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303)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질일 테니까

―속보입니다. 현 부경통신 장선길 회장이 그의 운전기사인 정 모 씨를 상대로 상습적인 폭행을 가해 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취재 기자의 짧은 설명 뒤로 녹음된 파일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야이, 새끼야.

탁, 탁! 하고 폭행이 가해지는 소리.

―누가. 운전을. 그따구로. 하라고 했어? 아까 브레이크 왜 잡았어?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피해자의 음성은 신변 보호를 위함인지 음성 변조가 되어 있었다.

―내가. 너 같은 새끼한테. 왜. 내 피 같은 돈을. 월급으로. 줘야 하는 거냐고.

좀 더 과격해진 폭행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타격음이 묵직해지고 있었다.

퍽!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대답 안 하지? 어?

다시 한번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타격음.

퍽!

―대답 안 해?

할 말이 없었다.

충격적이라는 표현만 가지고는 해당 뉴스를 제대로 처음 접한 나의 기분을 다 설명하기엔 크게 부족했다.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접했던 뉴스가 아니다.

뉴스를 통해 세상에 공개가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내용.

그럼에도 상대를 깔보고, 그 위로 신처럼 군림하는 듯한 말투며,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타격음은 내 심장을 너무 격렬하게 뛰도록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인지.

물론 더 거짓말 같은 사건들이 수시로 터져 나오고는 있지만, 일개 기업의 회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인간이, 그 기업의 직원을 상대로 저만큼 동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너무 큰 충격을 받게 만들고 있었다.

―정 모 씨는 금일 오전 11시 장선길 회장에 대한 상습적인 폭행 건으로 녹음 파일과 폭행 직후 증거물로 남겨 놓은 피해 사진, 진단서 등을 첨부해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상습 폭행에 대한 더 많은 녹음 파일과 증거물이 수집되었지만, 그 증거물들 상당수에 장선길 회장이 현 미래금융 게이트 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다수 포착되어 언론에 공개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양해를 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민선 기자.

―네.

―조금 전 부경통신의 장선길 회장이 현 미래금융 게이트 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다소 포착되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을 해 주시죠.

―네. 현재 검찰 쪽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선 정황이 다소 포착되었다는 내용 외엔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래금융에 대한 검찰의 압수 수색에 관해 그동안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졌는데요. 그럼에도 장태산 미래금융 회장이 검찰 측의 소환 명령이 있기 전 자진 출두를 해서 조사를 받고, 공개 기자 회견을 열어 입장을 공개하는 동안 이렇다 할 수사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랬죠.

―그 부분에 있어 많은 국민분들께서 검찰 측의 기업 죽이기식 표적 수사다, 아니다 하는 식으로 의견이 분분하게 갈려 왔었는데요. 조금 전 검찰 측에서 공개한 장선길 회장 폭행 혐의와 거기에서 파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 미래금융 게이트 조작 의혹이 미래금융 게이트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녹음 파일이 여러 개 된다고 들었는데, 차례대로 터뜨리겠다는 말이 되는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역풍이 일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한 거다.

됐다.

드디어 준비한 것들을 본격적으로 퍼부어 볼 때가 됐다.

뉴스 속보를 확인한 뒤 곧바로 강인성 차장을 호출했다.

“정식 언론 쪽은 태영쇼핑 쪽에서 방향을 잡아 주기로 했어요.”

“네.”

“증권가 찌라시는 미래금융에서 적당히 조절해 가며 순차적으로 풀 거고. 우린 거기에 제대로 된 기름만 좀 부어 줍시다. 바람은 벌써 우리 편인 거 같으니까. 정치, 경제, 이슈 쪽 유튜브 채널들 지금쯤이면 서로 새로운 뉴스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겠죠?”

“네.”

“우리 재경, 그리고 미래금융과 부경에 관한 히스토리, 그 히스토리를 통해 어째서 부경이 우리 재경과 미래금융을 상대로 그런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는지 양념 적당히 쳐서 흘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 태영마트 구 대표님 만나러 갈 거니까, 저 신경 쓰지 말고 밑 작업 잘 좀 해 놓으세요. 진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속담이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는 거예요.”

“그룹 본사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겁니까?”

“설마요. 뭐라도 하겠죠. 근데 지금은 우리가 그런 거까지 일일이 다 체크해 가며 움직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뭘 하든 다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질일 테니까.”

* * *

기업 저격수로 통하는 반부패수사부 최민성 검사가 차장 검사실을 찾았다.

차기 검사장 진급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인물.

부장 검사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 1호로 불릴 정도로 칼같은 인물이다.

“앉지.”

