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의 품격-246화 (246/303)

246화 재벌의 특징이 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64년생 도민종.

MJ사 대표의 이름이다.

며칠 전 비서실로부터 MJ사 대표가 날 만나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전해 받고, 그가 남긴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MJ 측의 경우는 내가 먼저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은 상대이기도 했다.

좋은 해외 요식 브랜드들의 라이선스를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이거든.

특히 국내 피자 시장의 부동의 1위를 수년간 유지하고 있는 뉴욕피자의 경우는 MJ가 20년 넘게 국내 라이선스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 브랜드이기도 하다.

내가 식품 생활을 정리하기 전 이런 기업 한두 개 정도는 재경의 든든한 아군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손정훈입니다.”

“MJ 대표, 도민종입니다.”

내가 직접 그쪽으로 가도 되는데, 굳이 자기가 우리 재경식품 본사로 찾아왔다.

만남의 성격을 떠나 상대에 대한 예의가 반드시 필요한 자리였다.

접견실에서 그와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미리 준비해 뒀던 회의실로 직접 안내를 했다.

회의실이라고 해 봤자, 접견실과 같은 층에 있어서 이동이 크지는 않았다.

도민종은 그 회의실로 편승일 사장과 모범태 전무가 인사차 내려와 얼굴을 비추고 가는 부분에서 놀람을 금치 못했다.

다른 선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MJ 측에서 대표가 직접 방문을 하기 때문에 우리 쪽 사장과 전무가 짧은 시간이지만 얼굴을 비추면서 MJ에 대한 예의를 보인다는 부분에서 크게 당황을 한 모양이었다.

편 사장과 모 전무가 다녀간 뒤 도민종에게 내가 물었다.

“사장님이나 전무님도 아니고, 절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셔서 무슨 내용 때문일까 많이 궁금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재경식품 사장님과 전무님께 큰 결례를 한 거 같습니다.”

“결례라니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지만 그런 내용은 이 만남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을 담아 미소를 보여 줬다.

“오히려 대표님께서 이렇게 먼 걸음을 해 주셨는데, 미리 잡혀 있는 선약들 때문에 사장님, 전무님 두 분 모두 대표님과 의미 있는 시간을 길게 가지지 못하시는 게 아쉬울 뿐이죠.”

서론과 서로에 대한 예의는 이쯤하면 충분한 거였다.

“처음 대표님 연락을 받았단 소릴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측에서 먼저 연락을 넣어 볼까 하던 중이었거든요.”

“재경식품 쪽에서요?”

“음… 글쎄요? 이걸 재경식품만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님 재경 그룹 전체를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정확하게 구분을 짓기는 어렵습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대표님과의 자리를 꼭 마련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좋은 관계 형성이 일차적인 목적이죠. MJ는 저희 재경식품 기준에서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좋은 경쟁사이고, 재경 그룹 전체로 놓고 봤을 땐 좋은 파트너로 관계 발전을 시켜 보고 싶은 실력 있는 기업이니까요.”

“파트너요?”

“네, 그런 의미로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꼭 식품 사업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MJ는 저희 재경쪽에서 꼭 한번 직접 만나 사업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상대였다는 의미로요.”

“언뜻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재경식품이 분사 행보를 걸으며 요식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넣을 계획 중이라는 것쯤은 상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건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의 걱정과는 달리 난 재경식품을 통해 국내 요식 사업, 특히나 해외 프랜차이즈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과열시킬 마음이 전혀 없다.

누구 좋으라고.

결국 시장이 과열되면 그 이익은 해외 브랜드 놈들이 다 가져가는 거 아니겠나.

그렇게 되면 앞으로 자연스럽게 해외 브랜드 놈들은 라이선스 기업 선정에 기준을 그만큼 높일 것이고, 까다로워진 기준에 대해 브랜드 측 콧대는 결국 라이선스를 희망하는 기업 쪽으로 불리한 조건을 달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그걸 요즘 사람들은 치킨 게임이라고 하던데, 우리가 뭐 하러 우리 손으로 요식 시장을 치킨 게임의 판으로 만들겠나.

프랜차이즈 사업이라는 건 결국 브랜드와 시스템, 메뉴얼을 가지고 있는 본사만 앉아서 돈을 버는 거고, 가맹주들은 시간과 노동, 돈까지 투자해서 그 브랜드 본사 배만 채워 주는 거다.

그런 미련한 치킨 게임을 누가 만들겠다고 하면 달려가 훼방을 놓아도 뭐할 판에 그걸 우리 재경식품이 직접 만든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지.

