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하나가 절묘하게 적 라이너를 긋고 지나간다.
라인 푸쉬와 동시에 견제.
가장 이상적인 라인전 양상이다.
그러면서도 안정적인 포지셔닝이 이목을 끈다.
'……확실히 실력은 있는 녀석인가.'
트페는 초반 라인전이 약한 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라인을 밀어야 한다.
상대가 공격할 타이밍이 전혀 없도록.
이를 행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맞라이너가 어디 놀고만 있겠는가?
트페를 솔킬 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적 정글의 개입도 생각해야 한다.
생존기가 없어 툭하면 죽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
'전부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지.'
라인 주도권을 틀어잡는 실력.
맵을 넓게 쓸 줄 아는 멀티태스킹.
지인들이 오해를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매 순간 판단이 자신과 거의 일치한다.
빈틈을 주지 않고 천천히 게임을 기울인다.
낮은 구간에서 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뛰어나다.
'피지컬만 믿고 나대는 타입이면 이렇게는 못해.'
메카닉만 믿고 나대는 멍청이.
마챌 구간에만 최소 100명은 넘는다.
일일이 세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에 반해 이 녀석은 철두철미하다.
움직임에 군더더기나 낭비 요소가 없다.
마치 자신의 리플레이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
지인들의 마음이 점점 더 이해가 간다.
그들로서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겠지.
참지 못하고 자신에게 물어볼 만도 했다.
'그래서 대체 누굴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은 독자적이다.
천상계 유저들은 다 그놈이 그놈.
비슷한 이가 있었다면 모를 수가 없다.
유일한 가능성은 흉내 뿐이다.
하지만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설사 대중들의 눈은 속여도 자신은 어림없다.
'후보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굳이 따지면 없는 건 또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도인디.
자신과 플레이 성향이 유사한 편이다.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동기도 있다.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황상 그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현재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꼴에 프로게이머 지망생이기도 하다.
도인디를 제외하면 그럴 듯한 후보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나온 결론이 나라는 거네.'
물론 잉벤은 여기까지 생각이 닿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둘러보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라는 전제 하에 웃고 떠들 뿐.
애초에 자신을 깔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잉벤 유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떡밥일 테니까.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범인.
'그 가면을 한 번 벗겨 줘볼까?'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방도는 없다.
알아낸다 해도 고발을 할 수도 없다.
자신이 잉벤에 글을 쓰면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명확하게 하고 싶다.
정말 자신과 똑닮은 플레이를 하는 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흉내를 내고 있는 건지.
「최근 1주일간 랭크 승률」
? 트와이스 페이크- 100%
? 파사딘- 100%
? 코리아나- 92%
? 자드- 100%
.
.
.
확실히 잉벤이 난리가 날 만한 전적이다.
솔로큐로 저렇게 박살내고 다녔다.
챔피언 폭부터 대단히 유사하다.
자신이라고 착각할 만도 하다.
내심 인정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한 가지 만큼은 인정하기가 싫다.
자드(11/0/0) 승리 30분 전
코리아나(4/2/5) 승리 1시간 전
트와이스 페이크(7/0/3) 승리 2시간 전
.
.
.
눈길이 간 것은 자연스러웠다.
다른 게임들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11킬 0데스 0어시?'
상세 전적을 확인하니 쉽게 이긴 판도 아니다.
혼자서 게임을 억지로 끝냈다는 느낌.
리플레이를 보자 더욱 확실해진다.
[6:28] 성스러운락앤락 (쏘냐): 님은 손자병법도 안 보셨어요? 탈리반이었으면 상대 나오지도 못해요
'손자병법? 대체 롤이랑 무슨 상관이지?'
대화의 내용은 다소 의문스럽다.
그보다 더 의문스러운 건 게임의 내용.
바텀 라인이 아예 터져버린 상황임에도 불구.
구오오……!
아슬아슬하게 킬각.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살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잘하는사람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 게임 내에서는 전부 결과가 좋았다.
중반까지만 해도 8할 이상 넘어갔던 게임.
자드에 의해 반억지로 역전되고 만다.
'…….'
처음에는 대충 확인만 하려고 했다.
어느샌가 시간 가는지 모르고 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본색을 드러내기는 했다.
'마왕보다는 미친놈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자신도 자신을 정상적인 유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 이상이다.
팀을 망설임 없이 버림패로 사용한다.
어쩌면 전력으로 가면을 벗겨야 할지도 모른다.
* * *
노림수는 순조롭게 먹혀들고 있다.
솔로랭크의 점수.
그리고 인지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크나큰 화제다.
화제에는 관심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를 이용하려는 이 또한.
「파프리카 No.1 BJ, 러이갓입니다. 저와 합방 하고 싶으신 거 맞죠?」
「컨텐츠의 선두주자 러너맨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시간과 장소는……」
「BJ김상오라고 합니다 형님^^ 저는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요!」
.
몇몇 스트리머들이 쪽지를 보내오고 있다.
내용은 나를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러브콜이다.
'시청자 어그로를 빨고 싶다, 뭐 그런 의도겠지.'
최근 말이 많은 마왕님을 알아보는 코너!
대충 이런 느낌의 방송을 진행하려 한다.
출연료도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겠다.
딱히 유별난 일까지는 아니다.
e스포츠와 인터넷 방송은 뗄 수 없는 관계.
