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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중요합니까? (192/303)

나이가 중요합니까?

태영쇼핑.

원래는 태영물산이었다.

그리고 기업의 배경을 보면 가죽 제품 관련 피혁을 다뤘던 기업이었고.

나와 태산이가 포목점으로 일어선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결이 조금은 다른 기업이라고 봐야 된다.

태영은 창업주가 기업의 토대만 만들었지, 거기에 건물을 짓고 지붕을 올린 건 지금의 태영쇼핑 회장 구봉학이니까.

구봉학이 이 친구가 참 대단한 친구다.

아니, 대단한 친구였다.

나보다 많이 젊은 친구인데,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근성을 가진 친구지.

내가 재경을 이끌 당시엔 태영이 아주 어중간한 기업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백화점 사업이라는 게 지금처럼 대기업들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을 하고 그 안에서 담합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지역 백화점 브랜드가 있었나.

태영백화점도 리베라, 태화, 극동, 삼풍, 홀리데인, 뉴코아, 라미르… 그런 지역 백화점 브랜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태영백화점에는 타 지역 백화점들과는 다른 피혁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던 것이고.

80년대 말, 90년대 초.

태영백화점이 무섭게 지점을 늘려 가던 시절이었지.

그 후 30년 세월에 대해선 인터넷을 통해 공부만 한 내용이니까,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태영이 무섭게 일어나던 그 초창기는 내가 정확하게 기억을 한다.

태영피혁에서 만들어 낸 여성용 모피, 무스탕이 당시 진도 모피, 가우디 모피와 더불어 국내 시장을 아예 싹쓸이를 했었다.

지금 젊은 친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면, 안 믿을 수도 있다.

3, 40년 전에 최상품 모피 하나에 당시 돈으로 2천만 원, 3천만 원 하던 게 없어서 못 팔던 때가 있었다고 하면 말이다.

당시 서울에 있는 주공 아파트, 도개공 아파트.

12평, 15평 기준으로 5천만 원 위로 올라가는 게 몇 개나 있었다고.

요즘 SNS 같은 데서 자기 부를 플렉스하는 사람들을 옛날 사람들이 욕할 게 못 된다.

옛날 사람들은 더했다.

집 한 채를 흔히 복부인이라고 불리던 정신 나간 사람들이 그냥 몸에 두르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

태영백화점이 몸집을 키워 내는 게 당시 내 눈에도 심상치가 않았고, 그래서 내가 직접 사람을 보내서 구봉학이 그 친구와의 자리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뵙기 어려운 분인데, 이렇게 먼저 자리를 제안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회장님.”

“보기 어렵긴, 뭐가 보기가 어려워요? 찾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허구헌 날, 여기 우리 장 전무하고 막거리 받아 놓고 장기나 두고 앉아 있는데.”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반짝반짝거리던 그 친구의 눈빛이.

본디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내게 없는 뭔가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귀는 걸 아주 귀하게 여겼다.

물론 태산이는 내가 모피 수입, 수출로 큰돈을 만지고 있는 태영 쪽 사람과 친분을 만드는 것에 큰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재경 쪽으로는 청와대 다이렉트 파이프가 있어서, 국정에 관한 크고 작은 내용들이 뉴스보다 최소 보름 이상씩은 먼저 들어오고 있었다.

모피 수입에 관한 규제를 걸겠다는 내용이 청와대로부터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재경백화점에 입점되어 있는 모피 브랜드들을 가능한 한 빨리 철수를 시키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의미였던 걸로 기억을 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 정보를 태영백화점 쪽으로 주고 싶었다.

“이렇게 또 한 번 회장님께 저희 태영이 큰 도움을 받습니다.”

“또 한 번? 나는 태영 구 회장님도 개인적으로는 모르고, 딱히 태영과는 사업적으로 엮인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왜 일전에 태국에서 들어왔던 악어가죽 관련해서 세관 쪽과 마찰이 있었을 때….”

“에이, 그건 이거랑은 조금 다른 거고. 아무 자원도 없는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지기 위해선 뭐라도 만들어서 외국에 갖다 팔아야 할 거 아니요. 그게 어디 물건이든, 기술이든, 사람이든. 수출 말고는 길이 없는 이 나라에서 기업이 기업다운 활동을 하기 위해선 나라가 지원은 못 해 줄망정 딴지는 걸지 말아야지. 그건 내가 태영이라서 힘을 썼던 게 아니라, 세관 일 보는 작자들이 너무 근시안적 사고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길래, 답답해서 사람 시켜 혼을 내 줬던 거요.”

지금 기준에선 내가 틀렸던 게 맞는다.

