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303)

제이와이

새벽 5시 26분.

JK 드 누락 강남점 로비로 한 남성이 들어섰다.

통 넓은 남색 면바지에 밑창이 얇은 Y―3 스니커즈.

청재킷 안으로 받쳐 입은 검은색 모자 달린 후드 티 가슴 부근엔 흰색으로 선명한 아이다스 불꽃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만약 여기에 야구 모자라도 하나 눌러썼다면, 조금 전 로비 안으로 들어선 인물이 대표, 손정엽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제이와이.”

프런트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객실팀 대리 한 명이 부하 직원을 향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돌발 상황이 걸렸음을 인지시켰다.

제이와이.

JK 드 누락에서 손정엽은 직원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 약자를 딴 JY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손정엽으로, 외국인 운영자들 사이에선 미스터 손, 혹은 데미안으로 불리고 있지만, JY가 보편적인 그의 별명이 되어 있었다.

부하 직원에게 나이트 시프트 매니저에게 호출을 넣으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 놓고 객실팀 대리가 안내 데스크를 돌아 나왔다.

“대표님.”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혼자 오셨습니까?”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기지를 발휘해 내고 있는 객실팀 대리였다.

상황 판단 같은 건 나중에 해도 되는 일.

현재 객실팀 대리는 나이트 시프트 매니저가 현장으로 달려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JY를 붙들고 있을 명분을 만들어 내야 했다.

“네, 혼자 왔어요.”

“어떻게….”

“아침 식사 좀 하려고요.”

“조식 레스토랑은 6시부터 오픈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쪽 소파 자리에 잠시만 앉아 계시겠습니까? 제가 지금 바로 신문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객실팀 야간 근무조에 컨시어지가 있을 리는 없고, 아마도 객실팀 해당 시프트를 총괄하고 있는 인차지 정도로 보인다.

손정엽은 자신을 응대하는 객실팀 팀장의 노련함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점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직원들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는 기분.

자신을 응대함에 있어, 무리한 부담감보다는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유연함이 드디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문은 나중에 식사할 때 부탁드릴게요. 괜찮으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조식 오픈 준비를 어떻게 하나 구경을 좀 해 보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괜찮겠죠?”

이걸 어떻게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객실팀 팀장은 나이트 시프트 매니저가 도착하기 전까지 JY를 붙잡고 있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판단, 곧바로 조식 뷔페 레스토랑 쪽으로 직접 안내를 했다.

안내를 하면서도 눈짓으로 부하 직원에게 나이트 시프트 매니저에게 호출을 넣었느냐고 확인을 받았다.

그리고 손정엽 대표는 일부러 못 본 척을 했지만, 해당 직원들의 순발력과 돌발 상황 대처능력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베베베베~ 아라비안 베드 걸~

조식 뷔페 레스토랑.

호텔 로비, 프런트 데스크와는 불과 30여 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깔려 있던 호텔 로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손정엽 대표 앞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이 조식 뷔페 레스토랑에 퍼져 있었다.

총 세 명의 홀 직원이 주방 직원들과 함께 조식 뷔페를 준비 중에 있었는데, 홀에 울려 퍼지고 있는 최신 음악에 다들 어찌나 심취해 있었던지, 레스토랑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도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베베베베~ 아라비안 베드 걸~ 아나, 진짜 이 부분 제일 좋아. 너 유정이 이 부분 라이브로 하는 거 봤어?”

“저는 유정이 말고 키라 팬이거든요?”

“너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세븐걸즈에선 누가 뭐래도 유정이지.”

“제 취향은 캡틴님처럼 무난하지가 못해요. 난 특이한 게 좋거든. 이건 제가 마저 오픈시킬 테니까, 캡틴님은 이제 가서 포스기랑 커피 머신 오픈시키시죠?”

“누가 보면 네가 캡틴인 줄 알겠다.”

지금 레스토랑 안으로 누가 와 있는 줄도 모르고, F&B(식음료)팀 오픈조를 인차지하고 있던 캡틴은 아이돌 걸 그룹의 안무를 춰가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푸훕!”

애써 웃음을 참기 위해 콧구멍까지 벌렁거리고 있던 남자.

그의 옆으로는 객실팀 야간 인차지 대리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객실팀 팀장이 입 모양만 벙긋거리며 자신과 함께 있는 인물이 JY임을 알려 주는 순간 F&B 캡틴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대, 대표님….”

