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화 (212/303)

미리 경고를 해 두는 겁니다

“검찰 쪽에서 해당 증거물만 제대로 공개를 하고, 사실 확인만 되면 재경이나 미래금융 입장에서 부경통신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 준비는 당연히 해야 하는 수순이라고 봐야죠.”

태영마트 구현애 대표를 통해 그녀의 시댁 쪽 인물인 법무 법인 해명의 전재길 대표 변호사를 만났다.

법무 법인 해명.

국내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로펌이다.

우스갯소리로 발에 치이는 게 전직 부장 판사, 부장 검사 출신의 파트너 변호사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전관예우가 필요한 규모 있는 소송을 많이 수임하는 실력 있는 로펌이고, 승률이 높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

오십 대 후반의 아주 날카로운 인상의 전재길 대표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 옆으로는 자리를 마련해 준 구현애 대표와, 그녀의 남편이자 전재길 대표 변호사의 동생인 전재민 변호사도 함께 자리를 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부경통신 쪽으로 유리한 외압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경을 상대로 외통수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쪽 전문가들의 경험이나 견해가 필요한 상황.

재경 그룹 본사 법무팀 정도의 수준으로는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 낼 수가 없었다.

“다들 자기 몸 사려야지요. 하지만 장선길 회장이 워낙 커넥션이 좋은 인물이다 보니, 어디에서 어떤 인물을 끌고 들어와서 방어를 해낼지는 누구도 예상을 못 해요.”

그렇게 말을 하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쪽으로는 워낙 실력이 출중한 인물 아닙니까. 허허.”

그가 흘린 한마디에, 얼마나 이번 사건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만만해하고 있는 상대에게 내가 확인을 하듯 물었다.

“지금 장선길 회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방어뿐이다, 이 말씀이신 거죠?”

“그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물어봤던 거다.

“최민성 검사라고, 기업 비리 쪽 관련해서는 아주 악랄한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그 친구가 이번 사건 담당으로 배정을 받을 거예요.”

그렇다고 들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 보는 눈이 귀신같은 태산이가 그 친구를 아주 좋게 봤던 모양이다.

“그 내용은 저도 장태산 회장님 통해서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알아보니까, 굵직한 사건을 많이 했더라고요. 그 덕에 검사 생활에는 바람 잘 날도 없었던 거 같고. 여기저기 많이도 옮겨 다녔더군요.”

“근데도 계속 복귀를 한다는 말이 뭐겠습니까? 그만큼 실력이 좋아요. 우리하고 자주 붙을 일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붙게 될 때엔 우리도 그 건은 마음을 비우는 수준이라고 보시면 돼요. 싸워야 될 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집요한 친구지만, 사실 지금처럼 방향은 달라도 같은 목표물을 놓고 함께 달려드는 파트너로 삼기엔 그 친구만큼 든든한 검사도 찾기 힘들 거예요. 최소한 기업 관련된 반부패수사부 소속 평검사들 중에서는요.”

전재길 대표 변호사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천군만마가 내 뒤로 붙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쪽이 잘해 주면 좋기야 하겠지만, 우리가 준비해야 되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은 그쪽과는 별개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따로 놓고 봐 야하는 게 맞는 거긴 하죠. 반부패수사부 쪽에서는 장선길 회장, 그리고 부경통신의 자체 비리라든지, 미래금융 게이트에 어느 정도 연루가 되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겁니다. 미래금융 게이트가 장선길 회장의 개인적인 장난이었는지, 아님 부경통신의 조직적인 공격이었는지 역시 아주 중요한 쟁점이 될 거고요. 또 거기에 따른 부당 이익이 있었는지와, 검찰 내부, 언론, 그리고 정계 쪽으로 장선길 회장이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서 미래금융 게이트를 조작했는지 정도도 주요 수사 개요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보통 이정도 내용이라면 저희 재경이나 미래금융, 그리고 미래금융 게이트로 피해를 본 기업들은 어떤 식으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해야 되는 겁니까?”

“소송이라는 건 원하는 당사자를 특정해서 원하는 만큼 제기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사건은 계산을 잘해 보고 소송 형태를 골라야 되는 거예요. 부경통신 쪽으로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미래금융 게이트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공동 소송을 준비를 하는 게 좋죠. 물론 그 전에 부경통신, 장선길 회장 쪽으로 이번 피해의 책임이 성립한다는 걸 증명해 내는 게 우선이긴 하지만요.”

“그렇게 하는 게 좋은데, 계산을 잘해 보고 소송 형태를 골라야 한다는 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세요?”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다 만들어 놓고도 소송이 각하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형태의 소송이기도 하죠.”

“각하요?”

