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발점이다.
이곳 퍼플펍PC 대회.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층부터 정복해나간다.
진행되는 대회는 예상했던 대로다.
아니,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안 좋다.
급식충 4인조의 활약이 유난하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아래 라인이 신명나게 당하고 있다.
봇듀오가 또다시 더블킬을 내줬다.
미드&정글도 상태가 심상치 않다.
5명이 하는 게임에서 4명이 망한 셈이다.
정상적인 게임이면 터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 게임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어흥!
애꾸사자의 발톱이 내려찍힌다.
적 탑솔러 또도 박사.
대놓고 단단한 하드 탱커임에도 인정사정 없이 찢겨나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궁극기를 켤 찰나조차 주지 않는다.
손아귀에 쥐자마자 그대로 으스러진다.
탑 라인에 한정하면 온도가 180도 다르다.
무한한 고통을 선사하고 있다.
또도 박사는 침을 질질 흘리며 CS를 구경만 해야 했다.
문제는 그토록 사리다가 갑자기 거리를 준 이유다.
'계속 사리다가 기어 나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상대의 갱킹 혹은 로밍.
일련의 추측은 어렵지 않다.
전체적인 판을 읽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프로게이머는 물론 코치 생활까지 했다.
사소한 행동에서조차 힌트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안다고 모든 걸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쿠우!
안타깝게도 둘 다였다.
갱킹임과 동시에 로밍이다.
리심이 점멸로 다가와 냅다 차버린다.
대놓고 과투자를 해오는 이유.
도망갈 여지를 완전히 없에겠다는 심산이다.
뒤에서 까타레나가 뚜벅뚜벅 거리를 좁힌다.
점멸과 궁극기를 잘 쓰면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여기서 산다고 게임을 이기는 게 아니다.
'궁극기랑 점멸이 빠지면 이후로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어.'
내가 해야 하는 건 정상적인 캐리.
그런 2인분, 3인분으로는 턱도 없다.
홀로 5인분 이상을 해내며 적을 찢어버려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점멸로 거리를 벌리며 패시브 스택을 모은다.
4스택이 모였을 때 비로소 수풀로 들어가 내려 찍는다.
─더블 킬!
풀피에 가까웠던 잘 큰 리심.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삭제된다.
아직 까타레나가 두 눈 빤히 뜨고 살아있지만.
'5초 남았어.'
까타레나의 목숨 말이다.
내가 기다리는 5초는 스킬 쿨이 아니다.
어차피 스택은 궁극기를 활용하면 금세 모은다.
콰직!
터엉-!
강화된 발톱과 함께 티아매트가 울린다.
리심과 마찬가지로 풀피.
그럼에도 까타레나는 종잇장처럼 찢긴다.
─트리플 킬!
잘하는사람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잘하는사람님이 미드하는새끼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432G)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캐리력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챌린저, 프로게이머라도 예외가 아니다.
로드 오브 로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팀 게임.
이처럼 아군과 적의 실력 차이가 심각하다?
어지간한 캐리력으로도 역전할 수 없다.
가진 바 실력에 더해 한 가지 꼼수가 작용했다.
'데미지가 정상이 아니잖아.'
예로부터 애꾸사자는 버그 투성이 챔피언이다.
QQQ, QWQW 등 별의별 버그가 다 존재했다.
지금 하는 건 굳이 따지면 전자에 가깝다.
? 애꾸사자
Q - 사자발톱
버그사자? : 티아매트로 후딜레이를 캔슬해도 데미지가 두 번 들어가지 않습니다!
Q스킬을 찍으며 티아매트를 터트린다.
Q스킬 데미지가 두 번 연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애꾸사자는 패시브로 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
강화된 Q스킬이 두 번 연속으로 들어간다면?
어지간한 궁극기가 곱배기로 박히는 셈이다.
리심도, 까타레나도 원콤에 터져나간 이유다.
'근데 이게 겉으로 보면 잘 몰라.'
