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의 품격-258화 (258/303)

258화 소비자들 바보 아닙니다

손홍준 회장은 담담하게 아들의 질문을 받았다.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정훈이에게 걸고 있는 기대라는 건 숨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 부분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 주는 정태에겐 미안했지만, 손 회장은 이미 정훈이의 다음 근무지를 통신으로 내정해 두고 있었다.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어?”

“어디 요즘 저한테 예전처럼 그룹 본사 관련된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냥 느낌상 그렇게 준비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거죠.”

말속에 뼈를 박고 있었다.

틀림없이 조동희 전무를 염두해 두고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손홍준 회장은 불편한 내색 없이 아들을 쳐다봤다.

“어차피 현재 재경의 메인은 항공이고, 통신을 항공이 끌어안고 있으니 따로 분리를 시키기 전에 정훈이를 통신에 보내 놓으면 동시에 항공과 통신 경험을 해 보게끔 만들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이제 너나 정훈이는 경험을 하는 단계가 아니다. 책임을 지는 위치에서 일을 해야지.”

“아버지.”

“왜?”

“보고 다 끝났잖아요.”

순간 손 회장은 깜짝 놀랐다.

정태가 저런 능글맞은 표정을 만들 줄 아는 녀석이었던가.

항상 단단하기만 하지, 유연함이 부족해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지금 자신에게 보여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은 유연하다 못해 능글맞기까지 했다.

“식사 이야기를 먼저 꺼내시길래, 지금은 스너프 사장 손정태 말고, 아버지 아들로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예전처럼 본가 호출도 거의 없으시고, 업무적인 내용 말고는 따로 자리를 만드시지도 않으니 이럴 때 아니면 아버지하고 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잖아요.”

손 회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 건 정태의 능글맞음이 꽤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까지도 아들의 자질을 평가한다는 게 못내 아쉽긴 했지만, 무척이나 의외였고 그래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혼자 다 짊어지고 가지 마세요, 아버지. 이젠 저도 있고 정훈이도 있잖아요. 아버지가 하시는 생각, 결정… 모든 걸 공유받겠다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아버지가 후계 관련된 내용으로 저 그리고 정훈이 양쪽 손에 하나씩 올려놓고 혼자 마음 쓰시고, 불편해하시는 건 안 하셨음 좋겠어요.”

“내가 지금 그러고 있는 거처럼 보이냐?”

“아니라고 하시면 다행이고요.”

어떻게 아닐 수가 있겠나.

이렇게 두 아들이 저마다 뛰어난데, 그 뛰어남이 자신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데….

“제가 아버지를 많이 어려워했던 건 알고 계세요?”

“네가?”

“네.”

“어째서? 나는 딱히 너나 정훈이한테 엄하게 한 적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렇죠. 항상 말씀하셨잖아요. 아버지는 너무 엄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커서 저나 정훈이한테는 그렇게 안 하고 싶으셨다고. 실제로도 그렇게 안 키우셨잖아요, 저나 정훈이. 한 번 혼을 내시면 열 번을 칭찬해 주셨죠. 그래서 그 한 번의 꾸중이 얼마나 무거운 건지를 잘 알면서 그렇게 컸던 거 같아요.”

“……?”

“그렇다고 그 한 번의 꾸중 때문에 제가 아버지를 어려웠했던 건 더더욱 아니에요.”

“그럼?”

“제가 아버지를 어려워했던 이유는… 저도 그 이유를 최근에 알았는데, 홀로 너무 위태로워 보이셨기 때문인 거 같아요.”

“위태로워 보여? 내가?”

“…네,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럼 내가 정말 최악의 아버지였단 소린데….”

“아니에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아버지가 돼서 자식들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진 못할 망정,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정태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표현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린 눈에도 아버지 혼자 재경이라는 조직을 홀로 다 짊어지고 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강박이 있었던 거 같아요. 나라도 아버지가 신경 쓰실 만한 짓은 하지 말자. 나는 아버지가 의지를 할 수 있는 아들이 되자…그런 강박 속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재경에 입사를 해서 일을 배워 왔던 거 같아요. 아버지. 저 착한 아들 맞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착하기만 할까. 근사한 아들이고, 넌 항상 나한테 자랑이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진짜 그런 아들이 되어 드리고 싶었거든요.”

“…….”

“그래서 그런 착한 아들이 되어 드리는 거에만 집중하고 노력을 하다 보니까, 제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아버지.”

