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228/303)

아직은 아무도 몰라

운석정.

지금은 고급 요릿집으로만 운영이 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급 기생집의 명맥을 유지했던 곳이다.

고풍스러운 한옥 외관과 어둠 속에도 그 외관의 풍모를 지켜 내기 위해 설치된 일정한 간격의 감홍색 조명들이 이 가게의 수준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앞으로 검정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와 섰다.

운전기사가 내리기도 전에 정장 차림의 그곳 직원이 차 뒷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미래금융 회장, 장영석이 내렸다.

“먼저 와 계십니다.”

이곳 방문이 잦은 듯, 운석정의 종업원이 장영석 회장을 안으로 안내하며 약속 상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달했다.

“아이고, 일찍 온다고 서둘렀는데 먼저 와 계신다고? 얼마나 기다리셨지?”

“10분 정도 되셨습니다.”

“회장님 모시고 온 사람들 식사를 어떻게 한다는 말이 있던가?”

“따로 방을 하나 빼놨습니다.”

“그럼 저기 우리 사람도, 차 세워 놓고 들어오면 그 방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게끔 그렇게 준비를 해 주면 되겠네.”

“네, 알겠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 안에는 재경 그룹 손홍준 회장이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좌식을 한 채로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형님.”

“어, 왔어?”

재킷을 대신 받아 준 그곳 직원에게 곧바로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말한 장영석 회장은, 빠르게 손 회장을 마주 보고 앉았다.

“기본 찬하고 술부터 좀 급한 대로 먼저 넣어 봐.”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키가 낮고 넓은 나무 상이었다.

가게의 전통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나무 상 위로는 놋 재질의 수저가 오색 천으로 만들어진 양반 천에 머리를 숨기고 있었고, 기본 세팅으로 깔려 있는 앞접시와 작은 종반 그릇까지도 모두 놋 재질의 기물이었다.

“신경 써서 빨리 온 사람 민망하게, 저보다 먼저 와 계시면 어쩝니까?”

“보자고 한 사람이 먼저 와 기다리는 게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요. 보자는 말도 형님이 먼저 꺼내게 만들었으니까.”

“싱겁긴.”

운석정은 돈값을 하는 가게였다.

장영석 회장이 가볍게 건넨 부탁을 특별 부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장 회장의 재킷을 정리해 주고 종업원이 나가기가 무섭게, 얇은 육전과 정갈하게 담긴 동치미 국물, 그리고 빙어튀김이 술이 든 주전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입 안에 침을 돌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딱 술 한두 잔 안주가 될 만큼 적게 나온 그 음식들을 받아 들고 재경의 손 회장과 미래금융의 장 회장은 오랜만에 술잔을 나눴다.

“정훈이가 참 신통해요. 우릴 만족시켜 가면서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놀래켜 가면서 일을 처리하네요. 참 그러기 쉽지 않을 건데.”

보통은 이런 자식 칭찬 앞에 부모는 형식상이라도 자식의 부족한 점을 말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손홍준 회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젠 정훈이가 내놓는 생각 앞에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는지, 아님 맞았는지를 비교해 보는 수준까지 되어 버렸으니.

그럼에도 손홍준 회장은 정훈이에 대한 지나친 칭찬을 누르고 싶었다.

“오히려 내가 자네나 자네 아버지한테 이번에 크게 배웠어.”

“배우다니, 뭘요?”

“부경통신 경영권 인수 내용 말이야.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을 해 봤어. 그렇게 해야 당연한 거고. 내가 자네나 자네 아버지였으면 정훈이가 하자는 대로 할 수 있었을까….”

잠시 말을 멈춘 뒤 손 회장은 절대 불가능이었을 거란 뜻을 담아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못 했을 거 같아. 여기에서 조금만 더 버티면 결국 은행권에서 부실 채권들 공매로 떨굴 거고, 자연스럽게 부도 수순을 밟게 될 거 아냐. 그랬음 인수위, 은행권 상대로 부채 탕감 조건으로 더 좋은 가격에 가져올 수 있었을 건데 그걸 정훈이가 하자는 대로 해 주는 걸 보고 속으로 많이 놀랐어. 정훈이 계산은 어디까지나 우리 재경 쪽으로 유리한 방향이지, 미래금융 쪽으로는 답답한 결정이었을 거 아냐.”

