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무슨 청승을 이딴 식으로 떨어?
교도소 취사장 뒤쪽으로 중형 탑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앞으로 모여 있는 취사장 근무 직원들과 취사 지원을 나온 수감수들은 탑차 적재 공간이 열리는 순간 한숨부터 내쉬었다.
엄청난 양의 부식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올라가라. 아니다, 내가 올라갈게….
엄청난 양의 부식을 확인한 취사장 근무 직원들끼리의 부식 정리 작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수감복 차림의 102호 수감자들은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 날씨에, 탑차 적재 공간까지 열리며 잔인한 한기가 살갗을 에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탑차가 세워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비닐하우스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별도의 난방 시설 없이도, 오로지 비닐하우스 그 자체만으로 전혀 다른 계절이었다.
넓게 쳐진 전선주 사이로는 취사장에서 썼던 행주들이 뽀송하게 마른 채 널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로 수감복 차림의 두 남자가 업소용 김치 박스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장민규와 오지만.
그 둘은 김치 박스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부식 차량을 상대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상반되게, 아주 느긋한 모습으로 느타리버섯을 찢고 있었다.
심지어 오지만은 불붙은 담배까지 입에 물고 있었다.
“확실히 바깥세상이나, 이 안이나 돈으로 안 되는 게 없긴 합니다. 출소 전에 내가 이 안에서 이렇게 신선놀음처럼 버섯이나 찢게 될지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소?”
“전들 알았겠어요? 버섯이나 찢고 앉아 있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호사가 될 줄….”
“내 그짝 덕에 징역살이 말년 호강하며 살다 갑니다.”
“저야말로 방장님 덕분에 편하게 지냈어요.”
점심시간 내내 비닐하우스로 모여 있던 열기로 인해, 이젠 살짝 덥다는 느낌까지 받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입에 담배를 문 채, 오지만은 양쪽 팔을 걷었다.
그리고 다시 무료한 표정으로 느타리버섯 뭉치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런 오지만에게 장민규가 물었다.
“방장님은 출소하시고 나면 다시 밖에서 하셨던 그 일 계속 하실 겁니까?”
“배운 게 도둑질이고 먹어 본 게 콩밥뿐인데, 이 나이 먹고 다른 거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제 일주일 남으셨죠?”
“그렇네요. 일주일. 어째 이래 시간이 안 가는고, 일주일이 고마 일 년처럼 느껴지네.”
“가시기 전에 밖에서 연락 가능한 번호 하나 남겨 놓고 가세요.”
그 순간 오지만은 감정 없는 장민규의 눈빛에서, 자신의 새로운 돈벌이가 상대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게 됐다.
장민규 같은 재벌가 사람은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봐 왔기 때문에….
“충고, 조언… 이런 건 절대 아니고, 미우나 고우나 몇 달을 서로 똥 싸는 거까지 같이 봐 가며 지낸 입장에서… 궁금해가 물어보는 겁니다.”
“뭐가요?”
“우리야 잃을 게 없는 놈들 아입니까. 애당초 워낙 가진 게 없었으니까. 그런 놈들한테 먼저 뭘 좀 같이해 보자카는 거는 그짝도 잃을 게 없을 때나 하는 소린데, 내 암만 봐도 그짝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이거든. 근데 내 같은 놈 연락처는 알아가 뭐 하게요?”
“가진 게 많다? 푸훕… 내가 진짜 가진 게 예전만큼 많았으면 내가 지금 이 안에서 이러고 있겠습니까?”
부경통신.
한때는 국내 대기업 통신사의 후계자였던 상대.
오지만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부식 찌꺼기들을 모아 놓은 비닐 안으로 퉤! 하고 뱉어 낸 뒤 가래침으로 그 불씨를 꺼뜨렸다.
“사람 하나 작업해 달라 그 말인 거지요?”
“하나가 될지, 둘이 될지, 하나만 작업을 한다면 둘 중 어떤 놈으로 정할지…. 아직 거기까지는 내가 결정을 못 했어요.”