평상시와 다른 아들의 모습에 처음엔 당황을 했지만, 그 당황이 천천히 짠함으로 변해 가고 있는 손 회장이었다.

“저한테만큼은 아버지가 별다른 신경을 안 쓰셔도 되게끔, 그렇게 해 드리려고 하다 보니까, 아버지 앞에서 제가 원하는 걸 마음 편하게 말씀드려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 아들이었다.

말 잘 듣고, 똑똑한 아이.

눈치가 빠른 아이, 그래서 똑같은 지적을 두 번 하게 만들지 않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아들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결국 손 회장은 정태가 자신에게 정말 수월한 아들이었다는 걸 다시금 인정하게 됐다.

“원하는 게 있어?”

“그 원하는 게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들어주시든, 안 들어주시든 말이라도 한번 꺼내 보려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 품고 있는 욕심, 바라보고 있는 목표. 사실 그 모든 게 그동안은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 싶은 기준으로 만들어졌던 거였어요.”

“말해 봐. 들어 보고 싶네. 네가 하고 있는 생각, 품고 있는 욕심, 또 바라보고 있는 목표라고 했나?”

“네.”

“말해 봐.”

“통신. 제가 한번 맡아 보면 안 되겠습니까?”

* * *

모범태 전무가 내 방을 찾았다.

스너프마트와 관련된 일이라면서 운을 뗐다.

“방금 스너프마트 부문장하고 통화를 잠깐 했습니다.”

내 방을 찾은 사람이 편승일 사장이었다면, 현재 스너프마트 쪽으로 넣고 있는 가공식품 관련된 내용이겠거니 했을 거다.

그런데 내 방을 찾은 사람은 편승일이가 아닌 모범태였고, 관련된 내용이 스너프마트라고 해서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외식 사업부는 스너프마트 쪽과 당장은 쁘띠 기뿔리, 스위트럼, 샘스 핫도그 외에는 크게 연관된 내용이 없고, 그 내용 역시 현재는 별다른 추가 진행 사항이 없다.

고비드 아이스크림에 관련된 내용도 추석 이후에 구체적인 매장 입점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무슨 일일까?

그쪽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해서 뭔가 아주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도 발견한 듯 상기된 얼굴로 내 방을 찾은 모 전무의 모습이 날 더 궁금하게 만들고 있었다.

현재 외식 사업부는 식품 본사에서 분사 진행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형식상 계열 분리는 거의 막바지 단계.

그룹 본사에서는 이미 외식 사업부를 분리해서 보고 있는 중이고, 모범태 전무도 곧 JKF(재경외식)의 대표 이사로 승진하며 그룹 사장단에 그 이름을 올릴 예정이었다.

“마트 내에 있는 푸드 코트 활성화가 절실한 상황인데, 그 부분에 우리 쪽으로 협조 지원이 가능하겠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앞뒤 다 잘라 놓고 푸드 코트 활성화를 위한 협조 지원이 가능하겠냐는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스너프마트의 자체 치킨 매장을 넣어 보고 싶다고요.”

“치킨 매장이요?”

“요즘 브랜드 치킨값이 배달비까지 다 포함해서 어지간하면 다 3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데, 더 이상 만만한 간식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죠.”

“통닭은 원래 만만한 간식이 아닙니다.”

살짝 삼천포로 빠지는 소리긴 한데, 난 한 번씩 요즘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연 이 친구들은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입에 달고 사는 소리가 지난 30년간 물가는 두 배, 세 배가 올랐는데 실질적인 급여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소리다.

삶이 팍팍해진 건 인정을 하고 나 역시 체감을 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분 문제이지 팩트는 아니다.

통닭이 만만한 간식이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난 아니라고 본다.

다들 월급날, 혹은 특별한 날 시장에서 한 마리씩 사 가지고 들어가 가족들이랑 기분 내면서 나눠 먹는 게 통닭 아닌가.

요즘처럼 혼자 사는 집에서 폰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3만 원이 넘어가는 통닭을 배달비까지 내가며 겁 없이 시켜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게 과연 얼마나 된다고, 더 이상 만만한 간식이 아니라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것일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그래서요?”

자세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모범태 전무가 말했다.

“스너프마트 쪽에서 마트 미끼 상품으로 가성비 치킨을 기획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가성비 치킨이요?”

“말 그대로 스너프마트 자체 상품이 되는 거죠.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고, 배달도 안 되는. 오로지 포장. 그 치킨을 구입하기 위해선 무조건 스너프마트를 방문해야만 하게끔요.”

