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의 품격-281화 (281/303)

281화 부끄러운 게 뭔지를 모른다니까요?

며칠 뒤 장민규의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오지만.

출소 후 꼬박 일주일.

액정 화면에 뜬 오지만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장민규는 오늘 하루만큼은 알뜰하게 보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녁엔 혼자 조용한 곳에서 좋은 술도 한 병 뜯을 계획이 지금 바로 세워지고 있었다.

후회?

당연히 하겠지.

하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부경통신을 공중분해시킨 놈들이 잘나가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은 인생을 패배자로, 범죄자로, 사촌들에게 뒤통수나 얻어맞은 낙오자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바에야, 다 같이 죽을 수 있는 파국을 일으켜 놓고 망가진 삶을 후회하는 게 조금은 덜 후회스럽겠지.

최소한 부경통신을 공중분해시킨 놈들을 함께 지옥으로 끌어들일 수는 있을 테니.

그래서 돌이킬 마음도 없다.

돌이키기엔 두려운 마음보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절대적으로 더 크다.

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벌어진 게 없기에, 얼마든지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마음이 삶이라는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 중이다.

액정에 뜬 오지만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차분해지고 있는 장민규였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지지 못하게끔 망가뜨리면 된다.

장민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배워 왔고, 그렇게 부경통신을 이끌어 왔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바닥부터?

그것도 큰아버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장민석이 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공과 기적?

그런 건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가져 보지 못한 자들이 좇는 것들일 뿐, 장민규에게는 크게 의미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젠 큰 미련도 없다.

다시 가져오지도 못할 것을 만회해 보겠다고 아등바등거리기엔 지금껏 살아온 삶이 너무 고급졌다.

그리고 그 고급졌던 삶은 장민규에게 항상 지나친 무료감을 안겨다 줬다.

결국은 자기들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존재들이면서, 나와 내 아버지, 부경통신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더는 잃을 게 없었기에 정리할 것도 없었다.

―인자 막 작업 맡길 친구들 한국 떨어졌다 그카네요.

“계좌로 돈 보내 드릴게요.”

―네, 그래 주믄 고맙겠습니다. 뭐 우짭니까? 바로 작업 시작해라 그카믄 됩니까?

“바로 되는 거예요?”

―지금 바로는 안 되지. 내 지금 배 타러 가는 길이거든요. 그 전에 입금되는 걸 먼저 좀 확인했음 싶어서 연락드리는 거예요.”

“지금 바로 보내 줄게요.”

―그라고 성공 보수는…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일하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지금 통화 끊고 다른 계좌 하나 보내 줄 테니까 그쪽으로 좀 보내 줄 수 있겠능교? 성공 보수는 커미션을 좀 떼 주더라도 환치기하는 아들 편으로 받는 게 여러모로 중간에 배달 사고 없이 안전할 거 같아서.

“그렇게 하세요. 계좌 번호 하나 보내 놓으세요, 확실하게 처리했다는 거 확인되면, 남은 10억 마저 보내 드릴게.”

―중국 도착하고 하면 따로 전화 한 통 드릴게요.

오전 9시 반.

호텔 객실 여기저기로 전날 술집에서 데리고 왔던 아가씨와 함께 뒹굴었던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를 몇 차례 흔들어 대며, 억지로 숙취를 억눌러 놓고 장민규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식사 같이해요.”

―너 지금 어디야?

“호텔이에요.”

―지금 일어난 거야?

“네.”

―그래, 알았다. 집으로 올 거야?

“그냥 밖에서 먹어요. 집에 사람도 없는데, 휑한 데 가서 뭐 할 거예요? 따로 식당 예약해 놓고 주소 찍어 드릴게. 한 5시나 돼서 봐요.”

장민규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샤워기 아래에서 몸을 씻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끝냈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해 본다.

10시 10분.

먹다 만 룸서비스 조식 트레이에서 토스트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문 채 밖으로 나선 장민규는 곧바로 아버지, 장선길이 있는 교도소로 차를 몰았다.