“내사 마, 배운 게 무식이라서 모르긴 몰라도 그짝이 바깥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근데 그짝처럼 대단한 사람을 내 같은 놈이랑 마주 보고 앉아서 버섯이나 찢게 만든 사람은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일 거요?”
“내일 당장이라도 이 안에 수감 중인 사람들 몇 명만 찾아다니면서 물어보면, 바깥에서 방장님하고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 하고 있는 사람들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닐 거예요. 안 그래요?”
“…….”
“근데 내가 그게 귀찮은 거예요.”
그제야 오지만은 피식하고 웃으며 얼른 입장을 바꿨다.
“누가 어데 일을 안 받겠다 했습니까? 받을 때 받더라도, 작업물이 뭔지는 알아야 사이즈를 재고, 대금을 측정하지요.”
장민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아주 섬뜩한 표현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상대를 가만히 쳐다봤다.
“조선족 아들 있다 아입니까, 가들은 한국 돈 3천만 쥐여 줘도 오늘 아침에 배 타고 한국 들어와 가지고 사람 하나 작업해 놓고 짜장면 한 그릇 시키 먹고 점심 배편으로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아들입니다. 근데요. 그런 아들한테 맡기는 작업물은 어디서 누가 칼 맞아 죽었다 캐도 인터넷 신문 같은데 기사 한 줄 안 납니다. 근데 그짝 같은 사람이 그런 작업물을 여기 이 안에 들어와서까지 벼르고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입니꺼. 재경 그룹. 그짝 관련된 사람이지요?”
“맞아요.”
“이거는 암만 우리가 잃을 거 없고, 내일 없이 사는 놈들이라도 진짜 막 영혼까지 싹 다 탈탈 긁어모아서, 더는 한국 땅에 발 안 붙일 각오하고 시나리오를 짜야 되는 거예요.”
“돈이 많이 든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 재경 그룹과 관련된 사람이면, 그것도 그짝이 그마이 고약한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면 작업하는 선수 말고도 작업 설계하는 사람들까지 싹 다 한국 뜰 각오하고 의뢰를 받아야지요. 안 그래요?”
장민규는 웃었다.
좀처럼 이 안에서는 웃음을 들키지 않았던 장민규였기에, 그의 웃음을 본 오지만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아무리 지금 예전에 가지고 있던 걸 다 잃었어도, 방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숫자 하나 못 맞춰 줄까요?”
“진짜 사이즈 크게 잡아야 되실 낀데?”
“나가시기 전에 전화번호나 하나 남기고 가세요.”
오지만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라믄 그라입시다. 우리가 어데 돈 보고 작업하지, 사람 보고 작업하는 놈들도 아이고.”
* * *
토요일 오전.
장태산 회장은 자식들과 손주들을 모두 데리고 경기도에 있는 한 수목장지를 찾았다.
“여기 이쯤이 좋겠다. 영석아.”
“네, 아버지.”
“지금 사람 시켜서 여기에 누가 먼저 예약을 한 사람은 있는지, 없으면 두 자리를 뺄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라.”
하늘이는 할아버지가 하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고만 있었다.
당신이 죽어 묻힐 자리를 직접 찾아와 확인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그런 장태산 회장을 쳐다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정작 장태산 회장 본인은 더없이 가볍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네들 엄마도 이쪽으로 이장을 해서 나하고 같이 있을 수 있게끔, 그렇게 해라.”
“…네.”
전날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데, 가족들 다 같이 모여서 소풍처럼 나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작은아버지 집으로 직접 연락을 넣었던 하늘이었다.
당신이 묻히시게 될 장지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말씀 같은 건 없으셨다.
수목장지를 가족들 다 같이 한 바퀴 둘러보고 있을 때였는데, 조금 전 장태산 회장이 지목했던 자리를 예약 여부를 확인한 수행 기사가 관리 사무소를 다녀와 장영석 회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버지.”
“어.”
“아까 보셨던 자리 있잖아요.”
“어, 그래.”
“빈자리라고 합니다.”
