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나는 널 용서할 거야
그쪽 구치소 소장이 면회 접견실까지 직접 나왔다.
“면회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자기 인생까지 망쳐 가며, 다 같이 죽는 파국을 영리하게 설계한 놈이다.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나마 저 안에서 장민규 그 자식이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유희는 부경화학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거뿐일 텐데.
아직도 아찔하다.
만약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장민규의 설계가 현실로 이뤄졌더라면….
그랬음 저 얼간이 자식 하나 때문에 우리 재경은 너무 큰 걸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내가 무너뜨린 부경통신의 잔해가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아마도 남은 삶 전체를 다시 또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속에서 살아가야 했겠지.
장민규.
그 얼간이 자식 덕에 내가 너무 큰 걸 두 번이나 죽고 다시 깨어나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저는 면회를 꼭 좀 했음 싶은데요.”
“그러시면 여기에서 이러지 마시고, 안으로 잠깐 같이 들어가시죠.”
마치 다른 보는 눈이 많으니, 여기에서 이러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따로 이야기를 하자는 식이었다.
소장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정재현 차장은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본인이 거부하는 면회는 저희가 강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소장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말했다.
당연히 이해를 해야지.
이 친구가 무슨 죄가 있겠나.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건 누가 봐도 나인데.
“제가 협박을 하는 거 말고는 방법이 아예 없겠습니까?”
“네? 협박이요?”
“안 되면 그거라도 해야죠. 아니, 소장님한테 한다는 게 아니라, 장민규한테요.”
한숨을 돌리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소장을 보아하니, 나도 모르게 벌써부터 감정이 올라왔던 모양이다.
장민규에게 퍼부어야 될 화가 애꿎은 구치소 소장에게 먼저 날아가 닿았던 거 같다.
“미결 수용자라도 인권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요즘은 그런 거 제대로 안 챙겨 주면 문제가 크게 생깁니다. 가뜩이나 피해자 본인 혹은 피해자 가족들과의 면회는 합의 명분 아래 변호사가 참관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장민규는 현재 변호사도 따로 없는 상태로 계속 혼자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인권이요?”
웃기네.
우습다.
인권?
도대체 무슨 놈의 인권.
사람을 시켜 사람을 죽이겠다던 놈이다.
도대체 그런 놈에게 무슨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단 말인가.
“워낙 큰 사건이라 저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피해자 본인께서 얼마나 억울하시고, 또 화가 많이 나 있을지도 십분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미결 수용자 본인이 거부를 하는 면회는 저희 입장에서는 강제 진행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소장님.”
“네.”
“진짜 제가 지금 얼마나 억울하고, 또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인지 이해를 하십니까?”
“그럼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뉴스를 처음 접하고 제가 얼마나 경악을 했게요.”
“그럼 지금 제가 소장님 앞에서 하는 말은 그냥 제 속마음이라고만 생각해 주세요.”
“……?”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말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정도. 딱 그 정도로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할 거 같은데.”
“어떤….”
정 차장도 침을 한번 꿀꺽하고 삼킨 뒤 숨죽여 날 쳐다봤다.
“요즘은 뭐 교캉스라는 말이 있다면서요? 죄짓고 들어가 반성을 해야 될 교도소 안에서까지 돈으로 바깥세상 부럽지 않게 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이제 저희 구치소하고는 별개로 교도소 측 관련된 내용이라….”
“앞선 징역을 그렇게 편하게 해 버렸으니, 여전히 세상이 만만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렇게 뻗대고 있는 거겠죠?”
“…….”
“장민규한테 이 말 좀 전해 주세요. 감이 없어도 너무 감이 없는 짓을 했다고. 지 아버지, 장선길 회장이 지금 하고 있는 황제 징역 생활. 지금 당장 제 전화 한 통이면 끝나게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현재 혼자 밖에 남아 있는 지 어머니 구자숙. 죽을 때까지 제가 사람을 붙여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만들어 창살 없이 감옥 생활을 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고.”
정 차장이 놀란 눈으로 황급히 날 말리려 했지만, 난 손을 들어 정 차장을 막아 세운 후 그곳 소장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도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습니다.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도 수틀리면 그렇게까지 할 수도 있는 짐승이라는 걸 장민규가 좀 알았으면 좋겠다 그 말입니다. 저는 장민규가 오늘 절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제가 앞으로 조금 전 입에 담았던 제 속마음을 행동으로 안 옮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잠깐 나와서 제 얼굴만 보고 들어가라고 하십시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곳 소장에게 이 말을 덧붙였다.