요즘은 환경 단체니, 동물 보호 협회니 하는 곳들에서 모피, 가죽 제품에 대한 클레임을 크게 걸고 있고, 실제 법으로도 강력한 규제가 들어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당시 기준에선 내가 옳았던 거다.

태영피혁이 원자재 가공 능력이 뛰어나서 동남아 쪽 악어, 물소 가죽들을 한국에 가져와 통가공을 해 유럽 쪽으로 엄청나게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태영피혁은 원재료 채협 쪽이 아니라, 가공 수출 쪽이라고 봐야 했다.

한국에서 무슨 수로 악어, 물소를 잡겠나.

한국에 없는데.

그런데도 세관 쪽에서 그걸 막아 대니까, 나는 답답했던 것이고.

그렇게 몇 차례 구봉학이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있던 차에 수감 생활을 하고 있던 장영자 때문에 피혁 게이트가 터지고, 그 직격탄을 태영피혁이 그대로 맞게 됐다.

이건 내가 태산이하고도 술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인데, 나는 그길로 태영이 쓰러질 줄 알았다.

물론 정치쟁이들, 법쟁이들 쪽으로 대신 손을 써 주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직격탄을 맞았는데 설마 다시 일어날까 했던 거지.

그런데 구봉학이가 태영의 멱살을 잡아끌어 올리네?

대단하다 싶었다.

그 근성은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썩어 빠진 사회 구조 속에서 기업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을 하겠지만, 초인적인 근성이었다.

물론 그 여파가 아직도 태영에 남아 있긴 하다.

태영 3세들의 배우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같이 정계, 법조계 가문과 짝을 지었다.

이게 내가 구봉학이 그 친구를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돈쟁이는 곁에 둬도, 정치쟁이, 법쟁이는 곁에 두면 안 되는 법이다.

발목이 잡히거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 정치쟁이들, 법쟁이들과 가족으로 엮이게 되면 더 그렇다.

정치챙이, 법쟁이는 곁에 두는 게 아니라 아래에 두고 돈으로 부리는 거다.

그렇게 해야만 뒤탈이 없다.

그런데 모피 게이트가 터지고, 가죽 만지는 거 말고는 딱히 사업적 능력이 없었던 자기 부친이 회장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소환 조사다 뭐다 하며 불려 다니고, 청문회에 불려 다니면서 몸은 몸대로 상하고 돈은 돈대로 뜯기다 보니, 그게 구봉학이에겐 노이로제가 됐던 게 틀림없다.

그 이유 말고는 그 현명하고 비상했던 친구가 정치쟁이, 법쟁이들과 사돈을 먹고 자기 손으로 태영쇼핑을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둘 수가 없는 거다.

나이도 들었을 것이고, 큰 기업 키워 나가다 보니 세상 풍파에 흔들려 판단력이 그만큼 흐려진 거라고 봐야지.

하지만 난 태영의 이런 배경을 우리 재경의 배경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정치쟁이, 법쟁이는 돈으로도 얼마든지 부릴 수 있긴 하나, 돈만으로는 부리지 못하는 간극이라는 건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 우리 재경에게 미래금융 다음으로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쪽이 어딘가를 곰곰이 따져 봤다.

동명물산?

많이 약하다.

아군은 맞지만, 그렇다고 든든한 아군까지는 아니다.

태영쇼핑 정도면 지금의 재경에겐 충분히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수가 있을 것이다.

* * *

구정진 태영백화점 부사장과 악수 인사를 나눈 후, 대략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하늘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내가 하늘이와 함께 오늘 자리의 호스트로 연회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구정진 부사장도 아내와 함께 자기 나름의 친목을 시도하는 모습이 틈틈이 내 눈에 잡혔다.

하지만 많이 버거워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서른아홉.

구정진 부사장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준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있는 편에 속했다.

결국 내가 하늘이를 통해 국영일보 사주 딸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구정진 부사장은 연회장 가쪽으로 군데군데 위치해 있던 소파 중 한 곳에 자기 아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순간을 하늘이가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녀석의 눈치와 센스를 내가 인정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가자.”

인사를 나누고 있던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하늘이는 내 팔을 잡아끌고서 구정진 부사장 내외가 앉아 있는 소파 쪽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식사는 좀 하셨어요?”

하늘이의 물음에 구정진 부사장은 샴페인 잔을 들어 보이며, 소화제로 마시고 있다는 농담을 건넸다.

그에 하늘이는 웃음을 숨긴다는 듯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는 요상한 여우짓을 선보이더니, 구정진의 아내에게 자기 지인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며 자연스럽게 나와 구정진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저는 이런 자리가 익숙지가 않아서요. 부사장님은 어떠세요?”

