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1)

최명태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니가 훈수질을 둬서 경기를 훼방했잖아!"

"에이~ 입롤 하는 거 한두 번 들어보시나. 경기에 집중 못한 건 댁 잘못이죠."

주위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

졸지에 자신이 억지를 부리는 입장이 됐다

저 자식이 말한 것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당신은 제 멱살을 잡으셨죠. 혹시 보신 분?"

"저요! 저 그거 봤어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셨나 보네요."

"제가 왜 이런 새끼와 친구겠습니까? 아무튼 증언 감사하고, 댁은 분노조절장애가 관찰됩니다. 롤 유저로서 이해할 테니 이쯤 하고 자중합시다."

롤 유저라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해를 해준다고 하니 더 웃긴 일이다.

구경꾼들의 키킥대는 비웃음이 들려온다.

최명태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안 그래도 벌겠던 얼굴이 끓는 용암처럼 달아오른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던 찰나.

"마지막으로! 재경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죠? 정말 공교롭게도 결승전도 못 올라온 좆밥, 아니 패배자에게 할애할 시간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걸 부추긴다.

PC방의 손님들이 깜짝 놀란다.

구경?滂湧?말릴 새조차 없었다.

최명태의 주먹이 남자의 얼굴에 냅다 꽂혔다.

분노조절장애.

정식 학술 명칭은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약자로 쓰면 IED라던데 그것까지는 알 바 아니고.

'너무 깐족거리긴 했어.'

솔직히 조금 들뜨기는 했다.

이렇게 의도대로 잘 놀아나는 녀석.

살면서 보기 드물 정도의 희소 동물이다.

그래도 다소 과한 감은 있었다.

놀리다가 설마 한 대 맞을 줄이야.

건수는 멱살 잡힌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게임하다가 시비가 붙었다고요?"

"정정 부탁드립니다. 게임 중이 아니라 대화 중."

"대화는 무슨 니가 도발한 거잖아!"

이야기가 조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게임 대회가 뭔지 잘 모르는 듯한 형사 양반.

그리고 말 자체를 잘 못하는 듯한 멍청한 양반.

단순한 말싸움을 넘어 폭력 사태로 번지고 말았다.

경찰서에 오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필연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기는 하겠지만.

'컴퓨터 값을 굳힌다고 생각하면 아까운 것만은 아니지.'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게 만든다.

"아무튼 두 분 고소라도 할 거 아니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네, 할 건데요."

"역시 끝내는 게 좋을…… 예?"

형사 양반이 어이가 없다는 듯 정색하고 쳐다본다.

힘들 수 있다, 귀찮아질 수 있다 팍팍 어필해온다.

그렇게 겁을 줘도 내 대답은 바뀌지 않는다.

'나를 만만히 보나 보네.'

이런 단순한 폭행 사건.

누군가 크게 다치지도 않은 사건.

형사들이 처리하기 엄청 귀찮아 하는 부류다.

법을 수호하는 사람이 경찰이고 형사인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의 경찰은 그냥 공무원A다.

군대 가면 엄청 힘들겠지?

훈련도 빡세게 하고, 잘못하면 북한군도 만나겠지?

막상 군대 가면 시간 죽이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경찰들의 일상도 그렇게 스펙타클하지 않다.

자기들이 보기에 큰 사건이 아니면 유야무야 넘긴다.

이 유도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된다.

"맞고소 하면 둘 다 빨간 줄 그일 수 있는 거 아세요?"

"왜 맞고소가 되죠? 제가 일방적으로 맞았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지는……."

"증거 자료로 PC방 CCTV 제출하겠습니다."

멍청한 양반이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을 때.

최대한 빗겨 맞으며 딜교환은 참았다.

정식 한타로 번지지 않았다는 소리다.

당시에는 나도 흥분해서 어? 열받네…….

손이 올라갈 뻔했는데 참길 잘했다.

사람은 역시 이성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법이 그지 같거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The RealFact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정당방위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판례가 이 정도다.

칼을 가진 강도가 자신을 위협해온다?

강도의 손을 쳐서 칼을 떨어트리는 것까지만 정당방위다

다른 곳을 때리면 강도한테 폭행죄로 고소 당할 수가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더라도 반항을 하면 안된다.

반항하는 순간 쌍방과실.

놀랍게도 대한민국의 법이 그러하다.

"아, 진단서도 받아서 추가로 제출하겠습니다."

