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의 품격-274화 (274/303)

274화 이거 찾기 전까지는 비상 안 풀린다?

집안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보고 있었다.

물론 그 확률을 아주 낮게 보고 있지만, 만에 하나 이게 집안사람의 소행이라면 집안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건 최대한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경찰서까지 제 발로 찾아가 세상 사람들 다 알게끔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가뜩이나 요즘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나오는데, 재벌에 관한 뉴스는 최대한 안 나가게끔, 나가더라도 우리 재경이 안 좋은 쪽으로는 더 이상 엮이지 않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홍준이, 정태, 장혜란이, 원수경….

여기에서 홍준이와 원수경이일 가능성은 배제를 해 본다.

홍준이의 경우 이런 허술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고, 원수경이가 나의 재경 생활을 확인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다.

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겠지.

궁금해하더라도 정태를 통하거나, 다른 방법을 쓰면 되지 굳이 남편 몰래 시동생에게 사람을 붙일 정도로 어리석은 모험을 할 위인이 아니다.

남편 앞길에 문제 되는 행동은 가급적 삼가를 하라는 식으로 일전에 홍준이에게 쓴소리도 들었다고 하지 않나.

둘째까지 배고 있는 사람이,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을 해도 뭐할 판에 이런 간 큰 짓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자기 손에 남는 게 없는 짓 아닌가.

원수경이는 똑똑한 사람이다.

그럴 리가 없다.

정태도… 글쎄, 이건 잘 모르겠네.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현재 나와 후계 문제로 경쟁 중이다.

조동희 전무가 그룹 본사로 올라감과 동시에 본사를 통할 수 있는 정보 파이프가 다 막힌 상태에서 어쩌면 정태라면 현재 내가 진행 중인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들의 론칭 상황이나 그 외의 것들을 이런 식으로라도 감시를 하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 자존심 강한 녀석이 그것도 동생을 상대로 이럴 이유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더 크고.

장혜란이?

결국 나의 의심이 가장 깊게 날아가 박히는 상대는 어쩔 수 없이 장혜란이었다.

“자체적으로 해결을 한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뜻입니까?”

강인성 차장이 자세를 최대한 앞으로 당겨 앉으며 내게 물었다.

“CCTV에 차량 번호가 다 찍혔잖아요. 누굴 잡아야 되는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딱 이 차량만 잡으면 되는 건데 경찰이 이걸 빨리 잡겠습니까, 아님 우리 재경 그룹 본사가 빨리 잡겠습니까?”

“…….”

“그걸 뭘 또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연히 우리가 빨리 잡지. 경찰이야 차량 조회까지야 가능할지 몰라도, 이 영상 하나만 보고 무슨 수로 차량 주인을 잡겠어요? 백화점 주차장에 차 잠시 세워 놓고 안 내린 게 범죄는 아니잖아요. 얼른 정 과장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회사로 복귀하라고 하세요.”

강인성 차장이 정재현 과장에게 전화를 거는 걸 지켜보다, 통화가 시작되는 걸 확인하고 난 곧바로 홍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재경 그룹 본사 회장실.

조동희 그룹 전무와 퇴근 전 간략하게 다음 날 스케줄을 조율 중이던 손홍준 회장의 폰으로 정훈이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잠시만, 정훈이가 이 시간에는 웬일이지?”

조 전무는 정훈이라는 이름에 급하게 조율이 들어가야 할 내일 스케줄을 앞에 놓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아직 퇴근 전이시죠?

“이제 슬슬 나가 보려고 정리 중이야.”

―제가 지금 폰으로 뭘 좀 보내 드릴 건데, 확인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

“뭔데?”

―저한테 미행이 붙은 거 같습니다.

너무나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 음성에 안심을 하고 있다가, 이내 그 음성이 꺼내 놓은 말뜻을 이해한 손 회장은 곧바로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뭐? 뭐가 붙어?”

곧바로 담담한 정훈이의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정 과장 있지 않습니까, 왜 저랑 같이 다니는.

“당연히 알지. 장선길이 운전대 잡았던 친구 아냐.”

