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지옥에서 꺼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월요일 아침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오전 근무를 시작도 하기 전이었는데, 정재현 과장이 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만났어요?”
“네.”
“진짜 맞아요? 그날 예식장 주차장에서 정 과장이 잘못 본 거 아니고?”
“…아니었습니다. 그날 제가 본 게 맞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정현수 과장의 결혼식 날 김원호 차장의 차를 운전했던 대리 기사의 정체가 밝혀졌다.
정재현 과장은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매일같이 보는 얼굴이긴 하지만, 정확한 이름과 부서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봤던 거다.
진짜 우리 재경식품의 직원이 확실하냐고.
그에 정재현 과장은 항상 같은 장소에 차를 주차시키는 사람이라 자신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며, 그 직원이 타고 다니는 회색 아반테 차량과 번호판 앞 두 자리까지 기억을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월요일 출근은 평소보다 10분 정도 빨리해 보자고 제안했고, 정재현 과장은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서 내 차 지정 주차 공간으로 차를 몰아가다 빈자리 한 군데를 손짓하며 말했다.
“저깁니다. 아직 출근을 안 했네요.”
“나는 먼저 올라가서 업무 보고 있을 테니까, 정 과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을 해 보고 이름하고 부서를 알아보세요.”
“…네.”
그렇게 해서 정 과장은 지하 주차장에 남겨 놓고 혼자 사무실 출근을 먼저 했던 거다.
투잡?
당연히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재경의 전 계열사는 동종 업계 여느 기업들과 비교를 해도 연봉 측정을 높게 해 주는 편이다.
그냥 높게 해 주는 편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들보다 더 높게 측정을 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이고, 이건 단순히 일과 사업을 떠나 모든 영역에서 발전이라는 걸 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을 한다.
높은 임금은 우리 재경이 여러 기업들 사이에서 좋은 인재를 받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미끼이고 또 직원들의 집중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강력한 촉매.
그런 미끼에도 잡히지 않는 인재들은 수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강력한 촉매를 제공을 해도 반응을 안 해 주는 직원들은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내용과는 별개로, 나의 재경에 투잡을 뛰는 직원이 있고, 그 직원의 존재를 내가 알아 버렸다는 건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아 버린 이상 나는 이 내용을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QC팀의 도성훈 과장이었습니다.”
해당 직원이 출근을 할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모르는 척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직원 카드에 적힌 이름과 부서를 확인했다고 한다.
QC팀? 그것도 과장?
잠깐만.
어렴풋이 얼굴이 기억이 날 것도 같았다.
그만큼 품질 관리를 하는 QC팀은 우리 식품에서 아주 중요한 부서 중 한 곳이고, 도씨라는 성 자체가 특이하다 보니 한 번쯤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 걸 다 떠나서라도 품질 관리라는 아주 중요한 핵심 부서에서, 그것도 과장으로 근무를 하는 사람이 주말에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한다?
개발 못지않게 품질 관리 쪽도 업무량이 대단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부서다.
거기다 회사 내 직책이 QC팀의 과장인데?
다시 한번 그날 정재현 과장이 사람을 잘못 봤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품질 관리를 하는 QC팀의 과장.
거긴 초임 과장 연봉 테이블이 세전 8,700이다.
누군가에게는 많다면 많고, 또 어느 누군가에겐 부족하다면 부족할 수도 있는 금액일 거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엔 더욱더.
그럼에도, 우리 재경이라는 대기업 과장씩이나 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근로 계약상 겸업 금지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는 내용을 어겨 가면서까지 투잡을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
괜히 자신 때문에 어느 누군가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 듯, 내게 보고를 하는 정재현 과장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난 그런 정재현 과장에게 알았다는 말을 끝으로 나가 보라고 했고, 곧바로 내선 전화를 이용해 인사부로 전화를 넣었다.
“운영 본부장입니다.”
―네?
“손정훈 운영 본부장입니다.”
―아, 네! 본부장님.
내가 식품으로 넘어와서 이 시간에 인사부로 직접 전화를 걸어 본 건 처음이다.
