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의 품격-241화 (241/303)

241화 혹시 이 인간 이거…

피즈파즈라는 이름의 아주 오래된 레스토랑이었다.

마치 수백, 수천 년은 되었을 법한 돌들이 반들반들하게 바닥에 깔려 있는 운치 있는 골목.

그 골목 중간쯤에 노천카페식의 테이블들을 길거리에 여러 개 깔아 놓고 영업 중인 레스토랑.

아마 파스타보다는 피자가 주력 메뉴인 듯, 전통 화덕이 가게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무척 느낌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히야….”

손정훈 상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입구 쪽에 매달려 있는 장식구들을 만져 보며 강인성 차장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표정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안에서 드시게요? 날씨도 좋은데 바깥에서 드시죠.”

“어… 오늘은 그냥 안에서 먹죠. 제가 이 집에서 꼭 다시 즐겨 보고 싶은 맛이 있어요.”

무슨 맛인지 물어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하겠다고 다가왔는데, 그런 종업원에게 손정훈 상무는 가장 안쪽 최소 6명은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저곳에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종업원은 다시 한번 일행이 총 몇 명이냐 물었고, 손정훈 상무는 일행은 둘뿐이지만 저 자리에 맞는 음식을 시키겠다고 약속을 했다.

“왜 굳이 이렇게 큰 자리를 선택하신 겁니까?”

종업원에게 와인 리스트를 보여 달라고 부탁한 손정훈 상무에게 강인성 차장이 물었다.

“음식, 그리고 음악. 이 두 ‘음’에는 참 신기한 힘이 있어요. 단 한 소절, 단 한 입.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거든. 참 운이 좋네요, 제가. 이 레스토랑이 아직까지 장사를 다 하고. 마침 또 이 자리까지 비어 있잖아요.”

“……?”

“우리 강 차장님한테도 틀림없이 그런 음식, 그리고 음악이 있겠죠?”

“네, 저도 있죠, 그런 게.”

강 차장에겐 대학 새내기 시절과 군대 안에서 즐겨 들었던 버즈, 씨야, 그리고 린의 음악이 그러했고, 대학교 학식이 그러했다.

그 후로는 어학연수부터 시작해 졸업 준비, 취업 준비, 그리고 취업 후엔 승진과 결혼 문제 등으로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버즈, 씨야, 린의 오래된 감성 발라드를 즐겨 듣는 편이고 한 번씩 2천 원, 2천 5백 원, 특식은 3천 원… 그렇게 싼 가격에 한 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었던 대학교 학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추억 팔이를 할 때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재경식품을 대표해서 만난 자리였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그쪽에서 준비한 일정을 무시하고 나온 건 추후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밥 먹으러 와서까지 무슨 그런 골치 아픈 일 이야기를 또 꺼냅니까? 알고 있어요, 나도. 그런데 일 이야기는 잠시 건너뜁시다.”

“하지만….”

“강 차장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뭐야, 또 뜬금없이!

강인성 차장은 고비드 측을 상대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미팅을 끝내서 자신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은 천하태평인 손정훈 상무가 얄밉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닌 말로 손 상무야 고비드 측과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회사에 없다.

쓴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겠지.

그것도 최소 조동희 전무 윗선에서.

하지만 강인성 차장, 본인의 입장은 달랐다.

이런 큰 프로젝트에 관한 해외 미팅에 손정훈 상무를 의전한 유일한 사람.

도대체 손 상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동안 옆에서 뭘 했냐고 누가 지적이라도 하면 정말 아무 할 말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뜬금없이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애써 답답함을 숨겨 놓고 강 차장이 입을 열었다.

“네? 저요?”

“계속 머리 아픈 이야기를 꺼내시니까. 정 할 말이 없으면 그냥 편하게 강 차장님에 관한 이야기나 해 보자고요.”

“하아, 본부장님.”

“주제를 나로 삼기엔 이미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 아니에요. 강 차장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생각을 해 보니까 내가 아직까지 강 차장님한테 그런 걸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네.”

“저야 뭐….”

“고려대 국제학과 졸업. 공부는 틀림없이 엄청 잘했을 거고, 딱히 특별한 학창 시절을 보냈을 거 같지는 않은데?”

결국 강인성 차장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즐거워서 웃는 게 결코 아니었다.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서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그래, 모르겠다.

알아서 해결을 하겠지.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한다고 이 사람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불안해한다고 바뀔 상황도 아니다.

강인성 차장은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을 편하게 고쳐먹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히려 본부장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정반대?”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는 수능 400점 세대였거든요. 고2 때까지 모의고사에서 200점을 넘겨 본 적이 아마 한 번도 없었을 거예요.”

“진짜요?”

