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 이 순간부로 나의 개다
지난주부터 부경물산 쪽에서 계속 말 같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연락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중국산 명이에 관심이 있냐는 내용인 거 같은데, 명이나물로 뭘 어쩌자는 건지, 참….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명이는 그저 명분 깔기일 뿐이고, 그 명이를 가지고 우리 재경식품, 더 나아가 재경 그룹을 상대로 장선동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지금까지 부경물산에서 우리 쪽으로 이런 제안을 넣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아뇨,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고 하니까 나도 거절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부경유통을 시작으로, 올해는 부경호텔을 가져왔다.
그다음 타깃은 당연히 화학의 장선동이 차례.
그걸 눈치를 챘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하긴 아직 눈치를 못 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건가?
그래서 해 오는 접근이다 이거지?
공포스러울 거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내 사업에 찾아온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직접적으로 찾아왔을 땐 마음이 차분해진다.
위기가 눈앞에 왔다는 건 이미 늦었다는 말이니까.
반면에 내 사업에도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게 사업하는 사람들이 항상 싸 들어 메고 사는 가장 큰 공포다.
그런 공포를 내가 지금 선물해 주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몇 개 안 남았지?
물산, 화재, 건설.
그런데 이자라는 게 있으니까.
20년 세월이 훌쩍 넘었는데, 거기에 쌓인 이자가 얼마나 되겠나?
그 이자는 홍준이 놈을 대신해서 내가 받아 줘야지.
복수?
아니.
난 그런 거 안 한다.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그냥 부경의 모든 것을 다 가져와서, 우리 재경을 살찌우는 거름 정도로만 쓸 생각이다.
구매부를 통해 해당 내용을 보고 받아 나에게 전달한 재무이사에게 부경물산 쪽으로 전화를 넣어 보라고 했다.
내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어 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장민석이로부터 직접 전화가 걸려 왔다.
귀여운 놈.
내 그럴 줄 알았다.
명이나물은 뭔 놈의 명이나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지.
* * *
“그냥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니까. 별 내용 아니야.”
결국 장민석이가 식품 본사로 찾아왔다.
저녁에 같이 술을 한잔하자길래, 저녁엔 정엽이, 정태와 선약이 있다고 했더니 그럼 점심을 같이하자고 하는 거다.
그런데 점심 역시 모범태 전무와 선약이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비싼 척 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장민석이 이놈이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니까,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비싸게 굴어 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에 보자고 했잖아. 자기가 찾아와 놓고, 왜 나한테 그래? 그리고 대충 들어만 봐도 말 같잖은 내용이더니만, 뭐 한다고 말 같지도 않은 걸 사업이랍시고 우리 쪽에 제안을 넣고 그래? 제안 넣고, 받는 사람들만 중간에서 피곤하게.”
“설마 내가 오피셜하게 진행을 하라고 시켰겠냐? 식품 관련된 내용이니까, 너네 쪽으로 말이나 한번 넣어 보라고 했던 거지. 나도 자세하게는 잘 모르는 내용이야.”
내가 봤을 때 너는 그거뿐 아니라, 자세하게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우리 쪽 건설 중장비가 현재 중국에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몐양이라고 서부 개척 프로젝트 딱 중간에 물려 있는 사천 도시가 하나 있는데 작년부터 중장비를 그쪽으로 다 옮겨 놨거든.”
“그런 거 보면 참 용해.”
“용해? 뭐가?”
“요즘 뭐 한국 기업들 다 철수하는 분위기 아닌가? 그 와중에도 계속 그렇게 버티고 있는 거 보면 용하다는 뜻이야.”
“우리 쪽 중장비는 대체가 불가능하니까. 그쪽이라고 어쩔 수 있겠어?”
“그런데? 중장비 본진을 옮겼는데 거기에 뭐가 있어?”
“몐양 그 동네가 진짜 아예 다 산이야. 예전에 15년? 16년? 아무튼, 그 전쯤에 사천에 지진 한번 크게 났잖아.”
그건… 몰랐던 내용이네.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제일 피해가 심했던 동네가 그 동네였어. 도로, 주거 위주로는 복구를 빨리했는데, 나머지 산 쪽은 아예 손을 못 대고 있었던 곳이 많았나 봐. 그런 곳 중 한 곳을 우리가 찾아서 중장비 가라지(일종의 창고, 혹은 센터판)로 쓰고 있거든. 그런데 그 산이 진짜 웃긴다? 온 산이 다 명이야. 너 명이가 뭔지는 알지? 왜 고기 먹을 때 장아찌처럼 싸 먹는 거.”
“그것도 모르고 보자고 했을까.”