인사부뿐 아니라 다른 부서 쪽으로도 직접 전화를 걸어 본 적이 없지.
당황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걸 수도 있다.
“인사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네, 본부장님. 자리에 계십니다.
“연결 좀 부탁드릴게요.”
10초 이상 통화 대기 음악을 들으며 기다렸다.
곧 수화기 너머로 긴장이 다 드러나는 인사부장의 음성이 들렸다.
―네, 본부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QC팀에 도성훈 과장이라고 있을 겁니다.”
―도 과장이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아세요? 다행이네. 거기 부서장이야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다른 직원들은 모르게 해서 면담을 좀 해 보세요.”
―무슨… 면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난주 토요일에 지인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 지인이 우리 그룹 직원이에요. 모직에 있을 때 나랑 같이 인사부 생활을 했던. 그 결혼식장에서 도성훈 과장이 대리운전을 하러 왔어요.”
―…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신 건지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뭘 하러 갔다고요?
“대리운전이요.”
인사부장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착각이 들었다.
“면담을 한번 해 보세요. 그리고 면담 끝낸 후에 도성훈 과장 지난 고과 평가서 준비해서 제 방으로 좀 올라와 주시고요.”
* * *
인사부장이 내 방을 찾은 건 그로부터 2시간 뒤, 거의 11시가 다 되어 갈 즈음이었다.
인사부장의 방문에 우선 빈자리 소파로 안내를 하고 고성표 본부장을 불렀다.
인사 관련된 내용은 어쨌거나 지원 본부장이 다 알아야 되는 부분이고, 책임 역시 지원 본부장이 져야 하는 부분이기에….
내 방을 찾은 고 본부장의 표정과 그런 고 본부장을 제대로 못 쳐다보는 인사부장의 반응만 봐도, 이미 고 본부장의 귀에도 들어간 내용인 듯싶었다.
“따로 들으신 내용 있으세요?”
나의 물음에 고 본부장은 그저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난 그런 고 본부장이 자리에 앉는 모습까지만 확인을 하고 곧바로 인사부장에게 물었다.
“면담하셨죠?”
“네.”
“뭐라고 합니까?”
“…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두 달 전부터 대리운전으로 부업을 하고 있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정말 아니길 바랐다.
딱 그날 하루 정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대신해서,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리운전을 했다는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건 도성훈 과장이라는 어느 한 직원이 회사와 한 약속을 어겼다는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회사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과장급 직원이 다른 부업도 아닌 대리운전이라는 부업을 선택했고, 그걸 하다가 우리 회사의 다른 직원의 눈에 띄었다는 게 중요한 거였다.
그 부분에서 아주 오랜만에 나 스스로, 그리고 홍준이에게 화가 나고 있었다.
“쉬는 주말만 했던 게 아니라 회사 출근을 하는 평일에도 그 힘든 대리운전을 부업으로 해 오고 있었다고요?”
마치 도성훈 과장을 변론하듯,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인사부장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두 달 전에 전세로 살고 있는 신혼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통보를 받았답니다.”
쿵! 하고 머릿속에서 바위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일었다.
뭐라고?
“전세 사기…를 당했단 소리예요?”
인사부장이 느끼고 있는 안타까움이 내게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네, 그렇다고 하네요. 저도 아침에 본부장님 전화가 없었으면 계속 몰랐을 겁니다.”
난 이미 말문이 막힌 상태였다.
내가 왜 주말 내도록 재경이 가지고 있는 겸업 금지에 관한 철저한 고집을 떠올리며, 해당 문제를 본보기 삼아 직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줘야겠단 불편한 다짐을 했는지도 잊어버렸을 정도로 말문이 막힌 상태.
“면담을 끝내 놓고 확인을 했는데, 올 6월 중순에 신혼 전셋집을 마련하겠다고, 그 전에 퇴직금도 중간 정산을 미리 당겨서 받아 갔습니다. 전세 대출을 일으키고 여기저기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도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전세 사기 같은 경우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겁니까?”
