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가득했던 눈초리가 서서히 사그라든다.
선망 어린 시선으로 변해 쏟아지고 있다.
그렇게 달라진 건 구경꾼들만이 아니다.
"저은하~! 신이 간식을 사왔나이다!"
"그래, 수고가 많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팀원들의 말투가 시대를 뛰어넘었다.
존중을 넘어 존경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스로 자처해서 심부름까지 해올 정도다.
'살짝 부담스럽긴 한데.'
현재 PC방 내부의 상황.
고려를 해본다면 그럴 만도 하다.
의자 뒤에서 구경꾼들이 쑥덕이고 있다.
"나도 저런 버스 한 번 타보고 싶다……."
"저 정도면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 아니냐?"
"비행기도 부족하지, 저건 콩코드나 전투기야!"
콩코드 아시는구나!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으로 만든 초음속 여객기로 겁. 나. 빠. 릅. 니. 다.
옛날에는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대표적인 초음속 비행기였는데 요즘은 뜸해졌다.
아무튼 그렇게 빠른 비행기들과 필적한 만한 캐리력이다.
고작 버스라는 두 글자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리 느낀다니 게임을 제대로 본 모양이다.
"승차감이 가히 시몬스 침대에 비견되지 말입니다."
"허허, 욘석!"
"하하하하!"
팀원들이 나를 극진히 모시는 이유다.
푸른거탑 선후임병 느낌의 대화가 오간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간식을 건네받는다.
아무래도 체력 소모가 극심한 대회 경기다.
당분을 섭취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다.
간식의 내용물도 마침 먹고 싶던 것이다.
'이것이 최명태씨가 그토록 부르짖던 씨앗 호떡인가?'
PC방 근처에 가게가 하나 있었다.
대회 끝나고 사 먹으려 했는데 잘됐다.
돈도 시간도 절약하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다.
한입 베어 물자 끈적한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겉은 바삭, 안은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최명태씨의 단말마를 장식할 만하다.
"음료수도 사왔는데 혹시 어떠십니까?"
"뭘로 사왔는데?
"당연히 데자와빠따죠!"
데자와라니, 뭘 좀 아는 녀석이다.
무지몽매한 일부 우민들에 의해 폄하 받고 있을 뿐.
명실상부 지식인들의 음료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코는 어떠십니까? 코코넛워터가 달달한 게 맛있습니다."
"선 넘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낮아졌던 혈당을 보충했다.
결승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오늘 대회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클랜급의 상대를 만나게 됐다.
커뮤니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화두.
단순한 양학도 아니고 팀 게임을 하는 상대를 어떻게?
'물론 한계가 없지는 않지.'
어중이떠중이를 데리고 상대하는 셈이다.
부품이 안 좋으면 발휘할 수 있는 힘에도 한계가 생긴다.
지금까지는 승리를 거뒀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팀 게임, 특히 롤은 운적인 요소의 개입이 심하다.
불안 요소가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악조건도 극복 못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작해야 아마추어 클랜이다.
브레이크를 걸기엔 낮은 둔턱이다.
무엇보다 내 계획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 된다.
평소의 배에 배는 되는 수많은 인파.
커뮤니티를 보고 구경꾼들이 찾아왔다.
오늘 경기의 결과를 홍보해줄 고마운 이들이다.
대부분이 이미 감화되어 반쯤 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그러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내가 뭐 하나 실수하길 간절히 기다리는 눈치다.
'과정도 중요하고, 실력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결과야.'
e스포츠 세계는 특히 더 냉정하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우승을 못한다?
삽시간에 거품 취급 받기가 십상인 판이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기억.
선수 시절의 나날은 잊은 적이 없다.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은 나에게 실패란 없다.
* * *
유니온 클랜.
이름이 알려진 클랜은 아니다.
그들 자신도 특별한 소속감을 가지진 않았다.
이해관계가 얽힐 때만 간혹 결집한다.
그것은 바로 상금 헌팅.
금일 안산 갤러리PC에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미치겠네. 누군데 저렇게 잘해?"
"마왕인가 뭔가 하는 놈이라던데…… 하, 모르겠다 시발."
유니온 클랜의 클랜장.
성하민으로선 심히 당황스럽다.
상금 벌이를 위해 가볍게 참가한 대회다.
티어가 깡패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평균 티어가 다이아 상위권이다.
단순한 힘의 차이로 즈려밟는다.
하물며 팀워크도 거진 1년간 맞춰왔다.
무난하게 우승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아니, 난 진짜로 몰랐다고…….'
최근 커뮤니티에서 떠들썩하다.
어떤 화제인지 대충 확인은 했다.
PC방 대회를 정복하고 다닌다나 뭐라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차피 자신들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콰직!
터엉-!
소문의 마왕이 플레이하는 애꾸사자.
백전백승의 위력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믿고 싶지 않지만, 꿈이라면 깨고 싶지만 현실이다.
"진짜 킬각 또라이다 또라이다."
"애꾸사자 내주면 절대 못 이긴다니까?"
"그렇게 말을 해줬는데 왜 밴을 안 해서~."
"……."
구경꾼들의 훈수가 헤드셋을 뚫고 들려온다.
성하민도 경기 전에 얼핏 듣기는 했다..
애꾸사자를 미친 듯이 잘한다더라.
'그래봤자 리메이크 되고 고인된 챔프잖아?'
잘 다룬다고 해봤자 그게 그거지.
그냥 평범하게 OP챔피언 위주로 자르자.
