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303)

그 기사 설마 나만 본 거예요?

“손정훈, 장하늘이다!”

JK 드 누락 강남점.

오늘 영업은 아예 포기를 한 건가.

그것도 아님 행사 관계자들에게 전 객실을 판매했기 때문일까?

호텔 입구에서부터 이미 페소나 시즌 위크에 참석할 톱스타들의 모습을 담기 위한, 치열한 취재 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잠시 당황을 했다.

이렇게까지 규모가 있는 행상일 줄 몰랐다.

행사 안내 직원의 도움으로 반대편 차 문에서 내린 하늘이가 얼른 곁으로 다가와 내 팔짱을 꼈다.

“이렇게까지 큰 행사였어?”

고개를 하늘이 쪽으로 돌려 귓속말로 물었다.

“키운 거지.”

다정한 연인의 모습을 연출해 내며 하늘이도 내 곁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와 귓속말로 대답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평생 찍힐 사진을 단 몇 분 동안 다 찍힌 기분이었다.

강인성 차장이 행사 안내 직원들과 함께 나와 하늘이를 호텔 안쪽까지 에스코트를 했고, 호텔 로비 안에서는 더 많은 사진을 공식적으로 찍혀야만 했다.

프런트 데스크를 마주 보고 나 있는 대연회장 옆으로 페소나와 재경모직의 기업 브랜드 로고가 마치 체크무늬처럼 교차로 수놓아진 포토 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와 하늘이는 연예인이 아닌데, 어디까지나 우린 행사 주최 측 관계자의 자격으로 참석한 것일 뿐인데 많은 기자와 행사 안내 직원들이 나와 하늘이를 포토 존에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다시 한번 귓속말을 하기 위해 내 팔짱을 끼고 있는 하늘이 쪽으로 몸을 숙였더니, 이런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카메라 셔터음이 공격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얼굴 팔 생각으로 온 거잖아. 오늘은 그냥 즐기자.”

딱히 마땅히 반박할 만한 대꾸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와 하늘이가 포토 존에 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

그 기다림에 자신이 꾸민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지도 못하고 나와 하늘이에게 포토 존을 양보하게 생긴 연예인.

우리 뒤로는 포토 존에 서기 위해 대기 중인 또다른 유명 모델 출신의 연예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는 포토 존에 서기 위해 페소나 가방이 최대한 잘 보이게끔 반대 손으로 가방을 옮겨 들었고, 그렇게 우린 많은 사람이 집중하고 있는 포토 존 위에서 다정한 커플의 이미지를 연출해 내어야만 했다.

고작 연회장 문 하나 차이일 뿐이었는데, 시즌 위크 오프닝 준비로 한창인 행사장 안의 분위기는 삼엄하기까지 했다.

분명 행사장 안에도 포토 라인이라는 게 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꽤 눈에 보였는데 아직까지는 잠잠했다.

하지만 나와 하늘이가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동시다발적으로 반짝거리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곧이어 행사 진행을 맡고 있는 연출 쪽에서 기자들을 향해 마이크로 협조를 부탁한다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기자님들, 지금 최종 조명 리허설 중이거든요. 죄송하지만 리허설 끝날 때까지는 카메라 촬영을 잠시 삼가할게요.”

헤드셋 마이크를 끼고 그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돌 말린 종이를 움켜쥔 한 행사 연출이 포토 라인 쪽으로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협조를 부탁했다.

그에 기자들도 이 안의 룰을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실례를 한 부분이 못내 민망하고 미안했던지, 각자의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현했다.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행사 안내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는 런웨이 바로 앞자리였다.

자리의 위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우리 바로 옆자리가 채서린의 자리였다.

하나같이 다 지정석인 거 같은데, 엉덩이를 깔고 앉은 부분에 자리에 앉을 사람의 이름이 스티커 같은 걸로 붙여져 있었다.

당연히 아직 채서린은 도착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자리에 앉아서 하늘이에게 여기에 채서린이 앉을 거 같다고 말하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손정훈, 장하늘.”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을 곳, 아마도 우리 뒤쪽에서 흘러나온 소리 같았는데, 나와 하늘이의 이름을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앞에?”

“어.”

“오우 씨. 완전 메인 자리네? 저 자리 서린이가 앉아야 되는 거 아냐?”

“작게 좀 말해. 다 들리겠어.”

