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뜨겁구나
태영마트의 구현애를 찾아갔다.
마치 내가 미래금융의 기자 회견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을 찾을 줄 알았던 사람처럼, 흔쾌히 약속을 잡아주었다.
“어서 와요. 좀 어때요? 회사 분위기 많이 안 좋죠?”
우리 재경식품 쪽으로 민망한 마음이 있을 거다.
미래금융 게이트가 터짐과 동시에 태영의 백화점, 아웃렛 쪽으로는 쁘띠 기뿔리 매장의 오픈이 보류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태영마트 쪽에서도 미리 잡혀 있던 우리 제품에 대한 프로모션들이 일제히 취소가 되고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 태영 쪽으로 컴플레인을 걸 수도 없었던 게, 그만큼 여론이 미래금융 게이트로 인해 우리 재경 쪽으로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태풍이 불 땐 배를 띄우는 법이 아니지.
우리 재경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그리고 태영의 입장에선 적절한 조치였다고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성급한 정치·경제 이슈 유튜버들, 렉카라는 친구들이 앞다투어 검증되지 않는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어 뿌려 댔고, 오히려 공중파, 편성 채널에서보다 더 집중적으로 해당 이슈를 다루다 보니 거기에서 파장된 기업 이미지 실추, 매출 감소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업이라는 게 아무리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지만, 의리만 가지고 해낼 수는 없는 게 사업이기도 하니 엄한 태영쇼핑 쪽으로 아쉬운 소리, 섭섭함을 표현할 수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모처럼 코끝에 고무 타는 위기의 냄새가 걸렸던 지난 한 주였다.
하지만 동시에 확신도 있었다.
태영 쪽에서도 우리 못지않게 하루빨리 상황이 역전되길 바라고 있을 거라는 확신.
정치쟁이들, 법쟁이들을 사돈으로 잡고 있는 구봉학이가 아닌가.
미래금융 게이트의 본질과 구성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내 예상대로 구현애 역시 자신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미래금융 측에서 능동적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는 모습에 무척 안도를 하며, 자신들이 협조를 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물어 왔다.
“부경마트를…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못 알아듣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구현애는 실눈을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내가 보이는 의지로부터 한발 뒤로 물러서려 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벌써부터 주고받기엔 퍽이나 부담스러운 결심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부경마트? 제가 제 시동생 통해 듣기로는 부경마트 쪽이 아니라, 부경통신 쪽이 이번 미래금융 게이트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거다, 청탁을 넣었을 거다…라고 하는 거 같던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장선길이 말고는 이렇게 간 큰 짓을 할 인물이 부경 쪽엔 없는 게 사실이니.
하지만 난 지금의 부경을 완전히 주저앉히기 위해선 우리 재경으로 인해 반토막이 난 부경유통, 즉 부경마트를 강하게 때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유통을 불통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생활 화학을 끼고 있는 장선동이의 부경화학까지 함께 발을 묶어 버리고 숨통을 막아 버릴 수 있는 거다.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조심해야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차마 이 젊은 얼굴을 해 가지고 구현애를 상대로 내가 홍명이, 홍준이 놈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쳤던 내 기업 철학을 읊어 댈 자신이 없었다.
자기 아들뻘밖에 안 되는 젊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우습고 같잖게 느껴질까 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던 거 같다.
“그 두 가지가 뭔가요?”
“인과응보, 그리고 자업자득.”
“인과응보, 자업자득?”
“네, 사업이라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듯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모든 건 결국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뜻이겠죠. 누군가가 제게 똥을 던졌다면, 똥을 던진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 이유를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내 몸에 묻은 똥을 상대방에게 똑같이 던져 주겠다고 하면 결국은 제 손에도 그 똥이 묻는 거겠죠.”
“흠….”
“제 손에 똥이 묻는 게 무서워서 제 몸에 똥을 묻힌 상대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겠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어차피 몸에 묻었든 손에 묻었든 똥은 묻은 건데 목욕을 해야죠.”
“그럼요?”
“남에게 똥을 묻힌 그 사람에겐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똥을 묻혀 줄 거라고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현애는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다시 커피 잔을 들었다.
