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리더 역할을 자처해왔다.
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건 게임.
현질을 해서라도 친구들보다 앞서 나갔다.
대세 게임이 된 LOL도 먼저 시작해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LOL은 현질로 잘해질 수 없다.
평소 눈엣가시로 여기던 창민.
가장 늦게 시작했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티어가 상승했다.
불과 50판만에 골드에 입성했다.
장환은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굴린 장환은 창민의 자존심을 살살 긁었다.
《컨트롤 좋은 애들이 배인을 그렇게 잘한다더라?》
자신의 말에 넘어가 훌륭한 배인충이 되었다.
꼴사납게도 아직도 골드에서 헤매고 있다.
판 수가 200판이 넘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이아거덩.'
LOL은 현질이 불가능하다.
맞는 말이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고티어에게 돈을 주고 과외를 받는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바로 대리를 받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올린 티어는 자기 실력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다.
과외와 대리를 해준 형이 분명 그랬다.
현지 적응을 하면 된다, 높은 구간에서 하는 게 실력이 더 잘 오른다.
실제로 장환은 플래티넘에서 현지 적응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이아 티어에서 적응을 하고 있다.
돈을 쏟아부은 보람이 있었던 셈이다,
창민과의 티어 차이를 벌릴 수 있었다.
상성 차이까지 있으니 여유롭게 이길 것이다.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시작했던 내기 게임이었는데.
퀴리릭!
헤이클린의 키포인트인 라인전 견제.
Q스킬 대탄환은 푸쉬와 견제를 동시에 한다.
라인 푸쉬가 약한 배인은 일방적으로 얻어 터진다.
분명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단 한 대도 스치지 않아서 문제다.
대탄환을 쏠 때마다 족족 애꿎은 허공만 가른다.
'아니, 이 새끼가 감히…….'
내기가 걸린 게임이다.
친구들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무엇보다 고삐를 쥐고 흔드는 건 자신이어야 한다.
라인전이 묘하게 흘러가자 장환은 초조해진다.
기분 탓인지 평타 견제도 각이 안 나온다.
더욱 더 스킬샷에 의존해 쏟아 붓는다.
"야, 마나 너무 막 쓰는 거 아니야?"
"니가 뭘 안다고…… 어?"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얼마 쏘지도 않은 거 같은데.
실제로 배인은 한 대도 안 맞았는데.
벌써 바닥이 난 마나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고작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본능적인 위기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창민의 배인이 무서운 기세로 굴러온다.
친구들과 하는 내기 게임.
승패에 연연할 만큼 진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은근한 신경전이 흐른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확실히 배인으로 헤이클린이 어렵긴 하지.'
불이 마그마를 이길 수 없듯 상하 관계에 놓인 챔피언들이 있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파이어뱃의 저글링 떼몰살!
헤이클린은 배인의 완벽한 천적이라 불린다.
라인 푸쉬력 차이.
기본적인 사거리 차이.
여러가지 극과 극적인 요소로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극상성이다.
"그런데 윤혁아, 너 풀츠 말고 다른 건 못하니?"
"야, 나 그랩 장인이잖아~ 나만 믿어!"
그런 상황에서 아군 서포터까지 미덥지 않다.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풀리츠크랭커를 한다.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장인을 자처하나 전적을 검색해보니.
아이디- SKY T1 조시커
전적- 529승 586패
티어- BRONZE I 0LP
약간 편견 어린 시선이 안 갈 수가 없는 티어가 목격된다.
많이 한 건 인정하지만 그 챔피언의 장인인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속내가 메아리가 되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윤혁이가 굉장히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정말 열심히 하고, 착하기도 하지만 조금 모자란 친구다.
물론 현실에서는 착하기만 해도 절반은 간다.
인간성이란 중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롤은 실력이 장땡이다.
이렇게 모자란 서포터를 데리고 라인전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딱히 고민할 문제까진 아니다.
퀴리릭!
헤이클린의 Q스킬 대탄환.
미니언을 뚫고 나를 노려온다.
라인 클리어와 견제가 동시에 되는 사기 스킬이다.
'맞아줄 때나 그렇다는 소리고.'
당연하게도 맞지 않는다.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
아무리 내가 선수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한들, 일반 유저와 비교하는 건 섭한 일이다.
저런 노골적인 스킬샷은 패시브처럼 피한다.
궤도가 뻔히 보이는데 맞아줄 리가 없지.
대놓고 각을 주고 피하는 걸 즐기고 있다.
'한 대라도 맞히면 서렌쳐준다. 이 소리를 해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
능욕까지 가는 건 너무 나갔다.
그보다는 한 가지가 신경 쓰인다.
하루이틀 게임하고 산 인생이 아니다.
코치직에 있던 만큼 평가에는 자신이 있다.
장환이의 플레이는 잘 쳐줘야 플래티넘이다.
'역시는 역시 역시네.'
어쩌면 골드 이하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심해의 무빙은 그게 그거다.
팀운 더 좋은 쪽이 올라갈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다이아의 무빙은 절대 아니다.
대리를 받았다는 확증에 확증이 얹어진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참교육을 해줄 시간이다.
봇라인은 예나 지금이나 서포터가 7할.
그 중요한 서포터가 그랩이 고장난 풀리츠크랭커다.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었을 뿐이다.
궁극기를 배우기 전까지.
킬각을 잡을 수 있는 6레벨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데구르!
챠앙!
은신 구르기로 순식간에 접근하자 헤이클린은 당황한다.
반사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투망을 사용한다.
본능적인 회피는 훌륭하지만.
터엉-!
덕분에 벽꿍각이 예쁘게 나온다.
정확하게 각도를 조준해 선고.
거대한 은탄에 맞아 밀려난 헤이클린이 벽에 쳐박힌다.