“제가 오늘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하고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이 여기고요. 이렇게까지 제가 성의를 보이고 있는데, 만약 이 성의가 무시를 당하게 되면 제 기분이 어떨지 잘 한번 생각해 보라고, 그냥 그 정도로만 제 입장을 전달해 주시면 될 거 같은데,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 *
장민규의 면회는 일반 구치소 면회실에서 이뤄졌다.
아크릴 칸막이로 가로막혀 있는 면회실.
그 안으로 두 손이 결박된 장민규가 교도관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날 면회 접견실에서 30분이나 더 기다리게 만든 이유가 바로 이거였단 말인가?
씻고 온 모양이다.
면도도 지금 막 한 게 틀림없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려 놓고, 피식하고 웃으며 내 앞으로 털썩 자리를 잡고 앉은 장민규.
네놈이 아무리 대범한 척, 센 척을 해도 지금 네놈이 느끼고 있을 당혹과 두려움이 내게 다 전해지고 있단다.
정말 네 놈이 대범하고 센 놈이라면 지금처럼 그렇게 여유 있는 척 입꼬리만 말아 올리고 있을 게 아니라 날 똑바로 쳐다봐야지.
내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놈이 입만 웃는다고 될 성싶으냐.
녀석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잔인하게 녀석의 심장을 도려낼 말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런데 문제는 자기 인생 조져 가며 저기 저렇게 수감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놈을 상대로 그렇게 해 본들 내게 남는 게 뭐겠냐는 거지.
“뭘 또 그 안에 있으면서 면회한다고 치장까지 하고 나왔어?”
“정태 형이 아니라 널 담그라고 했어야 했나?”
"내가 무슨 김치야? 담그긴 뭘 담궈?”
“X밥 새끼, 많이 컸네. 형이 말하는데 이죽거릴 줄도 다 알고.”
X밥.
그 한마디에 한 곳에 정리되어 묶여 있는 정훈이의 오래된 기억들이 저절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장민규 저 자식은 정훈이에게 X밥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었다.
사촌 형제들 중 정훈이는 특히 장민규 이놈을 무서워했었다.
불편하고 어려워했던 게 아니라 무서워했다.
어른들 몰래, 정태가 없는 자리에서 괴롭힘도 많이 당했고, 표가 나지 않는 곳에 구타도 몇 번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저 안에서 저렇게 수감복 차림으로 모든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는 장민규를 상대로 기억 속에만 담겨 있는 그 일들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그냥 저놈, 그리고 그때의 부경통신은 정훈이, 그리고 재경보다 강했던 거고,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 저딴 녀석 하나 제압하지 못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때의 기억들에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내겠나.
아무 의미 없다.
다 부질없는 감정들일 뿐이다.
“입만 열일시키지 말고 눈도 좀 일을 하게 만들어? 봐. 나 똑바로 봐. 네 덕분에 죽었다 깨어났어. 입으로만 센 척하지 말고, 네가 진짜 센 놈이면 네가 시킨 놈들 때문에 진짜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날 똑바로 쳐다봐.”
“…….”
“X밥 새끼.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일도 없을 건데, 기회를 줘도 똑바로 못 보냐?”
“뭐?”
그제야 녀석이 눈이 날 응수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 눈은 이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내 눈에 가로막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내가 말하는 대로 다 될 거야, 앞으로.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한테는 미움, 원망받을 선택권조차 없으니까,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나는 널 용서할 거야.”
두 눈을 치켜떠 내 속마음을 간파해 보겠다는 듯 녀석이 날 쳐다봤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아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하고, 네가 한 잘못을 뉘우치고…. 그건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 거하고 상관없이 나는, 우리 재경은 그냥 널 용서할 거야.”
“미친놈.”
“너 같은 놈은 내가 미워할 가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거야. 이해 잘 해야 돼.”
“…….”
“할 일이 많아, 우리가. 그런데 너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쓸데없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를 할 수는 없는 거 아냐. 누구 좋으라고? 널 원망하고, 너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건 부경화학 쪽에서 충분히 우리 대신해 줄 거야. 너에 대한 처벌 역시 굳이 우리가 앞으로 안 나서도 법원에서 알아서 해 주겠지. 근데 우리가 직접 관여를 안 해도 아마 법원에선 너한테 최고 구금형을 줄 거 같아. 우리 눈치를 전혀 안 볼 수는 없을 거 아냐.”
“푸하하하. 야이, 새끼야. 이빨에 땀 나겠다. 그냥 욕을 해. 그렇게 둘러서 까면 좀 있어 보이는 줄 아냐? 타격감 일도 없다, 이 X밥 새끼야.”