“춤을… 우와, 상당히 유연하시네요? 방금 그 스텝 그거 뭐였어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건가?”

그와 동시에 레스토랑 안으로 흐르고 있던 최신 가요가 뚝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호텔 로비와 똑같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아, 여기 음악을 이 안에서도 조절을 할 수 있는 거구나. 노래는 왜 바꿔요? 난 듣기 좋던데?”

천장 곳곳에 들어가 있는 음향 스피커를 둘러보며 손정엽 대표가 말했다.

그에 조식 오픈조 인차지를 하고 있던 캡틴은 사색이 된 얼굴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 이게 실은 조식 오픈이 여, 여섯 시부터라 그 전에는 사이니지로 레스토랑 입구를 막고 있기도 하고….”

“아, 그래서 오픈 전까지는 신나는 노래를 틀어 놓고 파이팅을 하고 계시는 거네요.”

그 말에 해당 캡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고, 해당 나이트 시프트 매니저도 그제야 돌발 상황 호출을 받고 부리나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어찌나 부리나케 뛰어왔던지, 손정엽 대표 앞으로 섰을 땐 호흡이 자기 마음대로 날뛰어서 헉헉거리는 모습을 숨길 수가 없었던 매니저였다.

“주형일 과장님?”

손정엽 대표는 매니저 재킷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이름표와 그의 얼굴을 차례대로 쳐다본 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나이트 시프트 인차지를 보고 계시는 거예요.”

“네. 헉, 헉….”

“아침밥 좀 먹으러 왔습니다. 그 전에 여기저기 둘러도 보고요.”

그렇게 말한 다음 자신을 이곳까지 안내해 준 객실팀 대리에게는 그만 돌아가서 자리를 지켜도 되지 않겠냐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레스토랑 인차지로 있던 캡틴은 눈앞이 캄캄했다.

짧은 면담 끝에 GM들을 그 자리에서 웃는 얼굴로 바로 해고 처리를 시켜 버린 사이코패스.

손정태가 재경 그룹 안에서 소시오패스라고 불린다면, 손정엽은 이곳 JK 드 누락 안에서 사이코패스로 불리고 있는 중이다.

“노래를 다시 바꾸지 그래요? 아직 6시 안 됐잖아요. 내가 들어 봐도 지금 이거보단 조금 전 그 노래가 훨씬 더 신나는 거 같은데요?”

“…네?”

“고객이 들어온 것도 아니고, 들어오면 또 뭐 어때요? 늘어지는 클래식보다는 산뜻한 최신 가요가 더 낫지 않나? 훨씬 더 경쾌하고. 오픈해서 고객들 받기 전까지는 플렉시블하게 하자고요. 아까처럼 춤도 좀 춰 가면서. 고마워요. 아침부터 기분 좋게 만들어 줘서. 캡틴님 완전 내 스타일. 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오픈 준비하세요. 저는 천천히 좀 둘러볼게요.”

“…네.”

“아 참, 조식 오픈조는 몇 시에 출근을 하는 거예요?”

“네 시 반 출근입니다.”

“그렇게 해서 몇 시에 퇴근이에요?”

“두 시 퇴근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네 시 반, 다섯 시 반, 여섯 시 반….”

“중간에 점심시간 한 시간 반 빼고 여덟 시간 근무입니다.”

“음… 알겠어요. 그럼 아침조는 몇 시 출근이에요? 조식을 이렇게 세 명이서 다 쳐 내지는 못할 거 아니에요.”

“아침조는 여덟 시 출근 다섯 시 퇴근입니다. 중간에 점심시간 한 시간 빼고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일 보세요.”

전날 미리 세팅을 끝낸 테이블들을 둘러본 후 손정엽 대표는 곧장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시프트 매니저가 딱 달라붙어서 함께 들어갔다.

다소 여유가 있었던 홀에 비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주방의 분위기.

시프트 매니저의 등장에도 간단한 목례 정도가 끝일 뿐, 누구 하나 다가와서 응대를 하려는 인물이 없었다.

“오픈 시간이 촉박해져서 다들 정신이 없습니다.”

손정엽 대표는 시프트 매니저가 해 주는 말 따윈 크게 귀담아듣지 않고, 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대형 세척기 쪽으로 향했다.