특히 스트리머들은 어그로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커뮤니티 등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방송 어그로를 끌기엔 최적의 컨텐츠다.
상부상조 한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언제까지 다크 이미지를 달고 살 수는 없잖아?'
어디까지나 이용했을 뿐이다.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손절해야지.
애초에 나는 스스로 다크라고 한 적이 없다.
몇몇 목격자들을 필두로 멋대로 오해했을 뿐이다.
오히려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아무튼 단물은 쪽쪽 다 빨아 먹었다.
'문제는 협업자를 고르는 건데.'
인터넷 방송.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만 지나도 사회 전반에 깊숙이 파고든다.
프로게이머도 많이들 전향할 정도다.
나에게 있어서도 친숙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개인 방송에 대해서도 나름 해박하다.
'케미가 맞아야지, 케미가.'
방송은 100m 달리기가 아니다.
비유한다면 마라톤에 더 가깝다.
초 단위가, 분 단위로 짧게 끝나는 일이 없다.
때문에 보조해주는 진행자의 능력이 중요하다.
기대감을 부풀리고, 흥미를 돋울 컨텐츠를 짜내고.
함께 할 스트리머를 고르는 건 신중히 다뤄야 할 문제다.
'단발성 화제에서 그칠 수는 없잖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알고 있다.
현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불 붙은 이유.
실력에 대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 다크다.
어? 다크 아니었네?
단발성 화제에서 그칠 수야 없다.
화제를 고스란히 인지도로 전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생]「최초 공개」 다크의 숨겨둔 자식 발견?!
[생]『롤드컵 코치들도 배워간☞리플레이 분석』.
[생] 『다크 리플레이 완벽 해부(이분 최소 외과의사)』.
이 수많은 스트리머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한다.
저들 대부분이 나에게 쪽지를 보내 왔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가장 확실한 건 직접 맛보는 거지.'
방송 스타일과 느낌을 체크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 또한.
대수롭지 않게 가장 상단의 방송을 클릭했는데.
〈저는 다크가 아닙니다. 일련의 소문은 전부 헛소문입니다. 이 점 명확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는 개뿔이 대리충 슈발 새끼가 대가리에 총 맞았나?!〉
어디선가 들어본 구수한 욕설이 고막을 찌른다.
최근 화제를 독차지하는 인물이다.
그의 압도적인 실력과 향후 행방.
주목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게 다크.
솔로랭크 최상위권 실력자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글까지 올라올 정도다.
─테이커의 진정한 라이벌……
수많은 프로들이 스쳐 지나갈 때
항상 그의 옆을 지킨 한 사람
다크
(Shadow of Taker)
└DARK GOD
└테이커와 함께 항상 정상의 자리를 지켰던 어둠의 신 다크!
└사실 롤도 다크가 만든 거임ㄷㄷ
└네 다음 러이챔스 4강 따리
일개 아마추어다.
역대 최고의 프로게이머와 비비다니?
사정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기가 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꾸준하게 의문이 올라온다.
비교 선상에 오른다.
파급력 하나 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단기간에 이 정도의 화제, 그리고 실력.
다크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해프닝이다.
〈형님들, 아직 확실하지가 않다니까요? 마왕님을 다크라고 부르시면 안됩니다~.〉
그런데 갑작스럽다.
일부 BJ들이 손바닥을 뒤집었다.
마왕이 다크가 맞다는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BJ러너맨의 방송.
또박또박 자신의 입장 변화를 전달하고 있다.
시청자들로서는 다분 당황스러울 수 있겠으나.
-아니, 러너맨도?
-BJ들이 단체로 다크 실드 치네
-코봉아……
-님도 다크한테 쪽지 받았어요??
러너맨만이 아니다.
다른 방송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가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을 정도다.
『마왕 영입 경쟁』
파프리카TV.
개인 방송 공화국.
이례적인 화제의 파도가 몰아닥친다.
〈제가 그분에게 받은 쪽지에 의하면~! 다크가 아니라고 하셨거든요. 물론 납득이 안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크가 아닌 '마왕' 의 오피셜이다.
러너맨은 그와 연락을 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ㅋㅋㅋㅋㅋ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아이디 아님?
-어둠부터 마왕까지 네 쌍둥이자너~
충신지빡이님이 금칙어 사용으로 채팅 금지 1회 조치 되었습니다!
심심하면 아이디 세탁을 해대는 다크다.
알면 알수록 더욱 못 미더워지는 사람.
믿지 못하는 건 어찌 볼 것도 없이 당연하다.
〈일단 그렇게 됐으니 그분은 다크가 아니다……, 라는 전제로 소통을 진행하겠습니다. 시청자 형님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려요!〉
비슷한 내용의 쪽지를 관심 있는 BJ들 전부에게 보냈다.
역시나 반응이 있었는지 BJ들 사이에서 현재 말이 많다.
그리고 나는 적당히 팝콘을 씹으며 관전 중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네.'
금칙어 지정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BJ가 나서서 다크가 아니라고 해명한다.
확실히 인성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다
BJ러너맨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아는 바가 있다.
이분 만큼 진정성 있게 방송하는 사람.
솔직히 말해 스트리머 중에는 드물다.
이번 사태를 긍정적으로 봐주고 있기까지 하다.
인기 또한 현재 2014년 기준 손가락에 꼽힌다.
그런 분의 방송에 초청이 되다니 참으로 영광!