“아무튼 그게 지천에 깔려 있어. 근데 진짜 웃긴 게 이 명이나물을 먹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없는 거야. 다리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고, 하늘을 나는 건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 사람들도 명이나물은 안 먹는대. 그걸 사람들을 써서 다 쳐 낸다? 그냥 한국 벌초하는 식으로. 그걸 다 쳐 가지고 버리는 거야. 명이 그건 돼지 사료로도 못 쓴대.”
“그니까 그걸로 뭘 어떻게 하라고?”
“시설 크게 할 필요도 없어. 그냥 장아찌 담을 수 있는 공장 사이즈 정도? 어차피 우린 사람을 써서 그걸 다 쳐 내야 하고, 또 그걸 버리는 비용도 들거든. 너네 식품에서 거기에 작은 공장만 하나 차려서 바로 장아찌 처리를 해 버리면 되잖아. 그럼 너희는 돈 한 푼 안 들고 원재료 확보하는 거고, 우린 처리 비용 세이브가 가능하고.”
“그렇게 장아찌 처리를 해서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라?”
“너네는 그쪽 채널이 다양할 거 아냐. 직접 외식사업부도 돌리고 있으니까. 국내 삼겹살, 소고깃집에만 다 풀어도 그게 돈이 얼마겠어?”
말없이 한참을 쳐다봤다.
자기도 민망했겠지.
“왜? 별로야?”
갑자기 올라오는 호기심.
이걸 장민석이는 진짜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님 저 표정이 능청인 것일까?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예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마 진짜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라 애써 믿어 주고 있는 중이다.
난 일부러 녀석의 관심을 고맙게 받아 주는 모습을 보였다.
“돈 안 돼.”
“그렇겠지? 그럴 거야. 큰돈은 안 될 거야.”
“돈이 된다고 해도 우리 재경식품이 할 사업은 아닌 거 같고.”
“사이즈가 작긴 작지?”
“사이즈를 떠나서, 돼지 사료로도 못 쓰는 걸 돈 된다고 우리 재경이 사람들 먹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야, 그렇게 따지면 골뱅이는? 골뱅이, 홍어, 깻잎… 그거 다 한국 사람들만 먹지, 다른 나라에서 음식 취급이나 해 주냐?”
“그래도 우리가 할 사업은 아닌 거 같다. 암만 우리가 이것저것 다 만들어 팔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명이나물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니고, 돼지 사료로도 안 쓰는 걸로 돈 좀 만들어 보겠다고 그걸로 시장 개척하고, 기존에 먼저 들어가서 사업 하고 있는 자영업자들 짓누르는 거. 보기 안 좋아.”
“그러냐? 네가 별로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도 식품 쪽으로는 잘 모르니까. 근데 또 거기에 그런 소스가 천지에 널려 있다고 하고. 그 이야기 듣는 순간 바로 네가 식품에 와 있다는 게 떠오르는 거야. 그래서, 겸사겸사 물어나 보라고 했던 거지.”
멍석은 깔아 줄 수 있는 만큼 다 깔아 줬다.
“그리고 원래라면 이런 이야기는 너한테 하면 안 되는 건데, 안 만났다면 모를까, 너한테 이야기를 안 해 줄 수도 없고… 참, 형 입장이 좀 그렇네.”
말끝마다, 형, 형 하는 거 진짜 더럽게 거슬리네.
“실은 얼마 전에 작은아버지들, 그리고 고모가 집에 오셨어.”
당연히 그랬겠지.
“그래?”
“어. 너희 집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 특히 고모는 억울해서 죽으려고 하시지. 작은아버지 스타일 잘 알잖아. 작은아버지도 작은아버지대로 고모 못지않게 화가 많이 나셨고. 자기들 편 안 들어 준다고, 우리 아버지한테 역정들을 내고 돌아가셨다.”
“역정? 왜 뺨은 우리한테 맞고, 화풀이를 거기에서 해?”
최대한 녀석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도록, 그쪽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낸들 아냐? 물론 작은아버지들, 그리고 고모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네 말대로 뺨을 때린 쪽은 따로 있는데, 우리한테 와서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그럼 뭐 우리 아버지가 자기들 말만 듣고 작은고모한테 전화해서 대신 따져 주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이야? 정훈이 너는 잘 알잖아. 우리 아버지는 정말 정확하신 분이야.”
“그렇…지.”
“같은 부경의 이름을 쓴다고 다 같은 부경은 아니잖아, 솔직한 말로. 그리고 재경은 뭐 우리 가족 아니냐? 아버지도 그러시지만, 나도 실은 너희 집 쪽으로 더 정이 깊지, 나머지 작은아버지들, 혜선이 고모 집 쪽으로는 이상하게 정이 안 가. 자기들이 한 건 생각도 안 하고, 결과물만 가지고 와서 같이 싸워 달라고 하면, 우리 아버지 성격에 그러자고 하시겠냐고.”
