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마지막 회
“어딜 가자는 거야? 나 회사 다시 들어가 봐야 돼.”
하늘이와 함께 현관을 나서며, 차라리 저녁에 따로 시간을 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또, 또…. 누군 회사 다시 안 들어가 봐도 되는 줄 알아? 기껏 점심시간 포기하고 오빠 때문에 집에 온 거구만 혼자 바쁜 척이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혼자 회사 일 다 하는 줄 알겠어?”
“바쁜 척이 아니라 벌써 2시야.”
“저녁엔 내가 약속이 있어. 주말엔 또 집에 와서 할아버지랑 계속 같이 있을 거 아냐?”
“그니까 어딜 가자는 거냐고.”
“백화점.”
“백화점? 이 시간에?”
“두 시간. 아니다 두 시간까지도 필요 없다. 한 시간만 시간 내.”
차고 안에선 정 차장이 차 시동을 걸어 놓고 대기 중이었다.
차 뒷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정 차장 곁으로 다가간 하늘이는 열려 있는 뒷문을 직접 닫아 놓고 정 차장에게 스너프 강남점으로 갈 예정이니까 자기 차를 따라오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저희는 제 차로 같이 갈 거예요.”
마지못해 알았다며, 내 눈치를 살피던 정 차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운전석에 올랐다.
“참 별나다.”
하늘이의 차 조수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며 혼잣말을 하듯 툭 내뱉었더니, 이에 하늘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음 진짜 내가 유별난 줄 알겠다. 나만큼 무던하게 결혼 준비 하는 여자 있음 나와 보라고 해.”
“뭐?”
“집도 지금 오빠 살고 있는 집이면 충분하다고 그래, 안에 인테리어도 뭐 하러 굳이 바꾸냐고 그래. 그럴 거면 그냥 앞으로도 쭉 그 집에서 지금처럼 혼자 살지 뭐 하러 나랑 결혼한다고 그러니? 왜? 또 두 집안의 정략결혼이라고 해 보지? 입을 확 꿰매 버릴라니까.”
“…….”
“나도 피곤해. 이미 다 갖춰져 있는 집, 이것저것 내 손으로 새로 직접 다 준비하겠다고 유난 떨 마음도 없고. 근데 나한테도 로망이라는 게 있을 거 아냐.”
차고를 먼저 빠져나간 정 차장이 집 앞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가 탄 차가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잡는 순간 그 뒤를 정 차장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빼고는 항상 가족들이랑 같이 살았어. 대학 생활도 오빠처럼 학교 밖에서 따로 집을 구해 놓고 산 게 아니라 기숙사 생활을 했었고.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라는 걸 가져 본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인테리어 새로 해도 되냐고 물었던 거야.”
“너도 몇 번 와서 봤잖아. 다 새거야. 내가 그 집에서 씻고 잠만 자지 딴 걸 해? 다 새건데 뭘 다시 해?”
“누가 뭐래? 그래서 나도 그러자고 했잖아.”
“근데 또 뭐?”
“내 방만큼은 내 취향대로 꾸며도 되잖아. 뭘 그런 눈으로 봐? 설마 바로 합방을 하자는 건 아니지? 그런 거라면 미리 말해.”
“…….”
“쫄기는. 내가 쓸 가구 좀 같이 보러 가자고. 아무리 거의 다 새거라도 완전 새거는 아니잖아. 혹시 또 알아? 나한테 쓰라고 했던 방 침대를 나 아닌 다른 여자가 먼저 썼을 수도 있잖아.”
“절대 그런 적 없다.”
“그런 적 있어도 상관없어. 이제 와서 피곤하게 그런 거 따져서 뭐 하겠어? 그냥 난 남들처럼 집도 같이 알아보러 다니고, 같이 인테리어 고민도 해 보고···. 그런 걸 오빠하고 같이해 보고 싶었던 거뿐이야. 우리 관계. 시작이야 어쨌든 결국은 앞으로 쭉 한편 먹고 같이 살아야 되는 사이잖아. 서로 노력해야 되는 사이라고. 너무 쿨하고 쉽게 쉽게 다 넘어가는 거 그거 좀 별로야. 그럴 거면 그냥 결혼 뒤에도 쭉 지금처럼 따로 살지 뭐 하러 같이 살아. 안 그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 왜 미리 그런 생각을 말하지 않았을까?