―네, 오늘 정 과장하고 같이 고비드 오픈 준비 확인하겠다고 태영백화점 인계점부터 스너프 수원점까지 몇 군데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정 과장이 갑자기 운전 중에 유턴이 안 되는 불법 유턴지에서 급하게 차 핸들을 꺾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차 한 대가 따라붙고 있다는 겁니다.

“쓸 말만 해, 딱 필요한 말만.”

―정 과장이 지금 인계점에 다시 가서 거기 CCTV 영상을 열어 보고 확인된 내용을 보냈네요. 제가 그거 보내 드릴 테니까, 한번 확인 좀 해 주세요.

“그래서 너 지금 어딘데?”

―제 사무실입니다.

“내가 확인하고 다시 전화 줄 테니까, 퇴근하지 말고 회사에 있어.”

―네.

정훈이가 영상 파일을 보낸 곳은 손 회장의 개인 번호가 아닌 가족들이 다 들어가 있는 가족 단톡방이었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손 회장은 곧바로 영상 파일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뭔데 그러십니까?”

조 전무의 물음에 손 회장은 손을 들어 보이며, 잠시 가만히 있어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스케줄 조율 중 긴장을 타기 시작한 건 조 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자신의 폰으로 정훈이가 보내 준 영상을 확인하던 손 회장.

그는 곧바로 조 전무에게 정훈이 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라고 했다.

조 전무는 일단 지금은 이유를 물어볼 상황이 아님을 직감하고 회장님이 시키시는 대로 손정훈 식품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호가 가는 걸 확인한 뒤 손 회장에게 건넸다.

―네, 전무님.

“나다, 애비다.”

―아, 전무님하고 같이 계셨습니까?

“회색 차 이거야?”

―네.

“영상이 이거 말고 더 있는 거야, 아님 이게 끝인 거야?”

―지금 어디까지 보셨는데요?

“너 내려서 지금 막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이 차에서는 사람이 안 내리네.”

―끝에 1분 정도만 남겨 놓고 뒤로 돌리셔도 됩니다. 제가 다시 차에 탈 때까지 거기에선 사람이 안 내립니다. 그리고 제가 탄 차가 출발을 하면 같이 출발을 하죠.

“이렇게 계속 네가 탄 차를 미행했다고?”

―저는 전혀 몰랐는데, 인계에서 수원까지 계속 따라왔던 모양이에요. 그걸 정 과장이 계속 의식하고 있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급하게 유턴을 했는데, 그 뒤부터는 별다른 미행은 없었던 거 같고.

“네 형은 알고 있어?”

―아뇨, 그래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다 같이 좀 보라고요. 혹시 또 모르는 거 아닙니까. 저한테만 미행이 붙은 게 아니라 회장님이나 손정태 사장한테도 비슷한 미행이 붙었을지.

“왜?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해?”

―저야 모르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고, 그렇다고 이 정도 증거 영상만 가지고 문제를 크게 삼기엔 괜한 소란이 될 수도 있고. 경찰 쪽으로는 일부로 접촉을 안 했습니다. 충분히 그룹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일 거 같아서요.

“일단 알았다. 내가 다시 전화할 테니까, 내 전화 받기 전까지 퇴근하지 말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비록 통화 내용을 모두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손 회장의 말만 듣고도 전반적인 상황이 대충 파악이 되고 있는 조동희 전무였다.

“정태.”

손 회장이 폰을 건네며 이번엔 손정태 스너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 회장은 CCTV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자신의 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조동희 전무는 손정태 사장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신호음이 가는 걸 확인한 뒤, 자신의 폰을 손 회장에게 곧장 건넸다.

―전무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저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애비다.”

―여보세요? 아버지?

“너 금방 정훈이가 가족 단톡방에 영상 하나 올려놨는데, 그거 확인했어?”

―어… 안 그래도 지금 그거 보면서 뭐 이런 걸 보냈나, 잘못 보낸 건가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있으세요? 아버지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제대로 안 봤네, 이 녀석 이거.”

