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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거다 (195/303)

진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거다

재경 그룹 본사 회장실.

식품 사장, 편승일이 손홍준 그룹 회장을 독대 중이었다.

“2천억?”

“실제 재무리스크팀에서 뽑은 예산 총안은 1,480억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100억 수준이었습니다.”

편 사장이 가져온 서류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손 회장이 물었다.

“동시에 스너프, 태영 유통 쪽으로 다 풀겠다는 거야? 지금껏 이런 케이스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 최소한 우린 없었고.”

“선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있을 수가 없지. 이게 도박이지, 어떻게 비즈니스야? 스너프, 태영 유통 다 합쳐서 동시에 74군데 매장을 오픈시키겠다? 그것도 다 본사 직영으로? 그렇게 돌리면 직원 운영은 가능한 건가?”

이미 편승일 사장은 손정훈 본부장에게 완벽하게 설득을 당해 있는 상태.

자신이 당한 설득을 그룹 회장에게 그대로 시도하는 편 사장이었다.

“시스템, 콘셉트, 메뉴. 이 삼박자가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게 쁘띠 기뿔리입니다. 기획은 마카롱 사업이 먼저였지만 아마 앞으로 3개월 정도는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예상 중이고요.”

“그런데?”

“매장 쪽에서 순차적인 직원 운영이 가능해질 걸로 예상됩니다.”

“순차적?”

“샘스핫도그 측은 이미 계약 최종 단계이고, 고비드 아이스크림 역시 지금은 그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협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선 쁘띠 기뿔리부터 한국 시장에 론칭을 시켜 놓고, 마카롱 사업이 현실화되면, 각 매장으로 파견 보낸 직원들을 다시 마카롱 업장 쪽으로 트랜스퍼를 시킬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샘스핫도그, 고비드 아이스크림도 론칭을 시킬 계획이고요.”

“그렇게 파견 보낸 직원들을 새 브랜드 론칭 업장 쪽으로 트랜스퍼를 시키면, 기존 브랜드 매장의 운영은 누가 하고?”

자신이 손정훈 본부장에게 던졌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받은 편승일 사장.

그 질문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풀어내던 손 본부장의 심정이 이랬을까?

“저희 식품 외식사업부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브랜드 확보, 론칭이 목표가 아니라 가맹 사업이 목표입니다.”

손홍준 회장은 묘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편승일 사장.

능력이 있는 인재임엔 틀림이 없다.

가장 젊은 사장이기도 하고, 식품의 원 맨으로 안정적인 경영을 수년째 유지시켜 내고 있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구력, 근성은 뛰어나지만 반대로 추진력이 폭발적인 리더 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손홍준 회장의 눈에 비치고 있는 편승일 사장의 모습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

2천억이라는 자체 투자가 필요하다고 자신을 찾아왔는데, 그간 식품 쪽에서 그룹 본사를 상대로 자체 투자 요청을 넣었던 게 과연 몇 번이나 있었나.

연구소 증축이나, 공장 설립에 관한 내용이 아니고서야 자체 투자 요청이 들어왔던 적이 없었다.

최소한 편승일이가 사장으로 앉은 뒤부터는.

내심 이 역시 정훈이가 만들어 낸 변화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손 회장이 물었다.

“브랜드 론칭을 동시 74군데에서 그것도 본사 직영으로 해 버리겠다면서 가맹 사업이 목표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성공시킨 브랜드가 아닌 성공시킨 매장을 예비 가맹점주들에게 팔겠다는 게 현재 식품 외식사업부의 계획입니다.”

손 회장은 팔을 뻗어 크리스털 재떨이를 자기 앞으로 가져다 놓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회장님의 흡연에 이미 만성이 되어 버린 편 사장이었기에 지금 현재 회장님께서 얼마나 해당 내용에 집중을 하고 계시는지 바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백화점, 아웃렛의 푸드 코트. 개인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일반적 로케이션에 비해 최소 2배 이상의 입점 비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걸 저희 식품 외식사업부에서 먼저 들어가 매출 기준치를 만들어 놓고, 그걸 매장 운영에 관심을 보이는 개인 사업자들에게 팔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어렵게 회삿돈, 회사 직원 박아서 매출 유지를 시켜 놓고, 그걸 판다? 무슨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해?”