하지만 최민성 검사는 선배 부장 검사들이 피해 다니는 차장 검사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어 있지 않았다.

“미래금융 게이트에서 손을 털고 싶어 한다고?”

“애초에 손을 안 대고 싶어 했던 거 아시지 않습니까.”

“진짜 아예 아무것도 안 나와?”

“오류투성이 수사 건입니다.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사건이에요. 이러니 수사권 관련해서 검찰 개혁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거 아닙니까.”

“세상 참 좋아졌다. 그게 지금 네가 내 앞에서 할 소리야?”

“정말로 좋은 세상이 좀 왔으면 좋겠네요. 그런 날이 오면 진짜 사건다운 사건에만 집중을 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네가 이순신이야? 이길 수 있는 싸움에만 나가게.”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싸워야 하는 상대하고만 싸우겠다는 겁니다. 미래금융 게이트. 도대체 어느 선까지 관여가 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먼지를 갖다 붙여서라도 털어야 하는 수사 건 아닙니까? 아무리 갖다 붙이려고 해도 붙이면 떨어지고, 붙이면 떨어지고… 이 정도면 제가 지금 미래금융 상대로 깡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야죠.”

소파에 앉아 있는 최민성 검사를 상대로, 여전히 사무 책상 의자에 등을 깊게 묻은 채 차장 검사가 물었다.

“확실해?”

“뭐가요?”

“먼지 말이야. 진짜 제대로 붙여 보기나 했나?”

“본드로 갖다 붙인 먼지가 턴다고 털어지겠습니까?”

차장 검사가 사무 책상 위로 소형 녹음기를 올려놓았다.

터치 버튼으로 재생을 시키자, 놀랍게도 그 녹음기에서는 최민성 검사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조금씩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지고 그래서 소신, 양심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게 바로 이 세상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현명해지는 게 사람이지. 검사 이름이 뭐냐고요. 최민성?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최민성 검사는 소파에서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랐고, 차장 검사는 더 이상 들을 필요는 없다는 듯 재빨리 녹음기 종료 버튼을 눌렀다.

“뭐, 뭡니까, 지금 이거?”

“목소리 주인은 누군지 알겠지?”

“장선길 회장 아닙니까?”

“밖에서 따로 만난 적 있냐?”

“선배님!”

이런 확실한 반응이 차장 검사에겐 반드시 필요했다.

최 검사를 의심했던 건 아니다.

그런 융통성이 있는 친구였던가.

융통성과 조금이라도 친한 친구였다면, 진즉에 반부패수사부를 떠났어야지.

“너 인마, 이거 지금 더럽게 엮인 거야.”

“진짜 이러시기입니까?”

“뭐가 또?”

“통일IC 수사 준비 다 끝내 놓고 영장 발부 기다리고 있던 사람한테 뜬금없이 미래금융 게이트를 떠넘겨 놓고, 이제 와서 장선길 회장을 밖에서 따로 만난 적이 있냐고 묻는 건 뭐고, 또 더럽게 엮였다는 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시는 겁니까?”

“야, 인마. 입을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그랬어. 미래금융 게이트를 내가 너한테 떠넘겼냐?”

“누가 떠넘겼든요!”

“나는 그거 우리가 받으면 안 된다고 끝까지 뻗댔던 사람이다.”

그걸 최민성 검사라고 왜 모를까.

“처음부터 부패3부가 아니라 너한테 떨어질 수사 건이었고, 그걸 어떻게든 3부로 돌렸던 게 나였다고.”

최민성 검사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그 속을 알 수 없는 차장 검사를 빤히 쳐다만 봤다.

“해명법률사무소가 움직였다. 그쪽에서 장선길 회장 운전기사의 고소장을 모두 준비해서 함께 제출을 했단다. 해명이 돈 안 되는 기업 사건 맡는 거 본 적 있어? 이거 지금 판 엄청 커지고 있는 거야.”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전 딱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습니다. 이미 다 한 거 같긴 한데, 기간을 채우는 것도 역할이니까. 더는 나올 거 없습니다. 최소한 제가 잡은 기조 안에서는요.”

“해명에서 가지고 온 증거물이야. 이걸 어떻게 할 거야? 이유야 어쨌든 네 이름이 나왔는데.”

“X…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뭐요? 또 부를 때까지 지방에 내려가 있으라고요? 이번엔 또 어디에 짱박혀 있다가 올라올까요? 부산, 대구 다 찍었으니까 이번엔 광주?”

“부경통신.”