“한두 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딱히 생각하고 있는 스타일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가서 마음에 드는 거 있음 그 자리에서 바로 선택할 거고, 오빠한테 이건 어떻냐··· 그렇게 물어볼 거야. 거기에 오빠가 괜찮네··· 라고 하면 그걸로 선택할 거니까, 같이 집중해서 봐 줘. 취향 예민한 사람들은 가구 고르는 데만 몇 달씩 걸리기도 한대. 근데 한두 시간도 집중을 못 해 준다면 말이 안 되잖아.”
그런 거라면 오후 스케줄을 다 비우더라도 같이 가서 봐 줘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늘이가 운전 중에 몇 번이나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날 쳐다봤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며 물어봤다.
그랬더니,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몰아쉬며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나의 왼쪽 손목을 붙잡는 게 아닌가.
하늘이는 마치 내 손이 빗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손목을 잡고서 자기 머리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뭐 하냐?”
“이럴 땐, 우리 하늘이 착하네? 하면서 칭찬을 해 주는 게 정상이야.”
“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오빠한테 다 맞춰 주고 있단 생각 안 들어?”
“네가?”
“여자가 신혼집을 맞춰 주면 다 맞춰 주는 거야. 자, 얼른 말해. 우리 하늘이 착하네··· 이렇게.”
착한 거야 누가 모를까.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는 건가.
근데 그 말을 꼭 듣고 싶은 거라면 얼마든지 해 주지, 내가.
“아이고, 우리 하늘이 착하네. 한 번 더 해 줘?”
“응. 한 번 더 해 봐.”
“아이고, 우리 하늘이 착하다. 어쩜 이렇게 착하지?”
“고마워서 그러는 거야. 우리 할아버지한테 잘해 줘서.”
“…….”
“친손녀인 나도 한 번씩 할아버지가 기억 잃고 이상한 소리 하시기 시작하면 피곤하고 숨이 막힐 때가 있는데, 항상 먼저 연락드리고, 오지 말라고 해도 주말마다 찾아와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 보내 주고···. 분명 나보다 더 피곤할 텐데, 더 바쁠 텐데···. 그런데도 오빠는 그런 기색을 할아버지 앞에서 안 보이잖아. 그런 오빠 모습이 가끔씩 할아버지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생각을 하는 날 반성하게 만들어. 그런 반성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빠한테 고마워지고, 잘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돼.”
“우리 하늘이 진짜 착하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오빠랑 한편 먹길 정말 잘한 거 같다.”
“그걸 이제 알았냐?”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도착을 했을 때, 바로 옆 빈자리로 정 차장이 주차를 시키는 동안 하늘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내 앞으로 자기 손을 내밀었다.
반대쪽 어깨엔 들고 온 가방끈을 걸어 놓고서.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하늘이는 싱긋이 웃으며 잡아 보라고 한다.
“잡아, 얼른. 손만 잡고 다니는 게 남들 보기에도 덜 부담스럽지 않겠어? 팔짱은 좀 투머치잖아.”
재밌는 녀석.
난 하늘이가 내민 손을 잡고서 정 차장을 쳐다봤다.
“오늘 오후 스케줄은 다 빼는 걸로 합시다. 회사 다시 안 들어가고, 여기에서 바로 퇴근할 거니까 그렇게 좀 전달 넣어 주세요.”
“네, 본부장님.”
* * *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더 이상 온풍기를 틀지 않아도 점심 후엔 노곤한 기운이 올라올 정도로 기온이 많이 높아졌다.
어느덧 4월.
항공으로 옮기기까지 이젠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곧 본사 차원의 인사 공고가 올라올 것이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과 준비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
똑. 똑···.
모직의 정현수 과장이 식품 본사를 찾아왔다.
강인성 차장이 직접 로비에서 정현수 과장을 만나 내 사무실까지 함께 올라왔다.
“오랜만이에요, 정 과장.”
얼마 만에 만나는 거지?
생각해 보니까, 사고를 당하기 전 정현수 과장과 식사 약속을 잡았었다.
그게 미뤄지고, 차일피일 하다 보니 어느덧 겨울이 지나가고 해가 새로 바뀌어 봄이 되어서야 새신랑의 얼굴을 보게 된 거다.
“강 차장님은 내려가서 정 차장하고 같이 대기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태화장으로 예약해 놓으면 되겠습니까?”
“고 이사님까지 해서 다섯 사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천천히 말씀 나누십시오.”
정현수 과장과는 강 차장이 나간 뒤 진하게 인사를 나눴다.
내가 한번 안아 봤다.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니까 너무 좋네요.”
