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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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누구나 한 번은 상상해봤을 꿈의 직업이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연예인처럼 유명해질 수도 있어?

실제로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의 수입은 연예인 뺨을 친다.

연봉만 따져도 수억, 부수입을 합치면 수십억을 넘는다.

하지만 그 영예를 얻는 것은 결코 실력 순이 아니다.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2020 롤챔스 섬머 시즌.

한 명의 선수가 발악을 하고 있다.

패색이 짙은 전황을 역전하기 위해서.

─더블 킬!

트리플 킬!

그 발악이 무색하게도 쓸려 나간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 게임.

선수 한 명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팀의 실수로 인해 패배한다.

팀 게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는 부분이지.

〈아니, 이거 또 지겠는데요 창민 선수?〉

〈이번 세트까지 지면…… 오늘 잠 못 잘 것 같지 않나요?!〉

중계진이 한 선수의 편을 들어준다.

드문 일이기 이전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팀의 패배는, 공동의 책임.

분명 그래야 함이 옳지만.

-706패배 미쳤나고!

-노데스 패배ㅋㅋㅋㅋㅋㅋ

-어케 졌누 시발련ㄴ아ㅋㅋㅋㅋ

-표정 아련한 거 보소ㅋㅋㅋㅋㅋㅋ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

반응이 웃픈 사정이 있다.

프로게이머 '최창민' 그의 전적은.

DPM 분당 데미지- 768/1st

CSPM 분당 CS- 11.5/1st

KPG 게임당 킬- 4.1/1st

KP 킬 관여율- 82.6%/1st

각종 데이터에서 1위를 구가한다.

이만하면 게임을 이겨야 정상이다.

설사 지더라도 접전이 돼야 하는데.

『LOSE』 PERFECT (7/0/6)

『LOSE』 PERFECT (2/0/3)

『LOSE』 PERFECT (3/0/4)

『LOSE』 PERFECT (4/0/1)

최근 대회 전적이 새빨갛다.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해설진들이 그토록 안타까워하던 이유다.

─???: 엄살부리지 마라 '최창민'

5인분을 하고도 지는 건 짐에어 에이스의 숙명이다

└태디좌 등판ㅋㅋㅋ

└아 뿔 싸!

└원조 억제탑ㅋㅋㅋㅋㅋ

└짐에어는 원래 그런 팀이자너~

하지만 그런 역경.

딛고서 성공하는 선수도 있다.

커뮤니티의 반응이 장난스러울 만도 하다.

└창민은 고통 받아야 제맛!

└언럭키 태디ㅋㅋㅋㅋ

└어떻게 옮기는 팀마다 망하냐……

└얘도 나중에 팀 잘 만나면 뜨겠지

실력이 있는 선수는 언젠가 성공한다.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선수들처럼 말이다.

일반 팬들에게는 가볍게 넘어갈 화젯거리다.

'이것도 벌써 4년 전 기사네.'

자신의 전성기 시절.

이따금 그리워지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있고, 잘 나갔던 때가 있다.

한때 프로게이머의 길을 걸었다.

당시의 나는 촉망 받는 신인이었다.

문제는 촉망만 받다가 끝났다는 거지.

은퇴 직전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 과정이 기구하다 보니 별명까지 붙게 됐다.

지금도 이따금 듣게 되는 두 단어.

"무관의 제왕 최창민 코치님!"

"……평범하게 불러."

프로게이머를 은퇴.

이후에 하게 된 일은 치킨집이 아니다.

한 프로팀에서 코치직을 전담하게 되었다.

"저희도 이러다 우승만 못하는 건 아니겠죠?"

"데뷔 2년도 안된 놈이 별 걸 다 걱정한다."

"헤헤헤…… 농담이에요 코치님!"

담당하는 선수와 농담 따먹기도 할 만큼 정착했다.

딱히 놀림이라기 보다는 훈장에 가깝다.

선수 시절 어떤 의미로는 유명했으니까.

'가는 팀마다 족족 고통 받았던 걸로.'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프로게이머 시절에는 징크스였다.

지속되다 보니 보니 그냥 내 문제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고, 은퇴의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선수직에서 물러나 코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변화라기 보다는.'

상당히 이슈가 되는 성적을 내고 있다.

하위권이었던 팀을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오히려 프로 시절보다 높은 평가를 받게 됐을 정도다.

코치로서 성공하게 된 후 가끔 만약이란 생각을 한다.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지.'

인생에 만약은 없다.

지나간 과거와 결과만이 존재할 뿐이다.

알고 있음에도 지도하는 선수들이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떠오른다.

미련[未練].

쉽게 떨칠 수가 없는 두 글자다.

그날 중계진이 말했던 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거의 미련이 북받치는 날이면 마찬가지다.

새벽이 다 가도록 침대에 누워 잠을 설치게 된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으면 몇십, 몇백억이라도 아깝지 않을 텐데…….'

돌이켜 생각해봐도 몇백억은 좀 에바참치였다.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갑작스레 머릿속에 때려 박히듯 울렸다.