아버지와는 아마도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다.

이 와중에 운이 좋다.

오전 면회 신청 시간이 지나서 찾아갔는데, 점심시간에 면회를 할 수가 있었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왜 또 찾아왔어? 자주 오지 말라니까.”

면회실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아버지.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라고 하셔도 못 그래요.”

“…왜? 어디 가냐?”

“여기저기 얼굴 다 팔린 놈이 어디라도 나가야지, 한국 땅에서 어떻게 다시 자리를 잡고 살겠습니까?”

“어디를… 가는 건데?”

“자리 잡고 연락드릴게요.”

아마 연락이 아닌 소식, 뉴스로 먼저 접하시겠지만….

그 말을 속으로 삭이며 장민규는 웃었다.

그 웃음이 아버지, 장선길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정작 본인은 모른 채, 마지막 대면하는 모습이 웃는 아들의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민규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나가 있는 건데?”

“가 봐야 알죠.”

“혼자 가는 거야? 네 엄마는?”

“모시고 같이 갈 만한 곳이 아니네요.”

“하긴, 어디든 혼자라도 먼저 자리를 잡아 놓고 들여다보더라도 들여다보는 게 마음 편하지.”

“어머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민석이 형이 돈을 좀 해 주네요.”

“민석이가?”

“네. 꽤 신경을 많이 써서 챙겨 주네요. 당장 필요한 만큼만 빼놓고, 다 어머니 앞으로 돌려놨으니까 혼자지만 지내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혼자서 힘드시겠지만, 아버지 옥바라지도 신경을 쓰시라고 할 테니까, 안에서 건강 좀 잘 챙기세요.”

“네 큰아버지가 따로 보자고 했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

“민석이 형 만나서 이야기 다 끝냈는데요, 뭐.”

“도저히 안 되겠냐?”

“뭐가요?”

“큰아버지 밑에서 잠시 지내면서 뭘 좀 새로 다시 해 볼 준비를 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암만 얼굴 다 팔린 한국이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뭘 시작해 보더라도 한국에서 시작하는 게 유리해. 사람들 기억력은 자기 일이 아닌 이상 3년을 못 넘긴다. 하물며 기업 하는 사람들치고 깨끗한 놈들이 어디에 있어? 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그놈이지.”

“…….”

“네가 팔린 얼굴, 너한테 생겨 있는 흠?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걸 흠이라고 생각하는 개돼지들을 너는 앞으로도 평생 상대할 일이 없어. 그런 놈들이 짖어 봐야 개 짖는 소리고, 돼지 우는 소리밖에 더 되겠냐?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한 몇 년 답답하겠지만 큰아버지 밑에서 일 새로 배우면서 사람들 사귀고, 새로 일어날 기반을 찬찬히 만들어 봐.”

“아버지.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다 끝난 일이지만…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볼게요.”

“뭐?”

“후회 안 하세요?”

“무슨 후회?”

면회대 아래로 숨기고 있던 장민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큰아버지요. 부경화학. 금융 위기 터졌을 때 크게 한번 휘청거렸잖아요. 그때 제가 자금 수혈해 주지 말고, 이참에 그냥 업어 버리자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

“큰집 사람들, 큰아버지부터 시작해서 하나같이 고마운 거 모르는 인간들이라고, 받을 줄만 알지, 지금 이렇게 도와줘 봤자 결국엔 나중에 가서 우리가 위험할 땐 모르는 척을 할 박쥐 같은 인간들이라고, 모르는 척만 하면 다행이고 우리 등에 칼을 꼽을 수도 있는 뱀 같은 인간들이라고 제가 이참에 업어 버리자고 했었잖아요.”

“…….”

“저 음주 운전 뺑소니 건 있잖아요. 그거 민석이 형이 자료 정리해서 재경 쪽으로 넘겼던 거예요.”

“뭐, 뭐!”

“그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할 거 같아서요.”