“잘됐네. 암만 둘러봐도 아까 거기만 한 자리가 눈에 잘 안 들어와.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 올라갈 거 같고, 온 김에 아까 그 자리로 예약을 좀 하고 그렇게 내려가자.”
장영석 회장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할까요? 마음에 드세요?”라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네들 편한 게 중요하지, 뭐가 더 중요하겠어? 찾아오기도 수월하고, 공기 좋고, 보기에도 좋고… 그러면 된 거다. 하늘아.”
“…왜요, 또.”
“이놈 이거. 할애비가 부르는데, 왜요, 또?”
“아, 왜 평소 안 하던 청승을 자식들 다 불러 놓고 떠시냐고. 어련히 자식들이 최고 좋은 명당에 할머니랑 함께하실 수 있게 안 만들어 드릴까.”
빽! 하고 날 선 소릴 내뱉은 장손녀를 장태산 회장은 싱긋이 웃으며 쳐다봤다.
“내가 너희들 안목을 믿을성싶으냐. 뭐 하나 내 손이 안 닿은 게 없다.”
“그렇게 못 미더울 거 같으면 그냥 자식들 신경 안 써도 되게 오래 살면 되겠네.”
“딱 하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그거 아니냐. 관리 사무소 내려가서 김 비서가 확인하고 온 자리, 예약하고 와.”
“뭘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급하게 처리를 해요? 좀 더 둘러보고, 다른 곳도 가 보고 그렇게 해도 되는 거지.”
“어제는 내가 너도 못 알아봤다며?”
“…….”
“아까는 차 안에서 내가 오자고 한 여길 오는데도, 내가 왜 차에 타고 있는지를 순간 모르겠더라.”
여전히 장태산 회장은 웃고 있었다.
“얼른 내려갔다 와. 조금이라도 온 정신이 더 길 때 내 손으로 하나하나 직접 정리를 해야겠어.”
“그럼 예약도 할아버지가 직접 해요!”
온 가족이 놀랐다.
할아버지에게 지금 무슨 말버릇이냐고, 어디 감히 어른들 다 있는 앞에서 할아버지한테 그런 돼먹지 못한 소릴 하는 거냐고 혼을 낼 정신도 없을 정도로, 온 가족이 하늘이가 보인 뜻밖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네 명의 손주가 있지만, 그 네 명의 손주 중에서도 유독 장손주 하늘이를 아꼈던 장태산 회장이었다.
그에 장태양은 물론이고 장영우 대표의 자식들인 나머지 두 손주들은 아무런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만큼 할아버지가 장손녀를 편애하는 만큼,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하늘이의 마음이 자기들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할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독립도 하지 않고 있는 하늘이었다.
개인 생활보다 할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늘이었다.
그런 하늘이었기에 다른 가족들 모두는 하늘이가 지금 보이고 있는 신경질적인 반응에 잠시 놀라기만 했을 뿐, 이내 그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는 더는 이 자리에 함께 있고 싶지 않다며 먼저 수목장지를 벗어났다.
자신이 타고 온 차로 향하는 동안, 우는 뒷모습까지도 가족들에게 보여 주지 않기 위해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미친. 그런 걸 왜 나한테 시키고 난리야! 노망, 노망…. 말로만 들어 봤지, 이제야 뭐가 노망인지 확실히 알겠네. 무슨 청승을 이딴 식으로 떨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가며 하늘이는 끝까지 울음으로 들썩이는 어깨를 단단하게 참아 내며 차에 올랐다.
그냥 가야겠다.
혼자 가야겠다.
가족들이야 알아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잘 돌아가겠지.
차에 시동을 건 하늘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수목장지를 빠져나왔다.
수목원장 입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밀려드는 후회와 짜증.
그냥 할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직접 예약을 할 걸 그랬나?
그냥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예약을 할 걸 그랬나?
그런 후회가 밀려오는 와중에도 다시 조금 전 그 상황, 몇 분 전 그 상황이 자신에게 찾아온다면 똑같이 신경질을 부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거라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턱 끝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결국 하늘이는 수목장지를 빠져나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차를 한 곳에 세워 놓고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