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
“차 좀 돌립시다.”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장 회장님 댁으로요.”
태산이가 수사 기관 쪽으로 자진 출두를 하기 전까지 나는 이 친구가 노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지.
검언유착.
검찰과 언론이 합세해 미래금융을 강하게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난 미래금융을 향한 장선길이의 보복성 계략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무엇 하나 명쾌하게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하늘이의 전화를 받고, 회사로 복귀 중이던 차를 태산이의 집으로 돌렸다.
혹시라도, 그간 재경을 떠나 미래금융을 키워 오면서 미래금융과 재경, 그리고 미래금융과 스너프, JK 드 누락 쪽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봐야만 했다.
지금 현재 미래금융은 우리 재경과 엮이지 않은 분야가 식품, 항공 외에는 없다.
모직 쪽으로는 하늘이가 홍준이 다음가는 대주주로 올라가 있는 상태이고, 스너프 쪽으로 뱅크 시스템 합작을 하며 넣은 투자금이 만만치 않다.
어디 그뿐인가.
JK 드 누락의 경영권을 잡은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잡혀 있는 미래금융의 지분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태산이를 직접 찾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확하게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잡혀 있는 미래금융의 지분에 무슨 불법이 숨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심만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하늘이의 말대로 영석이뿐 아니라 영우, 심지어 정엽이까지 함께 모여 있었다.
급한 작전 회의는 대충 마무리가 된 상태에서 내가 도착을 한 기분이었다.
“하늘이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내 말에 태산이는 약하게 인상을 쓰며, 마치 날 혼을 내듯 말했다.
“그런 전화를 받았으면, 여길 찾아올 게 아니라 하늘이부터 챙겼어야지.”
“그 정신에 저한테 전화를 줄 생각까지 하는데, 제가 챙기긴 뭘 챙기겠어요? 뭐예요. 검찰에서 다녀갔다면서요? 남의 사업장에 그렇게 사전 고지도 없이 불쑥불쑥 쳐들어가고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손 회장하고는 내가 조금 전에 통화를 잠깐 했다.”
말을 엄한 곳으로 돌리고 있는 태산이었다.
“정태한테도 이야기가 들어가긴 하겠지만, 혹시라도 너희끼리 자리할 일 있거들랑 의심하지 말고 버티라고만 해.”
“의심하지 말고 버텨라? 무슨 뜻입니까?”
태산이는 평소와 무척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내게 보여 주고 있는 이런 모습은, 함께 합당포에서 포목점을 열었을 때부터 시작해 재경을 일궈 내기까지 언제나 내 곁을 지켜 줬었던 태산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위기는 실패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다 한두 번쯤은 스쳐 지나가는 작은 시련일 뿐이야. 그걸 잘 넘기면, 그만큼 성장을 하는 거야. 내 죽기 전에 네놈들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거, 그것도 퍽 괜찮은 그림이 되지 싶다.”
“말을 좀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세요.”
“누가 지 할애비 성깔 그대로 물려받은 놈 아니랄까 봐, 그놈 성격하고는….”
“그간 약점 잡힐 일 해 온 거 있습니까?”
나도 이런 말 꺼내는 거 당연히 조심스럽지.
더군다나 태산이 자식 놈들이 다 있는 앞에서 한다는 건.
그런데 이 자리에 영석이, 영우는 물론이고 정엽이까지 불렀지 않나.
나는 내 맘대로 찾아간 거였지만, 자리의 분위기를 보아선 다들 태산이가 불러서 모인 모습인데.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는 사업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냐. 하물며 네 말대로 사전 고지도 없이 본사까지 쳐들어왔다는 건 뭔가 잡은 게 있다는 말일 것이고.”
“하, 참.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기업 표적 수사라는 건 일단 물어 놓고 명분을 찾는 거지, 명분을 만들어 와서 무는 게 아니야. 이미 물렸다 이 말이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까?”
“이미 물린 거 어쩌겠나. 조금이라도 덜 다치려면 물린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지.”
“…….”
“물라고 시킨 놈이 있을 거다.”
“부경통신이겠죠. 동부산 부지 건 시공사 입찰 공문 띄우자마자 터진 일이니까.”
“시킨 놈이 따로 있는데, 시켜서 물고 있는 놈한테 놓으라고 소리쳐 본들 그게 어디 먹히겠어?”
