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살인이라도 돈만 맞춰 준다면
“육천삼백이십팔 번. 면담.”
철창 사이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교도관이 영혼 없는 목소리로 수감자 한 명을 호명했다.
다섯 평이나 될까.
좁은 그 안으로 일곱 명의 죄수가 각자의 공간을 확보해 놓고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있던 한 남자.
그는 자신의 수감 번호와 함께 면담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교도관의 인내심은 굉장히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장민규.
전 부경통신의 부사장.
장민규는 낡아서 나무가 다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관물대 안으로 손을 넣었다.
관물대 안으로 들어갔던 장민규의 손안으로는 비닐이 벗겨지지도 않은 새 티머니 카드들이 노란 고무 밴드에 단단하게 묶여 있었는데, 얼핏 봐도 최소 서른 장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장민규와 함께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다른 죄수들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장민규의 호사스러운 징역살이를 가능케 해 주는 티머니 카드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방을 나서기 위해 장민규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다른 죄수들은 저마다 다리를 안으로 당겨 앉거나 옆으로 엉덩이를 옮겨 주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티머니 카드를 손에 들고 있음에도, 교도관은 그 어떤 제지도 없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오늘은 또 무슨 맛 나는 걸 혼자 먹고 올까?”
교도소보다는 소년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앳되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혼잣말을 하듯, 그곳 방장의 다리를 다시 주무르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곳 방장인 오지만은 손날로 장난을 치듯 방 막내의 정수리를 때려 놓고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리는 고만하믄 됐으니까 여기 어깻죽지 좀 주물라 봐라.”
오지만은 한국과 중국 옌변을 오가며 인력 보도 장사를 크게 하던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조직 폭력배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고 하는 중국 인력 보도 장사.
그 세계에서도 오지만은 꽤 큰 거물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오지만이었지만,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장민규에게만은 최소한의 예의와 대접을 해 주며 방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돈.
그게 바로 세상에 무서울 것 없고, 내일까지 없는 오지만으로 하여금 장민규 앞에서만큼은 매너 있는 사업가인 척을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오늘도 올 때 그때처럼 뭐 좀 따로 챙겨서 오겠죠?”
“뭐 맡기 놨나? 갖다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얻어먹는 기고, 빈손으로 오면 고마 그런갑다… 하면 되는 기지, 쥐뿔 맡기 놓은 것도 없고 해 주는 것도 없으믄서 뭘 그렇게 바라는 기 많노, 니는?”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나갈 때가 다 돼서 그런지, 요즘 들어 부쩍 인심이 좋아지는 거 같아서. 솔직히 같이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면 좋은 거잖아요. 민규 형님 덕분에 다른 방에서 지낼 때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호사라는 호사는 다 부리면서 빵 생활 했는데, 막상 저 형님 나갈 때가 다가오니까 남은 빵 생활 앞으로 무슨 낙으로 할까 싶기도 하고….”
“와? 아예 여기 평생 눌러살지 그라노? 그래해라. 니는 딱 여기가 체질인 거 같은데.”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살벌하게 하세요? 형님도 출소일 다가오고, 민규 형님도 형님 나가시면 바로 뒤따라 나갈 거고… 다 나가고 나면 또 다른 방으로 이감이 되거나 빵 멤버 새로 잡힐 건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팍팍 좀 주물라 봐라, 팍팍 좀. 뭐 하노? 장난하나?”
* * *
소장실 앞.
장민규를 이곳까지 안내한 교도관은 얼른 주위를 둘러본 뒤 서둘러 장민규의 두 손을 묶고 있던 흰 수건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대신 소장실 문을 열어 주는 친절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소장실 안으로 들어선 장민규는 사무 책상 위로 두 다리를 걸쳐 올려놓고 있던 교도소장과 형식적인 눈인사만 주고받은 뒤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소파로 향했다.
교도소장 역시 천천히 다리를 내려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소장 입장에선 가끔씩, 가물에 콩 나듯 들어오는 재계 쪽 장기 수감자들을 그저 단순한 수감자로만 취급을 할 수가 없다.