“전국의 파리바게트 매장 수가 3,400개를 넘기고 있습니다. 2위 브랜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나 1,200개를 넘기고 있죠. 론칭 초기 스너프와 태영의 오프라인 유통판 쪽으로 집중시킬 매장 74곳은 그들의 매장 수를 뛰어넘기 위한 초기 마케팅 투자 비용일 뿐입니다. 예비 가맹점주들에게 사업 성공에 대한 근거를 뜬구름 잡기식의 확신으로 심어 주는 게 아닌, 정확한 매출 수치로 먼저 보여 주자는 거죠.”

“자신 있어?”

타고 있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놓고, 팔꿈치를 양쪽 무릎 위로 올리며 손 회장이 물었다.

“네. 자신 있습니다, 회장님.”

“2천억이야. 자네 모가지로도 감당이 안 되는 숫자라고. 진짜 그거 걸고 해야 해. 그래도 자신 있어?”

“네, 자신 있습니다.”

성공이 아닌 그 자신감을 보고 싶었던 손 회장이었다.

하지만 손 회장의 기대보다 한발 더 앞서가며 편 사장이 말했다.

“조금 전에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도박이라고.”

“흠….”

“아닙니다, 회장님. 이거 도박 아닙니다. 제가 손정훈 상무에게 물었습니다. 이 정도 투자 규모가 필요할 거 같으면, 저한테 이야기할 게 아니라, 회장님께 직접 말씀을 드려 보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요.”

“그랬더니?”

“브랜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조직 시스템을 깨뜨릴 수 있겠냐고 합니다.”

“…….”

“손정훈 상무의 기획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앞뒤 안 재고 통과시켜 회장님께 올리는 기획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랬었단 말인가?”

그 질문에 편 사장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의 역량을 개인 사업을 시도하는 사장들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지 못한다면, 그들을 상대로 하는 가맹 사업은 절대 성공을 시킬 수 없다는 게 손 상무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직원들의 역량을 개인 사업을 시도하는 사장들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게 무슨 뜻이야?”

“그간 식품 외식사업부에서 론칭시켰던 많은 브랜드. 그 브랜드로 가맹 사업을 진행해 나가기 위해 많은 직원이 필요했습니다. 맛 개발, 메뉴 개발 쪽의 연구원들부터 가맹 영업 직원, 서비스 스탠다드 QA 전문가, 로케이션에 따른 매장 운영 관리 컨설팅 전문가들까지.”

“…….”

“각개 분야에선 전문가들이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조직 생활에 특화된 인재들이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자기 사업에 뛰어든 자영업자의 경험은 없었던 겁니다. 그 당연한 부분을 그동안 저희가 간과했습니다.”

“크흠, 그, 그래서?”

“연구원들을 제외한 다른 외식사업부 직원들을 상대로 팀을 꾸려 초기 론칭 매장을 맡길 계획입니다. 물론 매장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도 과감하게 적용을 시켜서, 실제 그들이 자신들의 매장을 운영하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 생각이고요. 직원을 뽑는 부분부터 현장에서 일어날 돌발 상황들… 예비 가맹점주들이 겪게 될 어려움이나 재미 같은 것들을 정확하게 파악도록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그렇게 쁘띠 기뿔리부터 론칭을 시키고, 그 직원들을 데리고 마카롱 브랜드부터 핫도그 브랜드,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차례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론칭을 시키겠다?”

“네.”

어느새 다 타 버린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 속으로 비벼 끈 뒤 손 회장이 물었다.

“태영 쪽으로는 어떻게 전 지점에 매장을 약속받았어? 누가 한 거야? 모범태가 했어?”