애꾸사자의 특성상 워낙 폭딜이다.
폭딜이 슈퍼 폭딜이 돼버렸을 뿐이다.
이 차이를 인지해낸다면 최소 마스터 티어.
영상으로 차분하게 분석하는 거면 모를까.
인게임에서 알아채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유린 당한다.
콰직!
터엉-!
강화된 발톱과 함께 티아매트가 울린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라인을 밀던 또도 박사가 세로로 쭉-! 찢어진다.
잘 익은 쥐포처럼 손맛이 찰지다.
그나마 탱커라 손맛이라도 있지.
두근! 두근!
현재 애꾸사자는 첫 번째 리메이크 상태다.
지금 이 시기의 궁극기는 사용시 맵핵이 된다.
주위 적 챔피언들의 위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적한테 탐지도 되지 않는다.
아주 근처에 가야만 경고 표시가 뜬다.
먼 거리에서 몰래 궁을 켜면 상대는 알 방도가 없다.
'미래 시점으로 보면 한없이 사기인데.'
현재 시점에서는 이게 당연하다.
당연함의 소중함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그 사기성을 백분 끌어낼 수 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궁극기 맵핵 덕분에 뻔히 보였다.
적 봇듀오가 포탑을 밀고 탑에 왔다.
발톱에 스치자 부드러운 계란찜처럼 으깨진다.
─더블 킬!
정글 지역.
수풀 천지에서는 애꾸사자가 왕이다.
적 서포터 인어를 잡아 뜯고 이즈레알을 마무리한다.
봇듀오를 순식간에 참살한 후 레드까지 빼먹는다.
정신 못 차리고 와드를 깔러 온 까타레나.
애석하게도 이곳은 정글이다.
─트리플 킬!
잘하는사람님은 전설적입니다……!
보이는 족족 전부 잡아 족친다.
* * *
"뭔데 쟤……?"
"팀은 더럽게 못하는데 탑이 혼자 미쳤어!"
퍼플펍PC 대회.
8강에서 시작된 대회는 결승전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떨어진 팀들은 구경꾼을 자처한다.
기왕 온 거 우승팀은 보고 가야지.
얼마나 잘난 팀이 우승하나 한 번 보자.
팀이 아닌 단 한 명의 선수가 주인공이 되고 있다.
콰직!
터엉-!
애꾸사자로 묵묵하게 캐리한다.
리메이크 이후 평가가 좋지 않은 챔피언이다.
그런데 저 남자의 손에만 들어가면 마치 다른 챔피언 같다.
─더블 킬!
잘하는사람님이 학살 중입니다!
혼자 라인에서 솔로킬을 낸다.
적 정글이 갱킹을 오면 같이 잡아버린다.
자신들이 당했던 그대로를 결승전 상대팀도 당하고 있다.
"부쉬 플레이가 그냥 하……."
"킬각이 미쳤다니까? 저건 진짜 당해봐야 알아!"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무엇인지.
옛 조상님들의 격언을 몸으로 배운다.
이미 배운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내뱉는다.
안타깝다.
모든 사람의 심정이 일치한다.
그도 그럴게 당하는 적들도 안타깝지만 그의 아군들도 만만치 않다.
"상대 다이아라 너무 힘듬!"
"응 니 실력~."
"응 니 엄마~."
팀원들의 티어가 브실골이다.
나이대도 개념과 한참 거리가 있는 급식충이다.
그에 반해 결승전 상대는 플래티넘, 다이아이니 밸런스가 붕괴됐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아니나 다를까 하체가 버티지 못하고 있다.
솔로킬을 당하고, 갱킹을 당하고.
속수무책 무너져 내린다.
"우승까진 힘들겠지?"
"아무리 잘해도 이건 못 이겨."
"팀 차이가……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잖아!"
소위 말하는 양민 학살.
양학도 솔로랭크에서나 가능한 짓이다.
솔로랭크는 아군과 적의 실력이 엇비슷하다.