“제가 한번 만나 봅니까?”
태산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손 회장도 직접 한번 만나 보겠다고 하는 거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왜요?”
“이미 나는 물렸어. 그것도 꽤 아프게. 곧 언론에서도 때려 대기 시작할 거다. 당연히 우리 미래금융하고 상관있는 주식들 크게 요동칠 거고.”
“…….”
“이렇게 물려서 흉이 졌는데, 나만 다칠 수 있나.”
“어쩌시려고요?”
“지금부터 정훈이 네가 해 줘야 할 건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정엽이하고 같이 정태가 크게 안 흔들리도록 옆에서 잘 버티게 도와주는 거, 그리고 하늘이 챙기는 거 그거뿐이다.”
이 답답한 친구야.
나한테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 나한테.
이런 일에 나만큼 경험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하지만 태산이는 이미 자신만의 계획이 다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약점 잡힐 일 해 온 거 있느냐고 물었지?”
“네.”
“네 외가 사람들, 부경 놈들한테 이런 걸로 약점이 잡히도록은 미래금융 안 키워 왔어. 드모어 인베스트먼트도 마찬가지이고. 애초에 부경호텔을 다시 가져오겠다고 준비를 한 게 드모어 인베스트먼트다. 내가 네 외가 놈들 심보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약점 잡힐 일 해가며 드모어를 키웠을 리가 없지 않아. 아직도 나를 모르나. 그러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돌아가. 나는 준비해야 할 게 조금 있다.”
* * *
드모어 인베스트먼트가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이른바 ‘미래금융 게이트’라고 불리기 시작한 경제 이슈.
그 이슈의 정중앙에 드모어 인베스트먼트가 들어가 있었다.
검찰과 유착되어 있는 언론에서 막무가내로 뿌려 대기 시작한 정보들.
그 정보들은 수준 낮은 삼류 소설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으며, 동시에 아무런 개연성이 갖춰지지 않은 활자의 조합이었다.
그런 정보들에 열광을 하고, 흥분을 하며, 분노심을 느끼는 대중을 언론은 아주 효과적으로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을 가지고 노는 언론을 하수인 부리듯 하고 있던 인물.
장선길 부경통신 회장은 자신의 패드를 통해 미래금융에 대한 검찰의 압수 수색 영장이 떨어졌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다.
해당 이슈가 만들어지고 꼬박 사흘 만에 압수 수색 영장이 떨어진 것이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사람은 죽어야 해. 방탄조끼 입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총알이 알아서 다 피해가 줄 거라 믿은 건가? 크크큭….”
곧이어 미래금융 게이트와 가장 밀접하게 붙어 있는 스너프에 관한 기사가 패드에서 흘러나왔다.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인수 단 2년 만에 트래픽 비즈니스 플랫폼 업계 2위까지 올라섰고, 그에 그치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업계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던 스너프 성장에 강한 제동이 걸렸다는 기사였다.
그와 동시에 지난 2년 동안 스너프 플랫폼이 성공시킨 사업 모델 중 미래금융의 직간접적인 투자로 이뤄진 사업들이 나열되었다.
해당 기사를 보며, 기사를 만들어 쓴 인간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성의 없는 기사를 썼다며, 장선길 회장은 혼잣말을 흘리고 있었다.
바로 부경통신에서 빼앗긴 웹콘텐츠사업부 ‘노블레스’가 미래금융의 투자로 인수된 사업이라는, 사실과는 동떨어진 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는 장선길 회장이었다.
짧게라도 짚고 지나간 JK 드 누락 호텔 관련, 부경의 이름이 한번 나왔기 때문이다.
언론이라는 게 다루는 방식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번 미래금융 게이트에 부경의 이름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을 해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
부경의 이름이 등장을 하는 건 JK 드 누락으로 이름이 바뀐 부경호텔과 스너프 쪽으로 빼앗긴 부경의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사업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거기에 노블레스의 이름까지 더해져, 부경통신의 주가에 영향을 끼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장선길 회장의 가슴은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통쾌함과 동시에 검찰 쪽에서 재경, 그리고 미래금융을 확실하게 찢어발겨 주길 기대하는 마음.
