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01)

잘하는사람님은 전설적입니다……!

정글러는 물론 서포터까지 나를 잡으러 왔다.

안타까운 희생자가 한 명 늘어날 뿐이다.

순서대로 세 명의 모가지를 전부 꺾어낸다.

"와…… 너무 잘해서 뭐라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대 전부 다이아던데 혼자 다 잡으시네요……?"

"형 대체 정체가 뭐에요? 다이아5 맞아요?"

밑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 팀원들이 주절거린다.

물론 마냥 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럭저럭 자기 할 일은 하고 있다.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나 하나 따기 위해 세 명이 왔다는 것.

반대로 아래쪽은 아주 한가하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 한가하다는 사실은 의외로 인지하기 힘들다.

'우물쭈물 거리다 기회만 날리기 십상이지.'

때문에 필요한 게 오더다.

인원 공백을 활용해 다른 곳에서 이득을 본다.

관전 입장에서는 쉬워 보여도 실제로 하는 건 엄청나게 어렵다.

더군다나 아군이 안 들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정확한 오더를 내려도 하기 싫어!

그렇게 외치는 순간 별 수가 없다.

'아군이 들을 능력이 없어도 별 수가 없고.'

지난 퍼플펍PC 대회 때는 그러했다.

실력도, 개념도, 경험도 없어서 오더를 못 듣는다.

그래서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이겨야만 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이버파크 PC방 대회.

팀의 중심을 휘어 잡고 오더를 내리고 있다.

보다 효율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지금 다 정비 타이밍 잡고 위로 올라와."

"가서 뭐해요?"

"미드 밀면서 탑&미드 라인 관리만 해."

간단한 오더만 따라줘도 게임의 구도가 확 달라진다.

아군이 기본적인 걸 해주냐, 못 해주냐의 차이다.

이전 대회에서는 그 기본이 전혀 안됐다.

'그 급식충들을 어떻게 믿고 맡겨.'

괜히 하기 싫다는 거 시켰다가 망하고 내 탓하면 골치 아프다.

이번 팀원들은 일단 순종적이다.

오더를 꽤 열심히 따르고 있다.

연령만 따지면 같은 급식충.

롤의 주연령층이 10~20대인 만큼 성인만 고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 고등학생이고, 무엇보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기본만 해주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지.'

그럴 수 있는 상황.

그럴 수 있는 챔피언.

하드 캐리, 강제 캐리란 건 우연이 아니다.

실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각본이다.

솔킬도, 갱승도, 방금 전 트리플 킬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시작될 학살의 공연 또한 예고된 미래다.

콰직!

터엉-!

강화된 발톱과 함께 티아매트가 울린다.

적 레드 지역.

기다리고 있자 적 원딜러 부시안이 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잘하는사람님은 전설적입니다……!

아군이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위쪽 라인을 밀고 있다.

그에 따라 적들은 위쪽 라인을 수비하러 간다.

하지만 한 명 정도는 바텀 웨이브를 먹기 위해 온다.

'그 한 명이 원딜일 수도 있고, 정글일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한 명만 온다는 사실이다.

봇 웨이브를 막고, 레드를 먹고 아래로 합류하겠지.

전체적인 전황을 보면 상대의 움직임이 쉽게 읽힌다.

상대는 고작해야 다이아.

이전 상대들보다는 높지만 그래봤자다.

어중간한 티어가 팀 게임을 하면 상대하기 도리어 편하다.

'합리적으로 움직일수록 다음 행동이 뻔해지거든.'

그 이상의 높은 티어.

움직임에 페이크를 섞거나, 개인기가 터지면 피곤해진다.

안타깝게도 다이아 티어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프로들도 힘들어하는 걸 지들이 어떻게 해?

뻔한 움직임과 뻔한 판단,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

물론 나라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행동을 읽을 수는 없다.

『해골 목걸이』

어이쿠!: 이제 해골 목걸이의 고유 사용 효과에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사전 정보.

한 가지 버그가 시야 장악을 도와준다.

현재 애꾸사자의 장신구는 아이템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의 영향을 받는다.

'애꾸사자는 참 이상할 정도로 버그가 많아.'