아주 반가운 용돈벌이 파이프 역할을 해 주는 존재이니까.
특히나 장민규처럼 말이 잘 통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해 주는 재계 쪽 장기 수감자는 교도소장 입장에선 하늘이 내려 주신 보너스와 다름이 없었다.
사무 책상 아래로 숨겨 놓았던 쇼핑백.
그 쇼핑백을 챙겨 소파 쪽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교도소장은 그 쇼핑백을 장민규가 앉아 있는 소파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회초밥 좀 준비해 봤어요. 괜찮게 잘하는 집이 하나 생겼다고 해서 가 봤는데, 먹을 만할 거예요.”
하지만 장민규는 고맙다는 말도, 잘 먹겠다는 말도 없이 챙겨 온 티머니 카드 묶음을 교도소장이 챙겨 갈 수 있도록 테이블 위로 툭! 하고 내려놓는 게 전부였다.
뱀 같은 눈빛으로 슬쩍 카드 묶음을 챙겨 다시 사무 책상 쪽으로 향하는 교도소장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장민규는 얼른 쇼핑백 안에서 초밥이 담긴 포장 상자를 꺼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꺼낸 초밥 상자는 열어 보지도 않고 다시 쇼핑백에서 성인 잡지들을 꺼내 한곳으로 치워 놓고 가장 밑에 담겨 있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주일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장민규는 이러한 방법으로 곧 다시 나갈 세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전원이 켜지길 기다리면서 그제야 초밥 상자를 연 장민규.
제법 횟감 상태가 괜찮다.
하지만 크게 관심이 도는 음식은 아니다.
장국도 없이 마른 초밥 하나를 입에 넣어 놓고 스마트폰으로 재경 그룹을 검색했다.
재경 그룹, 손홍준, 손정태, 그리고 손정훈, 미래금융.
장민규의 관심사는 오로지 재경 그룹에 대한 복수뿐이었다.
<스너프 손정태 사장, 재경 통신의 사장직까지 겸임하는 것으로 확정>
장민규의 속으로 천불이 번지게 만드는 기사 제목이었다.
작년 10월, 구 부경통신으로부터 웹콘텐츠 사업부인 노블레스를 인수했던 손정태 스너프 사장이 이번엔 재경통신이라는 거대한 함선 전체의 키를 잡을 겸임 사장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손정태 사장은 작년 10월 구 부경통신으로부터 웹콘텐츠 사업부인 노블레스를 인수해서 웹콘텐츠 사업을 스너프의 핵심 사업부 중 하나로 키워 내는 데 성공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정태 사장은 ‘통큰’과 ‘밝은세상’이라는 실력 있는 영상 기획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해 스너프의 자회사로 만드는 한편, 미래기획과 공동 투자로 제작한 여러 작품들을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OTT 채널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 내는 성과를 이뤄 내기도 했다. …중략… OTT 채널이 범람을 하고 있는 현재, 영상업계는 광범위하게 넓어진 관계 시장만큼이나 다양한 원천 콘텐츠 IP들이 몰리면서 채널 확보와 투자 유치라는 두 가지 문제점에 직면한 상태이다. 하지만 손정태 사장은 스너프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와 영상 투자 기획에 특성화된 미래기획을 든든한 우군으로 확보하고 있는 이상 재경통신이 앞으로 펼쳐 나갈 영상 콘텐츠 사업에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와 더불어 재경통신의 새로운 사업으로 구 부경통신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씻어 내는 걸 1차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인터넷과 통신 사업 쪽으로도 재경 그룹의 그룹 전사적인 투자가 앞으로 집중될 것을 시사했다.
피가 끓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걸 앗아 간 재경.
손정태가 앉게 된 자리도 원래라면 장민규의 자리였다.
장민규는 재경으로 인해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걸 다 잃었다.