옆에서 구현애의 남편, 전재민 변호사가 말을 거들었다.

“소송 자체가 아예 날아가 버리는 경우를 법률 용어로 각하라고 해요. 공동 소송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당자사들에 의한’ 소송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당사자들 중 일부가 공동 소송을 진행시켜 놓고 뒤에서 따로 합의를 한다거나, 아님 변심을 하게 되는 경우는 공동 소송이라는 거 자체가 아예 성립이 안 되어 버리니까 날아가게 되는 거죠.”

“그 부분만 조심을 하면 공동 소송이 훨씬 더 효과적일 거라는 말씀이신 거죠?”

다시 전재길 대표 변호사가 말을 받았다.

“현 이슈를 최대한 더 크게 키워야 할 거라고 장태산 회장님이 말씀을 하시던데요?”

“그렇게 해야 억울한 쪽이 당하고 있는 오해는 씻겨질 거고, 그게 씻겨져야 잘못한 쪽의 나쁜 짓이 선명하게 알려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공동 소송이 무조건 더 유리하죠.”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 놓고 전재길 대표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손해 배상 청구를 한다면, 얼마나 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이건 지금부터 저희 쪽에서 세밀하게 따져 봐야 되는 내용이죠. 재경 그룹 안에서도 사업군별로 받은 피해 타격이 천차만별일 거 아니에요? 미래금융이나, 미래금융의 투자가 깊게 들어가 있던 피해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공동 소송을 준비한다는 전제하에 소송 당사자, 그리고 기업들을 상대로 피해 손실, 그리고 정신적 피해, 그리고 이 부분이 결국은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기업 이미지 추락에 따른 배상 부분을 근거 있게 산정을 해야 될 거예요.”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서 물어봤던 겁니다.”

“…네?”

“그냥 대략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이슈라면, 그리고 저희 재경 그룹과 미래금융이 그동안 감수했던 피해 정도라면 어느 선까지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전재길 대표 변호사는 내가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수준을 기대하고 계시는 건데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생각하고 계시는 거보다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손해 배상 액수가 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법원에서 제한을 많이 합니다. 물론 지금 이 건은 통상 손해액 자체가 크게 잡힐 거기 때문에 최소한 수백억 단위가 되겠지만, 실제 미래금융 게이트로 인해 본 정신적 피해까지 모두 다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안 될 거라는 부분, 미리 말씀드려야겠네요. 통상 손해액 자체만으로도 이미 워낙 크게 잡힐 거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정신적 피해액까지 원하는 만큼 잡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 봐야 돼요.”

“받을 액수가 아니라 줘야 될 액수를 고민해 보려고 물어보는 겁니다.”

내 말에 전재길 대표 변호사뿐 아니라, 구현애, 그녀의 남편 전재민 변호사까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쳐다봤다.

“해명 같은 실력 있는 법무 법인을 통하는 건데, 사건 수임료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려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대충 얼마 정도까지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이런 사건의 경우 변호사 수임료라는 건 소송에서 진 쪽이 부담을 하는 겁니다.”

답답한 친구네, 이거.

설마 내가 그걸 모를까.

“지금부터 해명을 통해서 하게 될 법정 싸움은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최대한 길게 끌 수 있는 싸움을 하겠다는 겁니다.”

“…네?”

“우리는 장사꾼들입니다. 법 안에서 법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받으면 뭐 얼마나 받겠습니까? 대표님 말씀대로 배상 액수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왜… 저를 보자고 하신 거예요?”

“배상 액수는 중요한 게 아니지만, 소송 자체는 중요하니까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건지, 제가 해 드린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대표님 말씀은 제가 이해를 다 했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소송에서 이기지 못해도 되니까, 손해 배상 청구 액수를 다시 한번 세상이 놀랄 정도로 높게 측정을 하겠다는 겁니다.”

“왜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을 하겠다는 겁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략을 했다.

대신 또 다른 물음으로 상대의 질문을 막아 냈다.

“현실적인 손해 배상 청구 금액은 어느 정도 선으로 잡는 게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그에 맞는 수임료를 챙겨 드리겠다고 묻는 겁니다.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이번 건으로 이렇게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시는데, 마땅히 그에 맞는 보답은 해 드려야 할 거 아닙니까?”

“지는 소송을 해 보겠단 말씀이세요?”

“이기지 못해도 좋다고 했지, 지는 소송을 하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제 입장에선 이기든, 지든 아무 상관이 없지만 법무 법인 해명의 입장은 다르지요. 이렇게 큰 사건을 수임받아서 패소를 했다는 전적을 남기게 되면 해명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 아닙니까? 절대 안 집니다.”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가장 현실적인 손해 배상 청구 금액을 먼저 저한테 주세요. 거기에 맞는 수임료를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건 우리끼리 주고받을 금전적 내용을 위한 거고, 실제 소송에 적용시킬 금액은 현실적인 손해 배상 청구 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여 주세요.”