“그렇죠. 저희 같은 투자 중심 기업들은 한 푼이라도 싼값에 가져와서 적당히 키워지면 여기저기 찢어서 한두 푼 더 얹어 팔아먹는 게 맞는 거죠.”

“거기에 종목이 통신이고. 결국은 저기….”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손 회장이었다.

“당연한 거겠지만, 자네나 자네 아버지는 내가 정훈이 쪽으로 기울 거란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거겠지?"

그 질문 앞에 장영석 회장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신중한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 침묵을 깨뜨릴 때까지 손 회장은 기다렸다.

“형님.”

“그래. 오늘은 우리 둘뿐인데, 편하게 이야기하자. 나도 그러고 싶어서 보자고 한 거야.”

“저희는 그렇습니다. 뭐를 하나 인수할 때 저희는 형님네처럼 이걸 제대로 키워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업과 어떻게 연동을 시킬까, 어떻게 다른 사업으로 확장을 시킬까… 생각을 거기까지 넓히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

“대신에 이게 그 자체 가치로 어디까지 뛰어오르겠다… 하는 계산만큼은 치열하게 해야지요.”

손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장 회장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신경을 써서 보는 게 사람입니다. 누가 그걸 만지냐, 누가 그걸 키울 것이냐… 저희가 하는 진짜 투자는 바로 그 부분이죠. 며칠 전에 장선길 회장 12년 형 확정 난 날 정훈이가 집에 찾아와서 그럽니다. 통신은 마트하고 다르게 부도까지 끌고 가면 안 된다. 마트 사업이라는 건 로케이션이라는 특징 때문에 소비자들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크지가 못하다. 하지만 통신이라는 건 전화 한 통으로 거래 통신사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부도라는 단어를 붙게 만들어서 좋을 게 아무것도 없다.”

손홍준 회장의 빈잔을 채워 주며 장영석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부경통신의 이름을 재경통신으로 바꾸는 데 동의를 해 줄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한 미래금융 쪽의 대답은 정훈이를 통해 들었기에 손 회장은 미래금융 쪽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게 맞는 거고, 성장 차원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지만 안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잘 키워 낼 자신이 있냐고.”

그 순간 손 회장과 장 회장의 눈빛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겼다.

재경에선 부경통신을 재경항공이 앞으로 나와 지분 매입을 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재경항공은 현 재경 그룹의 지주사.

통신의 경영자 자리에 정훈이가 앉게 된다면, 그는 즉 재경의 후계 구도가 정훈이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에 재경과 미래금융이 공동으로 지분 매입을 시도하는 부경통신은 그런 복잡한 계산이 모두 담긴 물건이 되어 버렸다.

“정훈이는 뭐라고 하던데?”

“병아리 이야기를 하던데요.”

“병아리?”

“누구라고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보고 싶지 않겠냐고. 다 닭으로 키워서 낳는 알을 보고 싶지. 알을 낳는 닭으로 키우고 싶으면 개중에 건강한 병아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겁니다, 정훈이가 하는 말이.”

“…….”

“비실비실하고 병든 병아리를 가져와서 아무리 영양제를 먹이고 신경을 써 키워 본들, 그게 닭까지 크겠냐는 거죠. 형님 앞에서 할 말인가 싶긴 한데, 정훈이 그놈이 참 능구렁이입니다. 제가 무슨 의도로 그렇게 물었는지 빤히 다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람 입을 막아 버리는 걸 참 잘해요.”

“자네는 내가 당연히 정훈이한테 통신을 직접 키워 볼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 물음 앞에 장영석 회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 회장에게 말했다.

“형님도 많이 늙었수.”

“세월 앞에 장사 있나.”

“형님답지 않게 빙빙 둘러 이야기를 하시는 게 말이에요.”

직접 자신의 잔까지 채워 놓고 장영석 회장이 말했다.

“제가 ‘네, 맞아요’라고 하면 형님이 하고 계시는 고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까?”

“그럴 거 같네.”

순간 장영석 회장은 당황을 했다.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까지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보여 줄 손홍준 회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 그 생각을 함께 덜어 줄 사람이 필요하단 뜻인가?

