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요
그룹 본사 안에서 손정훈 재경식품 상무에 대한 존재감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특히 미래금융 게이트가 터지기 전과 터지고 나서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후계자 확정이란 소리까지 나돌았던 손정태 스너프 사장은 물론이고, 그룹 회장인 손홍준 회장에 대한 이야기보다 손정훈 재경식품 상무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직원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재경모직, 특히 인사부에서는 한때 한솥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손정훈 재경식품 상무에 대한 뿌듯함에, 그가 모직 생활을 할 당시 해냈던 영웅담 부풀리기에 다들 신이 나 있었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미래금융 게이트.
거기에 연이어 터져 나온 부경통신 장선길 회장의 운전기사 상습 폭행, 그리고 미래금융 게이트 조작 의혹이 아직도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잠깐의 주가 하락이 타격의 전부였던 재경식품.
미래금융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펼쳐진 재경식품의 대응은 당시엔 성급하다는 말과 무리수라는 말이 많았지만, 결국은 이번에도 손정훈이 옳았다는 말로 바뀌도록 만들어 버렸다.
부경마트라는 대한민국 대표 유통판을 버린 과감함.
거기에 대형마트 쪽으로는 태영마트와 몇몇 외국계 브랜드 마트 쪽으로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나가며 편의점, 소형 지방 마트 브랜드들 쪽으로 영업을 집중시켜 빠르게 매출 하락을 방어해 낸 건 손정훈 상무가 아니면 내리기 어려운 판단이었을 거라는 말들이 재경 그룹 안팎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부경마트를 버리는 대신 선택했던 군 식자재 납품업체.
신의 한 수였다.
폭력적인 물가 상승에도 끝까지 가격을 방어해 낸 재경식품은 1군단과 3군단에 식자재 총판을 넣는 업체 쪽으로 접촉을 시도, 재경이라는 기업 이름의 경쟁력, 그리고 가격 경쟁력으로 아주 손쉽게 가공품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부경마트라는 대한민국 대표 유통판을 버렸음에도, 오히려 중간 도매 유통과 프랜차이즈 브랜드 쪽으로 가공품 총판 유통을 하는 업체들을 확실하게 잡아 버림으로써 가공식품 사업부의 매출은 상향 곡선 그래프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정훈 상무의 특출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가랑비에 비 젖는다고 했던가.
재경, 미래금융, 그리고 부경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 전체를 피로도 속으로 몰아넣었던 그 기간 동안 재경식품은 오로지 앞만 쳐다보며 야금야금 전진했고, 결국 어느덧 48개의 쁘띠 기뿔리 매장을 전국에 성공적으로 오픈시켰다.
그 반응 역시 미래금융 게이트 자체가 실체가 없는 조작된 게이트였다는 사실이 검찰을 통해 밝혀짐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래금융 게이트가 부경통신의 장선길 회장이 사업적 이유로 검찰과 언론, 그리고 그 배후에 영향력 있는 정계 인물을 통해 조작한 게이트라는 사실은 재경 그룹과 미래금융이 천문학적인 금액인 1조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한 지 단 이틀 만에 검찰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전체로부터 부경이란 이름 자체가 큰 공분을 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손정훈이라는 존재감.
그 존재감이 그가 속해 있는 식품 뿐 아니라 모직과 항공, 심지어 스너프, JK 드 누락 쪽으로도 본격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턴가 재경의 직원들에게 손정훈이라는 이름은 그 속엔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함께 깃들어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손홍준 회장을 제외하고는 현 재경의 사람 중 가장 오래 재경 생활을 하고 있는 조동희 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장님께는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가장 오랫동안 회장님을 곁에서 모셨음에도 지금 손정훈 상무를 상대로 느끼고 있는 긴장감과 기대감을 손홍준 회장을 상대로는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무섭다, 어렵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통해 더 나은 재경, 더 커지는 재경을 상상해 본 적은 사실 크게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조동희 전무는 손정훈 상무를 통해 자신이 처음 재경의 기업 배지를 재킷 깃에 달았던 전략 기획 본부 신입 당시, 대한민국 재계의 거인 손중길 회장이 재경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듯한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안전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거 진짜 쪽팔리는 거야.”
재경모직.
손정훈 과장이 상무 승진을 해서 식품으로 옮겨 간 게 어느덧 반년 전 일이다.