깜짝 놀란 나는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꿈?'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푹 자고 있던 잠이 달아날 정도로.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 꿈이 맞다.

내용이 없는 전형적인 개꿈이다.

소원이 이루어졌다니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살면서 바란 소원이라고 해봤자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까악~ 까악~!

창문 너머 새 울음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그렇게 유별난 일은 아니다.

닭이 아침을 알리듯 조류의 습성이니까.

아침만 되면 시끄럽게 지저귀곤 한다.

혼자 살았던 과거에는 일상과도 같았다

빌라 근처에 산이 있어 동물이 많았던 탓이다.

'뭐?'

혼자 살았을 때는 말이다.

이후 전전했던 숙소는 전부 도심에 위치했다.

때문에 새소리는 커녕 벌레 소리도 듣기 힘들었다.

해가 지날수록 더해질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도시가 발전하는 만큼 자연은 숨어들게 된다.

2020년 이후 새라곤 닭둘기밖에 보지 못했는데.

덜컥-!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젖힌다.

쏟아지는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시다.

그 시점에서 이미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공기가 차갑지 않아.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방안이 후덥지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4년 6월 16일.」

방안에 있는 달력의 날짜가 다르다는 사실 또한.

아니, 달력 같은 걸 걸어 본지도 오래됐다.

정말 고등학교 때나 했을 낡은 습관이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한 번은 해보는 상상이다.

진짜 이루어지는 일까진 보통 없어서 그렇지.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잠결이었음에도 귓가에 선명히 남아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

그런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질리 있냐고 부정하고 싶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날씨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고작 창문을 닫았을 뿐인데 방안이 덥다.

오늘이 11월 말, 겨울이라면 있을 수가 없는 온도다.

달칵!

방안에 불을 켰다.

낡은 책상과 낡은 침대.

분명 이사를 하며 버렸을 옛날 가구들이다.

게임단의 숙소에 둔 적이 없다.

물품은 그렇다 쳐도 방 구조부터가 다르다.

지금 내 눈이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소원이…… 이루어졌어?'

10년 전의 과거로 돌아왔다.

믿을 수 없지만 더 이상 부정하기도 힘들다.

눈앞에 증거들이 떡하니 놓여져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짚이는 바까지 있다.

바로 어젯밤, 나는 소원을 빌었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한두 번 빌었던 게 아니다.

사실 소원이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깝다.

어째서 갑자기 바람이 이루어진 건지는 몰라도.

'일단 개꿀이잖아.'

약간 천박한 표현이긴 하다.

그런데 개꿀 만큼 지금의 상황에 적절한 게 없다.

신의 착오, 세상의 오류……, 이유야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 번 프로게이머를 목표할 수 있다.

그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위이잉……!

책상 위에 있는 낡은 컴퓨터.

전원을 켜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덜덜거린다.

SSD도 장착되지 않은 고물답게 느려 터지긴 하지만.

'충분해.'

게임을 돌리는데는 지장이 없다.

흥분되는 일이다.

아무리 코치가 본업이 되었다 한들 나는 선수 출신이다.

코치 생활 중에도 챌린저 티어는 웬만하면 유지했다.

막말로 어지간한 선수들보다 나은 실력을 가졌다.

전성기의 100%,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도.

'잃었던 감은 지금부터 천천히 찾아가면 돼.'

야구에서 타자는 27세, 투수는 25세를 절정의 시기로 본다.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e스포츠도 노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과거로 되돌아왔다는 건 의미가 크다.

무려 10년 전의 과거다.

한창 파릇파릇하던 시절이다.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전성기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

'아니, 그 이상도 못할 것이 없지.'

코치로서 선수 관리는 일상이다.

나 자신을 선수로 대입해본다면?

단점이 없는 이상적인 선수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다.

물론 이론상이다.

자세한 건 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해볼 만한 시간도, 방법도 차고 넘치게 안다.

여유를 가지고 솔로랭크부터 돌려볼 생각이다.

굳었던 몸을 풀 겸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면 알아서 프로 제의가 오게 되어있다.

'6월이면…… 영입 기간인 11월까지 꽤 남아있긴 하네.'

하지만 조급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과거로 되돌아왔으니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가?

고물 컴퓨터의 로딩이 끝나는 순간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100,000,000,000₩』

바탕화면의 오른쪽 끝.

조금 이상한 메세지창이 이목을 잡아 끈다.

* * *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무언가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연금술에서 말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근데 그건 연금술이고.'

그런 팔다리가 오고 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게 아니다.

그저 소원을 빌었을 뿐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할 법한 일 아닌가?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새벽 갬성에 취해있던 나는 한 가지 사족을 달았다.

[안녕하세요. 천사은행입니다! 최창민님이 상환하셔야 할 금액은 100,000,000,000₩입니다.]

'…….'

0이 조금 심각하게 많은데?

쓰여있는 0의 개수가 11개.

100억원이 아닌 1000억원이다.

일련의 금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솔직하게 찔리는 바가 하나 있었다.

그 이전에 친절하게 설명이 쓰여있다.

[소원 '회귀' 의 가격은 최창민님의 바람으로 책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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