“아이고, 어제 큰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세척해야 하는 컵들이 담긴 렉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에, 시프트 매니저는 민망함을 애써 숨기며 대답했다.

“행사도 컸고, 술을 많이 마시는 팀이어서 스튜어드(식기·기물 세척)팀이 뷔페 음식까지만 정리를 하고 퇴근을 했습니다.”

“렉이 지금 몇 칸이야. 하나, 둘, 셋… 우와, 몇 명짜리 행사였어요?”

“320명 행사였습니다.”

“주류는 좀 나갔어요?”

“네, 라운드 테이블 하나당 와인 두 병씩 개런티로 계약했고, 추가 주류는 그쪽에서 가져오는 거 콜 케이지 차지 없이 그냥 서비스했습니다.”

“와인은 뭐 나갔는데요?”

“몬테스 알파 나갔습니다.”

“무슨 행사였는데요?”

“아우디 행사였습니다.”

“장사 괜찮게 했네. 저기 저 엘리베이터는 뭐예요?”

“스푼(직원 식당) 주방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아, 맞네. 맞겠네. 스푼이 이쪽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한번 내려가 봐도 되죠?”

“네, 물론이죠.”

그때부터는 시프트 매니저가 아예 앞장을 서서 손정엽 대표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크게 꼬투리를 잡힐 만한 건 없었다.

주방 백 사이드 쪽으로 전날 썼던 기물들이 보기 싫게 쌓여 있었던 건 어쩔 수 없는 부분.

설마 그런 부분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지는 않겠지?

손정엽 대표를 안내하면서도 시프트 매니저는 혼자 속으로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지난 한 달간 JK 드 누락에 불었던 피바람.

결국 그만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이유보다는 새로운 경영진이 경영권 강화를 위해 보여 준 퍼포먼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직원들 사이에 퍼져 있는 평가였다.

다행히 손정엽 대표가 겨눈 칼날을 아슬하게 비켜난 강남점.

시프트 매니저는 왜 하필이면 자신이 근무하는 시간에 대표가 암행을 해서 사람 피를 말리고 있는지, 모든 게 원망스럽기만 했다.

“지금 이 시간에 호텔에서 가장 바쁜 부대시설이 어딥니까?”

직원 식당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그 안에서 손정엽 대표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조식 레스토랑 빼고요.”

“조식 레스토랑을 포함한다고 해도, 딱 지금 이 시간에 가장 고객님들이 몰리는 곳은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입니다.”

“그럼 직원들 식당부터 구경을 한 다음에 그쪽으로 가 볼까요?”

“네.”

* * *

아침 7시 44분.

강남점의 GM 알폰트가 조식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식음료팀 과장을 통해 손정엽 대표가 앉아 있는 자리를 확인한 뒤, 자신이 마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부탁해 놓고 걸음을 서둘렀다.

“미스터 손.”

“오, 알폰트. 오늘 오프예요?”

“네, 미스터 손도 입고 계신 복장은 보니까 오프이신가 봅니다?”

놀랍게도 손정엽 대표의 입에선 유창한 독일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어와 불어는 기본, 거기에 영어와 독일어, 스페인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언어 능력은 이미 전 지점의 GM과 OM들을 상대로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저한테 오프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냥 오늘은 이렇게 입고 근무를 해 볼까 하는 거죠. 근데 진짜 미안해요. 오늘 오프인 줄 몰랐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온이든 오프이든 항상 이 시간에 내려옵니다.”

손정엽 대표의 자리 위로는 커피 잔과 요거트 볼, 먹다 만 샐러드가 담긴 작은 디저트 접시가 전부였다.

그 부분을 신경 써 보고 있던 알폰트에게 손정엽 대표가 물었다.

“근무하는 호텔에서 생활하는 거 안 불편하세요?”

“글쎄요? 거진 10년 넘게 근무지만 바뀌었지 항상 해 오던 생활 패턴이라 저는 익숙합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겁니다. 너무 한 공간에 오래 있다 보면, 사생활이 전혀 없을 수가 있으니까. 만약 알폰트가 원하신다면 소공동점이나 두촌점으로 객실을 따로 빼 드리려고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출퇴근에 시간 빼앗기지 않아도 되고, 전망도 좋고. 전 여기가 무척 좋습니다.”

“언제든 좋으니까, 마음 바뀌시면 편하게 말씀 주세요.”

조금 전 그 말은 알폰트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계약한 임기까지 앞으로 4개월 남았다.