그 질문에 편 사장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닙니다. 그것도… 손정훈 상무가 직접 받아 낸 겁니다.”

“그것도 정훈이가 했다?”

“…네.”

“알았어. 넘어가서 일 봐. 2천억. 준비시킬게.”

* * *

“네가 이 집은 또 어떻게 알고, 이걸 같이 먹으러 오자고 해?”

비즈니스적으로 정태한테 따로 할 말이 있긴 했는데, 그것보다는 밥을 한 끼 같이해 보고 싶었다.

불러서 나가고, 얻어만 먹어 봤지 내가 먼저 먹자 하고, 사 준 적은 없는 거 같아서.

내가 생각을 해 봐도, 여전히 나는 정태보다는 정엽이가 우선이고, 그래서 정태를 섭섭하게 만들고 있다는 미안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조 전무한테 물어봤지. 우리 손정태 사장님이 좋아하는 음식은 뭡니까… 하고.”

“그러니까 내가 대구뽈찜 이걸 좋아한다고 해?”

“아냐? 조 전무 말로는 이 집 뽈찜 좋아할 거라고 그러던데?”

한숨을 푹 내쉬어 놓고 정태가 말했다.

“그 양반이 그렇다. 그런 양반이야.”

“아니었어?”

“어디 뭐 내가 이걸 진짜로 좋아해서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겠냐? 자기가 쫀쫀한 생선 살을 좋아하니까, 이 집만 오면 밥도 좀 많이 먹는 거 같고, 내가 먼저 말 안 해도 술 한잔할 거냐고 물어도 봐 주고. 그래서 좋아한다고 했지, 그걸 또 내가 좋아해서 데리고 왔다는 식으로 말을 해? 하여튼 보면 항상 내 곁에 있었지만, 날 제일 외롭게 만들었던 양반이야, 그 양반이.”

“…….”

“그런데 이 집 잘하긴 잘해. 진짜 맛집은 맛집이야.”

이상하게 정태 이놈만 보면 정엽이를 보며 느끼는 짠함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짠함이 한 번씩 날 서글프게 만든다.

“대낮부터 술은 나도 부담스러운데, 이 집은 막걸리를 같이 곁들여야 해. 어떻게 할래? 괜찮겠어? 한잔할래?”

“한 통만 시켜서 나눠 마시면 되지. 막걸리가 어디 술인가, 소화제지. 사장님. 여기 막걸리부터 한 통 먼저 가져다주세요.”

아주 충격적인 비주얼의 대구뽈찜이 나왔다.

콩나물과 대구 대가리에 양념이 하나도 안 되어 있는 뽈찜.

이건 뽈찜이 아니라 대구 수육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재밌었던 건 간짜장이 나오는 것처럼 양념이 별개의 그릇에 따로 나왔는데, 이걸 취향껏 덜어서 비벼 먹는 식이라고 한다.

양념 이것도 참 특이한 게, 비비니까 콩나물도 그렇고 대구 대가리도 얼추 일반적인 대구뽈찜의 색깔을 만들어 내게 만들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형이 해 줄 테니까.”

어떻게 먹는 건지, 먹는 방법을 몰라서 우선 젓가락부터 들었더니, 내 손을 막아 세우며 정태가 직접 양념을 섞기 시작했다.

아주 능숙하게 비비는 게, 조 전무 말대로 이 집을 자주 오긴 자주 왔었나 보다.

적당히 양념을 고루 비벼 놓고, 내 앞접시 위로 굵은 대구뽈살 부위와 콩나물을 적당히 덜어 건네는 정태.

“형 고기 좋아한다. 소고기. 육회도 좋고 굽는 거, 수육. 다 좋아해.”

“당연히 알지.”

“알기는. 내가 항상 너 데리고 참치 먹으러 가고, 해산물 먹으러 다녔던 건 네가 날로 먹는 걸 좋아해서였고, 인마.”

“…….”