유독 버그와 인연이 많은 챔피언이다.

티아매트 버그처럼 대놓고 사기인 부류.

그런 걸 제외해도 자잘한 버그가 한둘이 아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와드돌을 공짜로 들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활용 여하에 따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솔로 캐리를 해야 한다는 현실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콰직!

터엉-!

상대는 나름대로 뭉쳐서 정글에 기어 들어왔다.

하지만 틈은 있고, 나에게는 그 각이 보인다.

요우무를 키고 달려가 허리를 끊는다.

미드라이너인 직트가 0.1초만에 순삭 당한다.

깜짝 놀라 전투 태세를 갖춰오지만 늦었다.

궁극기를 쓰고 스르르~ 어둠에 녹아든다.

두근! 두근!

당황한 적들의 움직임이 시야에 뻔히 보인다.

그리고 이곳은 애꾸사자의 놀이터인 정글.

가장 맛있는 적을 골라서 잡아 뜯는다.

─더블 킬!

부시안이 유언장도 못 남기고 사라진다.

주력 딜러가 싸그리 죽어버린 셈이다.

나머지 적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트리플 킬!

잘하는사람님은 전설적입니다……!

압도적인 성장 차이.

손에 걸리는 족족 쭈욱 찢어진다.

넝마가 된 네네톤이 도망가긴 했지만 문제될 건 없다.

"형 게임 혼자 하세요?"

"살다 살다 이런 버스도 다 타보네."

"진짜 미쳤다……. 저희 일단 바론 먹을게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터져버렸으니까.

게임의 균형은 무너진지 오래다.

마무리 짓는 일은 손쉽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첫 번째 세트를 깔끔하게 이겼다.

그러니까 첫 번째 세트다.

즉, 다전제라는 이야기다.

사이버파크PC 대회는 상금이 꽤 높다.

결승전은 3전 2선승제로 구색을 갖췄다.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면 대응을 해올 것이다.

* * *

우승할 자신을 넘어 확신까지 하고 왔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넘치던 여유가 온데간데없다.

첫 번째 세트를 패배한 우승하러왔다팀의 분위기는 대조적이다.

"다른 라인은 다 이겼는데 이걸 져야 돼? 미치겠네."

"키워도 적당히 키워야 캐리를 해주지."

"……미안해. 다음에는 잘할게."

로드 오브 로드가 괜히 인성 제조 게임이라 불릴까?

패배는 곧 팀의 분열로 이어진다.

그 원인이 명백한 상황이다.

탑라이너 호진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상대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해.

"진짜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게임도 그렇게 진지하게 좀 하지."

"아니, 진짜로 쟤 다이아5일 수가 없어!"

호진의 티어는 다이아3에서 4 사이.

아무리 방심했어도 호락호락한 실력은 아니다.

사리고자 마음 먹고 하면 못 사릴 이유가 없다.

그만큼 상대의 실력이 월등했다는 반증이다.

없는 틈을 파고들어 압도하고, 캐리까지 해냈다.

호진은 자존심을 접어두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믿어야지."

"하긴 나도 중간에 느끼긴 했어. 단순히 잘 커서 잘하는 게 아니더라."

"킬각이 얼마나 어이 없는지 알아? 난 분명 얌전히 파밍만 하고 있었는데……."

"일절만 하고 좀 닥쳐."

"……."

물론 그렇다고 발언권이 생기는 건 아니다.

탑 차이로 게임을 져버렸다는 건 명백하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진짜…… 너무 잘하긴 했어."

"상대팀은 좆도 못해. 현지인이야."

우승하러왔다팀은 전원이 다이아 티어다.

소위 말하는 양학도 해본 경험이 있다.

당하는 입장이 되는 건 생소하다.

캐리하는 놈만 작정하고 마크하면 되잖아?

정작 게임 내에서는 귀신에 홀린 듯했다.

찍소리도 못 내고 허무하게 당해버렸다.

"혹시 마스터 티어 부캐 아닐까?"

"마스터라도 말이 안돼. 내가 마스터 안 만나본 줄 알아?"

마스터 티어, 다이아 티어의 윗단계.

아마추어 고수의 상징과도 같은 티어다.