차장 검사의 입에서 부경통신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최민성 검사의 눈매가 빠르게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부경통신 장선길 회장. 네가 직접 잡아라. 그거 말고는 내가 아무리 너를 아낀다고 해도 이번엔 내 선에서 커버를 칠 수가 없을 거 같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방금 해명의 전재길 대표하고 통화를 했다. 민성이 네가 너무 덮어쓰는 그림이 되는 거 같아서, 녹음 파일 내용에 관해 조금이라도 조율이 가능할지 물어본다고.”

“…….”

“그쪽에서도 다 알지. 바보 아닌 다음에야 녹음 파일에 이름 한번 나온 걸로 뭘 어쩌겠어? 근데 너도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가 어떻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해명에서는 뭐라도 잡아서 엮으려고 눈에 혈안이 되어 있을 거다. 언론까지 다 붙어 있는데, 지금 이건 길게 가면 길게 갈수록 우리 검찰 쪽으로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요? 그래서 그쪽에서는 뭐라고 하던데요?”

“재밌는 제안을 한다. 자체적으로 확인을 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니, 아마 미래금융 장태산 회장하고 통화를 했던 모양이야.”

“장태산 회장이요?”

“너 혹시 장태산 회장하고는 따로 뭐가 있었던 거야.”

“아, 그런 거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알지, 아는데! 그럼 왜 장태산 회장이 널 지목을 하느냐는 거야.”

“지목이요? 혹시 지금 담당 지목을 했다는 거예요? 자기가 뭔데, 어디 감히 검찰 조직의 수사 담당을 자기가 지목을 하고 자시고 합니까? 건방지게.”

“흥분하지 말고 들어. 지금 칼자루는 그쪽에서 쥐고 있는 거야. 해명이 움직였다는 말이 뭐겠어? 태영쇼핑에서도 손을 담그고 있다는 뜻이야. 장선길 회장 폭행 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우리 내부에서도 팽팽했지만, 그 건 터지는 순간 장선길 회장 라인은 다들 자기 모가지 챙기기에도 급급한 상황이 된 거고. 부경통신 장선길 회장. 네가 잡아라.”

그 순간 최민성 검사의 한쪽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담당 지목에 외압만 없었다면, 완벽한 그림인데, X발.”

“왜? 그 전부터도 관심 있었어?”

“당연하죠. 제가 지금까지 압수 수색 박스에서 미래금융처럼 엮을 건더기가 전혀 안 나오는 기업을 본 적이 없어요. 이유는 두 개거든. 진짜 정도만 걷는 기업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대비를 철저하게 해 왔거나. 후자라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미래금융 정도 되면. 아무리 경영진에서 정도만 걸으려고 해도, 경영진이 미처 파악을 하지 못하는 먼지 정도는 일선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지는 법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그런 것도 없어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를 해 왔단 말이잖아요. 그런 철저한 미래금융이 오랫동안 대비를 하며 전쟁을 준비해 온 상대. 사실 부경 말고는 있을 수가 없죠. 재경과 부경, 그리고 미래금융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진짜 큰 건이다, 이거.”

“큰 건이건, 작은 건이건 어쨌든 우리 검찰이 미래금융 잡고 헛발질을 하게 만든 책임은 제대로 물어야죠. 근데 이거… 진짜 이렇게 가도 되는 겁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 미래금융 게이트를 잡고 있었던 게 전데, 그런 제가 지금부터 부경통신을 판다? 이거 너무 맥락 없는 거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맥락을 찾아? 왜 싫어?”

“싫긴요. 담당 배정에 외압이 걸렸다는 게 좀 X같긴 해도, 이 건은 제가 꼭 칼을 잡아 보고 싶네요.”

“걸린 모가지 많다. 알고 있지?”

“칼질 어디까지 해도 되는 거예요?”

“녹음 파일에 나온 네 이름, 검사장님 작품이다.”

“최소한 거기까지는 가도 된다는 말인 거네요?”

최 검사의 눈에 띈 이채에 차장 검사는 미간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아, 저 또라이 새끼, 저거… 야, 인마. 검사장님이라고.”

“그래서 슬프세요?”

“뭐?”

“검사장님한테 실망하셨냐고요.”

“…….”

“검사장이고 나발이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명색이 검사장이라는 인간이 장사꾼들 하수인 역할이나 하고 다닌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러니 검찰이 법쟁이 소리나 듣는 거 아니냐고요. 지금 다 어디에 있습니까?”

“운전기사가 제출한 녹음 파일 분석 중일 거야.”

“미래금융 게이트는 받은 거 그대로 3부로 넘겨줍니다? 따로 손댄 거 없어요.”

“한곳에 그냥 모아만 놔.”

“크게 손댄 것도 없다니까요. 볼 게 있어야 손을 대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