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01)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사이드 라인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네네톤은 1대1로 버티는 것조차 할 수 없다.

포탑을 강제로 밀어버리자 상대는 당황한다.

엉거주춤 막으러 오지만 정답이 아니다.

나한테 몰려오면 본대에 빈틈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미드쪽의 2차 포탑이 깨지고 만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동네 축구.

한쪽에 인원이 과투자되면 다른 쪽이 빈다.

그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에 의해 강제적인 손해가 생긴다.

운영 기교의 차이가 어린 아이 팔 비트는 수준이다.

상대의 움직임에서 하나하나 근거를 빼앗는다.

승리라는 정답을 향해 차곡차곡 나아간다.

"싹 다 쓸어버려!"

실력 차이, 호흡 차이.

그런 것도 정상적인 상황에서나 의미가 있다.

이렇듯 무너져버린 상태에서는 오히려 오합지졸이다.

상대가 다이아던, 아군이 골드던 상관이 없어진다.

힘의 차이를 바탕으로 한타를 연다.

그 중심에서 모조리 쓸어 담는다.

─트리플 킬!

전설의 출현!

한 마리의 미친 용을 저지할 수단이 없다.

경기도 수원시.

유려하게 이어진 옛 성곽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역사와 현대가 한데 섞여든 이곳에도 당연히 PC방이 있다.

장안구에 위치한 사바나 PC방.

무려 200석이 넘는 대규모를 자랑한다.

시설 또한 세련돼서 최근 유행하는 음식점화도 되어있다.

달짝지근한 짜장면, 매콤짭짤한 라면, 바삭한 피카츄 돈까스!

PC방에서 먹으면 더욱 맛있는 먹거리가 손님들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된 장소는 다른 곳이었다.

"미친놈아!"

한 남자가 다른 손님의 멱살을 잡고 소리친다.

씹어 죽이기라도 할 듯 표정이 흉흉하다.

대체 둘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구경꾼들로선 당연히 알 수 없다.

근데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남자는 일단 멱살을 놓았다.

"워워~ 진정하시고. 게임 마저 하셔야죠?"

"니 때문에 못하고 있는 거잖아……!!"

다소 진정했는지 목청이 약간은 가라앉았다.

싸움이 난 듯한 상대가 평온하게 대처하고 있는 탓.

그것도 있겠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게 크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시발! 너 때문에  또……."

"자신의 실력 부족을 남에게 전가하다니 꼴불견이네요."

"닥쳐, 시발 경기 끝나고 보자!"

남자는 사바나PC 대회의 참가자 중 한 명이다.

이미 16강, 8강을 돌파하고 준결승전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방금 전 죽음은 연습 게임이 아니라는 소리다.

"게임 중에 한눈 팔면 안되죠. 기본적인 상식은 지키면서 해야지."

"……."

"참고로 저였으면 아래에서 귀환 탔을 거에요. 탈리반이 윗정글에 있었는데 왜 위쪽에서 귀환을 타다 죽어줘요?"

싸움이 일어난 이유가 짐작이 간다.

멱살을 잡혔던 남자가 훈수를 둔다.

경기를 진행 중인 남자가 듣든 말든 떠들어댄다.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여 화가 난 거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훈수꾼의 말은 솔직히 틀리지 않았다.

남자가 플레이 하던 트와이스 페이크가 죽어버린 이유.

귀환 위치가 너무 안 좋았던 탓이다.

물론 애초에 실랑이를 안 했다면 죽을 일도 없었겠지만.

"오른쪽, 오른쪽에서 탈리반 갱! 어때요, 제 덕에 살았죠?"

"닥쳐……."

"지금 킬각 노리는 건 안 좋은 선택인데요? 악! 후회하셔도 전 모릅니다. 진짜 몰라요."

"닥치라고!"

훈수꾼이 남자에게 자꾸 훈수를 두고 있다.

아까부터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기는 하다.

처음에는 남자도 제법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따금 거슬리는 말을 내뱉는다.

마치 자신의 행동을 읽는 것처럼 내다본다.

방금 전만 해도 점멸 스턴으로 킬각을 노리려 했는데.

'시발! 들어갔으면 잡았는데 저 새끼 때문에.'

자꾸 속삭이는 탓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자신의 판단에 반하는 말을 지껄인다.

계속해서 심기를 거슬려 댄다.

"명태야, 야유 한두 번 들어 보냐? 무시해."

"……무시하는 중이야."