“아니, 진짜 널 용서해 줄 거라니까? 나나 우리 재경이 언제까지 너 하나 때문에 과거에 살 순 없는 거잖아.”
그 말에 장민규의 두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일. 돈도 안 되고, 사업에 도움도 안 되고…. 이미 넌 우리가 아니어도 너 스스로 널 망가뜨렸는데 우리가 계속 너한테 관심을 두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
“정말 긴 악연이었다. 그 악연 속에서 우리가 만났던 거고, 관계가 형성이 됐던 거야. 어떻게 보면 너도 피해자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까지 내가 지금 들고 있어. 그 악연을 우리 재경이 직접 못 끊어 내고, 네가 대신 끊도록 만들어서, 우린 그냥 용서만 해 주면 되게 만들어 줘서 너한테는 참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네.”
“…뭐?”
“너는 계속 그 안에서 과거에 살아라.”
“…….”
“우린 그렇게 못 해. 우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사람들이거든. 그런 눈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끼가 왜 그딴 어리석은 선택을 했냐? 복수심, 불만, 원망…. 그런 감정들만큼 앞으로 나 자신을 앞으로 치고 나가게 만들어 주는 큰 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너 이 X발 새끼, 그 입 다물어라.”
“그럴 거면 내가 너 보겠다고 여길 왜 왔겠냐? 그래, 반성하지 마. 후회도 하지 말고, 사과도 하지 마. 지금 당장 억지로 안 해도, 그 안에서 평생 지내다 보면 반성, 사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후회 정도는 너도 모르게 자연스레 될 거다.”
“닥치라고 했다.”
“여기에서 더는 추해지지 말자, 민규야. 너 이렇게 장민석이 끌어안고 물귀신 작전 펼치는 거 보기 상당히 추해.”
그 말을 던지는 순간 장민규는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면회실 아크릴판을 때렸다.
야차처럼 일그러져 버린 장민규의 얼굴을 말없이 한참 동안 쳐다보며, 난 녀석이 스스로 진정을 하도록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네 계획대로 누구 하나 죽었으면 모를까, 어차피 지금 부경화학 세무 조사 들어가고 큰 난리 날 거 다 났는데, 왜 아직까지 장민석이를 물고 늘어져? 왜? 막상 큰일을 벌였는데, 네 계획대로 뭐가 잘 안 되니까 시간 끌기로라도 검찰하고 합의를 해 보고 싶은 거야?”
“…….”
“나 만나러 오기 전에 여기 소장한테 이야기 다 들었지? 지금 네 아버지가 교도소 안에서 받고 있는 특혜들, 그거 내 손으로 직접 끊고 싶지가 않아. 그런데 네가 끝까지 내 말을 안 들으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거고. 근데 네 아버지 나이가 있잖아. 그 안에 갇혀 있는 거 자체만으로도 힘들 건데, 받고 있는 특혜까지 끊어지면 얼마나 힘들겠어? 그거는 받게 해 주자, 민규야. 네 엄마는 또 무슨 죄고? 네 엄마까지 밖에서 남편, 자식 옥바라지하면서 우리 재경의 감시까지 받게 만들고 싶어?”
“너 이 X발 새끼 진짜….”
“그러게 아직 잃을 게 그렇게 많이 남은 놈이 왜 잃을 거 하나 없는 놈 흉내를 냈어? 흉내를 냈음 끝까지 척이라도 좀 해 보든가.”
“한번 해 봐. 네가 그 짓 하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내가 톡톡히 보여 줄 테니까.”
그 안에서 제깟 놈이 뭘 할 수 있다고.
난 녀석이 보이는 모습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한참 동안 쳐다봐 주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할 거라니까? 안 해. 진짜 안 하고 싶어. 내가 말했잖아. 네가 원하든 안 원하든 나랑 우리 재경은 널 용서할 거라니까? 그러니까 너도 더는 추하게 굴지 말고 장민석이 그만 놓아 줘.”
“왜? 민석이 형이 나 만나서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했어?”
“아니, 내가 그 인간을 왜 만나?”
“그런데 이러는 이유가 뭐야?”
“거기서 들고 있는 물산은 원래 우리 재경 거잖아. 지금 너 때문에 부경물산 주가 초토화됐어. 그건 우리가 다시 가져와야 되거든. 산산조각 나기 전에. 그러니까 적당히 해. 이 말 해 주러 왔어. 나 갈 테니까 생각 잘 해서 판단해. 용서는 했지만, 면회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부디 내가 해 주는 용서가 너한테는 그 안에서 네가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길 바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