“고2때까지는 공부라는 거 자체를 안 했었거든요. 모의고사 성적 자체에 관심이 아예 없었어요. 모의고사가 있는 날은 하루 종일 잘 수 있는 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본부장님은 저랑 세대가 달라서 이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희 때는 모의고사를 치면 그냥 한 줄로 답안지를 다 그어 놓고 자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선생님이 없었어요.”

“하하. 재밌네. 그런데 어떻게 고려대를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이런 말 하면 절 이상하게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입 싹 닦으면 더 안 좋게 볼 수밖에 더 있어요? 뭔데요? 어떻게 공부를 그렇게 안 해 놓고 고려대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비싼 와인 한 모금으로 입 안을 대충 적셔 놓고, 겸연쩍다는 듯 강인성 차장이 입을 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2때까지 유도를 했습니다.”

“아, 어쩐지 강 차장님 귀를 볼 때마다 저건 운동을 한 사람의 귀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고등학교도 결국 따지고 보면 유도 특기생으로 그런 명문고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지, 학업 성적으로 갔던 게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 보니까 주위로 별난 친구들이 많이 모여들더라고요. 거기에 유도까지 하니까 자연스럽게 학교 안에서는 물론이고, 인근의 학교에까지 유명해지더라고요.”

“일진 뭐 그런 거였어요?”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렇다고 봐야 할까요? 딱히 학교 친구들을 괴롭히고, 돈을 뺏고…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저를 치켜세워 주는 그런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취해 갔던 거죠.”

“그런데 왜 유도를 계속 안 하고….”

“부상이죠, 결국은. 경기 도중에 십자 인대가 끊어졌는데 그게 결정적이었어요.”

“그래도 대단하다. 강 차장님 말대로 하자면 고3 딱 1년 동안 공부해서 고려대에 들어갔단 말인 거잖아요.”

“쪽팔리는 게 싫었던 거 같아요. 저는 저인데, 유도가 빠진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 자체를 못 견뎌 했던 거죠. 생각을 해 보면 유도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 줄 알았던 거 같아요. 뭘 해도 남들보다 잘하니까, 똑같은 운동량에도 결과물이 다른 친구들보다 월등하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제 인생에서 유도라는 선택지가 사라져 버리니까 제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되어 있는 거예요.”

함께 와인 잔을 들어 보이며 손정훈 상무가 강인성 차장을 치켜세웠다.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벌써부터 할 수 있었다는 게 난 더 대단한 거 같은데?”

“그런가요?”

“그럼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좋은 결과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어요? 하물며 그때 강 차장은 고등학생이었잖아요.”

“결국은 운동을 한 게 많은 도움이 됐죠. 근성, 끈기. 거기에 운동부라는 거 자체가 워낙 선후배 간의 기강이 강하다 보니, 군대에서도 그렇고 사회에 나와 조직 생활을 할 때에도 그 몸에 베인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그렇죠. 요즘 세대 직원들한테는 강요하기 힘든 그런 것들이 최소한 강 차장님 세대에선 너무나 당연한 그런 것들이었을 테니… 그런데 잠깐만.”

“…네?”

“그럼 강 차장님 싸움 완전 잘하시겠는데?”

“아닙니다.”

“아니긴. 조금 전 강 차장이 강 차장 입으로 주위에 별난 친구들이 많이 모여들었다면서? 그럼 뭐 강 차장이 그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이었단 소리 아니에요?”

“덩치가 크고 운동부였다 보니 그랬던 거지, 저는 누구를 때리고 싸우고… 그랬던 적이 없습니다.”

“안 해서 그렇지 막상 하면 잘할 거란 소리잖아요.”

“몇 년간 계속 한 게 유도인데, 당연히 일반인들이랑 경기를 한다면 쉽게 이기기야 하겠죠. 하지만 싸움이랑 유도는 다른 거니까요.”

“아무튼 대단하네. 나는 강 차장님한테 그런 학창 시절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어요.”

1인 1피자.

자신의 피자를 칼과 포크를 이용해 잘라 놓고, 그걸 한 조각 입으로 넣은 후 강인성 차장이 말했다.

“본부장님이 앞에 계셔서 하는 말은 아니고요.”

“뭐가요?”

“제가 어떻게 감히 본부장님과 비교가 되겠냐만, 최소한 제가 사는 세상 안에서만큼은 어디에서나 뛰어나단 소릴 들어 왔거든요.”

“제가 사는 세상 속에서도 강 차장님은 뛰어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는 걸까요? 본부장님을 모시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는데, 본부장님과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항상 넘지 못할 벽을 마주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

“물론 당연한 거죠. 사람은 각자가 들고 태어난 그릇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하지만 때론 그런 그릇을 스스로 깨뜨리는 재미라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있죠, 있죠. 당연히 있죠.”

“저한테는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던 내신을 안고 오로지 수능 성적만으로 명문대에 입학을 해낸 게 그런 거였고, 군 전역 후 복학을 해서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기 시작한 게 그런 거였어요. 그리고 졸업 후 재경모직 전략기획팀에 입사를 한 게 바로 그런 거였고, 서른넷에 과장을 단 게 바로 그런 거였죠. 그런데… 죄송합니다, 이런 표현을 써서.”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편하게 이야기 해요.”