“같이 싸워 달라고 해?”
“진짜 유치하지 않냐? 그 나이들 먹고 그러고들 싶을까, 진짜….”
사람을 부리는 법은 참 다양하다.
사람에 따라 부리는 법이 다 달라져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장민석이처럼 원초적인 인간 유형은 다루는 법이 무척 간단하다.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선 한없이 강해지는 유형.
이런 유형을 상대로는 그냥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한 놈이라는 걸 인지시켜 주기만 하면 끝.
“말만 들어서는 유치하네. 근데 설마하니 진짜 그랬을까?”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그랬겠냐니?”
“유치해도 너무 유치하잖아. 어떻게 자기 집 사업 안에선 회장님, 대표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못 지켜 내서 빼앗긴 걸 가지고 형네 집에 쪼르르 다 같이 달려가서 같이 싸워 달란 말을 해? 그리고 또 뭐? 자기들 편 안 들어 줬다고 역정을 내고 돌아갔다고?”
내 말에 장민석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막힌 숨을 토해 놓고 말했다.
“그럼 내가 지금 너한테 없는 말을 지어내서 하고 있단 뜻이야?”
“없는 말을 보탠 건지, 있는 말을 뺀 건지는 내가 알 수가 없지.”
답답해서 숨이 막힌다는 식으로 자기 가슴을 때려 가며 장민석이 말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너한테 없는 말을 지어내서 해, 인마.”
“원래 그런 거 잘하잖아. 즐기기도 하고.”
“뭐?”
하지만 난 여유를 보여 주기 위해 싱긋이 웃어 주고 있었다.
“아냐? 중간에 끼어서 이 사람, 저 사람 시비 붙이는 거 좋아하는 거 같더만.”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2년 전 결혼식장. 기억 안나?”
“그게 왜?”
“중간에서 우리 재경과 부경유통 싸움 붙여 놓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 말리는 척해 가며 즐기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엔 선한데? 그게 발단이었잖아. 우리 재경과 부경유통. 물론 자질구레한 감정이야 그 전부터도 쌓여 왔겠지만, 어쨌거나 그날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도화선에 불이 붙었던 거지.”
장민석은 자신의 결백을 보여 주기 위해 애써 기가 막힌다는 식의 표정을 만들어 냈다.
“너는 무슨 오해를 그렇게 악의적으로 하냐? 내가 돌아이야? 사이코패스냐고. 내가 왜 정태랑 민수를 시비 붙여?”
“나는 재경과 부경유통이라고 했지, 손정태, 장민수… 그 둘의 이름을 콕 집어내진 않았는데?”
“……!”
“엄밀히 말하면 내가 장민수 옷에 와인을 일부러 쏟으면서 터진 거지, 손정태 사장이 아니라. 그때는 많이 놀라더라. 내가 터뜨릴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어. 그 표정, 난 아직도 생생하게 다 기억해.”
자, 그럼 이제 지금부터 장민석이를 좀 부려 볼까?
“그런 표정을 내가 다 기억을 하는데, 형 말을 어떻게 믿어? 형이 나라면 믿을 수 있겠어? 내가 우리 회장님한테 말씀드려서 외삼촌들, 큰이모 쪽으로 뭐가 그렇게 섭섭해서 큰외삼촌 찾아가 같이 싸워 달라고 했는지 여쭤보라고 말씀드릴게.”
“…어?”
“나는 아니라고 믿는데, 그래도 혹시 알아? 정말 형 말대로 삼촌들, 이모가 형네 찾아가서 같이 싸워 달라고 했을지.”
“진짜라니까? 내가 왜 없는 말을 지어내냐?”
“그야 나는 모르지. 난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난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 다른 사람 통해서 하지도 않고, 명이나물 같은 말 같지도 않은 걸 핑계 삼아 이런 자리를 만들지도 않아.”
“…….”
“그러니 형처럼 속이 시꺼먼 사람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냐고. 나랑은 아예 다른 사람인데. 그냥 솔직하게 말을 해. 그게 어렵나?”
“뭘 솔직하게 말을 하란 거야?”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 이유부터 말을 해. 그래야 그 사람들이 형네 집에 찾아가서 그런 유치한 짓거리를 했다는 걸 내가 믿어 보는 시늉이라도 해 보지. 그게 맞는 순서 아냐?”
장민석이.
넌 지금 이 순간부로 나의 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