현재 진행되는 결승전은 그 정도가 아니다.
브실골을 끼고 그 이상의 높은 티어를 상대한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날고 기어도 못 이겨야 정상인데.
콰직!
터엉-!
그런데 저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정글 지역을 장악하고 독무대를 펼친다.
혼자 다니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자른다.
단신으로 게임의 중심을 휘어 잡고 있다.
구경꾼이자 피해자.
진심 어린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라인전도 라인전인데 운영이 더 미쳤어!"
"그냥 실력이 미쳤지."
"혹시 프로게이머인 거 아니야? 끝나고 물어볼까……."
프로게이머가 온다고 과연 가능할까?
그 이상의 답을 생각하기 힘든 일반 유저다.
그런 그들의 시선으로조차 남자는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 *
작은 우물이다.
나를 고전케 하기엔 한참은 밋밋하다.
급식충 4인조 탓에 다소 다이나믹해졌을 뿐이다.
'애들이 못하는 것도 못하는 건데.'
개념이 장난 아니게 없다.
사람이라는 생물이 참 독특하다.
혼자 있을 때는 정상적인 사람도 3~4명씩 모이면 개념이 이탈한다.
안 그래도 개념 없기 쉬운 나이대.
급식충 4인조는 이루어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결과가 좋았으니 시행착오를 겪은 셈 치고 넘어갈 수 있다.
'상금도 수령했고.'
10만원의 상금과 더불어 부상도 제법 쏠쏠하다.
최신 기종의 마우스.
마우스는 단 하나지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가 없지! 탑이 혼자 다 했잖아."
"게임 겁나 살벌하게 해. 맞라인 섰는데 숨도 못 쉬었어……."
구경꾼들이 알아서 나 좋은 해석을 해주고 있다.
눈이 옹이 구멍이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는 격차다.
까놓고 말해 내가 없었다면 진작에 떨어졌을 급식충 4인조다.
"형! 형! 짱 잘한다. 친추 가능?"
"솔랭 버스 태워줘요. 팀운 때문에 미치겠음."
"응 네다브~ 브론즈랑 게임 하면 암 걸려. 전 실버에요!"
귀가 따가우리 만큼 떠들어댄다.
누가 급식충 아니랄까봐 어지간히 시끄럽다.
상금과 부상을 받고 나오자 친한 척 따라붙는다.
"그래, 그래. 근데 형이 친추는 안 받아."
"힝……. 하루종일 같이 게임 했는데 너무해."
상대를 해줄 마음은 눈곱 만큼도 없다.
내 직업이 무슨 보육사도 아니고.
그리 한가하지 않은 사람이다.
목적을 이룬 이상 볼 일은 끝났다.
고개를 돌려 PC방의 정문으로 향한다.
네 명의 급식충이 쫄래쫄래 뒤따라온다.
"형! 형! 진짜 혼자 가게요?"
"가더라도 상금으로 밥 먹고 가요!"
급식충이 한두 명도 아니고 네 명이다.
심지어 텐션이 업된 상태라 목소리 톤이 높다.
조금 소란스러워진 상황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아무래도 교통 정리가 필요하겠네.'
처음 급식충들과 팀을 꾸렸을 때 말을 해놨다.
우승을 하면 상금은 전부 내가 가지겠다.
확답을 받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이 녀석들끼리 우승이 가당키나 할까?
애시당초 욕심을 내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도끼가 내 도끼가 아닌 걸 알면서도 금도끼·은도끼 찾는 이유가 있다.
"밥 정도는 쏠 수 있잖아요!"
"우리도 엄청 노력했는데……."
"마우스랑 나머지 상금은 형 혼자 다 먹으니 된 거 아님?"
콩고물이라도 먹으려는 탐욕이 생긴다.
애들이라고 돈 욕심이 없는 게 아니다.
결정적으로 자신들이 뭔가 한 줄 안다.
'원래 롤이라는 게임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