부경통신이라는 세상을 잃었고, 자신에게 그 세상을 넘겨줄 아버지를 잃었으며, 그 세상에 대한 환상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약속했던 아내까지 얼굴을 싹 바꿔 징역이 확정도 되기 전 이혼을 요구했다.
더는 잃을 게 없다.
12년 형을 받은 아버지.
건강한 30대의 자신도 반년 만에 골병이 들고 있는 이 징역 생활을 60이 넘은 아버지가 무슨 수로 12년을 버틸 수 있을까.
버티신다 한들 다시 세상에 나오셔서 뭘 하실 수 있겠나.
이혼을 요구한 아내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아니, 이해 따윈 필요도 없는 거다.
예상을 하고 있던 수순이었으니.
복수한다.
무조건 복수한다.
반드시 복수한다.
절대 혼자 죽지 않는다.
어떤 놈이든 한 놈은 꼭 죽이고 같이 죽는다.
장민규는 교도소장이 따로 챙겨 준 성인 잡지를 펼쳤다.
담배가 낱개로 페이지 중간중간 끼워져 있었다.
그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재떨이와 한 세트로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축구공 모양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는 재경 그룹과 관련된 신문 기사들.
그리고 꾸준하게 소식을 전달하고 있는 미래금융.
장민규는 교도소장이 신경 써서 준비해 놓은 회초밥은 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그 초밥 상자를 재떨이 삼아 신문 기사들을 확인해 가며 담배 세 개비를 연달아 피웠다.
* * *
소장실까지 안내를 했던 교도관과 함께 다시 감방으로 돌아온 장민규.
같은 감방 사람들은 장민규가 들고 온 사제 쇼핑백에 다들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민규가 쇼핑백에서 꺼낸 성인 잡지 몇 권에 성질 급한 막내가 달려와 얼른 챙겼다.
“크흠….”
102호의 경우 교도소장의 허락하에 암묵적으로 눈감아 주는 내용이 많았지만, 교도관이 있는 앞에서 담배가 든 성인 잡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막내의 행동에 방장인 오지만은 헛기침 몇 번으로 눈치를 줬다.
바로 그때였다.
“102호는 지금 바로 금일 석식 취사 지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
같은 감방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단 두 사람, 장민규와 방장 오지만을 제외하고.
오지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취사 지원은 지난 월요일에 이미 했었다.
2주일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취사 지원 순서.
그 취사 지원 순서가 3일 만에 다시 돌아온다?
그것도 장민규가 교도소장 방을 갔다 오고 나서 급하게 정해졌다.
오지만은 금세 장민규가 상황을 만든 걸로 확신을 하고, 막내가 들고 있던 성인 잡지를 빼앗아 자신의 관물대 안으로 챙겨 넣었다.
분명 장민규가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출소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오지만.
아주 가끔씩이긴 해도, 장민규는 오지만이 사회에 있을 때 어떤 일을 해 왔고, 또 어떤 연유로 징역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에게 지나가는 말로, 중국에서 데리고 오는 사람들은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느냐며, 설혹 그게 살인이라도 돈만 맞춰 준다면 해 주느냐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 적도 있었다.
“우리 방은 월요일에 했잖아요.”
감방 막내가 만들어 낸 불만 앞에 감방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불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교도관의 한마디에 감방 사람들이 토해 내는 불만들은 금세 환호로 바뀌어 버렸다.
“저녁 배식 끝나고 부식 남는 걸로 102호는 식당에서 따로 삼겹살 파티를 한다.”
“오오!”
“뭐? 무슨 파티를 해?”
교도관은 애써 주먹으로 입 주위를 막아 놓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거친 헛기침을 토해 냈다.
“조용, 조용! 다들 조용 안 하지? 소풍 왔어? 교도소 현장 체험 왔어?”
교도관의 싸늘한 눈빛이 감방 사람들의 입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
“다들 준비해.”
그러는 사이 방장 오지만은 장민규를 쳐다봤고, 장민규는 오지만의 눈빛을 느끼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다시 감방을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