물론 알폰트는 JK 드 누락과 연장 계약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상황이었고.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러 브랜드에서 OM을 거쳐, GM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국만큼 좋은 컨디션에서 생활을 해 본 적은 몇 번 없는 알폰트였다.

사계절 뚜렷하고 선진화된 문화, 그럼에도 유럽 쪽과 비교해 아직은 견딜 만한 생활 물가.

특히 한국에 들어와 새로 사귄 한국인 여자 친구와 교제를 조금 더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알폰트.”

“네, 미스터 손.”

“제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알폰트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객실 아큐파이, 평균 80퍼센트 유지. 이거 쉬운 거 아니거든요. 알폰트가 GM으로 오기 전까지는 시설적인 면에선 훨씬 더 새것이었을 건데도 불구하고 60퍼센트를 왔다 갔다 했어요.”

“네.”

“그런데 딱 작년 상반기부터 연평균 객실 아큐파이를 80퍼센트대로 유지를 하고 있어요. F/O(객실팀) 출신이죠?”

“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F&B(식음료)가 약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말한 다음, 손정엽 대표는 턱짓으로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고객들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호텔리어 경력 20년을 훌쩍 넘고 있는 알폰트의 눈엔 문제가 될 만한 모습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제가 장담하는데, 객실 아큐파이를 유지하면서 조식을 조금만 획기적으로 바꿔 내면, 이곳 강남점 토털 매출… 두 배까지 금방 끌어올릴 수 있어요.”

“두 배요? 객실 매출이 이미 맥스에 가까운데, 조식을 바꾼다고 토털 매출 두 배 장사가 가능하다는 건… 저는 어떤 시선으로 그렇게 보고 계시는 건지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렇다고 알폰트가 손정엽 대표의 경영 감각을 불신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호텔 경영 쪽으로 해박한 지식이 있다는 걸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호텔의 메인 장사는 객실 장사이고, 현재 강남점은 그 객실 장사로 맥스를 찍고 있는데 여기에서 두 배 매출 장사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손정엽 대표의 자신감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강남점 수영장, 피트니스의 아침 이용객 중 90퍼센트가 회원제 고객인 거 아시죠?”

“네.”

“객실 이용객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삶의 여유를 만들어 내는 자신들만의 확신한 루틴이 잡힌 사람들입니다. 새벽 5시, 그 이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

“그런 사람들이 아침 식사의 중요성을 모를까요? 그런데 왜 우리 수영장, 피트니스 회원들은 여기에서 운동은 하면서 아침 식사는 여기에서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의 수준만 이곳 조식 레스토랑이 맞춰 낼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이곳 스파 이용을 안 하겠습니까, 와인 바, 연회장 이용을 안 하겠습니까?”

그 말에 알폰트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식사 중인 고객들의 테이블을 확인했다.

“너무 한국이라는 나라의 로컬 스타일에 조식 메뉴가 맞춰져 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 부분에 신경을 썼던 게 사실이다.

JK 드 누락이 부경호텔이었을 시절, 그 당시 사업 총괄이 주문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메뉴는 많은데, 제 기준에선 먹을 게 없네요. 계란 요리 하나 정도? 그나마도 저니까 특별히 신경을 써서 준비를 해 준 요리였겠죠?”

손정엽 대표의 지적은 정확했다.

“조식에 핫 테이블(뜨거운 요리)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계란 요리 쪽에만 주방 직원이 두 명이나 붙어 있어요. 소시지, 베이컨 쪽으로도 한 명, 베이커리 쪽에 한 명, 면 요리 쪽으로도 한 명. 그런데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이 즐기는 콜드 테이블엔 아무도 없어요. 그냥 샐러드만 깔려 있고. 전형적인 코리안 스타일이죠.”

“네, 저도 처음 한국에 와서 다른 호텔들을 방문하는 동안 참 특이한 문화라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다른 지점과 달리, 이곳 강남점은 객실 이용객이 아닌 부대시설 이용객들로 더 많은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그걸 한 끗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 한 끗으로 정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강남점이란 말이죠.”

“…….”

“저렇게 뷔페 테이블에 주방 직원을 네 명, 다섯 명씩 스탠바이를 시킬 거라면, 차라리 콜드 테이블에 좀 더 신경을 쓰고 핫 테이블은 부분 알라카르테로 바꿔 보세요.”

