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계산은 제대로 해야 되는 거라면서요
6시 반이 조금 넘어 정엽이가 먼저 도착했고, 그 뒤로 정태와 홍준이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식사는 홍준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시작됐는데, 다분히 의도적인 모습으로 원수경은 식사 준비에 아무런 손도 거들지 않았다.
꽤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원수경은 마치 시위를 하듯 집안일을 봐주는 아줌마들이 식탁을 완성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고, 그런 원수경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정태는 홍준이와 원수경 사이에서 침묵을 유지하는 것으로 자기 아내의 변화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승현이부터 먹여.”
“네.”
숟가락을 들어 그걸 국그릇에 담그며 홍준이가 말했다.
원수경도 절제된 미소를 얼굴에 띄워 놓고 고개를 끄덕인 뒤, 승현이의 목에 유아용 식사 턱받이를 묶었다.
작은 손으로 자기 얼굴 반만 한 아기 숟가락을 들고서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밥을 입에 넣기까지 절반 이상은 다 바닥에 떨어뜨리며 승현이는 열심히도 밥을 먹었다.
그런 모습을 우린 마냥 예쁘게만 쳐다봤고, 어느 정도 배가 불렀는지 숟가락 움직이는 손 움직임이 뜸해질 즈음 원수경이 턱받이를 걷어 냈다.
승현이를 거실로 안고 나가서 보모에게 맡긴 뒤 다시 원수경이 돌아올 때까지 우린 말없이 식사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원수경이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홍준이가 물었다.
“오늘은 수경이도 한잔하지?”
“저도요?”
“사람 데리고 왔잖아. 승현이는 아줌마가 알아서 잘 챙길 거 아냐. 한 잔 받아. 이 술이 독할 거 같으면 와인도 있으니까 와인을 한잔하든지.”
당분간은 술 마시면 안 되는데….
하지만 원수경은 재빨리 표정 관리를 하며 흔쾌히 받겠다고 대답했다.
“네, 그럼 와인으로 한 잔만 할게요.”
홍준이는 식사를 도와주고 있는 아줌마를 시켜 원수경 자리로 와인 한 병과 빈 잔을 하나 챙기라고 한 뒤, 와인과 술잔을 챙겨 원수경 앞으로 내려놓은 사람에게 이제 됐으니 식사 하는 동안 잠깐만 나가 있으라고 말했다.
잔끼리 부딪쳐 소리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그저 홍준이가 잔을 드는 모습에 다 같이 눈높이 정도로만 잔을 들었고, 원수경은 살짝 와인을 입술에 적시는 정도로, 다른 남자들은 단숨에 독주가 든 잔을 비워 냈다.
“정엽이.”
“네, 작은아버지.”
정엽이는 독한 술에 인상까지 찡그려 가며 나물 반찬으로 안주를 삼은 뒤 얼른 몸을 바로 세워 앉아 홍준이를 쳐다봤다.
홍준이는 안주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정엽이에게 말했다.
“물산 준비 중이라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엽이가 물산을 준비 중이라고?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일전에 정태하고 다 같이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며 물산 쪽으로 관심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있다.
그런데 그걸 벌써 준비 중이라고?
의아한 기분으로 정엽이를 쳐다봤는데, 이 녀석의 눈길은 홍준이가 아닌 정태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런 정엽이에게 홍준이가 말했다.
“정태 눈치를 왜 봐? 정태한테 들은 이야기다. 정태가 조양의 최 부회장 쪽으로 다리를 놔 줬다고.”
“네.”
정태가 다리를 놔 줬다?
그 순간 난 정태와 눈이 마주쳤는데, 정태는 그저 날 보며 싱긋이 웃음을 지어 보일 뿐 이내 시선을 정엽이 쪽으로 옮겼다.
“조양 그룹이나 이번에 물류 개편 중인 계성 그룹이나 우리 재경 입장에선 그간 겹치는 사업군이 없어 교점이 없었다뿐이지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상대들이다.”
“네.”
“그쪽에서도 우리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기야 하겠냐만, 네가 맡아 나가고 있는 호텔 사업에 우리 재경 그룹이나 미래금융 지분이 많이 담겨 있다는 거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자연스럽게 JK 드 누락을 범재경가로 보기보다는 재경의 한 계열사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을 테니, 작은아버지가 지금 하는 말 간섭이나 잔소리라고 생각 안 했음 좋겠다.”
“아니에요. 어쨌거나 JK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재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꼭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 있고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실패는 할지언정, 계성물류 쪽으로 실수는 하지 않도록 해라.”
꽤나 무게감이 실려 있는 한마디였다.
내심 내가 홍준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어떤 말을 해 줬을까란 생각을 해 봤다.
나 역시 정엽이를 상대로 똑같은 주의를 줬을 거 같다.