하지만 아예 꿈도 못 꿀 만큼 멀지는 않다.

팀장인 상호는 다이아 2티어다.

솔로랭크에서 마스터 티어도 만나봤다.

실력 차이가 나는 건 맞아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설마 챌린저인 거 아니야?"

"에이, 끽해야 다이아, 마스터 왔다갔다 하겠지."

"근데 진짜 챌린저라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넌 좀 닥치라고."

"……."

물론 그 이상의 티어도 존재는 한다.

챌린저 티어.

국내만 한정해도 수백만 유저 중 최상위 200명이다.

대부분이 프로게이머, 혹은 지망생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대회에 출전할 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그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결론은 하나.

"그냥 저 애꾸사자가 뭔가 있어."

"리메이크 되고 쓰레기 아니었나?"

"몰라, 아무튼 세잖아."

"장인인가 보지. 그냥 밴을 하자."

챔피언 때문이다.

미친 듯이 스노우볼을 굴리는 게 가능했다.

시야가 먹히자 부쉬 주위에 가는 것조차 공포가 됐다.

다음 세트에서 밴을 한다면 해결될 문제.

불안 요소가 있다면 확실하게 배제해야 한다.

당황스러운 사태이긴 해도 대처하지 못할 건 없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나 좀 믿어줘라. 상대가 잘하는데 한 번 못할 수도 있지 너무 갈구네."

"그게 아니라 전략을 짜야 돼 전략을."

다이아 다섯이 작정하고 팀을 꾸려 대회에 참가했다.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자랑이다.

까놓고 대회 안 나가면 그냥 겜창인생 아닌가?

잘하는 고수들을 보고 싶은 사람.

반대로 으스대고 싶어하는 고수도 있는 법이다.

한 번의 패배로 우승과 관심, 두 마리의 토끼를 빼앗기기 직전이다.

"탑만 오지게 파면 되겠지?"

"탑갱 와주면 캐리 가능……."

"좀 닥치라고!"

상대가 한 명인 만큼 의외로 간단하다.

첫 번째 세트에서 문제가 됐던 애꾸사자.

밴을 통해 더 이상 못하도록 막아버린다.

에이스 한 명만 집중 견제하면 캐리를 막을 수 있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 게임.

한 명이 엄청나게 잘해도 한계는 여실하다.

오히려 잘하는 상대라면 원하는 바다.

수많은 관중들이 결승전을 관람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 주목 받는 게 자신들이 되면 족하다.

"마스터든 다이아든 제대로만 하면 우리가 무조건 이겨."

거슬렸던 애꾸사자를 밴한다.

더 나아가 집중 견제를 해버린다.

초반부터 108갱을 해서 말리면 마스터고 나발이고 없다.

자신들이 질 이유가 결단코 없다.

전판은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믿어 의심치 않고 두 번째 세트를 시작했지만.

* * *

애꾸사자가 밴이 됐다.

꿀을 쏠쏠하게 빨았는데 안타깝다.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밴을 안 해주면 고맙겠지만 어지간하면 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털렸는데 아무 대응도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상대는 밴이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을 취해왔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애꾸사자를 못하게 됐다.

팀원들이 나보다 더 성화다.

"헐, 애꾸사자 밴됐네……."

"형 어떡하죠? 따로 잡아드릴 거 있어요?"

"니들이나 잘해. 니들이나."

내 걱정을 니들이 왜 해?

세상에 연예인 걱정 만큼 쓸데없는 게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는 프로게이머 걱정 만큼 오지랖인 것도 없다.

이렇게 될 걸 다 알고 있었다.

알고도 대비를 안 할 만큼  준비성이 결여돼 있지 않다.

애초에 모든 것을 알고 과거로 돌아왔다.

'애꾸사자를 대체할 챔피언이라…….'

대답은 '있다' 가 아니다.

무궁무진하게 '널려있다' 지.

2014년.

LOL의 긴 수명을 생각한다면 아직 초창기다.

그리고 나는 그보다 8년이나 지난 미래를 보고 왔다.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알고 있다는 소리지.'

선구자들의 지혜를 빌리는 셈이다.

그렇게 말할 만큼 사실 거창한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시점에서도 명백히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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