"방금 멱살까지 잡아 놓고 무슨. 화는 나중에 풀고 지금은 게임에 집중해."

킬리만자로의 표범 클랜.

남자, 최명태는 무려 부클랜장이다.

기껏 대회까지 왔는데 위엄을 세우기는 커녕 실수를 연발한다.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클랜원의 타박은 솔직하게 옳다.

PC방 대회를 치르다 보면 흔하게 겪는다.

구경꾼들의 훈수질과 야유 말이다.

롤이라는 게임의 특성상 더더욱 그런 면이 짙다.

소위 말하는 입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감안을 하고 대회를 치러야 한다.

"관중 정 거슬리면 헤드폰 음량 최대치로 높여."

"이런 데서 지면 무슨 망신이냐? 그것도 구경꾼이랑 싸우다가."

"…….'

당연하게도 클랜원들보다 잘 알고 있다.

어디 PC방 대회를 하루이틀 참가했을까?

문제는 상대가 상상 이상의 악질이라는 부분이다.

'저 자식이 일부러 소리 안 나올 때만 주절대고 있다고!'

명태는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굉장히 지능적인 어그로꾼한테 걸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저 자식이 원하는대로 놀아날 뿐이다.

집중해서 경기부터 이기는 게 옳다.

따지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는다.

훈수질 때문에 벌써 두 번이나 죽기는 했으나.

'맞는 말이야. 이런 데서 지면 개망신이지.'

불리하기는 해도 게임을 패배할 정도까진 아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 쓸까.

가입 조건이 최소 다이아인 명문 클랜이다.

부클랜장인 자신은 마스터 티어.

무려 챌린저에도 발을 디딘 적 있는 실력자다.

진지하게 한다면 한두 번의 미스 만회는 어렵지 않다.

"아~ 라인전이 말렸으니 로밍을 가겠다? 근데 지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건데……."

훈수충의 말을 무시하고 하려던 바를 속행한다.

트와이스 페이크는 극로밍형 챔피언이다.

다른 라인에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하다.

절대 라인전이 망해서 도망가는 게 아니다.

그것도 모르고 떠드는 것 보면 그냥 입롤충.

명태는 코웃음을 치며 궁극기를 발동시켰다.

촤라락-!

이게 바로 트페를 하는 이유다.

궁극기인 숙명은 한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한다.

자신의 맵리딩과 센스라면 이렇듯 손쉽게 킬각을 잡아낸다.

나타나기 직전에 황금 카드도 깔끔하게 뽑아두었다.

적 원딜러의 마빡에 똬악-!

아군이 적당히 호응만 해도 꽁킬이 생기는데.

"미친! 콜 좀 하고 타!"

"아니, 그냥 점사 하면 되는 거……."

팀원의 성질에 어이가 없어 반박하려던 찰나.

명태는 그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깨닫고 자시고 눈에 뻔히 보인다.

바로 뒤에 동그란 원이 그려져 있다.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모를 수가 없는 명태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도망을 갔지만.

푸우웅!

하늘 위에서 빵테온이 떨어진다.

트페와 마찬가지로 로밍에 탁월한 챔피언.

하지만 미드가 아닌 탑이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 트리플 킬!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형 사고다.

자신은 물론 아군까지 줄줄이 소세지.

3킬을 내줬음은 물론 용까지 나가버릴 위기다.

"명태야……."

"진짜 미안해! 하필 빵테온이 지금 내려왔네."

"일단 난 콜했어. 빵테온 귀환 탔으니 조심하라고."

상대의 맞로밍에 털려버리는 것.

분명 살다 보면 할 수 있는 실수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너무 여의치 않다.

본래라면 말린 건 자신 뿐이었다.

나머지 아군들은 선전해주고 있었다.

방금 전 교전으로 인해 전 라인이 힘들어졌다.

더블 킬을 당한 바텀 라인은 말할 것도 없다.

빵테온이 3킬을 먹으며 탑 라인도 균형이 무너졌다.

전 라인이 터지게 되자 정글러도 할 게 없어지고 만다.

"그러게 진작 말을 해줬는데. 역시 챌린저를 못 가는 이유가 있구만."

이 모든 사태를 초례한 빌어먹을 자식.

또 뒤에서 쫑알쫑알 신경을 건드려댄다.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챌린저 드립이야?

'챌린저가 뉘집 개 이름인지 아나…… 나도 시즌 초에 겨우 한 번 달아본 걸!'

마음 같아서는 대회고 나발이고 한 대 후려치고 싶다.