“걱정 많이 했습니다, 상무님. 이렇게 불러 주실 거면 중간에 전화라도 한번 주시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중간에 정 과장한테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내가 몇 번이나 했거든. 근데 일부러 안 했어요.”
“왜요?”
“전화로 하게 되면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보고 하는 거보다 감동이 두 배로 줄어들까 봐?”
“뭐가요?”
“일단 앉읍시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직접 차를 내렸다.
내린 차를 정현수 과장 앞으로 한 잔 내려 놓고 마주보고 앉았다.
“내가 그 전까지도 개인적으로 정 과장한테 고마운 게 많았어. 그런데 이게 기억이 돌아오고 나니까, 정 과장한테 고마운 게 더 많이 생겨 버리는 거야.”
“네? 뭐··· 라고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기억이 다시 돌아오고 나니까, 정 과장한테 고마운 게 더 많이 생겼다고.”
정현수 과장은 특유의 꺼벙한 표정으로 수차례 눈을 깜빡거리며, 지금 내가 한 말뜻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기,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고요?”
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놓고 물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해 줄 수 있었지? 그 전까지 내가 정 과장한테 한 짓이 있는데 말이야.”
“아니, 아니.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기억이 다 돌아왔다 그 말씀이세요?”
“네. 기억이 다 돌아왔어요. 술 먹고 새벽에 전화해서 운전하라고 불러내고, 툭툭 건드리고, 무시하고···. 내가 다시 찾은 기억 속에서 정 과장에게 내가 한 행동 중엔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
“근데 이걸 내가 어떻게 전화로 사과를 하나? 직접 이렇게 얼굴을 보고 해야지. 정 과장.”
“네.”
“진짜 미안해요.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정 과장한테 했던 지난 일들은··· 말이 안 돼.”
“아닙니다. 이렇게 괜찮으시면 된 거죠, 뭐 다 지난 옛날 일을 가지고 그러십니까?”
“나도 그냥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내용들인 줄 알았어. 근데 막상 기억이 다 다시 돌아오니까 절대 그런 게 아닌 거야. 이게 말로만 사과를 한다고 될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과를 꼭 해야겠어요.”
“그 사과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진짜 용서해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저는 상무님한테 시달렸던 6개월보다, 그 후로 지금 모습의 상무님을 훨씬 더 오래, 길게 봤습니다. 이미 저는 상무님께서 모직에서 제대로 된 과장 역할을 해내 가기 시작하실 때부터, 그 전에 제게 하셨던 행동들을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난 자세를 앞으로 당겨 몇 차례 정 과장의 무릎을 두드린 후 사과를 받아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상무님.”
“네.”
“그럼 혹시···. 저를 항공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시는 이유가 기억이 돌아오셔서, 저한테 미안한 마음 때문에 특별하게 신경을 써 주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부터, 내가 항공으로 발령을 받든, 통신으로 발령을 받든 정 과장만 괜찮다고 하면 같이해 보자고 할 생각이었어요. 모직에 있을 때부터 느꼈던 거고, 또 이곳 식품에 와서 그걸 더 절실히 느꼈어요. 정 과장처럼 인사 일에 진심인 직원을 찾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
“하지만 항공은 재경의 지주사입니다. 규모 자체가 모직이랑은 비교가 안 되죠. 인사에 관해 항공 쪽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이 거기에도 분명 있을 텐데, 모직 관련 경험뿐인 제가 거길 가서 과연 상무님께 도움이 될 만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좀 걱정이 됩니다.”
“걱정도 팔자다. 내가 정 과장이 가지고 있는 애사심, 업무 능력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정도 확신도 없이 지금 모직에서 인사부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는 정 과장을 스카우트하는 거겠어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압니다. 그런데 나는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으면서 정 과장에 대해 더 많은 이해가 생겨 버렸어요. 나랑 같이 갑시다. 정 과장 도움이 꼭 필요해.”
“저도 당연히 가고 싶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항공은 이미 업계 1위입니다. 저처럼 의욕만 앞서고 몸으로만 일하는 사람보다는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실력자를 스카우트하시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뭘 그렇게 밑밥을 촘촘하게 깔아요? 누가 처음부터 잘하라고 하겠어요? 천천히 나랑 같이 세팅을 해 보자고 같이 가자는 거지.”
“세팅이요? 무슨 세팅이요? 항공은 이미 재경의 타 사업부와 비교해서 시스템적으로나 조직 관리 면에서나 완성형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는데요.”