“저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본부장님을 모실 때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 같은 걸 다 떠나서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만 봐도 절대 본부장님은 제가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들고 있던 와인 잔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신 뒤, 그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손정훈 상무가 말했다.

“이거 내가 괜히 미안해지는데?”

“아닙니다. 본부장님이 왜요? 저는 오히려 절 항상 더 열심히 살게끔 자극을 주시는 본부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뜻으로 미안하다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강 차장님처럼 실력 있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사람에게 과연 그런 중요한 존재가 되어도 되나 싶어서 하는 말이에요.”

“……?”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고. 벽.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벽을 만났다는 말은 성장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라고. 나란 사람이 과연 강 차장님 같은 사람을 성장시킬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드네요. 그래도 강 차장님이 그렇게 생각을 하신다고 하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네.”

바로 그때였다.

강인성 차장의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 출장을 준비하며 함께 첫 미팅 일정을 조율했던 고비드 측의 관계자 번호였다.

“비앙카인데요?”

전화를 받기 전 손정훈 상무에게 전화를 건 상대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러자 손정훈 상무는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받아 보라고 손짓했다.

강인성 차장은 홀로 와인 잔을 입술에 붙여 놓고, 마치 오래전 향수를 맡듯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는 손정훈 상무를 마주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미스터 강. 비앙카예요.

“네, 비앙카.”

―미스터 손은 괜찮으신가요? 미팅 중에 큰 오해가 생겼다고 들었어요.

“제가 지금 비앙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미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미스터 강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굳이 저한테 설명을 해 주실 이유는 없어요.

“그럼 어쩐 일로 전화를 주신 겁니까?”

―미스터 손과 미스터 강이 본사 의전도 받지 않고 나가신 후 내부적으로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아시아 전역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중요한 파트너인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그 관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걸 저희 쪽에서는 무척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네. 저도 그 부분은 무척 유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한 번 더 저희 본사를 방문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내일이요?”

―당장은 양사 간의 쿨링 타임이 필요해 보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현재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서 오해를 풀어 드리고 싶지만, 서로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진 후 만남을 이어 가는 게 더 효과적일 거 같아서요.

“제가 통화로 바로 대답을 드릴 내용은 아닌 거 같고, 미스터 손에게 고비드 측의 생각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미팅엔 미스터 콘띠 씨가 미스터 손과의 만남을 위해 직접 자리를 하시겠다고 합니다.

마테 콘띠.

현 고비드 기업의 회장.

강인성 차장은 그 이름 앞에 순간 당황을 했지만, 그 당황을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들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부분도 미스터 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내일 미팅을 요청하시며, 미스터 콘띠께서는 부디 이번 귀사의 이탈리아 방문이 양사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말씀 있으셨습니다.

“해당 말씀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인성 차장의 심장은 마치 금방 전력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끝낸 사람의 그것처럼 크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폰을 재킷 안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은 후 손정훈 상무에게 말했다.

“내일 미스터 콘띠가 직접 본부장님과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데요?”

“그럼 만나 봐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그럼 약속을 잡을까요?”

“식사 다 끝내 놓고 합시다. 급할 거 없잖아요. 거기서도 회장이 직접 자리를 만들겠단 강수를 둔 만큼 우리가 거절을 하기 힘들다는 걸 다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전화까지 바로바로 넣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쪽에서도 회장까지 나서서 먼저 상황을 바로 잡아 보겠다고 하는데, 너무 배짱을 부리는 것도 매너는 아닌 거 같습니다.”

“배짱을 부리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저한테는 이 공간,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겁니다.”

혹시 이 인간 이거… 자기가 MD를 상대로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낸 무례를 범해 버리면, 고비드 측 회장이 직접 자리를 마련할 거라는 걸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냐?

그럼 아까 고비드 본사 건물 안에서 ‘급’ 어쩌고저쩌고했던 게 결국은 고비드에선 회장이 직접 나와야 서로 급이 맞을 거란 말이었나?

그런 합리적인 의심에 강인성 차장의 생각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제가 이 레스토랑에서 이 디아블로 피자를 다시 맛볼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게 무슨….”

“이 라자냐 맛도 진짜 그대로고… 아, 역시 산다는 건 참 좋은 거예요.”

“본부장님.”

“장정 둘이서 와인 한 병에 이거 다 먹는 데 한 시간이 걸립니까, 두 시간이 걸립니까? 그 정도 여유도 없습니까? 나랑 같이 있으면서?”

“…….”

“그런 여유를 필요할 때마다 편하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삶을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닙니까. 드세요, 천천히. 언제 또 우리 둘이 한국도 아닌 이곳 밀라노에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겠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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