― 속칭 페이퍼 컴퍼니라고 하는, 실체 없이 그저 서류상으로만 존재를 하는 기업. ‘제콤 컴퍼니’와 ‘레이밤 JC’가 바로 미래금융의 투자자들 돈을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옮긴 채널, 페이퍼 컴퍼니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콤 컴퍼니’와 ‘레이밤 JC’의 대표는 현 미래금융 회장인 장태산 씨의 차남 장영우 씨로, 이 두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넣은 투자금이 당시 환율 기준 한화로 43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그와 동시에 미래금융 장태산 회장이 수사 기관 쪽으로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장선길 회장의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부경화학 장선동 회장의 전화였다.
장선길은 형님의 이러한 무염치에 속으로 치를 떨면서도, 자신의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염치없는 형님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님이 어쩐 일이에요?”
―지금 뉴스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 형님 많이 한가하신 모양이네. 이 시간에 여유롭게 뉴스를 다 보시고, 그걸 말해 주겠다고 전화도 넣는 걸 보면 말이요. 무슨 뉴스요? 뭐 재밌는 일이라도 터졌어요? 같이 좀 압시다, 무슨 뉴스인데?”
하지만 장선길 회장의 예상과는 달리 형님의 목소리는 아주 무거웠다.
―너 이거 정리 잘해야 한다. 안 그럼 큰일 날 수 있어, 이거.
“뭘요?”
―이거 지금 네가 벌인 일이잖아. 선을 크게 넘었어. 이거 정리 제대로 못 하면 역풍 맞는다.
“역풍? 허! 역풍은 무슨. 역풍도 탈 게 더 남아야 무서운 거요. 이미 다 타고 있는 중인데, 역풍이 불어 본들 우리가 던진 불길이 돌아오기야 하겠소?”
―왜 우리야? 뭐가 우리야? 네가 한 거야, 네가.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혜선이, 똥오줌 못 가리는 선열이 꼬드겨서 벌인 일이라고! 우리 부경화학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야. 확실하게 해, 확실하게.
“뭐 잘못 드셨수? 아님 뭐 아가씨 달거리해? 이만한 일로 호들갑은….”
―이만한 일? 너 지금 이걸 이만한 일이라고 한 거야?
“그럼 뭐 이게 이만한 일이지, 엄청난 일이요? 진짜 엄청난 일은 내가 정태 자식한테 내 사업을 손도 못 써 보고 내준 게 엄청난 일이지, 삼촌이 조카 버르장머리 좀 고쳐 주겠다고 회초리 든 건 엄청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 아니요?”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온 형님의 한마디로 자신만만함을 뽐내던 장선길 회장은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너하고 나만 따로 불러서 하셨던 이야기 기억 못 하는 거야?
“…무슨 이야기요?”
―장태산 회장. 아버지가 그 양반을 두고 만호라고 말씀하셨다.
“…….”
―만호. 만년 묵은 여우. 손중길 회장 그늘에 가려져 세상에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재경의 안살림을 다 도맡아 해 왔던 양반이고 손중길 회장이 재경을 그렇게 키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장태산 회장이 그룹 전무로 있으면서 재경의 내실을 다져 냈기 때문이라고.
“그,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그 양반 눈감기 전까지는 미래금융 쪽이랑 엮이지도, 부딪치지도 말라고 하셨던 말씀 기억 안 나?
“차암… 이런 거 보면 우리 형님 겁 많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언제 적 장태산인데? 이젠 나이 구십 넘은 뒷골방 늙은이일 뿐이에요. 지팡이 없이는 혼자 자기 두 발로 걷지도 못해. 그런 양반이 뭘 할 수 있겠소? 어? 장영석이 부회장 자리에 앉혀 놓고, 자긴 집 밖으로는 나가지도 않으면서 회장질만 하고 있는 거 아니요. 그것도 진짜 하는 거겠소? 노망난 늙은이 조금이라도 정신 살아 있을 때 빨리빨리 자기 자리 넘겨주든가 안 하고, 그 회장 자리에 미련이 남아 계속 저러고 앉아 있는 거 아니요.”
―…….
“형님도 참 형님이요. 그래, 그 말을 아직까지 속에 담고 있었어요? 형님은 그 이유 때문에 그간 미래금융 쪽이랑 아예 왕래가 없었는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안이든, 밖이든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여기까지 불똥 안 튀게 해라. 내가 분명히 말했다. 이건 네가 한 거지, 우리 부경화학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