“이젠 나도 너랑 같이 뭐 먹을 때 너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새끼가, 그간 형이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완전 지멋대로야.”

식사를 하면서 이번엔 내가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하게는 구정진에 관한 이야기였지.

구정진을 통해 태영의 백화점, 아웃렛 전 매장 쪽으로 쁘띠 기뿔리를 넣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정태는 깜짝 놀랐다.

“그걸 스너프처럼, 전 매장에 자리를 확보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둘이 만나 본 적도 있다며?”

“누구? 아, 그 구정진 부사장?”

“어. 그러던데? 자기 아는 동생 결혼식에서도 본 적 있고….”

“나야 잘 알지. 형 학교 선배들이 다 구정진 부사장 친구 라인이야.”

“그렇다고 하더라.”

“사람 괜찮아. 아, 하늘이가 구정진 부사장하고도 친분이 있었구나. 사귀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야, 구정진 그 사람 정도면.”

“나도 나지만, 태영과의 관계는 스너프에서도 필요하지 않아?”

“지금도 나쁘지 않지. 어쨌거나 부경유통 쪼개는데, 결정적인 힘을 보태 준 파트너 아냐. 항공 쪽이랑도 긴밀해졌고.”

“구정진 부사장은 현재 우리 재경항공하고 자기네 면세점이 맺고 있는 제휴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거 같더라. 이젠 스너프에서도 면세점 운영을 하고 있잖아. 그 사람 걱정도 일리는 있지. 누가 봐도 팔은 안으로 굽어야 하는 거니까.”

“그걸 또 어떻게 그러냐. 제휴라는 게 어느 한쪽하고만 맺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만 있으면 항공 입장에서도 태영을 그대로 데리고 가면서 우리 스너프랑 추가 제휴를 맺는 게 훨씬 유리할 텐데. 그 부분은 내가 아버지랑도 이야기를 한 부분이고, 사장단 회의 때 항공 사장한테도 그렇게 가는 게 도의적으로 맞을 거 같다고 이야기를 다 해 놨어.”

막걸리 한 모금을 따로 해 놓고 정태한테 말했다.

“그 이야기를 구정진 부사장한테 직접 해 주는 게 어때?”

“무슨 이야기?”

“방금 했던 말.”

“아, 항공 쪽 제휴 관련된 내용?”

“어.”

“네가 하면 될 걸 왜 나한테 하라고 해? 라운딩도 같이 나갈 정도로 친해졌다며? 다음에 만날 일 있으면, 네가 은근슬쩍 이야기를 해 줘. 그런 건 오피셜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별로야. 사적인 자리에 사업 이야기 너무 깊게 끌고 가면, 관계 길게 못 이어 간다.”

“그래서 하는 말 아냐. 셋이 같이 한번 만나자고.”

“뭘 또 그렇게까지 해? 나까지 붙어서 우리 재경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모습 만들어 내는 건 별로야. 이제 우리 재경 그 정도 아니다. 태영이 유통에선 강자지만, 유통 말고는 없는 게 태영이기도 해. 나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놔야지, 안 그럼 나중에 피곤한 일 생길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무 의도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안 보여 주겠다고 그러는 거야. 내가 그 집 마트 사업 맡아서 하고 있는 사람을 꼭 만나 봐야 할 거 같거든.”

“태영마트? 구현애 사장?”

“어. 우리 가공식품들도 팔아야지. 우리가 직접 찢어 놔 놓고 부경마트 쪽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말할 순 없는 거 아냐. 우리가 먼저 자리를 마련하면, 그쪽에서도 자리를 마련하지 않겠어? 그게 보기가 좋지.”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전화해서 하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번거롭게 해?”

“태영 정도면 지금 우리 재경한테 아주 괜찮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지금처럼 계속 적만 만들다 보면, 결국 그게 다 부경이지만, 어쨌든 밖에서 보기에 우리 재경이 쌈닭처럼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태가 말했다.

“그럼 네가 자리를 한번 만들어 봐.”