하지만 장영석 회장은 재빨리 자신이 지켜야 하는 선을 찾아냈다.

“제가 정훈이 이놈이 집에 찾아올 때마다 생각이 참 많아져요. 저는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정훈이가 아니라 우리 하늘이 생각을 먼저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지. 그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아쉬운 거 없이 키웠어요. 앞으로도 어디 가서 아쉬운 입장,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게 만들 겁니다.”

“…….”

“저는 형님하고 입장이 달라요. 정태, 정훈이. 우리 다음 세대 재경을 누구한테 맡길지, 고민이 많으신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저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거 이 자리 빌어서 꼭 말해 드리고 싶어요. 저는 우리 하늘이가 어디 가서 눈칫밥 안 먹고, 자기 원하는 거,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장영석 회장은 지금껏 미래금융에서 해 왔던 그 어떤 사업보다 더 진심을 담고, 진정성 있게 손홍준 회장을 상대하고 있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태가 재경을 맡아 나가는 게 하늘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훨씬 더 좋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태가?”

“그럼요. 우리가 어디 천 년을 살 겁니까, 만 년을 살 겁니까? 이미 이만하면 충분한 거, 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젊었을 땐 재경을 위해, 그리고 나이가 들어선 미래금융을 키우는 일에 제 평생을 바친 게 저는 조금 억울할 때가 있어요. 형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건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잖아요.”

“자넨 여전하네.”

“하늘이까지 저처럼 이 나이 먹고 집안 선택 때문에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못 살아 본 걸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 정훈이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잖아요.”

“그랬어.”

“이런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가도, 정훈이가 집에 와서 저랑 아버지 붙잡아 놓고 사업 이야기를 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아요.”

“꿈틀대? 뭐가?”

“아버지는 그걸 기대라고 말씀을 하시던데, 저는 그게 대리 만족인 거 같아요.”

“대리 만족?”

“가진 욕심, 야망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지난 삶에 대한 대리 만족. 저는 정훈이처럼 그 나이에 그렇게 주체적으로 살아 보지 못했어요. 가지고 있는 욕심 앞에서도 솔직하지 못했고. 너무 치열하게 사셨던 어른들을 가까이서 봐 오며 성장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겸손하게 살자, 만족하면서 살자… 그런 생각을 제가 저한테 스스로 주입을 해 왔던 거죠.”

“나도 가끔씩은 정태, 정훈이한테 그런 부분에서 안쓰러울 때가 많아.”

“어쩌겠어요. 정태, 정훈이.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미안하네.”

“저한테요?”

“그래.”

“뭐가요?”

무거운 표정으로 손 회장이 사과를 했다.

“우리 쪽에서 정훈이, 하늘이 혼사를 너무 많이 끌고 있지?”

장영석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코로만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자네 집에서도 내 처가 쪽 관련된 일 때문에 하늘이를 보내는 부분이 마음이 편치 않을 거라는 거라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어.”

“형수님은 요즘 좀 어떠세요?”

그 물음에 피식하고 웃음을 흘리는 손 회장의 모습에 장 회장은 저도 모르게 미간 사이 주름을 만들어 냈다.

마침내 손홍준 회장은 오늘 이런 자리를 만든 진짜 이유를 조심스럽게 장영석 회장 앞으로 꺼내 놓았다.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 줬음 좋겠어.”

“그럼요. 제가 형님을 모릅니까.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내가 이런 자리를 만들어서 지금 우리 집 상황을 자네한테 있는 그대로 먼저 말을 해 놓아야, 혹시라도 자네 아버지나, 제수씨가 괜한 오해를 하지 않겠다 싶어.”

이렇게까지 서론이 장황한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장영석 회장은 마주 보고 앉은 손 회장의 입에서 어떠한 양해의 말이 나오더라도, 하늘이를 위해, 미래금융의 자존심을 위해 표정을 숨길 생각이었다.

“올해는 우리 재경도 그렇고, 자네 집안도 그렇고 큰일이 있었으니까 자체 정비를 하는 쪽으로 집중을 하고 정훈이, 하늘이 혼사 관련된 내용은 내년쯤 구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영석이 네 생각은 어때?”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장영석 회장이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편안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형님 요즘 공은 좀 치십니까?”