“누가 그래? 사실이야?”

“그때 아버지가 제 말 듣고 큰아버지 쪽으로 자금 수혈해 주시는 대신 어느 정도 지분 보장해 주고 화학에 물산까지 다 업어 왔으면, 최소한 재경한테 그렇게 어이없이 잡히지는 않았을 거예요.”

“……!”

“어떻게 고작 재경한테 잡힐 수가 있었겠어요? 감히 잡을 엄두조차 못 내죠. 우리가 화학에 물산까지 다 가지고 있었음 아마, 제 결혼식 날 민수하고 있었던 일로 재경이 선열이 작은아버지 상대로 그런 겁 없는 짓도 못 했을 거예요. 그게… 발단 아니었어요? 그때 큰아버지가 고모 쪽으로 화재 지분 넘겨받고 부경백화점 지분을 넘겨줬던 거. 그걸 시작으로 재경이 차례차례 호텔부터 시작해 잡아먹기 시작했던 거잖아요.”

“…….”

“생각 잘 하셔야 하는 거예요, 아버지. 지기는 재경한테 진 거지만, 결국 당하긴 큰집한테 당한 거예요. 큰집 빼놓고 지금 다른 집 다 죽었잖아요. 그렇게 남의 등에 칼을 찔러 넣고 아버지를 찾아와요? 큰아버지가? 제가 그래서 이러는 거예요. 그 집 인간들은 얼굴이 너무 두꺼워요. 부끄러운 게 뭔지를 모른다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뭐가요?”

“그래서 이러는 거라니, 뭐가 그래서 이러는 거란 소리야?”

“그냥 포기하세요. 우리 다시 못 일어나요. 끝났어요. 그냥 다 포기하시고, 그 안에서라도 마음 편히 계세요. 저는 저대로 제가 원하는 선택을 할 거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며 살 준비가 되어 있어요. 잘 지내시고요, 편지 드릴게요.”

* * *

이렇게 또 올 한 해가 가려는 모양이다.

분명 출근을 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식품 본사 로비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회사 안에서만 지냈다.

점심마저도 릴레이 미팅이 있어, 준비된 도시락으로 해결을 했고.

“퇴근하십니까?”

“네, 수고하세요.”

개찰구 앞을 지키고 있던 보안 직원과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본사 출입문 앞으로 세워진 차량에 오를 때였다.

“오, 새신랑! 새신랑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새신랑은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상무님은 혹시 퇴근하셨습니까?

“네, 저도 지금 하는 중입니다.”

모직의 정현수 과장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난 정재현 과장에게 눈빛으로 출발을 하자는 신호를 보내 준 뒤 정현수 과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제가 혹시 통화 가능하실지 카톡을 보냈는데, 확인을 안 하셨더라고요.

“아, 그래요? 잠시만.”

그랬네.

카톡이 한 통 와 있네.

“미안해요. 몰랐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한 번씩 알람 소리가 안 들릴 때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죠. 다행입니다. 전화 받는 목소리가 가벼우셔서.

“언제는 무거웠어요?”

―상무님께 먼저 연락을 드릴 때마다 조심스럽습니다. 바쁘신데 연락을 드리는 건 아닐까, 괜히 제가 귀찮게 해 드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들이 연락을 드리기 전 항상 앞서거든요.

“그런데도 항상 용기를 내주셔서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쩐 일이세요?”

―실은 저희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상무님 드리려고 선물을 하나 사 왔거든요.

“에이, 왜 그랬어요, 사람 부담스럽게.”

―축의금을 부담스럽게 많이 해 주신 건 상무님이셨어요.

그래, 이런 게 인연이지.

아무리 신경을 써서 챙겨 줘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당연하게 해 줘야 한다 생각하고 해 준 걸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정현수는 이런 친구가 맞는다.

“크흠, 그건 그렇고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죠?”