“살짝 의외네요. 미래금융이 만들었던 기자 회견. 그 기자 회견이 저는 어쩌면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보고 있었는데, 액셀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겠다는 뜻인가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건 아니지만, 제가 손 상무님을 만난 이후로 가장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주고 계시네요. 아직 부경통신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정도로 제가 이해를 하면 될까요?”
그 질문에 난 가벼운 웃음을 흘려 주었다.
“장사꾼은 장사를 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상황이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역전이 되고 있는데, 이런 절호의 찬스를 고작 똥이나 던질 줄 아는 인간들 때문에 놓친다는 건 장사꾼의 자질이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더 되겠습니까?”
다시 한번 눈매가 가늘어지는 구현애였다.
“미래금융 기자 회견 한 번으로 지금 난립니다.”
“네. 더 많이 시끄러워질 거 같아요.”
“이미 미래금융이 손에 똥을 묻혔죠. 거기에 저희 재경까지 거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미래금융이 보여 준 의지를 믿기 때문에 함께 네거티브를 하기보다는 재경의 실속을 챙기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는 장사다?”
“남는 장사를 해야죠, 저는 장사꾼이니까요. 장사꾼이 실속도 따져 보지 않고 제 기분대로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제 기분 하나에 재경식품 전 직원의 밥줄을 위협받게 만든다면, 전 자격이 없는 경영인인 거죠."
커피 한 모금.
잔을 다시 우아하게 내려놓고 구현애가 내게 물었다.
“제가 계속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버릇이 있어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고, 그래서 확신이 서기 전에는 쉽게 움직이지도 않죠.”
“대표라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경마트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정확하게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외국계 브랜드가 새롭게 들어오지 않는 이상, 한국의 대형 마트 시장은 결국 태영과 부경, 이렇게 양강 구도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현재 저희 재경 식품은 한쪽 유통판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깝죠. 물론 유통이 온라인 기반으로 다양화되면서 가공제품 판매량의 50퍼센트 이상을 인터넷 채널 쪽에서 책임져 주고 있긴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판은 그 자체로도 브랜드 노출, 홍보라는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종목이니까요.”
“그래서요?”
“앞으로는 부경이 아닌 저희 재경과 그 양강 구도를 만들어 가는 게 태영 입장에서도 더 건설적이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구현애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오히려 저는 부경이 아닌 재경이 경쟁사가 되어 버리면 아주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아질 거 같은데요?”
“어떤 부분에서요?”
“과연 재경이 마트 유통까지 잡게 되면, 현재 재경식품에서 생산해 내는 가공품들이 우리 태영마트 쪽으로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들어올까부터가 의문이네요.”
협상을 통해 약속을 받아 내겠다는 게 아닌, 약속부터 받아 놓고 협상을 시도해 보겠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다.
확실히 구봉학이가 법쟁이, 정치쟁이들을 사돈으로 둔 부분을 제외하고는 자식들 사업 교육까지도 흠잡을 곳 없이 잘 시켜 놓았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실까요? 저는 반대로 저희 재경이 식품이라는 종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경과 태영이 마트 사업 쪽에서도 아주 건강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런 자신감이 저한테도 필요한 거죠.”
“아쉽습니다.”
“뭐가요?”
“그동안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충분히 저희 재경식품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 드리고, 설명을 드렸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금방 말씀드렸잖아요. 계속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버릇이 있다고.”
“그 확인을 앞으로도 제가 계속 시켜 드려야 하는 거라면 저도 힘들죠.”
“혹시 제가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건가요?”
“제가 대표님 눈에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나 봅니다.”
“……?”
“미래금융 게이트로 인해 현재 저희 재경이 보고 있는 피해에 대해서요.”
내 말에 구현애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빠르게 인정했다.
“이슈가 터지고 일부러 먼저 연락을 안 드렸죠. 혹시라도 제 연락이 대표님 사업하시는 데 괜한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서요. 미래금융에서 한 기자 회견을 보고 나니까 지금쯤이면 잠시 막혀 있던 사업을 천천히 다시 풀어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을 드리고 찾아왔던 겁니다.”
“…….”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죠. 똥 묻은 기업 이미지, 폭락한 주가, 박살이 난 매출… 그것들을 다시 회복을 해야 하니까요. 저희 재경은 태영을 파트너를 넘어 아군이라고까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태영은 저를 상대로 구걸을 원하시는 거 같습니다.”