"고소한다고?! 너만 고소할 줄 아는지 알아? 시발 내가……."

멍청한 양반, 본명이 최명태라고 그랬나.

아무래도 사태 파악이 안되는 모양이다.

정색한 형사 양반이 목소리를 내리깐다.

내가 다 아는 눈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건이 최대한 빨리 종결될까?

다른 한쪽이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분 말이 사실이면 고소 당하는 건 아저씨만이에요."

"아니, 저 새끼가 먼저!"

"발언 주의하십시오. 여기 경찰서입니다."

"……네."

내가 킬각을 준 건 맞지만 딜교환은 나누지 않았다.

일련의 사실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니 생각이고.

법이 판단하는 건 상대에게 가한 딜량뿐이다.

난 주지 않았고, 너는 줬다는 게 찍혔다.

현실에서는 딜량 1위 하면 처벌 받는다.

"서로 합의 같은 거 보면 경찰서도 많이 오가야 하고 일상 생활에 지장이 많이 갈 텐데 서로 좋게좋게 넘어가시죠?"

"시간이 들어도 저는 이 땅에 정의를 구현하겠습니다."

"시발 정의 뭐?! 먼저 도발한 주제에 놀고 자빠……."

"아저씨, 발언 주의하라고요. 경찰이 우습게 보여요?"

"……죄, 죄송합니다."

저분 아까부터 정말 분노조절 잘되시네.

PC방에 있었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참에 마음의 병도 고치고 가면 좋을 듯싶다.

'만약 몰랐으면 형사 말대로 그냥 끝냈을지도 몰라.'

경찰서 분위기라는 게 진짜 무섭다.

특히 죄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더더욱.

형사가 정색하고 으름장 놓으면 정말로 그런 줄 안다.

그래도 형사이고, 경찰인데 잘 말해주지 않겠어?

세상이 그렇게 분홍빛이 아니다.

현실의 경찰은 정의의 수호자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법은 일반적인 상식과 어긋날 수 있다.

일련의 사실을 몰랐다면 당하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알고도 남을 나이다.

"저도 악마는 아니기 때문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신다면 120으로 합의해 드리겠습니다."

"뭐, 뭐 120?! 미치……."

받을 수 있는 돈이 몇 푼 안됐으면 죽자고 싸웠겠지.

개 패듯이 패서 PC방 정문에 걸어 놨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참아준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깽값, 아니 합의금 액수가 마음에 들잖아.'

보통 100 전후로 책정된다.

최명태씨는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되는 모양이다.

옆에서 답답함을 느낀 형사 양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전치 1주당 50~100만원 사이.

그런데 웬만하면 2주는 나온다.

그러니까 베이스로 100만원을 깔고 들어가는 셈이다.

참고로 벌금도 그와 비슷하게 책정된다.

하지만 빨간 줄이 그이고 전과가 생기다는 점.

구직 활동에 지장이 생기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합의를 해야지?

"아까부터 자~~~꾸 욕하시는데 제가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 혹시 모르니 정신과도 한 번 들려보고, 나중에 다시 천천히 얘기할까 싶은데."

"드, 드릴게요! 드리겠습니다. 아우 씨…… 앗 호떡."

최명태씨가 씨앗 호떡을 굉장히 좋아하나 보다.

꽁돈도 생겼으니 언제 한 번 사 먹어봐야겠다.

그렇게 상호간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예비 지갑 2호라고 부르면 되겠네.'

1호는 졸업식 때 만난 장환이 녀석이다.

1호에 비해 훨씬 더 통이 큰 좋은 분이다.

우리 사이, 만남은 나빴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좋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 *

팀 게임에서 개인이 가지는 가치.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해봤자 팀이 못하면 지는 게 롤이잖아?

그렇기에 얼마 전 화제가 된 이야기다.

혈혈단신으로 대회를 제패하고 다닌다.

상금까지 홀로 싹 다 쓸어 담는다.

대회를 본 목격자들이 생생한 증언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여론은 순순히 믿어주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잘해도 혼자서는 턱도 없음

설사 다크가 와도 안되는 건 안됨

다크가 괜히 러이챔스 4강따리겠음?

상대가 작정하고 팀 게임 하면 절대 못 이김

└안 봤으니 그런 소리가 나오지;; 혼자 다 죽이고 운영까지 다 했다니까?