“그리고 실패가 날 거 같으면, 그 실패가 자금적인 내용과 관계가 있을 거 같으면 배경 없는 한국에서 혼자 끙끙대거나 괜히 미래금융 장 회장님 쪽으로 도움을 구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
“…….”
“너한테 그 정도 배경이 되어 주는 건 내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조양 그룹, 계성 그룹과의 관계에도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고. 그 관계를 위한 투자라고만 생각을 해도 우리 재경 입장에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다. 해 볼 만한 투자야.”
“네,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호텔 장사 매출은 조금씩 자리가 잡혀 가는 거 같더라.”
“아직 멀었습니다.”
그에 홍준이는 나와 정태를 차례대로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 관련된 행사, 이벤트, 각종 워크숍, 신입 사원 연수회… 그거 다 JK 드 누락 쪽으로 몰아줘.”
정태는 단단한 표정으로, 그리고 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 내며 함께 고개를 끄덕인 후 “네.”라고 대답했다.
“지금 우리 재경이 호텔 장사 하나 제대로 못 띄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특히 정태는 온라인, 백화점 통해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거 아끼지 말고 다 지원해 줘. 형한테 물산 관련해서 바람을 넣어 놨으면, 너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다져지지 않은 바닥에 욕심과 자신만으로 계속해서 뭔가를 쌓아 올리는 거만큼 미련한 게 없는 거야. 물산에 뛰어들기 전, 바닥부터 제대로 다져. 그런 다음 시작해도 안 늦다.”
“네, 작은아버지.”
“네, 아버지.”
물산 관련된 내용은 거기까지라는 듯, 홍준이가 술병을 들어 정태와 정엽이, 그리고 내게 차례대로 술잔을 채워 준 뒤, 말했다.
“내가 오늘 정엽이까지 보자고 한 이유는… 너희도 이제 다들 어른이다. 다들 애 아빠고, 또 곧 결혼을 해야 하고… 어른이야. 집안 문제 관련해서 나나 네들 고모만 그렇게 하자고 말을 맞춘다고 해서 너희들한테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 따라오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거 같다. 제사 관련해서 말이다.”
변화는 원수경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홍준이 역시 그간 내가 봐 왔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벼워졌다고 할까?
거추장스러운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보기가 좋았다.
“네들 고모하고는 이미 절에 갖다 올리자는 걸로 이야기가 끝이 났고, 네들 할아버지, 할머니 기제사가 원래는 정엽이 네가 받아서 해야 하는 거지만 사정상 우리 집에서 쭉 해 왔으니까 그 정리 역시 우리 집에서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엽이 네 생각을 안 물어볼 수가 없잖아. 네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절에 올린다는 게 어떤 건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아버지.”
“크게 다를 게 없다. 집에서 제사상 안 차리는 거 빼놓고는 다를 게 없어. 그런데 네 와이프가 한국 사람이 아니잖아. 알겠지만 지금 나도 네 숙모하고 따로 살고 있는 중이고. 그렇다고 이걸 네 제수 되는 사람, 정태 처한테 다 맡아 나가라고 하고 싶지도 않아.”
홍준이와 원수경 사이에 묘한 불편함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희는 워낙 어릴 때여서 기억을 잘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네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집에선 기제사라는 게 없었다. 네들 할아버지와 함께 피난 내려오셨던 집안 어른이 한 분 계시긴 했는데, 그분 기일에도 그냥 평소 식탁에 탕국만 한 그릇 올리는 게 전부였어. 원체 그런 허례허식을 싫어하시는 분이었다, 네들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그래서 나나 네들 고모는 이참에 집안 기제사라든지, 명절 차례까지 모두 절에 갖다 올리는 게 좋겠다고 말을 맞췄는데, 이젠 너희들도 다 컸으니까 네들 생각도 한번 물어보고 결정을 하려고.”
“…….”
“우리 대에서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나나 네들 고모 욕심인 거다. 그런데 만약 너희가 너희 대에서도 계속 기제사를 받아 가겠다고 하면 너희들 생각을 존중할 참이다. 정엽이부터 말해 봐.”
“집안 제사 관련해서는… 사실 저는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죠.”
“네 아버지 기제사는 어떻게 계속 가지고 갈 생각이야? 이건 네들 할아버지, 할머니 기제사하고는 다른 내용인 거야. 네들 할아버지, 할머니 기제사는 나나 네들 고모가 직계니까 결정을 한다손 치더라도, 정엽이 네 아버지 기제사는 네가 결정을 해야 해.”
“그건 제가 프랑스에 계신 어머니하고 먼저 통화를 좀 해 볼게요. 사실 저도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 볼 수밖에 없었거든요. 어머니 건강이 온전한 것도 아니고, 와이프가 제사 문화에 대해 익숙한 사람도 아닌데, 나중 일이겠지만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저도 고민만 하고 있었거든요.”