“공?”

“왜 옛날엔 어른들 모시고 피곤할 정도로 함께 다녔잖아요. 문뜩문뜩 그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나도 그래.”

“언제 공이나 한번 같이 치러 갑시다.”

급하게 대화 주제를 바꾸고 있는 장 회장을 손 회장은 말없이 쳐다만 봤다.

“저는 우리 하늘이, 정훈이 혼사하고는 별개로 형님하고 이런 자리를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게 참 좋네요.”

“…….”

“저도 우리 하늘이 급하게 치우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천천히 데리고 있을 수 있는 만큼 오래오래 품고 싶어요. 설혹 나중에 가서 아이들 혼사 문제로 형님하고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게 현재 우리 미래금융과 재경이 함께하고 있는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형님도 그 부분을 말하자고 이런 자릴 마련하신 거 같고.”

“35년을 나하고 한 이불을 덮고 같이 산 사람이야. 정훈이 엄마 말이야.”

“네.”

“요즘 나하고 좀 안 좋아.”

오죽 상황이 안 좋으면 자신을 앞에 앉혀 놓고 이런 이야기까지 할까 싶었다.

장영석 회장은 불편한 마음을 조절해 가며 우선 들어 주었다.

그런데….

장 회장은 이내 재경가의 집안 상황이 그저 말로만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채기 시작했다.

“지금 잠깐 따로 지내고 있어.”

“따로 지내고 계시다면… 설마 별거 중이란 말씀이세요?”

그에 가볍게 웃으며 손 회장이 말했다.

“지난 세월 내가 어떻게 살았나 싶다.”

“형님.”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 살았어. 갈라서는 순간 부경 쪽으로 넘겨준 것들을 그대로 포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지. 어디 그것만 포기한다고 끝이 나나. 부경에서 들어올 압박을 나 혼자 무슨 수로 다 감당을 할 거며, 그 압박에 혹여나 그나마 쥐고 있는 사업까지 문제가 생길까 항상 속마음을 숨긴 채 지내야 했어. 영석이 네 앞에서는 좀 솔직해져도 괜찮잖아?”

“…….”

“안 좋은 모습 보여서 참 부끄러운데, 자네한테라도 솔직하게 말을 해야 제수씨나 자네 아버지가 다른 오해를 안 하실 거 같아서. 우리 쪽에서 혼사 관련된 내용을 먼저 꺼내는 게 누가 봐도 도리잖아. 그걸 제때 못해서 내가 참 미안해.”

“아니, 형님. 잠깐만요. 듣고 보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요? 형수님하고 지금 많이 안 좋으신 겁니까?”

“하늘이. 얼마나 귀하게 키웠을 거야. 내 안 봐도 비디오야. 내가 자넬 모르나. 그렇게 귀한 사람을 받으면서, 하늘이가 불편할 수도 있는 건덕지를 내가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두나.”

“형님!”

“나는 다음 재경을… 정훈이한테 맡기기로 마음을 먹었어.”

“……!”

“자네한테 처음 말하는 거야. 아직은 아무도 몰라.”

“형님….”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니, 지금부터 내가 정훈이 붙잡아 놓고 할 게 많아. 비록 내가 재경을 받았을 땐 상황이 안 좋았지만, 정훈이한테 넘겨줄 땐 제대로 된 구색을 갖춰 주고 싶어. 비록 지 엄마라도, 그 존재가 우리 재경에 걸림돌이 될 여지가 있다면, 내 손으로 치워 주는 게 맞는다고 봐.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좀 많이 부족한 사람이야? 내가 미처 못 챙기는 부분은 앞으로 자네 집에서 우리 정훈이한테 힘을 많이 보태 주면 고맙겠어. 이유야 어찌 됐든 부경과의 악연을 만든 게 나야. 그럼 끊는 것도 기회가 왔을 때 내가 해야지. 그 정도도 내가 직접 못 해내면….”

손 회장은 이야기 도중에 술잔을 비워 놓고 인상을 썼다.

“크흐, 쯧. 진짜 죽어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 얼굴을 내가 어떻게 보겠어. 안 그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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