“누가 그럽니까? 현재의 항공이 시스템, 조직 관리 면에서 완성형에 가깝다고?”
“벌써 십수 년째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어 준 적이 없는 게 재경항공이죠. 시스템적으로나 조직 관리 면에서 허점이 있었다면, 단일 업종에서 무슨 수로 십수 년 넘게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십수 년 넘게 지키고 있는 1위 자리를 언제까지 국내용으로만 놔둘 거냐는 거죠, 제 말은.”
“…네?”
“더 올라갈 곳이 없으면, 스스로 천장을 깨부수는 모험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항공은 천장 아래에서 동네 대장질만 하겠다고 합니다. 업계 1위를 찍었음 그다음엔 글로벌도 노려봐야죠.”
“…….”
“지금 우리 재경에서 글로벌을 노려볼 수 있는 사업이 항공 말고 뭐가 더 있습니까? 뭐든 시작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누가 먼저 스타트를 끊으면 너도나도 할 수 있나 보다··· 하면서 용기를 내게 되어 있죠.”
“그게 무슨···.”
“재경항공. 국내용이 아닌 글로벌용으로 키워 볼 생각입니다. 나는 그걸 인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이라고 보고 있고, 날 도와 현 재경항공의 인사에 인사 혁명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인물로 고성표 이사님과 정현수 과장을 생각 중에 있는 거예요.”
“글로벌이요? 어···.”
“왜요? 불가능할 거 같아요?”
찻잔을 입에 붙여 놓고 입술을 적신 다음 정현수 과장이 말했다.
“상무님이 하시겠다면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이런 좋은 기회 앞에서 초를 칠 정도로 제가 멍청하지는 않고요. 당연히 될 거라고 믿고 될 거라고 대답을 드리는 게 맞는 거긴 한데,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편하게 말해요.”
“항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국내 시장의 규모로 사업 크기가 정해지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정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이죠.”
“항공이라는 상품의 소비 시장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 규모만 가지고 글로벌화가 가능한 겁니까?”
“그렇게 따지면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은요?”
“…….”
“거긴 전체 인구수가 350만도 안 됩니다. 근데도 아랍에미레이트라는 글로벌 항공사를 만들어 냈죠. 물론 본경영진이나, 지주사가 우리 재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글로벌 기업들이긴 하지만, 우리라고 못 할 게 뭐가 있습니까?”
“1등 다음엔 글로벌이다, 이 말씀이시네요?”
“당연히 그렇게 가야죠. 그런 욕심도 없이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모직 상반기 공채. 그거 끝내 놓고 신입 사원들 부서 배치까지 끝나는 거 보고 옮겨도 되겠습니까? 그러자면 아마 저는 6월이나···.”
“그렇게 하세요.”
난 트랜스퍼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정 과장에게 모든 자율성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모직에서 성의 있는 마무리 끝까지 잘해 주시고, 그렇게 제가 있는 곳으로 넘어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술 한잔 같이할까 해서 오라고 했습니다.”
“술이요?”
“한참 신혼인 새신랑인데 퇴근 후에 보자고 해서 늦게까지 붙잡아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아요. 고성표 이사나 강인성 차장하고는 모직에서부터 같이했으니까 당연히 잘 알 거고, 정재현 차장은 아직 인사 안 나눴죠?”
“네, 직접 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나갑시다. 나하고 같이 태화장 가 본 적 있죠? 거기로 예약해 뒀으니까 퇴근 시간 되기 전까지 열심히 한번 마셔 봅시다.”
“지금 나가자고요? 아직 두 시밖에 안 됐는데요? 그래도 근무 시간에 술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회식도 업무의 연속이라면서요? 이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지금 저한테 어디에 있겠습니까? 같이 항공으로 넘어갈 제 사람들이랑 같이 서로 얼굴도 익히게 하고, 술 한잔하면서 팀워크를 미리 다지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난 싱긋이 웃으며 내선 전화로 고성표 이사방에 연락을 넣었다.
―네, 본부장님.
“정 과장하고는 이야기 다 끝났습니다.”
―그럼 저도 슬슬 준비하겠습니다.
“준비하고 계세요, 정 과장하고 같이 이사님 방으로 가겠습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우물쭈물 일어서고 있는 정 과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벌써부터 설레네. 우리 정 과장하고 다시 같이할 생각을 하니까. 자, 갑시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보러.”
내가 내민 손을 힘을 줘 잡으며 정 과장이 대답했다.
“넵!”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