정엽이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홍준이는 곧바로 정태에게 생각을 물었다.
“정태 네 생각은?”
그에 정태는 원수경을 한 번 쳐다본 후, 수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생각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죠.”
“정훈이 네 생각은?”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어디 제삿밥이 중요하겠습니까? 자식들끼리 큰 갈등 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하시겠죠. 전과 달리 이렇게 정엽이 형까지 끌어안고 계시는 모습을 보시면 틀림없이 제삿밥을 절밥으로 받으시더라도 뿌듯해하실 겁니다.”
“그래, 그럼 그 내용은 정엽이 네가 네 엄마하고 이야기를 해 보고 네 아버지 기제사도 할아버지, 할머니 기제사 올릴 때 같이 올릴 건지 아님 따로 유지를 할 건지를 결정해서 최대한 빨리 나한테 이야기를 해 주면 되겠다. 그렇게 정리를 하는 걸로 하자.”
“네.”
“정훈이.”
국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은 후 곧장 날 다시 부르는 홍준이었다.
“네.”
“마트 쪽에서 식품 쪽으로 요청 넣은 건 확인해 봤나?”
제법이네.
모르는 게 없어.
이제 좀 재경이 재경답게 굴러가기 시작하는 거라고 봐야 하나?
“치킨 관련된 내용 말씀이십니까?”
“그거 말고 없잖아. 최근에 내가 들은 내용은 그거 뿐인데?”
“네.”
“어떻게 하기로 이야기 나온 게 있나?”
정태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우선은 무척 긍정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을 고려해 봐야겠죠. 마트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배달 없이, 오로지 포장만 가지고 얼마만큼의 회전율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치킨이 보기하고 다르게 특수한 종목이라는 것도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정태가 의외라는 듯, 내가 하는 말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킨을 아침부터 먹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점심도 마찬가지죠.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가 점심 장사부터 시작을 하지만 정작 본영업은 오후 늦게부터 시작이 된다는 점만 봐도 과연 이걸 스너프 마트 전 매장에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투자를 넣어 들어갈 만한 기획인지를 따져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물론 나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분명히 있는 사업이다 보니, 최대한 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 중인 것이고.
“반짝하고 끝을 낼 기획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은 수서점이나 잠실점이 업장 규모 대비 매출이 높게 잡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정태는 그게 사실이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둘 중에 한 군데를 정해서 이벤트 형식으로 가오픈을 먼저 시켜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메뉴 개발이야 일도 아니죠. 이미 시골통닭을 하면서 레시피 데이터는 다 축적이 되어 있는 상태고, 고객 유입을 위한 미끼 상품으로 내놓는 거니까 무조건 마이너스가 난다는 걸 알고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대신 시간대별로 판매량이 어떻게 잡히는지는 정도는 반드시 확인을 하고 보완점들을 챙겨 가면서 이 기획을 전 매장으로 확대를 시킬 것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게 맞는 거라고 봅니다.”
“정태 네 생각은.”
“듣고 보니 정훈이 말에 일리가 있네요. 처음 저희가 마트에서 치킨 사업을 기획했을 땐 중간에 마트가 조용한 시간대가 있습니다. 오픈 시작부터 11시까지라든지, 아님 2시부터 4시 사이라든지. 그 시간대를 치킨을 미끼 삼아 고객 유입을 일으켜 보자, 혹은 고객들이 몰리는 시간을 분산시켜 보자…였는데, 마땅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볼 기회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정훈이 말대로 수서점이나 잠실점에서 가오픈을 시켜서 피드백을 확인해가며 확대를 시키는 것도 리스크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되겠네요.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해 봤는데, 내일 당장 마트 부문장하고 그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홍준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다시 물었다.
“지금 식품에서 네가 어질러 놓은 것들 그거 다 주워 담는 데 앞으로 얼마나 걸리겠어?”
아마도 날 통신으로 보내기 위해, 그 시기를 정하려고 묻는 질문이겠지?
그리고 스너프 쪽에서 마트 관련 치킨 사업을 자기들이 직접 하지 않고 우리 식품 쪽으로 의뢰를 한 이유는 내가 통신으로 옮겨 가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함일 것이고.
나는 날 식품에 붙잡아 두려고 하는 정태의 계획이 무척 세련된 거 같아 흡족한 상황이다.
유치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 재경에 플러스가 되면 플러스가 되지, 마이너스를 가져오는 작전은 아니다.
이러면 칭찬을 해 줘야지.
“어떻게 주워 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주워 담는 거야 사람들 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주워 담는 거하고, 사람을 시켜서 주워 담는 건 그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릴 거 같냐고.”