―네, 덕분에 잘 쉬고, 잘 놀고 그렇게 복귀했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복귀하자마자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대현일보 쪽에서 상무님 파파라치 붙었던 건 때문에 그룹 전체가 시끄러웠지 않습니까.

“그랬죠.”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고작 신혼여행 가서 사 온 선물 때문에 연락을 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혹시 지금은 괜찮으신지 안부도 여쭤볼 겸, 겸사겸사 전화를 드린 겁니다.

“괜찮아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다시 정신없이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그럼 혹시 주중에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야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근데 정 과장한테 내가 뭘 받자니 그건 좀 모양이 이상할 거 같은데?”

―제가 아니고 제 와이프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좀 촌스럽지만, 신혼여행 하는 동안 지낸 객실 가격을 인터넷으로 찾아봤나 봐요. 과한 거 아니냐고, 너무 감사하고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을 하게 됐는데 아무것도 안 해 드리면 그건 도리가 아니라고요.

“하… 이걸 어떻게 하지?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이렇게 해요. 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 괜찮아요?”

―내일 저녁이요? 네, 무조건 괜찮죠.

“내가 지금 고비드 아이스크림 브랜드 론칭 건 때문에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질 거 같거든. 근데 또 주말엔 따로 약속이 있네.”

―상무님 바쁘신 거야 다 아는 사실이고, 저는 그냥 저녁까지 같이할 생각도 안 하고 잠시 만나서 선물만 전달해 드릴까 했거든요.

“어떻게 만나서 밥 한 끼 같이 안 하고 헤어질 수가 있나. 결혼식 당일도 다른 하객들 때문에 잠시 얼굴만 본 게 전부였는데. 그럼 내일 저녁 같이하는 걸로 해요. 혹시 와이프 되시는 분도 같이 오는 건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에이, 와이프분이 선물을 준비하셨다며?”

―아마 될 겁니다. 상무님한테 너무 감사해하고 있거든요.

“안 되는데 억지로 시간 만들게 하지는 말고.”

통화를 끝낸 내게 정재현 과장이 저녁 약속 장소를 확인하겠다고 물었다.

“소공동점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오늘은 내가 진짜 좀 미안하네? 요즘 계속 늦게 퇴근하고 하는데, 간만에 일찍 퇴근하는 날까지 갑자기 약속이 잡혀 버려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연말 아닙니까. 다른 부서들은 월말에 연말이라고 아예 퇴근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거기에 비하면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죠.”

정엽이가 자리를 마련했다.

물산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태에게 받은 도움이 컸던 모양인데, 거기에 대한 인사도 할 겸, 연말이기도 하다 보니 그나마 호텔이 크리스마스 특수로 접어들기 전 자리를 마련하는 거 같았다.

정엽이와 정태의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회복이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녀석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 자리 자체가 즐거움이다.

6시.

어쩐 일인지 매번 나보다 늦게 도착하던 정태가 오늘은 먼저 도착을 해 있었고, 자기 업장에서 만나는 거지만 항상 가장 마지막에 등장을 하던 정엽이까지 정태와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확실히 양반은 못 되겠다.”

날 먼저 발견한 정엽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에 정태도 몸을 돌려 날 쳐다보며 웃었다.

“뭐가?”

“계속 딴 이야기하다가 지금 잠깐 네 이야기 나왔는데, 그새를 못 참고 등장을 하냐?”

“약속 시간 딱 맞춰서 왔구만, 그새를 못 참고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 말을 해 놓고 마시고 있는 술병을 확인하는데, 웃음밖에 안 나왔다.

아….

그래, 아무리 내 술이지만… 아껴서 뭐 하겠나.

술맛도 모르는 놈들이 비싼 건 알아서 맥캘란 1926을 뜯어 홀짝거리고 있네.

하, 하하, 하하하….

웃자, 그래 웃자.

어차피 난 모아 놓고 뜯어 볼 생각도 못 하고 눈을 감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이렇게 겁 없이 뜯어 주는 녀석들이 있으니, 이렇게 웃으며 맛이라도 보는 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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