난 구정진의 아내가 앉아 있었던 자리로 앉았다.

“자리 자체는 크게 어색할 게 없는데, 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친구들 위주로 모이는 자리에 비해서 섞이는 게 쉽지가 않네요. 하하. 그런데 이런 자리를 종종 가지셨을 텐데, 어째서 익숙지가 않으실까요?”

“제가 사춘기를 길게 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먼저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마음을 열지.

“정신 못 차리고 방황을 했던 시기가 꽤 길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주위에 사람이 없네요. 하하.”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줄 시간, 진심 같은 게 아까워지신 거겠죠.”

“결국은 그런 거겠네요. 내 시간과 진심을 나눠 주면서까지 이어 나갈 인연은 아니었던 거 같으니까.”

“하늘 씨한테 오늘 자리에 참석을 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많이 당황을 했어요.”

“그러셨어요?”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참석을 해야죠. 하늘 씨가 제 결혼식에도 왔었거든요.”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하늘 씨 가까운 지인들을 모셔 놓고 가지는 파티 자리에 절 초대할 줄은 몰랐죠.”

“제가 부탁을 한번 드려 보라고 말했어요.”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결혼 전에 지인들과 인사 나누는 자리는 이게 끝이에요. 저는 딱히 부를 사람들도 없고 해서요. 그래서 오늘 이걸로 같이하자 그렇게 이야기가 됐는데, 마침 제가 부사장님 이야기를 하니까, 많이 가까운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저를 초대해 주신 이유라도 있을까요?”

“이유야 많죠. 앞으로 더 많은 이유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되기도 하고요.”

“……?”

마침 그 앞으로 웨이터가 지나가길래, 비어 있는 잔을 건네주고 새 샴페인 잔을 받았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런 기대로 작년에 제가 재경모직에 있었을 당시, 부경유통과 마찰을 일으켰을 때 저희 모직이 컨트롤 중이던 브랜드를 태영백화점이 좋은 매장 조건으로 받아 주셨던 거 아니었어요?”

“글쎄요? 그걸 손 상무님이 그렇게까지 좋게 해석을 해 주시면 저야 좋죠. 하지만 재경 쪽에서 던진 조건들이 우선적으로 너무 좋았죠.”

“그랬나요?”

“재경항공 관련해서 저희 면세점 쪽으로 그간 부경면세점에 줘 오던 마일리지 연계 포인트 혜택이라는 카드를 던졌잖아요. 그게 면세점 사업에선 무엇보다 큰 거였거든요.”

“그 정도 카드 때문에 20년 넘게 국내 백화점, 면세점, 아웃렛 시장을 양등분하고 있던 부경유통과 적대 관계에 설 결심을 할 수는 없었을 거 같은데요?”

곧바로 이어서 말했다.

“저희가 부경유통을 반으로 쪼개지 못했으면, 아주 불편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사업에는 리스크라는 게 항상 따를 수밖에 없는 거고, 때에 따라선 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해야 하는 결정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요.”

“태영쇼핑이 해 주신 과감한 결정 덕에 스너프가 지금의 오프라인 유통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데, 당연히 제가 부사장님이라도 오늘 자리에 초대를 했어야죠. 혹시 저희 재경과 태영이 꼭 부경유통 건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오래전부터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다는 거 알고 계세요?”

구정진 부사장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저는 저희 회장님 통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그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실제 있었던 일들이고, 또 어디까지가 저희 회장님의 지나간 세월 로망이었는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손중길 회장님이라고 하면, 사실 대한민국에선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 경영인 아닙니까. 거인이죠. 기업 경영 쪽으로 한 획을 그으셨던 분이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제 아버지와 친구 같은 막역한 사이였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선 제 아버지이고, 저희 회장님이시지만 사실 백 퍼센트 믿음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그저 개인적인 친분 정도는 있으셨겠죠. 모피 게이트로 제 할아버지가 검찰에 불려 다니고 하실 때, 손중길 회장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던 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요?”

“친구 같은 막역한 사이셨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할아버지가 구봉학 회장님의 사업 능력을 아주 높게 보셨고, 그래서 나이를 떠나 사업적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셨단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손중길 회장님께서 먼저 제 아버지한테 그런 호감을 가지셨단 말씀이세요?”

“저는 그렇게 들었는데요?”

“…누구한테요?”

“미래금융의 장태산 회장님이 그 당시 제 할아버지의 최측근이었지 않습니까.”

“…….”

“그리고 나이가 좀 어리면 어떻습니까? 사람 사귀는 데 사람이 중요하지, 나이가 중요합니까?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면… 저는 부사장님과 나이 때문에 아예 친해질 기회조차 없는 거겠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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