“스너프에서 얼마나 공격적으로 프로모션을 밀어주느냐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달라지겠지요. 고비드 아이스크림 론칭을 12월 초로 잡고 있습니다. 종목이 달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쁘띠 기뿔리 초기 때를 생각해 본다면, 고비드 아이스크림도 안정적인 브랜드 노출에 성공을 하기까지 최소 세 달 정도는 잡아 줘야 할 거 같습니다.”
곧바로 질문을 정태 쪽으로 돌리는 홍준이었다.
“스너프 기프티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MJ가 전 브랜드를 맡기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시장 점유율 20퍼센트, 지금 식품에서 샘스 핫도그하고 고비드 아이스크림을 준비 중이니까 그거까지 엮고 다른 브랜드들도 섭외가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내년 상반기 말까지는 35퍼센트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날 쳐다보며 홍준이가 물었다.
“내년 6월 말까지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유의미한 성적 만들어 낼 수 있겠어?”
여기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해 보겠습니다.”
“통신은 우리가 경영권만 가지고 있는 거야. 경영권의 지분 절반도 결국은 미래금융이 가지고 있는 거고. 그게 우리가 지주사인 항공으로 통신을 업은 이유야. 미래금융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계산은 제대로 해 줘야지. 미래금융이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 쪽으로 통신 경영권을 양보했겠냐고. 결국은 정훈이하고 하늘이의 관계. 그 관계를 보고 우리 쪽으로 일임을 한 거라고 봐야지.”
정태의 눈빛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더불어 그 옆에 앉아 있던 원수경까지 숨을 죽이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통신은 우리한테 아주 중요한 사업이 되어 버렸어. 마냥 지금처럼 갈피 못 잡고 흔들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거야. 정태.”
“네, 아버지.”
“지금처럼 스너프 안정적으로 맡아 가면서 통신 내부 깔끔하게 정리해 낼 자신 있어?”
그 순간 원수경은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홍준이를 쳐다봤다.
정태도 두 입술을 안으로 숨기며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네.”
“내년 6월 말까지 운영 정상화시켜서 항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거 가능하겠어?”
“미래금융하고는 이야기가 끝난 내용인 겁니까?”
“그게 진짜 일인데, 그걸 다 해 놓고 너한테 분리가 가능하겠냐고 묻는 거겠냐?”
“…….”
“당연히 미래금융은 항공이 계속 통신을 품고 있어 주길 바라겠지. 그런데 항공 입장에선 적자 나는 통신을 계속 품고 있으면 손해 아니냐.”
“…그렇죠.”
“플러스 영업만 일으키면 미래금융에서 통신을 항공에서 따로 분리시키는 내용을 가지고 싫은 소릴 할 이유도 없는 거고, 우리도 통신으로 더는 그쪽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거지.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말하지만 통신은 정훈이가 맡아 나가야 된다. 그건 지금 너희 둘이 하고 있는 후계 경쟁과는 다른 내용이야. 정훈이가 부경통신 이슈때 미래금융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애초에 우리가 통신을 업을 수도 없는 거였고, 미래금융 역시 정훈이를 염두에 두고 통신에 손을 담근 거니까. 그 내용에 우리 자체 후계 내용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
“…….”
“하지만 통신을 상대로 정태 네가 나한테 보여 준 관심… 그거 높게 산다. 높게 사기 때문에 이런 예외를 두는 거야. 그런데도 여전히 관심이 있어?”
“물론입니다.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추석 연휴 끝나는 대로 그룹 본사에서 인사 공지 띄울 테니까 통신도 네가 같이 한번 관리를 해 봐. 정훈이는 내년 6월을 목표로 현재 식품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 어떻게든 잘 정리해서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을 하고.”
그래서 내가 홍준이에게 말했다.
“다 좋은데요….”
“……?”
“뭔가 하나둘씩 정리를 시작하려고 하시는 거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뭔데?”
“정리를 하시려면 절 상대로도 제대로 된 정리를 해 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말했잖아. 내년 6월까지 지금 식품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 결과물 만들어 내. 그리고 통신으로 가. 시기상 네 형보다 일이 년 정도 사장 승진이 빠르긴 하다만, 네 형이 스너프 사장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와 비교해 그룹 내 사업이 더 늘었고, 규모가 커졌으니 그 부분은 당연한 거니까. 정태 너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의견 없을 거라고 본다.”
“없습니다. 남들 손에 맡기는 거보단 정훈이가 직접 맡아 나가게 하는 게 맞는 거고요.”
핀트를 못 잡네.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데.
“아뇨. 그 부분은 회장님 결정이니까 저나 손정태 사장이 그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왈가왈부할 내용이 아니죠. 어떻게 결정을 하시든 저는 결정 나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럼?”
“계산은 제대로 해야 되는 거라면서요. 미래금융 상대로만 제대로 된 계산을 해 주시려고 하지 말고, 저한테도 제대로 된 계산을 이제라도 좀 해 주셔야 맞는 게 아닌가… 하하,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