한탄스럽게도 자신은 그럴 수가 없는 처지다.

실수를 한 만큼 전력으로 만회해야 한다.

'시발……. 게임만 끝나면 두고 보자. 게임만 끝나면.'

최명태는 극도로 불리해진 게임을 역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봤지만.

* * *

계획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매일매일 PC방 대회를 하나씩 섭렵.

벌써 우승 상금을 짭짤하게 적립했다.

하지만 상금 하나 보고 하는 짓이 아니다.

상금은 1차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다.

스쳐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진짜는 솔로 캐리를 위한 전략의 확립.

버그와 운영 지식의 활용은 성공적이었다.

이곳 사바나PC에서도 한 가지 실험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전원 코드를 확-! 한 번 뽑아버리고 싶긴 한데.'

MBC 뉴스데스크의 폭력성 실험처럼 말이다.

PC방 설비를 파악하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잘못하다간 쇠고랑 찬다는 것.

그런 난폭한 수는 쓰지 않는다.

이래 봬도 나는 신사적인 남자다.

그렇기에 지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5, 4, 3, 2…… 1!"

5초부터 1초까지 천천히 카운트를 센다.

나의 마지막 한 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덮쳐진다.

동그란 원이 그려지더니 하늘에서 빵테온이 깜짝 등장!

─적에게 당했습니다!

내가 당한 게 아니다.

내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

한심하게도 벌써 다섯 번이나 죽었다.

"예고까지 해주고 저 참 친절하지 않나요?"

"닥……치라고!"

어금니 그렇게 꽉 깨물다 깨지면 어떡하려 그러나.

실제로 깨진 사람이 있다 보니 걱정된다.

프로게이머 중에 징계즈칸이라고 있다.

참으로 걱정될 일을 많이 하는 양반이다.

그래서 방금 전 친절하게 알려줬다.

5초 후에 너 또 죽을 거라고.

'이런 게 바로 지적인 수단이지.'

지적인 수단임과 동시에 지적하는 수단이다.

바둑이든, 체스든 게임이라는 게 다 그렇다.

옆에서 훈수 두면 어지간히 신경 쓰인다.

그 훈수를 누구보다 잘하는 입장이다.

코치의 가장 주된 업무가 바로 그거니까.

선수의 심리를 읽고 세부적인 지적까지 한다.

악용하면 멘탈을 바스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

약간 사악하긴 하지만 이것도 다 전략의 일종이다.

훈수 한 마디, 한 마디가 뼈를 찌르고 살을 후벼 판다.

"와~ 아링 로밍 가는데 트페는 미드에서 유령 먹고 앉았네."

"시발, 애초에 이게 다 니 때문에!"

"게임 집중 안 하세요? 5, 4……."

다시 카운트를 세자 깜짝 놀란다.

황급하게 빵테온이 어디 있는지 찾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전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다.

"5, 4, 카. 오사카 3박 4일 여행 코스가 그렇게 재미지다고 친구가 그러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알 바냐! 이 시발 새……."

─적에게 당했습니다!

수풀에서 아링이 툭-! 튀어나왔다.

한눈을 팔고 있던 이 양반은 반응도 못했다.

유혹에 맞아 그대로 여섯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유감스럽네요. 잡담 삼가하고 게임에 집중하시길. 파이팅!"

적어도 방금 전 죽음은 의도한 게 아니다.

게임이 하도 터져서 킬 나올 구석이 많아졌다.

역전하는 건 이제 때려 죽여도 불가능하겠지.

당초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했다.

나도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슬슬 다음 경기를 치러야 할 시간이다.

"형, 뭐하고 왔어요?"

"심심해서 잠깐 잡담하다 왔어."

"아~ 친구 만나고 오셨구나! 일단 저희끼리 다음 경기 밴픽에 대해 논의를 해봤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나도 이 대회 참가자다.

아까 그 양반과 마찬가지로 준결승전이다.

이번 팀원들은 사람이라 수월하게 올라왔다.

"야, 야! 머리 아프게 무슨 밴픽이야."

"네?? 아까 형이 하자고 해서 준비한 건데요."

"괜찮아. 형 실력 몰라? 그까이꺼 대~충 해도 이겨.

"……알겠습니다. 저희야 뭐 버스 타는 입장이니까요."

혼자서 캐리해야 하는 만큼 어깨가 무겁다.

세밀한 밴픽으로 부담을 줄이는 편이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사라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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