글쓴이-응, 악마의 재능 다크도 그렇게는 못해

└닼?슬슬 기어나오죠?

└악마의 재능으로도 안되면 무슨 마왕급 재능이냐ㅋㅋㅋㅋ

혼자서 캐리가 가능할 리 없다.

과장이 섞인 헛소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증인들이 자꾸 맞다면서 우겨 댄다.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

그에 대한 반감.

그럴 리가 없다는 비웃음.

처음에는 비꼬기 위해 탄생한 드립에 불과했다.

수준이 낮은 대회니까 운 좋게 이긴 거지.

그렇게 매듭지어졌던 이야기에 다시 불이 붙는다.

클랜 단위의 상위권 아마추어들이 단체로 '양학' 당한다.

─???: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ㅋㅋ

└엌ㅋㅋㅋㅋㅋ

└드립이 아니었던 거임ㅋㅋㅋ

└드립도 아니고 비꼬는 거 아니었나?

글쓴이- 아 몰랑! 개꿀잼 몰카였던 거야!

퍼플펍PC.

사이버파크PC.

이 두 곳에 이어 희생양이 속속들이 나타난다.

제닉스 아레나PC.

사바나PC.

앞선 두 대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도 그럴게 반쯤 고인물이다.

상금 규모에 걸맞게 홍보가 제대로 됐다.

작정한 클랜들이 우승을 노리고 참가했는데.

─시원하게 털리고 왔습니다ㅋㅋㅋㅋ

Destiny 클랜장 현진입니다

사바나PC에서 마왕님 만나서 털렸네요

와…… 진짜 격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최대한 노력해봤는데 졌습니다

└털린 게 뭐 자랑이라고 글까지 올림?

글쓴이-정말 웃을 일이 아니긴 하죠 ㅎ; 근데 실력 차이로 진 거라 ㅠ.ㅠ

└우와, 님 마스터 아니었음? 마왕의 재평가가 필요한 각인가

└뭐야? 드립이 아니고 진심으로 올린 글이였어?

제닉스 아레나PC 대회에 참가한 클랜이다.

Destiny 클랜은 나름대로 수준이 높다.

클랜장이 무려 마스터 티어.

어디 가서 실력으로 꿀리지 않는다.

양학을 하면 했지, 당할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클랜이 단체로 가서 망신만 당했다.

그 당사자가 떳떳하게 인정해온다.

대체 얼마나 경기가 일방적이었길래?

처음에는 믿지 않던 사람들도 관심이 생긴다.

미지근했던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된 시발점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시발 소리가 나온다.

킬리만자로 클랜도 그 피해자였다.

─킬리만자로 마왕한테 참교육 당함!

여기 수원 사바나PC 인데

마왕이 원맨쇼 해서 우승해버림

쳐발린 킬리만자로가 추하게 억지부려서 싸움 붙음ㅋㅋ

└대체 뭐 하다가 대회에서 싸움이 남?

└?? 현피라도 뜬 겨?

글쓴이-자세히는 못 봤는데 일단 경찰 와서 사건 종결

└헐;; 경찰까지 올 정도면 큰일 난 거 아닌가;;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수 조용필씨가 부른 명곡이다.

그런 원곡의 비범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단순히 클랜명을 그렇게 지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오히려 이미지는 반대에 가깝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유명한 악질 클랜이다.

─킬리만자로 클랜이 거기 아님?

클랜계의 다크

대리 유저랑 비매너 유저 많은 곳

└제대로 알고 있네

└대리 유저 많기로 유명한 클랜이지

└그런데 인성은 썩어도 실력은 있는 곳 아닌가?

└응, 마왕한테 털렸어^^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하다.

대리 게임과 비매너 행위.

치를 떨 만한 행위를 일삼았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게임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눈엣가시 같았던 킬리만자로 클랜을 탈탈 털어주다니.

비웃음만 가득했던 여론.

멸칭에 가까웠던 비꼬기 밈.

그 두 가지가 역으로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정말로 혼자 대회 캐리하는 게 가능하나……?

어중이떠중이 브실골플 상대로 말고

다이아, 마스터 클랜 상대로

그것도 브실골 팀원 데리고 될까?

└아 몰랑! 아무튼 이긴데

글쓴이-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이기냐고. 상상이 안 가는데

└5252 믿고 있었다고 젠장!

└마 왕 은 무 조 건 승 리 한 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실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마왕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급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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