“혹시 KFC 같은 그런 느낌을 말하는 겁니까?”

“저도 처음에는 그런 스타일을 말하는 건지 알고 부정적인 생각이 짙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우리 쪽에서 마진만 잘 맞춰 주면 크게 히트를 칠 수 있겠습니다.”

모범태 이 친구가 외식 사업 관련해서는 실력이 좋은 친구다.

감도 있고.

“자세하게 좀 이야기를 해 보세요.”

“그쪽 부문장이 저한테 묻는 게 치킨 한 마리 가격을 7,900원 선에 맞출 수 있겠냐고 하는 겁니다.”

“7,900원? 왜 하필이면 7,900원입니까?”

“포스트코에서 판매하고 있는 로이스터 치킨을 예로 들더군요. 포스트코에서는 현재 로이스터 치킨 한 마리를 6,400원에 팔고 있습니다.”

“꽤 오래됐죠?”

“오래됐죠. 물가 상승에도 절대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으니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품목이긴 합니다.”

“저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코는 회원비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죠.”

“거기다 그곳 로이스터 치킨은 튀김이 아니라 오븐 훈제식이라서 닭에 주입하는 식용 식염수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부재료는 거의 없는 상품이죠. 실제 인건비도 크게 많이 안 들어가고, 미리 조리된 걸 포장해 놓으면 일반 상품들처럼 소비자들이 하나씩 집어 가게 시스템을 잡아 놔서 미끼 상품으로는 최고라고 봐야죠.”

내 입에는 진짜 안 맞았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겠던데, 그게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훈제 치킨이라는 걸 알고 먹어도 내 입엔 너무 짰다.

“하지만 스너프마트는 포스트코 같은 창고형 마트도 아니고, 회원제 마트도 아니다 보니 거기에서 원가를 커버 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쪽 부문장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까, 회원제 마트가 아니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뭐라고 하던데요?”

“우선 자기들도 치킨으로는 큰 적자가 날 것을 각오하고 있답니다.”

“각오는 당연한 거지. 무슨 수로 통닭 한 마리를 7,900원에 빼요? 요즘은 9호, 10호짜리 냉동 닭도 5천 원, 6천 원씩 하는데.”

“대신 회원제 마트도 아니고, 인건비가 거의 안 들어가는 로이스터 치킨 방식도 아니지만, 프라이드 방식을 적용시키면 고객들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거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하고 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깜짝 놀라며 기분 좋게 손가락을 튕기자 모 전무도 함께 상기된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다.

“우선은 배달이 안 됩니다. 7,900원짜리 치킨을 구입하기 위해선 무조건 스너프마트를 방문해야죠. 그런데 로이스터 치킨처럼 미리 조리가 되어서 패킹이 되어 있는 상품도 아닙니다. 주문이 들어가고 상품이 나오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당연히 더 걸리겠죠. 사람들이 그만큼 줄을 서서 구입을 할 테니까.”

“그 시간을 마트 안에서 보내며 다른 상품을 카트에 담을 수밖에 없다?”

“벌써 스너프 자체적으로는 구체적인 기획이 다 만들어진 거 같습니다. 해당 치킨으로 인해 푸드 코트 안의 소비자들 몰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광역 차임벨 시스템을 적용시킬 생각이라는 말까지 하는 걸로 봐서는요.”

드디어 정태가 사업이라는 재미난 놀이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인가?

사업이라는 게 그렇다.

하나만 죽어라 파면 그만큼 한계와 끝에 빨리 도달하는 법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사업과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엮어 내는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직면하고 있던 한계와 끝이 시작이었음을 알게 되는 거지.

내가 정태를 스너프에 가둔 건 사실이지만, 억지로 못 나오게 막은 건 아니었다.

정작 그 안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건 유통의 한계와 끝을 마주하고 자기 혼자 그 한계와 끝을 뚫어 보겠다고 애쓰던 미련한 정태 자신이었지.

나는 정태가 언제쯤 자기 힘으로 눈을 뜨게 될까, 그걸 기대하며 기다려 주고 있었던 것뿐이다.

정말 이렇게 간단한 건데, 큰돈 안 들이고도 얼마든지 사업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건데, 그걸 정태가 서서히 알아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걸 자기들이 직접 하겠다는 겁니까, 아님 운영비를 지원해 줄 테니 우리더러 대신 해 달라는 겁니까?”

