”

손을 달라는 말인가 싶어 손을 주었더니, 그 손에 자기 손을 올려 깍지를 끼는 하늘이었다.

“아니야. 어색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한 번 저어 놓고 이번엔 자기 어깨에 팔을 둘러 보라고 했다.

“아니야, 이건 투 머치다. 그냥 내가 팔짱을 한번 껴 볼까?”

그렇게 탈의실 거울을 통해 내 손을 잡아 보고, 팔을 두르게 만들었던 하늘이는 자신이 내 팔짱을 껴 본 뒤, 이게 제일 자연스럽고 무난하겠다고 말했다.

“내일 우리 콘셉트는 이거야. 웃어 봐. 좀 자연스럽게. 그렇지. 이제 좀 사람 같네.”

* * *

전날 백화점 매장의 탈의실 거울 앞에서 연습을 했던 것처럼, 나와 하늘이는 팔짱을 낀 채 각자 샴페인 잔을 들고 연회장을 돌아다녔다.

작년 태산이의 생일 날 인사를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혹 이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는 상대가 나타나면, 하늘이가 팔짱을 끼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 신호를 보내 줬고.

연회장 군데군데 스탠딩 라운드 테이블을 세워 놓고, 그 위로 샴페인이 세팅된 파티였다.

가벼운 음식은 연회장 가 쪽으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 뷔페식으로 마련이 되었고.

게스트 거의 대부분이 커플로 참석을 한 자리.

한눈에 봐도 가까운 친구, 지인들의 모임이라고 하기보단 비즈니스적 인맥 쌓기 모임이었다.

족히 5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연회장 안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새로운 인맥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명함을 꺼내고, 상대의 명함을 챙기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뷔페 음식이 오픈이 되고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어머! 부사장님!”

내가 하늘이를 통해 만남이 이뤄지게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태영쇼핑의 구정진 부사장이 자신의 아내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나보다 먼저 구정진 부사장을 발견한 하늘이가 샴페인 잔을 들어 그쪽으로 아는 척을 했다.

곧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서비스 중이던 웨이터의 트레이에서 샴페인 잔 두 개를 덜어 낸 구정진 부사장은 잔 하나를 자신의 아내에게 건네준 뒤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저희가 빨리 도착하는 편인 줄 알았는데, 다들 벌써 와 계시네요.”

“아직 안 온 사람들 많아요. 편하게 얼굴이나 보자고 마련한 자리라니까요. 제가 소개부터 할까요? 이쪽은 오늘 제가 제 지인분들께 인사를 시키고 있는 손정훈.”

구정진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손정훈 상무님. 태영백화점의 구정진입니다.”

“손정훈입니다.”

악수를 할 줄 아는 친구였다.

의식적으로 힘을 과하게 넣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꽤 쓸 만한 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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