내가 봤을 땐 그것보다 더 작게 말해도 다 들릴 거 같은데?

내겐 익숙하지 못한 공간, 그리고 분위기.

어색함을 달레기 위해선 하늘이하고 이야기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거 같은데, 하늘이 이놈은 또 자기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유명 아이돌 걸 그룹의 멤버 하나와 인사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요즘 아주 핫한 글로벌 대세 아이돌로 떠오르고 있는 그룹의 멤버.

사실 이름까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하지만 내가 그 그룹의 존재와 그룹명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요즘 상당히 잘나간다는 건 알지.

이 자리가 너무 어색해서 얼굴이 다 간지럽다고 우는소리를 하늘이한테 하려고 할 때였는데, 갑자기 행사장 밖에서 와글와글거리는 소리가 급하게 안으로까지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 안에 먼저 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고개를 행사장 바깥 출입문 쪽으로 돌려 볼 정도로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채서린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하늘이가 입장을 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이번엔 행사 진행 연출 쪽에서도 채서린의 등장이니만큼 기자들 쪽으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이쪽에 앉는 게 낫지 않겠어?”

아무래도 나와 채서린은 일전에 시끄러운 스캔들이 한 번 있었던 상태였고, 무마가 잘됐지만, 기자들이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시를 보아하니 다시 한번 피곤하게 엮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에, 난 채서린이 오기 전 나와 하늘이의 자리를 살짝 바꾸는 게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채서린을 보면서 짧게 고개를 내저었다.

“지정석이야.”

“뭐 어때, 우리끼리 바꾸는 건데.”

“누구 오징어 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저거 봐, 아예 작정을 하고 왔잖아. 저걸 어떻게 이겨?”

어이없네.

이겨?

지가 천하의 채서린을?

그것도 외모로?

제정신인가 싶었다.

난 하늘이와 그 옆에 앉아 있는 걸 그룹 멤버를 동시에 쳐다보며 하늘이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최대한 예의 있게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해 주었다.

“어차피 오징어 되는 거, 채서린 옆에서 되는 게 더 낫지 않아?”

그러자 하늘이는 들고 있던 시즌 위크 팸플릿 속으로 자신의 손을 가려, 마치 나에게만 보여 준다는 듯 중간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요란한 자리에 날 참석시킨 게 남 사장이 아닌 하늘이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쯤은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봤더니 자리 배석까지 하늘이 녀석의 생각이 많이 들어갔던 모양이지?

날 중간에 끼워 놓고 하늘이와 채서린은 서로 손까지 잡아 가며 친한 모습을 연출해 내기에 바빴다.

쎄쎄쎄 하는 줄 알았다.

이럴 거면 그냥 같이 앉으면 되지, 왜 날 중간에 끼우냐고.

쎄쎄쎄를 하듯 두 손을 맞잡으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채서린이야 하는 일이 배우니까 그렇다치더라도 하늘이 이 녀석도 연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두 사람의 친한 척이 마침내 끝이 났고, 그제야 난 시즌 위크 팸플릿으로 입을 가린 채 채서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그러네.”

“방송 통해서 소식 종종 듣고 있다. 요즘 많이 바쁘겠더라?”

“나보다는 오빠가 더 바쁘겠던데?”

그 순간 내 무릎 위로 하늘이의 손이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의도가 다분한 모습으로, 한 손을 내 무릎 위로 올려놓은 하늘이는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겠던데, 내 가슴 쪽으로 얼굴을 한껏 갖다 댄 후 나와 채서린에게 말했다.

“서린 씨. 서린 씨가 이거 행사 뒤풀이까지 참석해야 하는 거예요?”

“샴페인 파티 준비했다는데,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춰야겠죠?”

“그럼 다 같이 얼굴만 잠깐 비추고, 진짜 뒤풀이는 셋이서 맥주 한잔하면서 하는 게 어때요?”

* * *

오늘도 원수경은 아들 승현이를 가사 도우미들에게 맡겨 놓고 집 근처 호텔 라운지에서 유력 재계 며느리들과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었다.

스너프가 부경마트까지 최종 매입을 하면서 장선열 회장의 부경유통을 백 퍼센트 흡수해 낸 이후로 이런 자리가 부쩍 늘어났다.

재경은 부경마트를 시작으로 부경화학과 부경화재에서 각각 12퍼센트씩의 지분 매입을 효과적으로 해내며, 현 대한민국 재계에서 가장 눈부신 재도약을 이뤄 낸 기업으로 높게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런 재경 그룹의 맏며느리, 원수경.