사람 하나 빠졌을 뿐인데, 그리고 현장 일선에서 그 한 사람은 실제 직원으로 카운팅을 할 수가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 사람 하나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그것도 여실하게 나오고 있었다.
“내가 왜 요즘 회식하자는 말을 안 하는 줄 알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야. 씹을 안주가 우리 말고는 없거든. 야, 인간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회사에 미안하면 되냐? 이렇게 쎄빠지게 하면서 회사에 미안하고, 쪽팔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다들 안 억울해? 나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매출 꼬라박고 있는 게 꼭 내 무능 때문인 거 같아서, 그렇게 비치고 있는 거 같아서 억울해 미칠 거 같아.”
“…….”
“퍼스펙티브 이후로 아직까지 아무런 후속타도 못 만들어 내고 있어. 좋아. 신제품 개발, 새 브랜드 론칭. 그거 쉬운 거 아냐. 인정해. 하지만 꼬라박더라도 최소한 뭐가 진행이 되고 있다는 내용물은 있어야 할 거 아냐. 내 말이 틀려? 야, 영업.”
“네, 이사님.”
“개발팀이 변비에 걸려 있음 너희라도 뭘 좀 뚫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암만 미래금융 게이트로 발이 묶인 상태였다고 해도 시니어즈 매출이 전년 대비 70퍼센트도 못 찍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이 돼?”
“……”
“해외 수출이 전체 매출의 60퍼센트가 넘는데, 한국 안에서 그거 잠시 꽈당했다고 전년 대비 70퍼센트가 말이 되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분기 안으로 매출 복구해 놓겠습니다.”
“모가지 걸어라. 그리고 ATM.”
“네, 이사님.”
“요즘 일 참 쉽게 한다? 미래기획 쪽으로 마케팅 관련 업무를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식으로 싹 다 맡길 거면, 회사 안에 ATM이 왜 필요해? 회사 입장에선 그냥 너네 월급 줄 돈으로 아예 미래기획 쪽에 외주로 마케팅 전권을 다 넘기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히지. 왜? 너네도 미래금융 게이트 때문에 손발이 다 묶여 있었어? 그렇게 따지면 식품은? 왜 식품은 오히려 매출이 올라갔는데, 우리만 이 꼴이냐고, 우리만! 진짜 사람 쪽팔리게 만들래? 사람 무능하게 만들 거야? 내가 이 매출 들고 사장님, 전무님 앞에서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 줄 너희가 알아?”
“죄송합니다.”
“딱 오늘까지만 죄송해라, 오늘까지만. 나도 오늘까지만 악마이고 싶다. 긴말 안 한다. 늙고 싶지도 않고. 영업.”
“네.”
“개발.”
“네, 이사님.”
“ATM.”
“네.”
“딱 작년에 했던 거만큼만 하자, 작년에 했던 거만큼만. 해 봤잖아. 그럼 다시 또 할 수 있단 말이잖아. 근데 왜 이렇게들 절고 있어? 할 수 있어, 없어?”
“있습니다.”
“넌 왜 대답 안 해.”
“무조건 하겠습니다.”
“잘 좀 하자, 잘 좀. 왜 이렇게 위기에 한 방을 터뜨려 주는 놈이 아무도 없어? 한 놈 정도는 나와 줘야 정상 아냐? 그랬음 봐라, 지금처럼 서로 얼굴 붉히고 속으로 죽일 놈, 살릴 놈 할 이유도 없는 거 아냐. 내가 진짜… 하아, 릴렉스, 릴렉스… 아무튼, 믿는다. 나 너네 믿어도 되지?”
“네!”
“대답은, 씨… 다들 나가 봐!”
아직 업무적으로 손정훈 상무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항공 쪽의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모직에 비해 더 발등에 불이 뜨겁게 떨어진 쪽은 항공이었다.
손정태 스너프 사장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손정훈 상무의 다음 업무지는 무조건 항공일 수밖에 없다.
비록 손정태 스너프 사장은 모직을 건너뛰고 항공에서 바로 본사 상무 자리로 넘어가긴 했지만, 현 재경의 지주사인 항공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손정훈 상무를 본사로 불러들일 손홍준 회장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들 본능적으로 직감을 하고 있었다.
손정태 스너프 사장 때와는 달리, 손정훈 상무가 항공으로 오게 되면 현 재경식품을 아예 다 갈아엎은 것처럼 항공 역시 전체적인 체질 개선이 시작될 것이라는걸.