“저희 재경은 아시겠지만, 항공, 스너프, 통신으로 이어지는 무척 크고 강한 뜰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뜰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물속에 있는 물고기들을 모두 걷어 올려선 안 되는 것이겠죠. 원양 어선을 타시는 분들도 그물에 새끼 물고기, 새끼 꽃게… 그런 것들이 딸려 올라오면 다음을 위해, 다른 배를 위해 풀어 주는 양보 정신, 공생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물며 저희 재경이 항공 같은 독과점이 가능한 사업 분야도 아닌 식품 쪽에서 시장을 독식하겠다고 달려들 이유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번에 재경식품이 JKF로 외식사업 부문을 따로 분사시키는 이유는….”

“물론 사업 확장이 가장 큰 이유죠.”

예의는 지키되, 꾸밈은 없어야 되는 자리.

MJ사를 상대로 있는 걸 없다고 하고, 없는 걸 있다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쪽에서 궁금해하는 것들은 대외비가 아닌 이상 성의껏 대답을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 역시 MJ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 많았고, 떠도는 소문이 아닌 대표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많았으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가공식품사업 부문과 외식사업 부문의 전문성을 나눠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성장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발전 가능성을 열어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제삼자가 이렇다, 저렇다 할 내용은 아니지만 지금의 재경식품은 단순 매출로만 따져서 단숨에 식품업계 최상위권 진입이 가능한 상태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최상위권 진입이 코앞인데 계열을 둘로 나누는 분사 작업을 진행하신다는 게 쉽게 이해가 잘 안 되어서요.”

상대의 불안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새로이 조직해 나가고 있는 재경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난 그런 상대의 불안을 걱정한다거나, 안심을 시키기보다 내가 재경식품을 통해 재경 그룹 쪽으로 어떠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를 보여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론 업계 순위, 총매출과 같은 매출 수치가 해당 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순위, 수치에 집착을 하는 사람입니다.”

“……?”

“그럼에도 저희 재경식품은 지금 이 타이밍에서 분사를 진행해야만 합니다. 분사의 이유는 기업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죠. 어느 한 특정 부분이 월등한 성장을 보여 줄 때엔 해당 부분에 집중을 해 더 큰 성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반대로 어느 한 특정 사업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라앉게 되면 평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하는 게 분사 아니겠습니까? 저희 재경식품은 현재 JKF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가공식품사업 부문은 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는 중이죠.”

“…네.”

“가공식품사업 부문이 가지고 있는 성장률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극복해 내기 위해선 외식사업 부문을 분사시켜서, 현재 재경식품 전체로 잡히고 있는 외식사업 부문 투자 비용을 JKF 쪽으로 돌리고, 동시에 JKF에서 소비하고 있는 가공 원자재를 가공식품사업부 쪽으로 구매하도록 만드는 비용 처리 시스템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잘 아시겠지만, 세금 부분에서도 절세엔 그게 훨씬 더 유리하고요.”

“아….”

“기업 활동에서 돈이라는 건 매출을 통해 만들 수도 있는 거지만, 시스템 변화로 굳힐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입만 반쯤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이던 도 대표의 입에서 “…그렇죠.”라는 마치 그런 내용까지는 깊게 생각을 해 보지 못하고 이번 자리를 만들었다는 고백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올 한 해 재경식품이 만들어 낸 성장률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60퍼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스너프마트와 태영마트라는 국내 양대 대형 마트를 잡은 이유가 결정적이겠지만, 그것 말고도 군 식자재 납품 쪽으로도 큰 판로가 뚫렸고, 동시에 여행 시장도 작년 대비 크게 성장을 하면서 재경항공으로 넣고 있는 기내식 매출까지 전년 40퍼센트나 높게 잡힌 상황이죠.”

물론 상대도 잘 알고 있겠지만, 재경이란 가치가 지금은 어떠하고, 또 어떻게 발전될 것인지를 우리의 시각에서 보여 주는 것도 상대를 우리의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제가 업계 순위, 매출 수치에 집착을 하는 편이기는 하나, 결국은 그런 부분에 집착을 하는 것도 자기만족 때문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미 현재의 재경식품에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의 재경식품은 샘스 핫도그에 이어 고비드 아이스크림까지 계획대로 론칭을 해서 본격적인 매장 확보에 들어가면, 가공식품사업 부문과 외식사업 부문이 따로 분리가 안 된다는 가정하에 업계 최상위권 진입이 아닌, 식품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내가 보인 자신감 앞에 상대는 잠시 실눈을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쁘띠 기뿔리와 스위트럼이 만들어 낸 폭발적인 매출을 떠올렸던지 긍정의 고갯짓을 보였다.