“알았어. 내가 전화해서 그쪽 편한 시간 물어보고, 다시 연락 줄게.”

정말 뜻밖의 말이 정태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 자리라면… 네가 정엽이 형한테도 이야기를 한번 해 봐.”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언뜻 감이 안 잡혔다.

“뭘 그렇게 보냐? 왜? 내가 뭐 정엽이 형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잡아먹으면 잡아먹는 거고, 잡아먹히면 잡아먹히는 거지, 그걸 왜 내가 신경을 써?”

“구정진이 그 사람도 인맥이 좋아. 어쩌면 정엽이 형이 호텔 운영 정상화시키는 데 도움 되는 인맥들을 이어 줄 수도 있고.”

“…….”

“호텔 사업 되찾아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괜히 또 큰이모가 외삼촌들 꼬셔서 뻘짓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지분을 13퍼센트나 날로 뺏겼는데, 가만히 있겠냐? 속은 사이다 마신 것처럼 시원하지만, 사실 큰이모 입장에선 선 넘은 짓을 정엽이 형이 한 거지. 오해하지 마라.”

“오해? 무슨 오해?”

“내가 정엽이 형한테 5년 안에 호텔 사업 자기가 장담한 수준까지 못 올려놓으면 경영권 넘기겠단 각서 받아 놓은 거 알지? 그 정도 각서를 받았을 땐, 해 줘야 하는 지원 정도는 해 줘야지. 큰이모 상대로 지분 긁어 오는 거 보니까, 아예 맹물은 아닌 거 같고, 어쨌거나 우리 쪽 지분 비율을 단숨에 19퍼센트까지 올려놓은 부분에선 인정을 해 줘야지. 지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여기 한국이야. 혼자서는 힘들어. 꼴랑 호텔 사업 들고 아등바등하는 거 안쓰럽잖아.”

“마음이 여린 건가?”

“누가? 내가? 너 지금 막걸리 한 잔 먹여 놓고 사람 웃긴 거냐? 그리고 너도 그러고 싶은 거 아니야?”

“뭘?”

“너 정엽이 형 응원하고 있잖아.”

“응원을 그쪽으로만 하고 있을까?”

“이쪽으로도 하고 있다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뻥치시네. 나는 내 동생이 보내 준 응원 같은 건 구경을 해 본 역사가 없다, 이 자식아. 아무튼, 그렇게 해. 잘됐네. 소공동에서 보자고 해. 거기서 할아버지 술 같이 뜯어 주면 구정진 그 사람 감동 좀 받겠네. 어쨌든 우리 재경에선 스토리가 있는 술이니까.”

“그 술들이 그렇게 술하고 싸워서 이겨야겠단 작정을 하고 빨리 끝내야 하는 술들이 아니야. 진짜 쪼오금씩, 쬐에에에금씩, 모기 눈물만큼씩만 먹기에도 아까운 술들이라고.”

“술이 다 거기에서 거기지. 나는 그거 할아버지 술만 아니었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아. 나름 의미가 있는 술들이니까 챙기고 있는 거지.”

“아, 진짜 뭘 모르네. 그런 술들이 아니라니까….”

식사를 끝내고 카운터에서 내가 계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정태가 내 재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하는 거 형으로서 참 보기는 좋은데, 하늘이는 좀 챙겨 가면서 해라.”

“하늘이?”

“하늘이가 보기하고 다르게 마음이 넓어. 빠끔이처럼 굴어도 애가 착하다고. 원하는 게 있어서 혹은 너희 관계가 비즈니스적으로 어느 정도 엮여 있어서 너한테 다 맞춰 주는 게 아니야. 그렇게 살아온 애도 아닐 거고.”

직접 내 재킷의 깃을 바로잡아 주며 정태가 말을 이었다.

“그거 진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거다. 하늘이가 너한테 해 주는 거, 또 형이 널 챙기는 거. 누가 진짜 널 생각하는 사람인지 정도는 분간을 하라는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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