미리 그의 구미에 맞는 체질을 갖춰 놓는 게 중요했다.
만년 업계 3위였던 모직을 단숨에 업계 1위 자리로 올려놓고, 부경유통을 쪼개어 스너프 쪽으로 직접 붙여 준 인물.
실제 그 스너프도 손정훈 상무의 작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재경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부경호텔의 간판을 내리게 만들고 거기에 JK 드 누락의 간판을 새로 달게 만들어 낸 실질적 주인공이 바로 손정훈 상무이다.
그리고 미래금융 게이트 건으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전진을 해낸 곳이 지금의 재경식품이고.
그가 증명해 낸 실력, 내외부로 받고 있는 인정, 평판….
손정태 스너프 사장 때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큰 폭풍이 향후 1년 상간으로 항공에 상륙을 할 예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직, 식품, 그리고 JK 드 누락 쪽 통해서 손정훈 상무에 대한 정보들 최대한 디테일하게 받아 내.”
“JK 드 누락은 실제 손정훈 상무하고는 큰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경영권 확보 과정에 대한 디테일 말이야.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수를 즐겨 쓰고 어떤 수로 결정타를 찍는지 정도는 알아야 미리 대비라도 할 거 아냐. 지금 식품 쪽에서 준비 중인 프랜차이즈 사업들 있지?”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겠습니다.”
“디테일 다 뽑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어떻게 시장 공략을 하는지, 마진 조정, 인원 배치, 마케팅 전략 샅샅이 파악해.”
“네.”
반대로 스너프 쪽에선 흔들리고 있는 손정태 사장의 그룹 내 입지를 다시금 제대로 다지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선방을 한 거예요. 매출도 중요하지만 우린 매출보다는 트래픽 추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거 아닙니까. 잠시 트래픽이 빠지긴 했지만,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고 있고 소비자들 전체적인 여론 역시 우리 쪽으로 빠르게 돌아서고 있으니까, 지금부터 우린 달리기만 하면 될 거 같아요.”
“그동안 좀이 쑤셔서 혼났습니다. 하하하.”
“지금이야 웃는 거지, 얼마 전까지는 다들 지옥이었잖아요. 다들 버틴다고 수고 많았어요. 제가 사장님 안 계실 때 이런 자리 마련한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임원들의 표정.
그 표정을 윤종길 스너프 부사장이 천천히 확인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사업이라는 게 결국은 결과물로 평가를 받는 거죠. 스너프. 우리끼리만 선방을 했다, 최선을 다했다, 잘 막아 냈다… 그렇게 자위하듯 말하기엔 현재 그룹 안에서 사장님과 비교 대척에 서 계신 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너무 좋습니다. 훌륭하단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해내셨어요. 인정할 건 인정을 해야 안 되겠습니까?”
침묵이 회의장 안의 공기를 짓누를 만큼 무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이미 우리 쪽으로 지나갈 큰 폭풍은 다 지나갔습니다. 비는 우리가 더 많이 맞았지만, 비를 많이 맞았기에 더 많은 수확물을 기대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햇빛만 쨍쨍한 땅엔 영양가 높은 곡물이 자랄 수 없는 법이죠. 스크린 골프, 중국 진출 준비 현황 언제쯤 받아 볼 수 있습니까?”
“이번 주 안으로 사장님 모시고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겠습니다.”
“그룹 전체적으로 기대를 크게 걸고 있는 건이니까, 스크린 골프장 건은 식품의 마카롱 사업 건에 밀리지 않는 결과물이 반드시 나와 줘야 될 겁니다.”
“네,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웹콘텐츠 사업부 영상화 스튜디오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노블레스 쪽에서 영상화 가능한 IP를 계속 발굴해 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콘티 작업이 다 끝난 작품도 있고, 미래기획 쪽에서 해외 OTT 채널 쪽과 수익 분배율을 놓고 판권 조율에 들어간 작품도 곧 콘티 작업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웹콘텐츠 사업부는 하나만 터뜨리면 된다면서요? 제대로 된 거 하나만.”
“제대로 된 게 하나 나와 주기만 하면 그다음이 쉬운 건 사실입니다.”