“당연히 법적 소송이야 하는 거지만, 도 과장 말에 의하면 현실적으로 법인 임대인이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해 버리면,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네요. 주위에 그 관련된 쪽으로 아는 사람들 통해 도 과장도 많이 알아보고 다녔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인 거 같고.”
“…….”
“결국은 경매를 통해서 그 집을 사는 수밖에 없는데, 포기가 안 되니까 다른 금융권을 통해서까지 대출을 왕창 받은… 그런 상황인 거 같습니다.”
“어허이….”
“계약 당시에 그 집에 근저당이 3억 2천이나 걸려 있었답니다.”
“그러게 한두 푼짜리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전세를 구하면서 미리미리 그런 부분은 잘 좀 알아보고 해야지….”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법인 임대인하고 공인 중개사가 전세 보증금을 받으면 근저당을 낮추겠다는 특약을 넣겠다고 하는데 거기에 안심을 안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신혼 생활 잘하고 있는데, 두 달 전쯤에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통보를 받고 지금은 신혼 생활이 아니라 지옥 생활을 하고 있다고까지 표현을 하네요.”
내가 좀처럼 말문이 이렇게 오래 막히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실마리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말문이 막히기는 고 본부장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는데, 그 침묵을 깨뜨리며 인사부장이 말했다.
“제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조치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다.
나는 말문만 막힌 게 아니라, 순간 이명이 들릴 정도로 정신이 아찔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인사부장에게 묘안이 있다면 마땅히 들어야지.
“사정은 딱하지만, 겸엄 금지라는 사규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 내 다른 부하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과장이 회사의 사규를 어기고 그런….”
“하아… 쩝.”
진짜 한숨만 나오는 소릴 하고 있었다.
이게 현 대한민국 대기업의 현실인 걸까?
회사의 중심, 조직의 핵심인 인사.
그 인사부의 최고 책임자라는 인사부장이 회사 직원이 당한 전세 사기 앞에 저런 소릴 하고 있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걸까 싶었다.
물론 내가 아침부터 해당 사안을 크게 문제 삼았고, 그게 자기 개인의 본심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난 그나마 인사부장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나와 함께 인상을 찡그려 준 고 본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그런 비슷한 유형의 고의적 전세 사기가 많죠?”
“네, 심심하면 뉴스에 나오는 게 전세 사기 피해에 관한 내용 아닙니까.”
“우선 제가 사장님한테 따로 이야기를 할 테니까, 본부장님은 인사부 통해서 식품 전 부서 상대로 우리 회사에 또 다른 전세 사기 피해자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전수 조사 들어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한테 무슨 이야기를 따로 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지옥 생활을 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썼다고 하잖아요, 우리 직원이.”
“…….”
“사규를 어긴 건 어긴 거지만, 사규가 헌법도 아니고… 나중에 따로 회사 인사 차원에서 적당한 징계를 하더라도 일단은 그 지옥에서 꺼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부끄럽지만 나 스스로에게 고백하건대, 내 직원이 곧 재경의 미래라는 신념 하나로 재경을 일으켰고, 반열 위로 올려놓았던 내가 정작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직장인이 지옥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사는 게 힘들다, 현실이 팍팍하다….
그 정도야 알고 있지.
하지만 왜 힘들고, 얼마나 팍팍한지까지는 구체적으로 몰랐던 게 사실이다.
그저 그간의 낡아 빠진 90년대의 경험만 가지고, 이 시대를 다 이해하고 있었다는 나만의 착각.
모직에서 직접적인 인사 생활을 했고, 그 기간 동안 지금의 이 시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고 자신했던 나의 착각과 오만이 그간 내가 재경을 통해 쌓아 왔던 경영 철학, 인사 철학을 모두 부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타 기업에 비해 직원들의 급여 수준을 높게 맞춰 주는 걸로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 주고,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을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단 나의 고집, 나 스스로의 약속은… 이제 더 이상 정답이 아닌 게 되어 있었다.
문만 열면 바로 편 사장의 사무실 문이 보이지만, 난 고 본부장과 인사부장이 있는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지금 시간 좀 괜찮으십니까?”
―지금요? 네, 괜찮습니다.
“사무실에 계시죠?”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