―…왜 그러세요? 그게 뭔데요? 정훈이가 다른 사람한테 보낼 거 가족 단톡방에 잘못 올린 거 아니에요?

“너 지금 어디야?”

―저요? 저야 지금 회사죠.

“지금 당장 수경이한테 전화해서 승현이하고 같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왜요? 왜 그러시는데요?

“그것부터 확인을 하라고! 그리고 같이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지금 밖이면 당장 집으로 들어가라고 해.”

―아, 아버지….

“오늘 하루 누가 정훈이를 몰래 쫓아다녔던 모양이다.”

―네?

“근데 이게 오늘 하루만 있었던 일인지, 아님 그걸 정훈이가 오늘 눈치를 챈 건지 알 방법이 없잖아.”

―몰래 쫓아다녔다면, 누가 미행을 한다는 겁니까?

“영상 보면 알 거 아냐!”

―저 지금 아버지랑 통화 중이잖아요! 동시에 두 개를 어떻게 같이합니까. 괜히 저까지 불안하게 만들지 마시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그래서 지금 정훈이는 어디에 있는데요? 괜찮아요?

“지금 당장 수경이한테 전화해서 있는 위치부터 확인해. 내가 본사 경호팀에 연락 넣어서 바로 사람들 보낼 테니까. 지금 당장.”

―하아, 진짜… 네, 뭐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저기 어머니는요?

“…….”

―뭔지는 몰라도, 어머니한테도 사람을 좀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너는 지금 바로 수경이한테 전화해서 수경이하고 승현이부터 챙겨.”

재경 그룹 본사에 초비상이 걸렸다.

손홍준 회장은 조동희 전무와 함께 조율 중이던 다음 날 일정은 뒷전으로 두고 곧바로 보안·경호팀장을 회장실로 호출했다.

그 자리에서 손 회장은 손정태 스너프 사장과 손정훈 식품 상무 쪽으로 각각 경호 인력을 두 명씩 배치시켰고, 며느리와 손자 쪽으로는 세 명의 경호 인력을 붙이며 24시간 그림자 경호를 지시했다.

그리고 현재 일산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아내, 장혜란에게도 전화를 넣어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뒤 경호 인력을 보내겠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별일은 아닐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돼.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혹시 몰라서 사람들을 붙이는 거니까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차량 그거 확인하는 데 하루가 걸리겠어, 이틀이 걸리겠어?”

―그래서 지금 정훈이는 괜찮은 거예요?

“놀라기야 했겠지. 근데 괜찮아. 아무 일 없어.”

―당신은요?

“나야 별일이 있을 게 있나. 특히나 오늘은 외근 없이 하루 종일 사무실 안에만 있었는데.”

―당신 말대로 별일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요. 요즘 세상이 보통 험하냐고.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잖아.

“그래서 내가 지금 당신한테까지 사람을 보내는 거야.”

―괜찮아요, 당신?

“괜찮다니까.”

―아니, 혼자 지내시는 거.

“…….”

―함씨가 워낙 손이 꼼꼼한 사람이라 알아서 잘 챙기겠지만, 그래도 그 큰 집에 혼자 적적하지는 않아요?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네. 다음에 언제 시간 내서 얼굴이나 잠깐 보지.”

―그래요, 그렇게 해요.

손 회장이 장혜란과 통화를 하는 동안 보안·경호팀장 다음으로 호출을 받은 그룹 본사 전략기획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해당 호출은 손 회장이 아닌 조 전무에게 받은 거라, 회장실로 올라오기 전부터 대략적인 내용은 숙지를 하고 있었다.

손 회장은 조 전무 맞은편으로 앉은 전략기획실장 앞으로 자신의 폰을 내려놓으며, 틀어 놓은 영상을 빨리 확인하라고 했다.

“이거 차량 지금 당장 수배해서 찾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금 경호팀 비상 걸린 거 들었지?”

“네, 올라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이거 찾기 전까지는 비상 안 풀린다? 다들 퇴근 못 해. 자네, 자네 팀 직원들도 퇴근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아?”

“네, 지금 바로 내려가서 비상 연락망 돌리고 찾아내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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