클랜끼리 와서 자존심 구기게 뭔 저격이냐.
밴을 하지 않았던 자신이 원망스럽다.
첫 세트를 완전히 탈탈탈.
현저한 격차로 농락 당하며 털리고 있다.
─적 더블 킬!
트리플 킬!
잘하는사람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방심 따위 추호도 한 적이 없다.
할래야 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지켜본다.
주력픽을 꺼내 최선을 다했다.
전체적인 전력 격차부터 명백히 우위.
질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완벽하게 깨졌다.
"미안……. 로밍을 막을 수가 없다."
"됐어. 이미 터진 게임인데 뭐.'
안간힘을 쏟아냈던 것도 딱 10분까지다.
전황은 이미 손 쓸 수 없이 기울어져 버렸다.
단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해 이 모양 이 꼴이다.
'왜 하필 탑인 거야…….'
성하민의 주포지션은 탑.
안타깝게도 맞라인전을 펼쳐야 했다.
그 결과, 탑 차이에 의해 게임이 터졌다.
클랜원들한테 부끄럽고 미안하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다이아1이 그냥 쪽을 못 쓰네 쪽을."
"그러게 애꾸사자 밴 하라니까……."
"못하면서 말도 안 들어!"
뒤에 있는 구경꾼들이 멋대로 떠들어댄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을 이야기다.
어차피 니들 브실골이잖아.
하지만 지금 만큼은 참기가 힘들다.
내색하지 않을 뿐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애꾸사자를 밴하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다.
'고작 상대 한 명이 잘한다고 질 리가 없잖아 질 리가.'
상대 한 명이 무척 잘 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로드 오브 로드는 팀 게임이다.
운영으로 가면 한계에 부딪힌다.
현재 결승전도 분명 그래야 했다.
상대의 움직임이 워낙 신출귀몰하다.
콰직!
터엉-!
수풀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애꾸사자의 발톱이 위에서 아래로 확-!
타겟이 된 랄라는 최소한의 반항도 허락 받지 못한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잘하는사람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서포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와드를 박으러 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튀어 나왔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기가 찬다.
"아……."
"괜찮아, 괜찮아. 멘탈 잡아."
"대체 언제 또 여기 기어들어 왔대?"
움직임을 읽히고 있다.
일련의 사실 자체는 추측이 된다.
그러니까 미리 알고 대기를 탔겠지.
그런데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게 아니다.
자신들도 나름대로 철저하게 대비하여 움직였다.
'무슨 부처님 손바닥 위도 아니고……'
예상을 예상 당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다면 그것 뿐이다.
애석하게도 구경꾼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왜 들어가서 죽어 주는 거지?"
"답답~ 하다니까."
"그냥 정글 안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자기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관전 화면으로 살필 수 있다.
PC방 중앙의 대형 모니터에서 생중계 중이다.
하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다르다.
상대 위치를 알고서 움직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시야가 없으면 게임의 주도권이 넘어간다.
─적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파란 장신구의 쿨타임이 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정글 지역에 들어가는 걸 망설이고 있던 잠깐.
상대가 바론을 깔끔하게 가져가고 말았다.
시야를 먹으려고 나가면 끊길 수 있다.
그렇다고 안 나가면 바론을 먹히고 만다.
풀래야 풀 수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렸다.
'아니, 이게 말이 돼?'
가장 이상적인 운영임은 틀림없다.
그 만큼이나 높은 난이도가 따라 붙는다.
오랫동안 팀 게임을 해온 하민은 아는 입장이다.
롤챔스, LCK를 보면 열에 일곱은 나오는 경우다.
서로 간만 보고 싸움을 오질나게 안 한다.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해 뒤진다.
'암살이든, 교전이든, 오브젝트 트라이든 다 쉬운 일이 아니야.'
상대라고 손 놓고 노는 게 아니니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항상 산정해야 한다.
상대는 자신들의 경계가 우습다는 듯 농락하고 있다.
"……서렌 칠까?"
"아니, 가오가 있지. 하는데까지 해보자."
게임 시간이 고작 20분밖에 안됐음에도 불구.
솔직하게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정도로 스노우볼이 굴러갔다.
'최소한 한 방은 먹여줘야지.'
상대가 격이 다르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직접 겪어보니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무하게 패배할 수는 없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지켜보고 있다.
지더라도 유의미한 패배를 하고 싶다.
유치한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필요하다.
게임 내내 휘둘리기만 했다.
단순한 유불리를 넘어 멘탈이 흔들린다.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사이즈가 안 잡힌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밑바닥 친 자존심이 조금은 회복된다.
이를 계기로 어쩌면 역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거 아직 모른다."
"맞아. 레드팀도 한타 한 번만 비비면 할 만해."
"기본 티어 차이가 있지. 팀원들이 못 받쳐주잖아?"
구경꾼들도 그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임팩트로 인해 티가 안 날 뿐.
전력 격차는 언제 발목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다.
축구로 따진다면 강력한 공격수.
그런데 만약 공격이 어찌저찌 막힌다?
반대쪽으로 뻐엉~! 패스되며 골이 먹힐 수도 있다.
콰직!
터엉-!
혼자 골 넣고, 개인기 생쇼 해봤자 아군 수비 라인이 그만큼 골 더 먹히면 진다.
그것이 팀 게임에서 개인이 가진 숙명이다.
로드 오브 로드 또한 똑같은 팀 게임.
관중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한 가지 감안하지 못했을 뿐이다.
롤은 축구랑 달리 상대 수비 라인을 죽여버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