그녀를 찾는 발길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만년 재계 서열 20위권, 30위권 안에서만 맴돌던 그녀의 시댁에 대한 관심은 이젠 재계 서열 10위권 안팎에 놀고 있는 다른 기업의 오너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줄을 닿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원수경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재계 오너가 쪽에서 먼저 자신과의 시간을 기대하는 이런 환대에 점점 취해 가고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끼고 싶어 했던 톱 기업 오너가 며느리들의 모임과 클럽.

이젠 그쪽에서 원수경을 자신들의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손을 뻗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주 주말에 부부 동반 라운딩을 계획하고 있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남편분하고 같이 조인하시는 게 어때요?”

“이미 세팅이 다 끝난 라운딩인가요?”

“정기 라운딩이에요. 거기에 앞으로는 재경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제 남편 공식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다음 주 스케줄까지는 아직 제가 체크를 못 했네요. 제가 확인되는 대로 참석 여부를 말씀드려도 될까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경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재계 며느리들.

자신들만의 무리를 지어, 그 안에서 다시 또 재계 순위로 계급을 만들어 내는 그들을 보며, 원수경은 현 재경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원수경의 볼썽사나운 처세를 속으로 비웃는 사람이 그 모임 안에서 왜 없을까.

국내 재계 서열 3위 조양 그룹의 맏며느리, 설유림.

이 클럽의 실세이기도 한 그녀는, 아직 정확한 후계가 정해지지도 않은 재경에서 맏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벌써부터 재경의 안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원수경의 모습이 같잖게 느껴졌다.

“매달 가는 라운딩인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해요? 바깥분도 요즘 하시는 일 때문에 정신이 많이 없으실 거 같은데, 괜히 급하게 하지 말고 다음 라운딩부터 함께하면 되죠.”

원수경은 설유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설유림은 조양 그룹의 맏며느리라는 타이틀보다,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계성 그룹 고명딸이라는 타이틀로 더 크게 세간에 알려졌던 인물.

뼛속까지 로열패밀리의 피가 흐르는, 이 클럽 안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원수경은 설유림이라는 인물 못지않게, 이 클럽 안에서 자신이 지켜 내야 하는 존재감에 대해서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생각을 해 보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이미 다 잡혀 있는 일정에 멤버 구성이라는 것도 있는데, 저희 부부 때문에 변동이 생기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요.”

상석에 앉아 있던 설유림은 원수경이 쳐 내고 있는 처세에 속으로 제법이란 생각을 하며 가볍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건 그렇고, 요즘 재경 참 대단해요.”

설유림의 한마디에 자리에 참석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원수경을 쳐다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내기 시작했다.

원수경 역시 멋쩍은 듯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긴 했지만, 이 잘난 여자들이 자신을 향해 일제히 보내 주고 있는 인정이 마치 재경을 향한 인정이 아닌 자신의 신분 상승을 인정해 주는 소리로만 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사, 경제, 정치, 연예 할 거 없이 특종이라고 해서 뜨는 기사를 보면 죄다 재경에 관련된 내용이에요. 오늘도 금방 여기 오는 길에 차 안에서 기사 뜬 걸 봤는데, 또 재경에 관한 내용이던데?”

자리에 모인 여자들은 미처 새로 뜬 기사는 확인을 못 했던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수경에게 집중하고 있던 시선을 설유림 쪽으로 돌렸다.

“페소나 시즌 위크. 그게 이렇게까지 큰 이슈를 터뜨릴 내용은 아니지 않나? 페소나도 재경모직에서 핸들링하고 있는 브랜드죠?”

원수경이 맞는다고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설유림이 말했다.

“확실히 미래기획이 붙어 있으니까, 이슈 몰이를 할 줄 알아. 손정훈 재경식품 상무, 장하늘 미래금융 본사 상무가 함께 페소나 시즌 위크에 참석해서 채서린이하고 같이 찍힌 사진이 또 기사로 올라왔던데, 그냥 봐도 꽤 이슈가 되겠어요. 작정을 하고 기사를 만든 거 같던데? 그 기사 설마 나만 본 거예요?”

그에 자리에 모인 여자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각자의 폰으로 해당 기사를 검색하기에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원수경 역시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며, 자신의 폰으로 페소나 시즌 위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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