'선고-점멸이라고 알랑가 몰라.'
장환이로서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니, 여기서 어떻게 벽꿍각이 나와?
피격 직전, 점멸을 사용해 선고 각도를 바꿨다.
천상계에서는 유별날 것도 없는 잡기술이다.
대리를 받은 유저에게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벽에 쳐박힌 시점에서 운명은 정해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헤이클린을 가볍게 마무리한다.
벽 건너에서 짜증 섞인 탄성이 들린다.
이게 말이 되냐며 허공에 대고 따지고 든다.
일반 유저 상대로 조금 너무하긴 했다.
내기까지 걸려있으니 살짝 찔리긴 하다.
하지만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둘 뿐이다.
'대리충이 상대라면 부담 없이 저질러도 되겠지.'
과거의 내가 당했을 한풀이.
사실 기억도 잘 안 나서 관심도 없다.
만약 그렇다 해도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원래 세상사 약육강식이다.
모르고 당한 놈이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내가 할 짓 또한.
* * *
분명 손쉽게 이겼어야 할 게임이다.
라인전을 초전박살 터트렸어야 했다.
예상과 달리 버라이어티하게 흘러간다.
'제기랄……, 왜 안 맞는 거야 대체!'
초반, 만족스러운 디나이를 하지 못했다.
한 번의 실수로 솔킬이라는 굴욕까지 당했다.
안 그래도 속이 끓어오르는 차, 거슬리는 지적이 들린다.
"장환아 견제 좀 해봐! 배인 피가 안 닳잖아."
"CS 차이만 벌려도 이득이거든? 어휴, 롤알못 새끼~."
배인의 움직임이 기묘하다.
플레이가 평소처럼 되지 않는다.
북받쳐있던 짜증을 상우에게 털어낸다.
따지고 보면 상우의 말이 맞다.
스킬샷을 못 맞힌 건 자신의 실수다.
아차했지만 주위 친구들이 편을 들어준다.
"와, 실버가 다이아한테 훈수 두네."
"그님티? 그님티?"
"상우야 실버면 말 좀 듣자…… 나 돈 없어!"
게임의 승패가 장환의 손에 달려있다.
애걸복걸 떠받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이아 티어이니 분명 캐리를 해주겠지.
친구들의 신뢰는 자신의 편이다.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역전하면 된다.
마음을 다잡은 장환은 승부욕을 불태웠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또다시 배인이 앞으로 굴러온다.
전면전의 시간이다.
첫 교전 때와 달리 방심도, 당황도 하지 않고 받아쳤다.
챵! 챵! 타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수세에 몰리고 만다.
배인의 포지셔닝과 딜각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쏘아진 은탄이 두 번의 고리를 그린다.
헤이클린의 목덜미가 간지러워진다.
이럴 때 믿을 거라곤 역시 서포터.
"야, 미친……! 그걸 못 맞히면 어떡해!!"
매드무비에서나 보았을 장면이다.
루나가 던진 칼을 배인이 피해버렸다.
점멸을 쓴 것도 아니고 고개를 돌려 가뿐히.
그리고 차분하게 목줄을 조여온다.
배인이 자랑하는 3타가 펑펑 터진다.
뒷걸음치며 어설프게 응전하지만 이미 죽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v지존배인v님이 학살 중입니다!
헤이클린이 죽자 루나까지 세트로 따라간다.
창민의 배인이 순식간에 2킬을 먹었다.
머리에 피가 끓어오른 장환은 애꿎은 서포터를 탓한다.
"야, 김상우! 똑바로 안 해?!"
"아니, 쟤가 피한 걸 어떡해……. 다음번엔 잘할게."
상우가 칼을 빗맞힌 탓이다.
서포터의 실수 때문에 자신이 죽었다.
사실 장환도 자신이 딱히 잘한 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뽀록이 터지다니. 운도 좋은 새끼.'
초반에 스킬샷이 너무 빗나간 탓이다.
그리고 선고가 말도 안되게 맞아버린 탓.
이를 아득바득 갈던 장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라인에 복귀하자 배인이 아직도 집을 안 갔다.
챔피언 특성상 라인 푸쉬가 느린 탓이다.
강가쪽 부쉬에서 몰래 귀환을 타고 있다.
'뽀록충 새끼 잘 걸렸다.'
장환은 히죽거리며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마침 와드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삼거리를 경유해 몰래 접근한다.
앞투망으로 평타 두 대만 꽂으면 궁극기로 마무리할 수 있다.
점멸도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 절대 도망갈 수 없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장환은 실행에 옮겼다.
타앙!
한 방은 쏘았다.
물론 배인은 굴러서 도망갈 것이다.
그래봤자 이미 거리를 좁혔고 다음 평타가 기다린다.
"어?? 뭐야 저거?!"
당황한 나머지 육성으로 크게 외치고 만다.
진짜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절대로 벽을 넘을 수 없어야 할 배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로드 오브 로드.
LOL은 전통적으로 버그가 많다.
시간에 지남에 따라 수정되고, 고쳐졌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지.'
마침 과거로 되돌아온 참이다.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써먹어야 한다.
라인전이 너무 심심하던 차 조금 실험을 해보았다.
배인의 구르기는 벽을 넘을 수 없다.
챔피언의 스킬 자체가 그렇게 설계돼있다.
그런데 딱 한 군데, 벽을 넘을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용쪽 강가와 레드팀 벽 사이의 틈.
옛날 패치 버전에서는 넘는 것이 가능했다.
장환이를 꼬셔 저지른 실전 테스트는 훌륭하게 성공을 거뒀다.
미니언 웨이브가 바텀 포탑에 살살 녹고 있다.
안 그래도 두 번이나 죽은 헤이클린.
CS 차이가 우주 끝까지 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