* * *

수임을 맡긴 법무 법인 해명 쪽으로부터 이틀 뒤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승소를 자신할 수 있는 손해 배상 청구 금액이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피해 상황을 확인하며 상당히 놀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래금융보다 오히려 스너프의 피해 규모가 훨씬 더 크게 잡혔습니다. 이건 저도 조사를 하기 전까지는 미처 예상을 못 했던 부분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래금융의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유통 사업인 스너프, 그리고 JK 드 누락의 피해 상황은 나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잡혀 있었다.

특히 스너프.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의 오프라인 유통판뿐 아니라, 스너프 온라인의 매출 규모 역시 전년도 대비 40퍼센트 이상 크게 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부분은 장선길이의 구속 영장이 떨어지고, 미래금융 게이트가 장선길이, 그리고 부경통신이 조작한 허상 게이트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언론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섭게 매출이 반등을 하고 있다는 정도?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날파리 새끼 한 마리 때문에 다시 한번 나의 재경과 태산이의 미래금융이 고의적인 똥물을 뒤집어썼다는 부분에 짜증이 크게 올라오고 있었다.

―미래금융 게이트 관련해서 스너프 한 곳에서만 잡히는 통상 손해 액수가 400억 범위로 추산이 됩니다.

"순이익 기준인 거죠?"

―그렇죠. JK 드 누락은 전년도 기록을 적용시킬 수가 없어서 부경호텔의 전년도 기록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60억 정도 손해 규모가 나오네요. 그런데 이건 저희 쪽 주장이 판결에 반영이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3, 4월의 매출 규모가 전년도 대비 70퍼센트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니까요.

“자잘하게 보지 말고 크게 이야기하시죠. 일단 그거 두 개만 해도 벌써 460억이란 말이네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붙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요.

“어떤 내용이요?”

―재경 그룹이라는 기업 자체 타격. 미래금융 게이트에 크게 노출이 된 건 스너프 그리고 JK 드 누락이지만, 실제 그 두 사업체가 하나는 재경 그룹의 직계열사, 다른 하나는 범재경가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실제 재경항공의 구간 매출도 전년도 대비 크게 빠졌고, 빠지기 시작한 구간이 정확하게 미래금융 게이트가 터진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재경모직 역시 마찬가지고요. 재경식품 역시 현재 진행 중인 프랜차이즈 브랜드 론칭에 큰 차질이 있었지 않습니까?

“뭉뚱그려서 그 손해는 어느 정도로 잡을 수 있는 건데요?”

―크게 잡으면 200억, 현실적으로 잡아도 100억에서 150억 사이로는 잡을 수 있어요.

“150억 잡고, 그것만 해도 벌써 610억이네요? 미래금융은요?”

―미래금융도 현물이 아니라 지분 가치로 놓고 봐야 하는데, 장선길 회장에 관한 이슈가 터지기 직전을 기준으로 하면 300억 정도 손해가 났어요.

“그 300억에 미래금융의 투자가 들어간 다른 기업의 손해도 포함이 되는 겁니까?”

―아니지요. 순수 미래금융의 자산 가치만 따져 본 겁니다.

장선길이 장난질 한 번에 앉은 자리에서 천억 가까운 돈이 증발을 해 버렸단 말이네?

성가신 날파리 새끼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남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쯤은 된다 이건가?

“얼렁뚱땅 이것저것 다 합치면 최소 천억 정도는 된다고 봐야 하는 거네요?”

―이미 이 자체도 천문학적인 금액인데, 여기에 0을 하나 더 붙이면….

“조가 되는 거지요. 1조. 1조라… 그렇게 가시죠.”

―손정훈 상무님?

“네, 듣고 있습니다.”

―이건 상무님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을 해도 될 내용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최소한 미래금융 쪽이나, 미래금융 관계된 기업들 쪽의 합의도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억 단위와 조 단위는 법원에서도 손해 배상 청구로 받을 때 사건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과합니다.

“대표님.”

―말씀하시죠.

“제가 지금 숫자가지고 장난질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

“아닙니다. 저 지금 부경통신, 그리고 장선길 회장. 법이 아니라 우리 재경이 직접 상대를 할 거니까, 어설픈 법으로 손댈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세상을 상대로 미리 경고를 해 두는 겁니다.”

피가 끓었다.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미래금융, 그쪽과 관계된 기업들 모두 제가 알아서 다 정리를 할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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