“우리 쪽으로 맡기고 싶어 합니다. 인건비, 매장 운영비 제외하고 치킨 한 마리를 빼는 데 들어가는 순수 원재료 단가만 놓고 봤을 때 7,900원에 맞출 수 있겠냐고 묻네요.”

“조건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팔면 팔수록 적자인 사업이라면서요? 우리 식품 입장에선 그걸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죠.”

“인건비, 매장 운영비는 당연히 스너프마트 쪽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킨 한 마리당 판매 가격 10퍼센트를 우리 쪽 매출로 잡아 주겠답니다.”

“한 마리 팔아서 790원 남기네요? 그게 우리 입장에서 돈이 됩니까?”

돈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더 큰 걸 남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묻고 있는 거였다.

정태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그쪽 부문장을 시켜 모 전무를 설득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현재 우리는 스너프 오프라인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백화점, 아웃렛, 그리고 마트. 우리가 기획한 쁘띠 기뿔리부터 스위트럼, 샘스 핫도그, 그리고 하반기에 론칭할 고비드 아이스크림까지 스너프 오프라인이 공항, 태영 유통과 함께 공격적인 노출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공짜로 해 주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들어간 거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하지만 유통판 섭외에 있어 스너프가 첫 개방을 약속하지 않았다면 공항, 태영 유통 쪽에서 지금처럼 함께 공격적인 지원을 만들어 줬겠습니까?”

“닭 한 마리에 790원 남기는 장사 하자고, 거기에 들어갈 개발비, 시스템 비용을 투자하는 건 앞으로 JKF을 맡아 나갈 전무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그게 꼭 스너프마트의 미끼 상품만 되겠습니까?”

그렇지.

내가 모 전무에게 원하는 대답은 이런 거였다.

“그쪽 푸드 코트 자체를 활성화시키는 프로젝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안으로 유입되겠습니까? 그 유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반사 노출은요? 쁘띠 기뿔리, 스위트럼, 샘스 핫도그, 고비드 아이스크림. 우리 돈 안 들이고, 닭 한 마리에 790원까지 벌어 가며 우리 자체 브랜드를 노출시킬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인건비, 매장 운영비도 다 스너프마트 쪽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부탁하는 건 7,900원에 순수 원재료 단가만 맞춰 달라는 겁니다.”

“요구 사항이 잘못됐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요구 사항이 잘못…됐다니요?”

“7,900원에 맞춰야 되는 건 원재료 단가가 아니라 치킨의 맛이죠.”

“…….”

“싼 게 비지떡이면 그게 7,900원이 아니라 6,900원인들 누가 줄을 서서 사 가겠어요? 원재료 단가가 아니라 브랜드 치킨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맛을 맞춰야죠. 거기 부문장하고 이야기를 다시 해 보세요. 어차피 적자 볼 거 각오하고 기획하는 사업이라면서요? 7,900원이라는 가격은 무척 좋은 거 같은데, 거기에 원재료 단가를 맞춰 달란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말라고. 예전에 우리 시골통닭 프랜차이즈 할 때 닭 한 마리 빼는 데 원재료 단가 얼마나 잡았어요?”

“순수 원재료 단가만요?”

“네. 가맹점 로열티 빼고, 특제 소스 비용 빼고, 가맹점 쪽으로 줄 때 프라이드 기준으로 한 마리 빼는 데 원재료 단가 얼마나 잡았습니까?”

“계란, 튀김 가루, 식용유 가격 변동에 따라 조금씩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보통 8,200원에서 8,400원 선이었죠.”

“식용유, 튀김 가루야 시골통닭을 우리가 할 때랑 비교해 납품 수가 월등히 올랐으니 크게 낮출 수 있을 거고, 10호짜리 쓰던 닭만 소형으로 낮추면 얼추 7,900원에 시골통닭 수준을 뽑을 수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모 전무는 비록 몇백 원 차이는 아니지만, 그게 현실적으로는 마른오징어에서 물기를 짜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난 그런 모 전무를 향해 싱긋이 웃어 보이며, 난 당신이 이걸 책임지고 진행을 하면 좋겠다는 뜻을 담아 말했다.

“최소 시골통닭 퀄리티를 뽑을 수 있을 거 같으면 하시고, 그게 안 될 거 같으면 그쪽 부문장한테 말해서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하세요. 소비자들 바보 아닙니다.”

“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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