“쉬운 길을 알고 있으면 당연히 쉬운 길로 가야죠. 조급해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캐시 카우는 지금 쇼핑입니다. 그 쇼핑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웹콘텐츠 쪽에서 크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으로 제대로 된 거 하나는 반드시 만들어 주셔야 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만 가지고 되는 상황은 아니죠? 지금 우리 상황이?”
“네.”
“우리는 딱 항공만 뛰어넘으면 됩니다. 그룹에서 모든 사업 소스를 우리한테 다 밀어주고 있잖아요. 항공도 크게 보면 우리 입장에선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 지원을 다 받고도 고여 있는 항공 하나 못 뛰어넘으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먼저 사장님의 면을 제대로 세워 드려야, 사장님도 우리 면을 세워 줄 명분이라는 걸 갖출 수 있게 되시는 거겠죠.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그동안 다들 큰 폭풍 앞에 휩쓸리지 않고 잘 버텨 주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 * *
2주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2주 동안 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선길이 쪽에서 먼저 접촉을 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장선길이의 초조해하고 있을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반드시 그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서 결정타를 날려 주고 싶었으니까.
내 생각보다는 오래 버텼다.
난 아무리 길어 봤자 일주일이면 족할 거라 생각을 했는데, 거기에서 다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더 잡아먹을 정도로 미련한 놈일지 누가 알았겠나.
기다리는 동안 할 게 많아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마카롱 숍 브랜드 스위트럼의 론칭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이미 쁘띠 기뿔리의 성공적인 론칭을 한번 맛본 직원들의 사기는 옛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부경이란 이름 자체에 소비자 불매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던 지난 2주.
그나마 그 안에서도 물산만이 큰 타격 없이 잘 버텨 내는 거 같았고, 부경의 모태였던 화학은 국내의 모든 유통판으로부터 외면을, 그리고 장선열이의 마트는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의 직격탄을 맞아 버렸다.
장선길이의 통신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갔고.
인터넷 가입자 수가 하루에 4만, 5만… 이런 식으로 만 가구 단위로 꾸준히 빠지는 경우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2주일을 버텼다?
그 미련함에 박수를 보내며, 각종 인터넷 언론사, 신문사, 방송사 쪽으로 마른 장작을 쉬지 않고 집어넣어 부경마트를 초주검 상태로 만들어 나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삐에르 에슈메’의 사장 ‘리안’이 스위트럼에서 완성한 마카롱과 티라미수의 최종 맛 평가 및 피드백을 해 주기 위해 한국 방문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내용을 보고 받았다.
형식적인 초청이었는데, 아주 진심으로 초청에 응했다는 보고 내용에 재경항공을 통해 퍼스트 클래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JK 드 누락 쪽으로 최상급 수준의 객실을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였다.
“제 일정은 최대한 리안 씨한테 맞추는 걸로 하세요.”
“네, 혹시 또 다른 필요한 내용은 없으십니까?”
“한국은 이번이 처음일 건데, 중간에 관광 코스도 끼울 수 있도록 리안 씨하고 이야기를 나눠서 조율을 해 보시고. 이미 우리가 지불한 금액에 대한 역할은 다해 주신 분이잖아요. 근데 굳이 직접 안 와도 되는 일에 오시는 거니까, 그에 맞는 성의는 최대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기념품 같은 것도 좀 신경을 써서 준비를 해 주시면 좋겠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고 있을 때였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 거다.
부경통신의 법무팀 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이미 장선길이는 보름 넘게 구속 입건이 되어 있는 상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통신과 건설의 지분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있어 책임을 느끼고 경영권을 내려놓겠다는 식으로 급한 불을 끄려고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들 너무 똑똑했다.
그간 대한민국 재벌들이 해 왔던 얕은수.
그 정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대처는 오히려 불난 집에 스스로 기름을 갖다 부은 꼴이 되어 버렸고,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부경통신뿐 아니라, 장선동이의 부경화학, 그리고 부경마트의 장선열에 대한 대국민 청문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승소가 아닌 오로지 장선길이의 발목을 잡기 위해 진행 중이었던 1조짜리 소송이 마침내 그 친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데 성공을 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재경식품 손정훈 본부장입니다.”
―부경통신 법무팀장 노경환입니다.
손끝에 전해지는 깊은 손맛.
마침내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는 쾌감.
“네, 그런데요?”
―현재 걸려 있는 소송 건으로 직접 좀 찾아뵙고 드릴 말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요? 그럼 해야죠. 오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