“아니에요. 무슨 소릴! 괜히 그런 오해하지 말아요. 나 그렇게 사업 주책맞게 하는 사람 아니니까. 미안해요. 실은 저희 아버지가 손 회장님께 전화를 드리셨다네요.”
벌써?
“이야기 들었어요?”
“아뇨, 지금 처음 듣는 내용이네요.”
“저희 쪽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연락을 드리셨대요.”
“저희 회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답니까?”
“재경 쪽으로 들어온 타격 정도는 얼마든지 빠르게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을 하는데, 미래금융이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에요. 그렇겠죠. 사돈이 될 집안이니까. 그 전부터도 두 집안은 깊은 인연이 있어 왔고. 저희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넣으셔서 도울 게 없냐고 물으셨다 보니, 조금은 편하게 부탁을 하셨던 거 같아요. 검찰 쪽으로는 재경에서도 충분히 손을 넣어 볼 수 있겠지만, 해당 이슈에 함께 걸려 있는 만큼, 재경이 아닌 제삼자가 줄을 대어 주는 게 좋을 거 같다면서.”
잘했다.
그래, 그렇게 풀어 가야 맞는 거다.
이건 우리 재경이 중심에 서서는 절대 풀 수가 없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부경은 홍준이의 처가.
장혜란이의 형제들이다.
자칫 흉측한 집안싸움으로 프레임이 씌워질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집안싸움으로 엮이는 순간 부경은 다시 한번 빠져나갈 구멍이라는 게 생기게 된다.
“제가 오늘 우리 손 상무님과 약속이 잡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런 전화 통화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시네요. 저는 반대로 사안이 작지 않은 건이라 아버지 생각과 반대되는 결정을 제가 하게 될 거 같아, 미리 전화를 드려서 손 상무님과 약속을 잡았다는 걸 말씀드린 건데 말이죠.”
“그렇군요.”
“저희 아버지가 검찰 쪽으로 손을 쓰는 순간, 우리 태영은 재경과 아주 큰 걸 나누게 되는 거죠. 그 나눔이 우리 태영이 재경에게 보내는 일방적인 호의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계속 그렇게 물어봤던 거예요. 확인을 받고 싶었으니까.”
“…….”
“그런데 주책이었네. 손 상무님 말대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해 보이셔서 지금 재경의 상황을 깜빡했어요. 내 실수. 미안해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결국 구현애의 입에서 먼저 우리 재경식품 쪽으로 태영마트가 해 줄 수 있는 지원의 종류가 흘러나왔다.
“프로모션이 꽤 길게 미뤄지고 있었죠?”
“어쩔 수 없었죠.”
“재경식품 특별전을 따로 기획해 볼게요.”
“특별전이요? 마트에서도 그런 걸 합니까?”
“못 할 이유는 없죠? 여론 방향만 확실하게 기울어진다면, 우리 태영마트 쪽으로도 반사 이익이 크게 잡힐 거예요. 그리고 편의점 쪽에서도 집중 프로모션을 기획해 보도록 할게요. 편의점에서는 묶음 판매 아이템들이 가장 큰 효과를 보여 주니까, 자체 도시락하고 같이 묶을 수 있는 음료나 유제품 위주, 재경식품 쪽 컵라면 위주로 집중 프로모션을 기획해 보라고 할게요.”
“그럼 저는 행사 제품 위주로 태영마트, 편의점 쪽과 단가 조절을 최대한 유연하게 진행하게끔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태영과 손을 잡고 부경마트만 공격을 하면 된다.
우리가 태영마트와 손을 잡는 순간 장선동이의 부경화학은 유통판의 절반을 잃게 될 것이다.
부경마트 공략만 제대로 해내면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여론은 우리 재경과 미래금융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봉학이가 검찰 쪽으로 손을 대어 주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 왔다고 하니, 우리 재경과 태영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어설프게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언론만 적절하게 잘 이용을 하면 태산이가 장선길이의 목줄을 쥐어 짜내는 것도, 내가 식품을 등에 업고 장선열이의 부경마트를 압박해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장혜란이.
지금부터 잘 지켜보거라.
너와 네 친정 식구들이 찢어발겨 놓은 나의 재경.
그 재경에서 네 두 아들이 어떻게 네 형제들, 그리고 부경을 철저하게 찢어발겨 놓을지.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뜨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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