“부분 알라카르테요?”

“뷔페의 장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알라카르테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기분. 저 같은 경우는 아침 식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먹지 않아요. 그건 아침, 새벽에 강남점의 수영장, 피트니스를 이용하는 고객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신다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우선 저는 아침에 오트밀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곳 뮤즐리는 그릭 요거트가 아니라 한국식 단 요거트로 맛을 내어서 저는 못 먹겠어요.”

알폰트는 손정엽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폰을 꺼냈다.

그리고 폰의 메모 기능으로 손정엽 대표가 해 주는 의견을 빠르게 옮겨 나갔다.

“퀄리티 좋은 올리브오일. 이만한 컵에 반잔씩 준비해 줄 수 있잖아요. 거기에 베리류 아무거나. 특히 저는 아침에 꼭 블루베리를 먹습니다. 그것도 냉동을 먹어요.”

“블루베리는 냉동이 프레쉬한 것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죠.”

“가격은 훨씬 싸고. 퀄리티 있는 올리브오일, 그릭 요거트에 탄 오트밀 뮤즐리, 거기에 블루베리와 아몬드 몇 알, 부드러운 계란 요리. 그런 식으로 식단 관리를 하는 고객들을 위한 알라카르테 메뉴를 만들어 보시라고요. 콜드 테이블은 샐러드 바 이용하듯 편하게 이용하면 되는 거고.”

“…….”

“지금 여기 조식은 시티 호텔 조식이 아니라 완전 휴양지 리조트 호텔 조식이에요. 강남점은 호텔 이용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찾는 지점이란 말이죠. 특별한 날에 찾는 고객들이 아니라. 뷔페라고 해서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그날 하루를 더부룩한 속으로 지내겠다는 고객들이 거의 없단 말이에요.”

확실한 피드백을 받은 알폰트의 얼굴에 명쾌한 표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로컬 스타일에 맞추는 것도 참 중요한 부분인데, 로컬 스타일이 스탠다드가 되어 버리면 그 호텔은 로컬용밖에 안 되는 거예요. 현지화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알폰트가 경험한 호텔의 모든 고급스러움을 이곳 조식 레스토랑에 다 적용을 시켜 보세요. 계약 7월에 끝나죠?”

“네.”

“다음 달까지 조식 레스토랑 업그레이드 가능하겠습니까?”

“다음 달까지요?”

“업그레이드시켜 놓고 재계약 관해서 알폰트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미안해요, 잠깐만요.”

뜬금없이 식탁 위로 올려져 있던 손정엽 대표의 폰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훈이>

폰 액정에 정훈이의 이름이 떴다.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출근했어?

“출근은 진작에 했지.”

―벌써?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게 호텔이야.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네가 전화를 다 하고.”

―혹시 내일 저녁에 약속 있어?

“내일? 아니? 아마 없을걸?”

―확실히 해야 해. 있어, 없어?

“뭐길래 이렇게 터프하게 물어?”

―태영백화점 알지?

“당연히 알지.”

―거기 부사장이 태영쇼핑 막내 아들이야.

“구정진 부사장? 그 위로 아들이 더 있어? 거긴 위로 다 딸이고, 아들은 구정진 부사장 하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어?

“인터넷. 태영쇼핑 그쪽은 연탄 봉사 같은 거 하면서 언론 플레이 꽤 하는 거 같던데? 근데 그 사람이 왜?”

―내일 시간 되면 같이 보자고. 내가 자리 만들기로 했어.

어쩔 수 없이 걸리는 존재.

“그런 자리라면 나 말고 정태한테 같이 가자고 해야지.”

―나올 거야.

“정태도?”

―어.

“나 부르는 거도 알아?”

―알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부르라고 했어. 그래서 전화하는 거고.

“정태가… 나도 부르라고 했다고?”

―손정엽 대표.

“왜?”

―왜 이렇게 시시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가?

“…….”

―방금 한 게 배려였어, 아님 눈치를 보는 거였어? 배려를 할 거면 뒤가 아닌 앞에서 하고, 눈치를 볼 거면 남한테 들키지 말고 혼자서 봐. 내일 시간 돼, 안 돼?

―너는 이 시키야, 맨날 그렇게 형을 가르치지? 어? 알았다. 나중에 시간하고 장소 정해지면 연락 줘.

“내일 7시, 소공동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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