“지금의 재경식품이라면 외식사업부를 JKF로 분사를 시켜 놓고, 오로지 가공식품사업부만으로 타 기업들과 경쟁을 해도 빠른 시일 내에 업계 최상위권 진입이 가능할 겁니다.”

“외식사업부를 분사를 시킨 상태로도 말인가요?”

“그럼요. 방법이 예전에 비해 한결 쉬워져 버렸잖아요.”

내가 보여 주는 자신감에 대해선 인정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선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 MJ사의 도 대표에게 내가 물었다.

“대표님.”

“네.”

“대한민국 재벌의 특징이 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재별의 특징이요?”

“네. 재벌, 이게 한국말이라면서요? 솔직히 저는 재벌이 군벌처럼 중국 표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하네요?”

“그럴 겁니다. 저도 어디선가 그렇다고 들은 기억이 있네요.”

“가족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 그게 첫 번째 대한민국 재벌의 특징이라네요? 다른 나라 기업들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제 사업에만 관심이 있지, 다른 기업, 다른 나라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특징은 아, 이건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정서일 거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요?”

“바로 지주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업종으로 세력을 넓힌다는 겁니다. 당연히 가족들끼리 각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두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 주면서 세력을 넓히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고 안정적이겠습니까?”

“…네.”

“재경항공의 항공사 파워는 국내에 비교 대상이 없습니다. 스너프가 가진 항공 티켓 파워 역시 더 이상은 국내에 비교 대상이 없죠. 이 두 가지 무기만 가지고도 재경식품은 저희가 마음만 먹으면 국내 식품 업계 1위 자리 정도는 단숨에 꿰찰 수 있게 됐습니다. 재경식품은 지난 40년간 재경항공의 기내식을 생산해 낸 경험이 있죠. 얼마든지 국내 타 항공사 쪽으로 기내식 영업이 가능하고, 상대가 거절하기 힘든 조건들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상대는 더는 내가 하는 말에 의심을 두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아무리 강하고 큰 뜰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눈에 보이는 대로 물고기들을 다 거둬 올려 버리면 그 연못, 호수, 때에 따라선 강이나 바다가 될 수도 있겠고요. 아무튼, 우리 먹거리의 생태계를 저희 손으로 망가뜨리는 결과밖에 더 되겠습니까? 결국은 내 욕심을 억지로 눌러서라도 동종 업계 기업들과의 공생을 시도해야 하는 거죠.”

“공생… 제가 힘들게 준비해 온 단어를 먼저 꺼내 주셔서 이거 반갑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네요.”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고, 무엇보다 같은 생각을 따로만 하는 게 아닌 이렇게 만나서 공유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중요한 거죠.”

“실례가 안 된다면 상무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업계 공생이란 어떤 것인지 먼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실례가 될 건 전혀 없고요. 오히려 힘든 걸음을 해 주신 대표님을 앞에 앉혀 두고 너무 저 혼자 떠드는 건 아닌가 하는 약간의 걱정이 앞섭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 상당히 즐겁습니다.”

그래 보인다.

천상 기질이 사업하는 사람 기질이다.

자기 아들뻘 되는 상대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자리의 형식이 아닌 오로지 대화의 내용에만 몰입하는 정도가 남달랐다.

“언제부턴가 어느 자리를 가도 제가 주로 이야기를 하는 입장이지, 지금처럼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입장은 될 수가 없더군요.”

분명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많은 계산이 있었을 것이고, 사업적으로 풀어 보고 싶은 내용이 많았을 것인데 그걸 잠시 뒤로하겠다는 걸 보면 진심으로 지금 이 자리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분명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인풋이라는 게 필요한데, 항상 어딜 가든 제가 가진 걸 꺼내 놓는 아웃풋만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는 행위 자체가 제게 손해라는… 그런 다소 편협한 생각까지 하게 되더군요. 하하하.”

“전혀 편협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금방 그 말씀을 통해서 제 외로움이 조금 씻기는 기분입니다.”

“상무님도 그러십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거죠.”

혼잣말을 하듯 입맛까지 다셔 가며 고개를 끄덕인 도 대표가 금세 눈에 빛을 내며 날 쳐다봤다.

“상무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재경식품과 저희 MJ의 공생에 대해 먼저 들어 보고 싶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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